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71호 |
2012년5월26일에 띄우는사천삼백일흔한번째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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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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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버드대학교 도서관에 붙어있는 명문 30훈 2
16.미래에 투자하는 사람은 현실에 충실한 사람이다. 17.학벌이 돈이다. 18.오늘 보낸 하루는 내일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9.지금 이 순간에도 적들의 책장은 넘어가고 있다. 20.고통이 없으면 얻는 것도 없다. 21.꿈이 바로 앞에 있는데
당신은 왜 팔을 뻗지 않는가. 22.눈이 감긴다면, 미래를 향한 눈도 감긴다. 23.졸지 말고 자라. 24.성적은 투자한 시간의
절대량에 비례한다. 25.가장 위대한 일은 남들이 자고 있을 때 이뤄진다. 26.지금 헛되이 보내는 이 시간이 시험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겠는가. 27.불가능이란 노력하지 않는 자의 변명이다. 28.노력의 대가는 이유
없이 사라지지 않는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29.한 시간 더 공부하면 남편 얼굴이 바뀐다. 30.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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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현주1633 <이오 비망록(二吾 備忘錄)/풍경소리>중에서○지난글 |
□ 소문을
옮기는 것과
소문을 옮기는
것과 목격한 바를 증언하는 것은 하늘땅만큼이나 다른 일이다. 명색이 목사가 되어, 평생을 예수에 관한 소문이나 옮기며 소일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헛된 명성과 재물에 탐닉한다? 생각만으로도 입에 침이 마를 일이다. ⓒ이현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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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수유 꽃
칼날 추위속 얼어붙은 별빛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 침묵 중심에 대못이 박히는 통증 종알종알 망울 끝에 품는 노란
빛은 그 모든 것에 대한 제 대답이랍니다 ⓒ한희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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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티일기 - 어슬렁 어슬렁 동네 한
바퀴 ○지난일기 |
□ 일단 저질러!
결혼하기 전 한동안 신문배달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자세한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직장에서 짤린 뒤로 무엇이라도 해야 될 절박한
처지였던 것 같습니다. 밤새 고민을 하다가 신문배달이 생각났습니다. 동네 골목길에 붙어있던 '배달원 모집' 광고가 생각났던 것이지요. '우선
신문배달이라도 하자' 하고 한숨도 못잔 상태에서 새벽녘에 한겨레신문 지국에 찾아갔습니다. 지국장은 갑자기 새벽에 불쑥 나타난 저를 못미더운
눈으로 보더니 낮에 다시 오라고 했습니다. '퇴짜' 라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챘지요. 그때 밖에서 신문을 분류하고 있던 다른 분이 "호계동
지역 배달하는 분이 갑자기 오늘부터 못 한다네요. 큰일났네... 오토바이를 탈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저는 저도 모르게 "제가
할께요. 저 오토바이 탈 줄 알아요" 그리고는 밖에 나가 눈에 뛰는 오토바이에 신문뭉치를 막 실었습니다.
당황한 지국장은 "어. 어. 누가
하라고 했어요? 허 나 참. 그럼 오늘 하루만 한번 해봐요." 그렇게 마지못해 허락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저는 오토바이를 타본적이
없었습니다. 시동을 걸 줄도 몰랐고 브레이크 밟을 줄도 몰랐습니다. 어디에 배달을 할지 알려주겠다는 총무를 따라 호계동 지역 첫 번째 골목을
돌고 나오면서 오토바이가 엎어져 무릎이 팍 깨지고 백밀러가 날아갔습니다.
총무는 안되겠다고 판단했던지 낮에 다시 알려줄 터이니 일단
지국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오토바이를 타고 비틀비틀 돌아오다가 빨강신호등이 켜진 건널목에서 멈춰야 하는데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고 그만 자가용
옆구리를 박았습니다. 100% 저의 잘못이지요. 그래서 길바닥에 드러누워 얼른 죽은 척 했지요. 그랬더니 자가용 운전자가 놀라서 도망을
쳐버리더라구요.(휴- 큰일날 뻔했네. 하마터면 차값 물어줄 뻔했네.) 지국장은 나의 용감함에 반해(?) 그 후로 한참 동안 신문배달을
하도록 해주었던 기억이 나네요. 일단 저질러! 망설이지 말고! 나의 운명을 상대방의 손에 맡기지 말고 내가 결정하는 거야! 나는 용감한 녀석!
ⓒ최용우 2012.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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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일기- 책은
물과 공기 같아서 맑고 깨끗한 책을 골라
읽어야 영혼도 맑아집니다. ○지난일기 |
정원의<그리스도를
갈망하는 삶>을 읽다 21 |
□ 헌금의
영적 의미에 대하여 |
예배시간에
헌금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 한다. 평생 헌금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이것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역자들도 있지만 그것은
바르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는 결코 성도들이 가난의 영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혹시나 헌금에 대한 이야기 때문에 믿음이 여린 자들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한 배려는 나쁘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눈치를
보느라고 마땅히 가르쳐야 할 것을 전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다. 헌금은 결코 맨 뒤에 있는 헌금함에
슬쩍 넘어가듯, 부끄러운 듯이 드려져서는 안 된다. 헌금은 예배를 드리는
중에 예배의 한 부분으로 중심에서 찬양과 감사와 눈물과 기쁨의 고백
속에서 주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려져야 한다. 헌금기도는 형식적으로
드려져서는 안 된다. 거기에는 사랑과 애절함과 아름다운 고백들이 포함되어져야
한다. 예배란 자신을 주께 드리는 것이다. 설교를 듣는 것이 예배가
아니다. 우리를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 예배의 핵심이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을 드리는가? 물질을 드리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스펄전 목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당신의 호주머니가 회개할
때까지 당신의 회개를 믿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입술의
고백을 통해서 확정되는 것이 아니고 구체적인 삶의 태도와 방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다. ⓒ정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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