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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6:41-44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641-44.

 

41-4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진다. 또 티 문제가 나왔지요? 눈의 티 문제. 이걸 가만 보면 가르치는 인도자들에게 많이 말하고 있는 것이고, 또 성도들 입장에서 보면 이제 보는 눈. 특히 우리 인도자들이 많이 교훈적인 차원에서 알아야 되겠어요. 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모른다면, 모르고 또 가르친다면 사람이 위선자가 되기 쉽고요, 모른 채 교회 일을 한다고 하면 이건 외식자가 되기 쉽습니다. 자기가 일부러 그렇게 되려고 해서가 아니라 모르면 자동적으로 그렇게 돼버려요. 그걸 알아야 된다. 위선자 외식자가 돼버린다. 외식자는 그 목적으로 계속 나가요. 열심 충성봉사하면서.

 

근데 위선자는 활동을 안 하더라도 자기는 잘못된 신앙을 옳은 신앙이라고 갖고 있거든. 위선자가 그래요. 일반 도덕적 개념의 청렴결백성의 신앙이라든지 신체적 이성적 감각적 신비주의의 신앙이라든지 자기 자학적으로 연결되는 은둔주의 고행주의 극기주의신앙 등등 외에도 많이 있지만 이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모르면 그런 요소들로 혼합이 돼있다. 반드시 그렇다. 그래서 바리새교인들 그 신앙이 예수님은 외식자들이라 했는데 안을 들여다보면 그런 요소들이 많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신앙의 본질이 아니면 어느 쪽으로 비뚤어져 나가도 나가게 된다. , 특히 인도자가 더 그렇고 교인들은 뭐 인도자 하는 대로 따라갈 거란 말이요. 그래서는 안 된다. 교회가 문제가 아니라 자기가 죽는다 그 말이요. 자기가 죽어. 하나님의 징벌을 당하고 자기가 죽어. 그런 신앙의 성질들은 하나님 앞에 모두 위선자들이고 외식자들입니다. 근데 교회가 이 마지막 시대 교회가 그것을 모르고 있다. 모르고 있구나. 모르고 있으니 모두 어깨동무를 하고 손잡고 나가자고 하고 있는 거지요. 그리고 자기들처럼 안 하면 모두 죄인으로 보이고 그런 신앙사상들은 하나님 앞에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하고 만들어지지 못하는 신앙들입니다.

 

교회를 다닐 때 인도자를 잘못만나면 진리본질의 신앙인격이 자라지 못하고 교회 다니면서도 열심히 믿으면서도 신앙인격 면에는 황폐해버려요. 황폐. 못쓰게 된다. 그 두뇌 그 머리는 못 쓰게 된다. 예수님을 오래 믿었느냐? 충성봉사를 남보다 많이 했느냐? 그러면 그만큼 사람이 차원적으로 모든 면에서 높이 올라가 있어야 되겠는데 그렇지 못하다고 하는 것은 그 신앙의 머리는 황폐해졌다. 곡식이 안 된단 말이요. 돌짝밭이 돼가지고 머리통 속에서 생산되는 게 없어. 남은 건 심통만 남았고 세상 걱정만 남아있지.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일반적으로 맞지요? , 일반적으로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하나님의 뜻에 대한 것을 생각을 하려니 영적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일반으로 말할 바에야 뭐 보나마나지. 외식은 알맹이 운동이 아닌 껍데기 운동. 무슨 말이냐? 주님의 복음은 이 알맹이 운동 천국복음 운동 타락된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으로 참 사람으로 만드는 운동인데 외식운동은 성경을 가지고 참 사람으로 속성적으로 만들어지는 그게 아니고 충성봉사하고 일을 크게 만들어놓자. 그러니까 기독교 같으면 그냥 종교 확장적인 운동을 해 나가는 것.

 

그렇게 하려면 돈 들어가야지요? 돈 들어가려면 사람 많이 끌어 모으려면 또 이렇게 교회 활동계획을 많이 짜야지요? 그런 거. 성경공부를 해도 그런 위주로 자꾸 나가게 되고.

