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침묵훈련
침묵은 단순히 말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잠자는 사람에게 침묵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화가 나서 주댕이가 한뼘이나 나와 있는 사람을 보고
침묵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너무 슬퍼 말을 잊고 멍때리고 있는 사람에게 침묵한다고하지 않습니다. 침묵은 맑고 투명한 의식을 지닌 채
묵언하여 자신의 정체를 알아채고 지키는 것입니다. 토머스 머튼은 "침묵에서 성인들이 성장하였고, 침묵으로 인해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 안에
머물렀고, 침묵 안에서 하나님의 신비가 그들에게 알려졌다."고 했습니다. 침묵훈련의 첫단계는 '말을 줄이는
것'입니다. - 의식적으로 말을 아끼고 줄여보세요. 말을 안해서 후회하는 일보다 말을 생각없이 마구해서 분쟁의 씨앗이 되고
후회하는 일이 더 많습니다. 말 많은 사람을 믿으면 안됩니다. 나 자신이 평소에 무슨 말을 하면서 사는지 문득 의식하여 보세요. 친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가만히 살펴 보세요. 침묵훈련은 말을 안하는 것이 아니라 '참 말'을 하는 것입니다. - 침묵의
체로 걸러지지 않은 말은 소음입니다. 말을 할 땐 다음 세 개의 문을 통과시켜보고 비로소 나오는 말이 참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일문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진실된 말인가? 제이문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상황에 맞는 말인가? 제삼문 -내가 지금 하려는 말이 사랑이
담긴 말인가? 바로 이 세 개의 문을 통과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침묵'이라 합니다. 침묵훈련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 정기적으로 해보세요. - 간디는 월요일을 침묵의 날로 정해서 실천했고 다니엘은 목숨걸고 하루 세 번 침묵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새벽이나 점심, 저녁시간 중 적당한 시간을 한시간정도 내서 그저 조용히 '가만히 있어' 보세요. ⓒ최용우 more..
이 글에 공감하시면 손가락 표시를 눌러
주세요
|
|
●쑥티일기 - 어슬렁 어슬렁 동네 한
바퀴 ○지난일기 |

□
옛날에는 꿈도 꾸지 못한 일이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금강변의 갈대숲에 불을 놓아 평지를 만든 다음 동네를 만들었는데, ‘대평리’입니다. 대평리는 일제시대 연기군에서
조치원보다도 더 큰 동네가 되었습니다. 대평장의 쇠전(소를 거래하는 장터)은 그 규모가 전국에서 다섯손가락 안에 들어갈만큼 큰 장터였습니다.
그런데 해방 다음해인 1946년 6월 큰 장마에 제방이 터져 단 하루만에 대평리는 물길에 대부분 휩쓸려 떠내려가버렸습니다. 대략
360채의 집이 사라졌습니다. 다시 복구할 엄두를 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황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대평리가 처음부터 강가 갈대밭 자리에
만든 동네라 또다시 물속에 잠기지 말란법이 없다고 생각하고 대평리보다 지대가 높은 용포리에
마을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면사무소, 파출소, 우체국, 오일장, 학교를 모두 용포리에 만들어서 용포리는 꽤 큰 마을이 되었습니다. ‘대평리’는 당연히
사라지고 논으로 변했습니다. 행정구역상 ‘대평리’는 50년 전에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동네는 용포리 보다는 ‘대평리’로 불립니다.
정류장도 ‘대평리’ 시장도 ‘대평시장’ 파출소도 ‘대평파출소’ 이발소도 ‘대평이발소’ 버스 노선도 ‘대평리 종점’ 교회도 ‘대평교회’....
죽은 대평리가 살아있는 용포리를 잡아먹은셈입니다.^^ 대홍수 당시 대평리를 복구하려면 다시는 홍수로 물에 잠기지 않도록 낮은 지대를 흙을
채워 높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산 몇 개를 옮겨다 메워도 부족할 정도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대평리를 포기하고
지대가 높은 용포리로 올라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세종시 공사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옛날 대평리 지역에 돌과 흙을 채워 지대를
높이는 일을 언제 했는지도 모르게 끝내놓았네요. 저 많은 돌과 흙을 언제 어디에서 가져다 채웠을까요? 우리나라 토공기술 참 대단합니다. 옛날에는
꿈도 못꾼 일을 소리소문 없이 뚝딱 해 놓았네요. 그리고 ‘대평리’라는 옛날 지명도 새롭게 다시 붙였고, 그 자리에 세종시청, 교육청,
법원, 학교, 고속버스터미널, 종합운동장이 들어섭니다. 세종시의 도시행정 중심지가 되는 것이지요. 대평리가 옛 영화를 다시 되찾을 모양입니다.
ⓒ최용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