□ 들쑥날쑥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여 가지런하지
않은 모양을 들쑥날쑥이라고 합니다. 들이마시고
내쉬는 숨을 들숨날숨이라고 합니다. 들숨날숨은
들쑥날쑥입니다. 뱃속에 있는 태아는 허파가
있어도 들숨날숨을 하지 않습니다. 탯줄을 통해
필요한 숨을 공급받기 때문이지요. 그러다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이제는
제 코와 입과 몸으로 들숨날숨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잘 보면 들숨날숨은 들쑥날쑥입니다.
숨을 들이키면 필요한 성분이 허파에서 섭취되고
필요 없는 것이 더해져서 다시 밖으로 내보내지는데,
이게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양이 다릅니다. 그래서
들숨날숨은 들쑥날쑥입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많은 공기를 들이키고 많은 공기를 내놓습니다.
병약한 사람의 특징은 숨을 죽이고(들숨) 크게 한숨을
내쉽니다.(날숨) 기도를 기독교인의 호흡이라고
하는 이유도 똑같습니다. 들숨은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기도응답, 생명력, 비젼, 꿈같은 것을 내
안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날숨은 내 안에 있는
슬픔 괴로움 죄의 고민 여러 가지 필요한 것들을
밖으로 내놓는 것입니다. 기도의 호흡이 들숨과
날숨이 적당히 반복되어야 정상인데, 우리 기도의
호흡은 들쑥날쑥 고르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날숨은 길고 오래오래 하는 반면 하나님께로부터
호흡하는 들숨은 아예 없거나 아주 짧습니다. 필요한
것만 잔뜩 올려 드리고(한숨만 쉬고) 벌떡 일어나
버리지 않습니까? 응답(들숨)을 받을 시간도 없이요.
천국은 하나님의 영(생명력)이 충만한 곳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력'은 들숨을 통해 내 안에 들어옵니다.
예수님도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셔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늘의 생명력을 공급받으셨습니다.
ⓒ최용우 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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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새 두 마리가 길을 가는데, 한 마리는 돈
자루를, 한 마리는 곡식 자루를 지고 있었습니다.
돈 자루를 지고 있는 노새는 목을 꼿꼿이 세워
고개를 쳐들고 고삐에 달린 방울을 흔들어 큰소리를
내며 걸었지만, 그의 동무는 조용하고 침착한 걸음걸이로
뒤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갑자기 도둑 떼가
습격하였습니다. 돈 자루를 진 노새는 칼을 맞고
쓰러졌습니다. 그러나 도둑들은 곡식자루까지 신경을
쓸 여유가 없었던지 급히 돈 자루를 가지고 도망을
쳤습니다. 돈 자루를 빼앗긴 노새는 빈털터리가
되었지만, 곡식자루를 진 노새는 잃어버린 것도
없고 다친 곳도 없이 다시 길을 갔습니다.
[꼬랑지] 돈이 많으면 항상 그 돈을 빼앗으려는
강도들이 주변에 얼쩡거려서 쎄콤을 설치하고 담을
높이고 철조망을 치고 경비를 세워서 스스로의 감옥을
만들어 그 속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용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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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우글방 - 꽃차 한잔의 향기와
여유 ○지난일기 |
□ 여기서 나는
가까운 곳에 사시는 집사님께서 다녀가시면서
"어디 이런 집 또 없나요? 아~ 이런데서 살고
싶다..." 하십니다. 집 자체가 좋다기보다는
분위기가 그분의 정서에 맞지 싶습니다. 허술하기
그지없는 이 햇볕같은집에 오면 저도 마음이
편안하고 좋습니다. 팔랑팔랑 날아다니는 나비
한 마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대롱거리며 매달려
있던 나뭇잎 한 장이 살랑살랑 부는 바람결에 이내
춤을 추며 떨어지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게 뜰에 쪼그리고 다리가 저릴 때 까지 한동안을
앉아 있습니다. '여기서 나는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것일까!...그것을 이루어서 또 어찌하겠다는
건가... 그 '무엇을 이룸' 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라고 말하면 그 말로 포장된 내 욕심이 덮어지는
것일까...내 자랑, 내 영광, 내 의... 하나님은 내
심령 깊은 곳을 다 통찰하고 계신데, 아무리 용쓰고
애써도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 아니라면 모두
헛짓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모든 것들을 내
안에서 비워내고 다만 긍휼히 여기시는 은총가운데
있게 하시기를 비옵는 것이 진정 살 길이다...
' 이런 저런 생각의 길을 헤매다가 문득, 무언지
모를 감사함이 밀려와 혼자 감격하고는 웃습니다.
채우고 키워야 할 욕심 한 가지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 더 친하고 싶고, 알고 싶은 것...그러한
갈망이 꺼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희미하고, 불분명한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슬픔입니다. 더 확실해지고 분명해지는
주의 얼굴을 뵈옵는 기쁨을 누리며 살고 싶습니다.
2009년 10월 8일/이인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