 

그 성경에 보면 QT 있지요? ‘오늘 하루 온 종일 누구에게 싫은 소리 했습니까? 뭐 도덕적으로 선한 일을 했습니까? 도와줬습니까?’ 뭐 그런 거. 그 일반개념이에요. 그게 다. 그럼 우리는 눈에 보이는 그게 일반적으로 보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거기에서 당신은 얼마나 깨닫고 바로 잡혀져있습니까?’ 하고 깨닫는 이치 쪽으로 들어간다면 그게 이제 바로 들어갈 거란 말이요. 성경은 나보고 하는 말이지, 내 중심을 보고 당신 따라오라는 말이지 나보고 예수님이 나 따라오지 말고 저기 가서 예배당 크게 지어라그 말은 아니거든.

 

세상 속화된 기독교회가 종교확장을 많이 하고 있어요. 많이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성경가지고 하니까 진리운동과 비슷하게 보이지만 질적으로는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운동이다. 속을 세상으로 다 바꿔놓는단 말이요. 성경가지고. 세상소원을 가진 육적 비진리적 하나의 종교운동 이게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이 유다백성이 하나님 앞에 징벌을 받은 그런 사상들입니다. 그게. 그러니까 우리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 그게 신앙이다. 세상소원 목적을 가지고 있는 그 운동으로 키워가는 것을 우리가 볼 때는 그들 눈에 이게 대들보요. 그게 대들보. 그런데 그것을 본인이 빼내버려야 되는데, 교육적으로 보면 가르쳐주면 본인이 빼내버려야 그 다음에 걷힌 후에 해가 비취듯이 타락된 기존적인 지식을 걷어치우면 하늘의 진리 광명한 빛이 비춰져서 눈이 밝아서 하나님 앞에 죄 된 것을 볼 수 있다.

 

자칫 잘못하면 일반적으로 돌아가면 안 돼요. 무슨 말이냐? ‘네 흉은 열두 가지면서 다른 사람의 흉을 보느냐그 말이 돼 나올 수도 있는데 그건 일반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그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고 더 깊은 뜻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그걸 들고 온다 그 말이요. 그럼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이 안 믿는 사람들처럼 그런 식으로 보느냐 그 말이요. 사람을? 그건 아니에요. 원리원칙이.

 

예수님도 일반차원을 가지고 그렇게 보는 거냐? 그건 아니란 말이요. 하늘의 진리지식 가지고. 바리새인들은 의인이라고 하는데 의인이라고 하는 너희들의 그 사고방식 그 신앙이 세상 육적 종교적이다. 그게 너희들 눈에는 들보다. 그게. 들보인데 너희들은 너희들 식으로 안 하는 그런 사람들을 보고 죄인이라고 자꾸 그러는구나. 그런 것은 하나님의 바른 것을 알면 자동적으로 고쳐지는 거다. 근데 너희들이 사람을 보는 눈 자체가 그 지식 자체가 들보다 그 말이요.

 

그래서 우리가 사람을 비판하고 일을 비판하는 말을 딱 들었을 때에 그 말만 따라서 그 말만 듣지 말고 그 말의 뿌리를 어디다가 박아놓고 하느냐? 선악과 먹은 지식에서 나오는 거냐, 생명과 먹은 지식에서 나온 거냐? 그 두 가지밖에 없어요. , 그걸 바로 알아야 돼. 모르고 남의 말만 듣는 이건 안 된다. 하늘의 지식에서 진리지식에서 나온 말이라면 그건 정확한 거다. 하늘의 지식에서 나온 말은 그건 영원 궁극적인 개념이 들어있고 하나님 앞에서 비뚤어진 것을 말해주게 되겠어요. 그런데 그것이 아닌 것은 단순히 일반사람들이 흉보는 거와 같은, 그리고 그 지식을 가지고 교회 갖고 들어와서 기준이 돼버리면 이건 아니다. 기준이 틀려버렸다. 모두. 이해가 될는지 모르겠네. 이해 돼요? 이해되든 안 되든 시간만 가면 되지 뭐. 허허.

 

그래야 자기가 하나님 앞에 바로 설 수가 있지 일반지식의 기준을 가지고 예수 믿고 판단하면 네 자체는 하나님 앞에 바로 못 서 있다. 하나님 앞에 꾸중 듣는 소리다. 너는. ‘너부터 맞아야 되겠다그 말이 되는 거지요. 진리지식으로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구원이 아닌 것은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하니 지적이 되고 깨달음이 되고. 그건 안 된다. 그러니까 안 되니 고칠 수가 없다 그 말이요. 고칠 수가 없다.

 

목사님들도 다 아시겠지만 오늘날 목사님들이 종교적 지식이 기준이 돼있는데 고치려고 그래요? 안 고치려고 그래요. 참 그거. 그 신학교에서 배웠지, 그 지식을 가지고 졸업했지, 그 지식을 가진 채 목사안수 받았지. 그러니까 그거 내버리면 교회를 못하잖아요. 하더라도 못한다는 말이 되는 거지. 그러니까 못 버려. 참 못 버려. 정말 못 버려.

 

그리고 그 타락된 지식가지고 사람을 바로 세우려고 했지만 한 사람도 바로 세우지 못한다. 그러니까 사람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지식임을 몰랐다는 거요. 이해갑니까? 가르쳤더니 사람이 안 섰다. 못 서는구나. 못 서는 사람이 바로 못 서는 그 지식을 주었으면서도 이것이 하나님 앞에 사람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지식이라는 그걸 몰랐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간단히 말하면 목사님이 백날 가르쳐도 하나도 안 선 것은 네 가진 지식이 사람 세우는 지식이 아니다그 말이지. 그러니까 사람이 바로 안 세워진다 그 말이요.

 

그러니까 우리 듣는 입장에서는 사람을 바로 세우는 지식을 들어야 된다. 여기에는 정신 돌아가고 마음이 돌아가고 마음이 움직이고 마음이 어느 쪽으로 자꾸 기울 기울 했다가 어느 쪽으로 확 내려가고 있는지 그 신앙의 질적인 면에서 자꾸 다룬단 말이요. 그러니까 가르친다고 하는 자신도 바로 서지를 못하는 겁니다. 바리새인들을 봐라 그 말이요. 모르면. 그래서 성경을 주신 것이고 예수님께서 구원해주신 것이고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렇다 그 말이요.

 

43-44: 못된 열매 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 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맞지요? 그러니까 좋은 열매는 좋은 나무에서 열리는 것이고, 맞지요? 맞잖아요. 말 그대로 잘 보란 말이요. 그럼 좋은 나무는 어떤 나무요? 좋은 열매가 맺는 것. 그럼 그 나무둥치에서 가시가 열려도 열매가 좋다면? 그건 좋은 나무다. 못된 열매는 나쁜 열매라, 못 먹는 열매라그게 아니고 못된 열매는 못된 나무에서 열린다는 겁니다. 참 중요해요. 그러니까 좋다. 나쁘다하는 것은 사람에게 유익이 되고 또는 해를 끼친다는 말인데, 그렇지 않아요? 나쁜 열매 맺는 나쁜 나무가 인간에게 전혀 관계없다면 좋다. 나쁘다말할 필요가 없잖아요. 안 그래요? 그런데 사람과 관계되는 말이기 때문에 좋다. 나쁘다.’ 사람이 해를 당하면 그건 나쁜 나무다. 그건. ‘영원히 좋다. 영원히 나쁘다그런 것이라면 우리는 먼저 나무부터 구별하고 분별을 해야 할 거다.

 

사실은 나무보고 하는 말은 아니지요? 사람 나보고 하는 말씀이니 우리는 전 인격을 다하여 구별하고 분별해야 될 것이다. 사람을 아는 면에 보는 면에. 그러니까 좋은 것은 인격적으로 성품적으로 고상하고 아름답고 뛰어나고 풍부한 고차원적인 하늘의 것이고 못된 것은 악하고 나쁘고 썩고 불타고 땅의 것이다. 이건.

 

열매라는 것은 그 나무의 진액 원료뭉텅이입니다. 그 나무가 일 년이고 오 년이고 십년 이고 살아있는 동안에 뿌리에서 물을 빨아올리고 비와 햇빛과 바람 맞고 만들어진 그 결과가 열매에 있다. 맞지요? 열매는 그 나무에서 그렇게 열린 겁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열렸다. 이렇게 힘쓰고 애쓰고 시간 들여서 맺었는데 왜 좋은 열매 못된 나쁜 열매냐? 왜 그렇게 됐냐?

 

지금 이것을 교훈적으로 말하자면 교훈의 질이 문제다. 교훈의 질에서 정신 사상이라고 하는 열매가 맺히는 거요. 교훈의 질에서 열린다. 세상을 목적한 교훈을 먹으면 세상정신 사상이라는 열매가 맺히는 것이고 천국을 목적한 교훈을 먹으면 천국의 정신 사상이라고 하는 열매가 맺히는 거다. 예수님처럼. 세상 것을 찬양하고 배우는데 천국정신 사상으로 열매가 맺힐 리가 없다. 육은 육이요 영은 영이라는 말입니다.

 

절의 불경을 외우면서 성경이 잘 더 깨달아진다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 있어요? 세상 불타질 것을 가지려고 기도하면서 성령에 더 감동이 된다는 그런 사람이 있습니까? 세상을 구하면서 성령이 더 감동이 잘 된다는 그런 사람 있어요? 세상과 짝을 지은 사랑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자기를 더 사랑해 주시더라는 사람이 있습니까? 있어요? 이 멍청한 청년들은 그럴 수가 있을 거요. 둘이서 죽고 못 살고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나보다그렇게 생각할 거라. 맞지? 세상 것이 와서 자기를 넘어뜨리고 자기를 잡아먹으려고 하고 잡아먹으려고 사랑해주고 있는데 자기 딴에는 , 이게 하나님 사랑이구나하고 어머, 자기야하면서 아마 그럴 거라. 안 그럴까요?

 

사랑을 분별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해야지. 사랑을 분별하려면 사람을 분별해야 되는데. 사람 분별해야 돼요, 안 해야 돼요? 만화나 소설책을 보면서 나는 성경이 더 은혜 되게 잘 깨달아진다그런 사람 있어요? 그러면 악령을 받고 살면서 나는 성령의 감화 감동에 산다하는 그런 사람 있습니까? 있잖아요. 많이 있잖아요? 영화를 보면서 요한계시록이 더 잘 깨달아진다는 사람 있어요? 영화 묵시록있어요? 묵시록 있지요? 성경 안 보고 그거 보고 있으면 요한계시록이 잘 깨달아질 거요. 기독교 신앙의 본질을 모르면서 사람이 착각 속에 살게 된다. 남의 눈이 아닌 자기 눈의 대들보, 그리고 좋은 열매 썩은 열매를 기독자들이 왜 분별을 못할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지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는 반드시 우리의 구원도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모든 언행심사로써 신령천국과 하나님의 뜻을 증거를 했습니다. 또 선악과 따먹은 죄와 사망적인 인류역사 속에서 예수님 당신이 언행심사로써 영원히 가는 것, 죽음 저 너머에서도 옳은 것 그런 걸 다 증거를 했습니다. 부활 승천으로써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보여줬습니다. ‘너희들을 인간으로 만든 건 내 부활을 봐라이게 들어있다. ‘너희들도 이렇게 돼야 된다그걸 보여준 거라고요.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되어진 우리의 구원임을 깨닫게 해주는 겁니다. 부활 승천에서 그게 마침으로 다 나온단 말이요.

 

부활 승천을 이렇게 분해를 해보면 능력도 들어있고 하나님 성품의 온전도 들어있고 다 들어있어. 그러니까 백 프로 하나님의 말씀에 예수님은 신령한 천국의 것으로서 다 살았다는 증거가 되지요. 우리들에게 계시해 주는 거란 말이요. 무슨 뜻으로 그 활동을 했고 무슨 뜻으로 그 말씀을 했고 무슨 뜻으로 그 행동을 하셨는지? 무슨 말씀 끝에 그 행동을 했으며. 그 활동은 안 하고 병 고쳐주신 그 부분만 똑 땐 건지? 사람이 볼 때에. ‘무슨 말씀 끝에이게 있거든?

 

근데 누가복음에 보면 다른 성경에는 6일 후에 너희들 중에 죽기 전에 하늘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 다른 성경에는 엿새가 지난 후에. 근데 누가복음에는 팔 일이야. 팔 일쯤 되어. 그러니까 쯤 되어그러니까 칠 일이 막 지나면서 팔 일 쪽으로 들어갈랑말랑 이런 걸 얘기한 건지? 어쨌든 육 일인데 팔 일쯤 되어이건 말이 이틀이란 간격이 있잖아요. ‘쯤 되어하니까 바늘이 조금만 넘으면 팔 일이다. 그렇게 되기 전. 어쨌든 팔 일. 팔 일 동안, 팔 일 되기 전까지 너희들 중에 죽기 전에 하늘나라를 볼 자들도 있다는 그 말씀을 늘 생각하고 있는 사람은 제자들은 잠이나 제대로 잤겠어요?

 

그래, 볼 자들도 있느니라그 후에 팔 일쯤에 예수님이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면서 세 제자만 데리고 갔거든요. 아홉 제자 다 데리고 가려고 했는데, 그러니까 아홉 제자는 안 데리고 가고 세 제자만 데리고 간 거냐? 잘 생각을 해야 돼요. 왜 세 제자만 데리고 갔나? 무슨 말 끝에 그러냐 그 말이요. 그게. 무슨 말 끝에 그러냐? 그게 이제 바른 해석이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후로 세 제자의 그 마음을 예수님이 모를까요? 예수님이 바스락만 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하늘나라를 보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팍 깰까요?

 

그 어린애들에게 행여나 그런 말 마세요. 무슨 말이냐? ‘너 말 안 들으면 너 내버리고 나 도망가 버린다그래놓으면 애가 그 말 바로 알아들으면 잠을 못자요. 그러니까 엄마가 화장실에 가려고 바스락만 해도 눈을 떠가지고 엄마 어디가?’ 한 번 생각을 해봐요. 아주 끔찍하지. 어른은 장난 말 같은데 그 아이의 마음속의 그 아픔을 한 번 생각해봐라. 그 아픔 마음아픔을 한 번 생각해봐라. 얼마나 상처가 될까? 마음에 상처가 될까? 근데 영적 면에 너무 둔감해서 우리들은 함부로 말을 하지요?

 

무슨 말씀 끝에 그 행동이 나왔는지?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근데 보통 보면 무슨 말씀 끝에, 그러니까 말씀에 어떤 뭘 나타내주기 위해서 그 행동이 나와 있는데 그 말씀의 뜻은 모르고 그 행동만 똑 따가지고 나도 병자 고치러 다니겠다.’ 자기가 병자면 자기 병부터 고치려고 그러지요? 이치가? 근데 나는 병 안 들었다. 그러니까 나도 예수님처럼 병 고치는 일을 하겠으니 예수님보고 자꾸 신유의 은사 달라, 은사 달라떼를 쓰고.

 

아브라함의 신앙의 그 정도를 모르고 아브라함은 부자라. 물질축복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그것만 보고 나도 물질축복 좀 많이 주십시오. 그럼 나도 아브라함처럼 신앙자가 되겠습니다.’ 완전히 거꾸로 다 돼버리지요? 이 참 문제요. ‘말세에는 죄악이 관영했다이런 것을 읽고 일반사회 윤리도덕성 운동을 하는 것, 이 참 문제요. 40일 기도하신 것을 보고 나도 한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그 행하심 속의 어느 한 부분만 똑 똑 따서 그 면을 강조해 나가는 것. 각 교회마다 열매 맺는 신앙정신 사상이, 그런 이방우상화 정신 이단성, 그 나쁜 열매란 말이요. 그게 나쁜 열매라.

 

이단이 뭐지요? 이단이 뭐요?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뭐요? 끝이 다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같다. 끝이 다르다. 네 말대로 맞다. 그럼 처음에는 어떻게 같다는 거요? 그걸 말 못할 거라고. 처음부터 제 생각에 다르다. 우리 조직과 다르다이런 식으로 말을 하지. 처음에는 비슷하게 보이는 거요. 거의 같아요. 거짓교회와 우리교회와 비슷해요. 끝이 어떻게 달라요? 어떻게 끝이 달라요? 그거 분별할 줄 모르면 이게 오실 필요가 없어요. 먼 데까지 뭐 하러 와. 자기 집 가까운데 가지.

 

어떻게 다른 거요? 처음에는 다 같아요. 성경보고 찬송 부르고 다 예배하고 하나님, 주여하는 거 다 같아요. 첫 눈에 볼 때는 다 같아요. 끝이 달라요. 어느 끝이 다른 거요? 성경구절의 해석이 여기서는 어떻게 돌아가요? 그것도 알아야지? 잘 먹고 잘 살라고 그래요? 거짓과 이단자는 잘 먹고 잘 사는 데로 끝이 돌아가요. 세상에 들어가 있단 말이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의 온전으로 들어가 있단 말이요. 끝이 다르잖아요. 해석이 다르잖아요.

 

그리고 또 시간적으로 보자 그 말이요. 이제 앞의 것은 사람을 본 거고. 시간적으로 보자 그 말이요. 어느 것이 영원히 가는 거냐 그 말이요. 마지막까지 어느 것이 바로 들어가느냐? 천국에는 사람이 들어가요, 집이 들어가요? 사람이 들어가지. 그러니까 옳은 거지. 사람이 들어가도 하나님의 사람으로 닮아진 것. 질적으로 닮아진 거. 그러니까 확실히 우리가 옳아요? 우리가 비판도 하고 그래야 돼요.

 

천국에는 하나님을 닮은 사람이 들어가요. 질적 면에서 능력적인 면에서 구원을 많이 이룬 게 들어가. 그러나 이단자들은 간판은 뭐 아주 거창하게 단체가 보수정통이라 그래도 질적인 면에서 이게 시간적으로 어디다 거의 내려져 있어요? 종교운동. 이게 외식이다. 하나님 앞에 이게 다른 거다. 이건 다른 거다. 다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이게 이단이냐? 이단도 되고 거짓도 되고. 저주를 받는다. 영원히 저주 받아. 지옥 간다는 그 말이 아니요. 지금 말뜻을 바로 알아들어야 돼요.

 

그러니까 그걸 못 보는 눈을 가지고 가르치고 있다면 네 눈에 들보나 빼라. 너에게는 더 큰 게 들어있다. 하나님도 못 보는 하나님 앞에 가려져 있는 게 들어있다. 근데 그걸 못 보고 네가 누굴 가르쳐서 좋은 사람 선한 사람을 만들려고 그러느냐 그 말이지?

 

영원 궁극적인 구원에 하등의 유익이 없는 나쁜 열매. 그러니까 우리의 온전한 구원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는, 기독교라고 하는 이름을 빙자한 하나의 구복주의운동, 하나의 신비주의, 하나의 사회주의운동, 하나의 초절주의, 하나의 귀신운동. , 기독교 안에 너무 많다. 질이 전혀 다른 이건 썩은 열매. 사람에게 영원히 해를 주는 나쁜 열매. 그 집안 역시 하나님 앞에 썩고 나쁘고 악한 나무들이고 악한 열매들이다. 사람들 속에 그렇게 형성이 돼있다. 덕이 없다. 덕이 안 된다. 이건.

 

그 열매는 그 단체의 교육에서 열리는 겁니다. 나쁜 나무에서 나쁜 열매가 열린다는 말이요. 그 정신 사상으로 배출된 종들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종들이 아니라 그런 종들은 교인들만이 아니고 자기의 신앙도 무엇이 비뚤어져있는지 모르고 또 알려주지도 못하고 자기가 말한 것에 목숨 바쳐 충성봉사하기만을 강조하는 겁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 앞에 큰 축복받는 신앙인양 불순종하면 저주를 하고. 이런 지식으로 굳어져 신앙인 것처럼 하고 다른 신앙들을 보는 것은 자기 눈에 들어있는 들보.

 

다른 신앙은 자기들, 그러니까 그들의 입장에서 우리의 이 신앙을 분석할 수 있느냐? 그건 안 돼요. 이해가요? 그거 알아야 돼요. 그런데 신령천국의 이 지혜지식을 가진 자는 얼마든지 분석이 들어가요. 그거 알아야 돼요. 눈에 보여요. 자동적으로 보이는 거지. 보려고 해서가 아니라 옳은 것이 들어가면 눈이 밝고 지식이 그 기준에서 옳고 그름이 얼마나 비뚤어져 나가는지 이건 자동화로 보이는 거다. 그래서 고쳐나가는 거고.

 

악하고 나쁜 열매 맺고 있는 자기인줄을 모르고 있구나. 나쁜 열매가 뭐요? 좋은 열매는 뭐고? 간단하게? 좋은 열매는 뭐요? 뭘 보고 좋은 열매라 그래요? , 얼른 얘기해야지. 집에 안 갈 거요? 뭐가 좋은 열매요? 한 시간이 가도록 이렇게 했는데 뭐가 좋은 열매요? 얼른 얼른. 다 까먹어도 좋은 열매, 나쁜 열매는 알고 가야지. 나쁜 열매는 뭐요? 시켜야겠다. 안 되겠다. 가만 있자. 누굴 시키나? OO, 뭐가 좋은 열매요? 안경 쓴 사람이 좋은 열매요? 천국의 정신 사상으로 영글어진 거. 나쁜 열매는? 나쁜 열매야 반대가 되겠지 뭐.

 

그럼 좋은 열매, 나쁜 열매가 일반적 차원에서는? 일반적 차원 아까는 그 신앙의 차원이고. 일반적 차원? 좋은 열매는 일반적 차원으로 어디 얘기 해봐요? 또 불러야 되겠다. OO, 봉천동 할매 아들인가? , 실례했어요. 일반적 차원에서 좋은 열매? 일반적으로? OO가 안 보이네? 어디 그 뒤에 있으니까 눈이 적으니까 안 보이는구나. 어디? 일반적 인간차원에서? 사람이 먹어서 맛있는 거. 허허허. 일반적 차원이란 여기서 식물의 경우 말고 인간차원에서. 맛있는 떡은 뭔지 알아요? 싱거우면 맛있는 떡이 아니에요. 간간해야 이거 맛있어. 소금이 약간 들어가야 이게 간간하고 맛있는 건데 맛있는 떡을 만들 줄 몰라.

 

그래, OO? 아까는 식물차원의 얘기였고, 사람차원에서 일반개념으로 보는 좋은 열매? 도덕성이 좋고 일반적으로 사람이 좋은 거. 그럼 나쁜 열매는 그와 반대가 되겠지. 사람으로서 나이 먹어도 이게 늘 죄만 짓고 경찰서 왔다 갔다 하고, 말하자면 나쁜 열매는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거고 좋은 열매는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거고. 일반개념으로 볼 때에 일반적 차원으로도 이 세상에서 유익을 주는 것. 일반적 차원으로 나쁜 열매는 세상에서 사람에게 나쁘게 해를 끼치는 것.

 

그럼 영적으로 들어가면 이건 영원으로 끌고 들어가는 거요 영원에 해당되게. 그럼 영원에 해당 되는 것은 이게 하나님의 기준 척도에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져서 언행심사가 나온다면 그건 참 좋은 열매요. 영원히 좋은 열매. 이게 성경해석이요. 나쁜 열매는 뭐요? 반대로 교회는 열심히 다니게 하고 열심히 가르쳐도 세상에 속한 다른 복음을 가지고 가르치니 하나님 앞에 인격적 성품적으로 이게 돼지지 않는다. 그러니까 교훈적으로 이미 벌써 이것은 그 사상과 정신은 교회 충성봉사 열심히 다녀도 이건 나쁜 열매다. 정신 사상적으로 들어가 있단 말이요. 이해가시죠? 그렇게 나오는 거다. 성경해석은. 또 뭐 알 거 있어요?

 

그럼 이제 뭐요? 들보? ‘외식하는 자여, 네 눈의 들보부터 빼라.’ 들보가 뭐요? 뭘 의미하고 그 말씀을 하시는 건지? 이방인들을 보고 말씀하시는 거요? 이 바리새 종교인들보고 하는 말이요? 바리새인들은 일반적으로 그렇게 나쁜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근데 가르친다고 하는, 성경가지고 가르친다고 하는 그 기준이 어디에 들어가 있어요? 그 기준이? 성경은 하나님 앞에 인간으로 하여금 죄 된 것을 바로 보게 하는 거거든요. 하나님 앞에 죄 된 것을 바로 보게 하는 것. 이건 안 보이고 못 보고 못 본 상태가 돼 있는데 자꾸 껍데기 운동 표면 행동 활동 덩어리 키우는 것. 사람 보기에 거룩하게 보이려니까 옷도 어떻게 하는 그것 다 전부 다 그 위주와 목적으로 들어가 있단 말이요.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 신앙정신 양심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이 가득 들어있는 상태에서 그러고 있는데 이게 안을 못 보게 해주는 못 보게 만드는 그 가르침. 그것이 바로 들보란 말이요. 그것부터 빼라. 그 지식부터 빼라. 잘못 돼있다. 그러고 난 뒤에 상대방의 작은 티,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 또는 일반사람들과의 서로 싸우고 물고 찢고 그건 작은 거. 하나님 앞에 가로막힌 거는 큰 거. 뭐가 가로 막혔냐? ‘큰 죄 지었다지금 그런 의미가 아니고 그런 죄를 짓고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지식 그걸 빼내버려라. 그 다음에는 이제 사람끼리 잘못된 요건 나중에 다 바로 돼 들어 갈 수 있는 거다. 하나님 앞에 그 말이요.

 

그것도 제시도 안 돼 있으면서 사람보고 자꾸 이러쿵저러쿵 이러면 그건 죽었다 깨어나도 안 고쳐진다. 쉽게 말하면 이 세상 육적인 종교적인 개념을 가지고 가르치면 백 날 해봐야 하는 소리가 도둑질하지 말자. 거짓말 하지 말자.’ 그건 잘잘한 거예요. 일반적인 건데.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 앞에 바로만 놓여지면 고쳐지는 건데 하나님 앞에 바로 놓여지는 그게 없단 말이요. 세상이라고 하는 그 지식이 딱 가로 막고 있어. 그러니까 하나님 앞에도 바로 못 돼 들어가는 거다. 그걸 알아야 된다.

누가 무슨 죄를 지었거나 무슨 활동을 했거나 그 사람 속의 지식의 비중의 큰 거예요. 그걸 바로 잡으면 그 다음에 행동 활동은 그건 서서히 바로 돼나가는 거요. 원리가 그렇단 말이요. 교육의 원리가. 그런데 오늘날 거짓된 교회가 그러냐 그 말이요.

 

그리고 또 뭐였지요?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지요? 육적 소경도 마찬가지고, 영적 면의 소경은 하나님 앞에 하나도 인도가 안 되고 하늘나라 가는 길도 바로 제시도 안 되는 거고. 그럼 뭐요? 결국은 종교적 운동밖에 더 하겠느냐? 이게 외식이다. 그렇게 가르치는 것이 이게 결국은 나쁜 열매가 되는 거다.

 

자기는 좋으라고 하는 거지. 그런데 왜 모르는 거요? 가만히 보면 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신앙의 적중성.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못 보기 때문에 그런 상태가 돼버린다. 그러니까 우리는 들으면서 그 깨달음의 원리를 알아야 예수를 바로 믿는다 그 말이요. 이해가십니까? 잠을 자더라도 그거 하나는 깨닫고 자야지. (계속)

 

궁극교회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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