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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분노를 가정에서 떠나 보내라 (가정의 달)

에배소서 크리스............... 조회 수 78 추천 수 0 2020.06.04 07: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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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4:25-32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네이버 카페: 말씀의 숲 교회(서울 구산동) 



내 안에 있는 분노를 가정에서 떠나보내라



(4:25-32)

 

 

예전에는 화를 내는 사람이나,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을 볼 때 참 성격 더럽네! 왜 자꾸 화를 내 라고 했는데, 요즘은 이것이 질병으로 분류가 되어 분노조절 장애로 말하기도 하지요.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여 장애를 일으키는 것이죠.

 

물론 여러 부분에서 화! 분노를 참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참지 못하고 주체를 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데, 특별히 가정에서 분노, 화가 나면 그 가정은 다른 어떤 곳보다 더 치명적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질병은 앞으로 더 심해질꺼래요. 왜냐하면 지금 어린 아이들이 스마트폰 시대에 있고, 스마트폰시대의 특징은 화면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바로 그 자리에서 해결 되어야 직성이 풀리도록 만들어 놓았지요. 고리타분하게 질질 끌고, 바로 해결하지 않으면 기다리지 못하고, 싫어하는 세대에 있는 것이죠.

 

그런데 누구나 분노를 가지고 있대요. 분노를 안 내는 사람은 없고, 분노가 없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분노는 내가 감춘다고 해서, 내가 없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아요. 그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 다른 것뿐이지, 누구에게나 분노는 있대요. 그러니까 분노에 지면, 최악의 내 모습이 나온다는 것이죠.

 

우리는 공동체나, 기타 모임에서는 이를 물고 분노를 잘 들어내지 않는대요. 하지만 가정은 가장 편하지요. 가장 편한 곳이 가정이기 때문에 가정에서 배우자나, 자녀들에게 나의 최악의 본성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다른 사람은 숨겨도 매일 매일 살고 있는 가정에서는 숨길 수가 없지요.

 

분노는 진화하고 발전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언어도 점점 잔인해질 수 있고요. 이 분노가 지나치면 집어 던지기 시작하고, 집어 던지기 시작하면,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이것이 분노의 표출 방식이라는 것이죠. 여러분, 자신의 최악의 본성을 만나는 순간, 최고로 괴로운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나 라는 것이죠.

 

분노의 표출 방식은 아주 다양해요. 어떤 사람은 먹는 것으로 그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도 있대요. 먹어도, 먹어도 배가 허 하지요. 그런데 먹고 나서 나타나는 또 다른 나쁜 것은 먹고 나면 몸무게로 나타나니까, 먹고 나서 불어 있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자신을 혐오스러워하고, 자학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따라온대요.

 

그리고 우리가 하나에 빠져 있는 것도,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이죠. 게임에 빠져 있다든가, 지나치게 스포츠에 빠져 있다든가 하는 것도,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라는 것이죠. 그리고 누군가에게 말할 때, 빙정거리거나, 깐족거리거나, 말로 상대를 콕콕 찌르는 것도, 분노의 표출 중에 하나래요.

 

, 지나치게 아주 과잉 친절 한다든가, 아니면 지나치게 웃고, 환호하는 것도, 지나치게 굽신 거리는 것도, 내 안에 쌓인 분노가 몸으로 말해 준다는 것이죠. 아시나요? 틱 현상도 내 안에 있는 어떤 분노를 내 보내지 못하니까, 나타나는 분노 중에 하나이지요. 분노가 쌓여지기 시작하면, 뭔가가 내 안에서 돌아다니는 것이죠. 그것이 내 안에 눌려져 있지만, 언젠가는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나에게서 나온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모든 분노는 무조건 나쁜 것일까? 예수님에게는 분노가 없었을까요? 그렇지 않아요. 예수님에게도 분노가 있었어요. 분노를 표출하는 것, 건강한 거예요. 분노는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아주 건강한 형태의 감정 중에 하나라는 것이죠.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주신 분노는, 무엇인가 잘못되어 가고 있는 것을 감지해서, 그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아주 건강한 감정이라는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드려야 할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 환전하는 자들을 보면서, 상을 엎으시고 분노하셨어요. 정말 예수님이 맞나 할 정도로 예수님이 크게 분노하셨지요. 잘못되어가는 것에, 예수님의 건강한 분노를 우리는 보게 됩니다. 그래서 분노는 나쁜 것만이 아니지요.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처럼 건강한 감정으로 분노를 쏟아내지 못해요.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우리에게 가지고 있는 분노는, 우리에게 있는 죄하고 붙어 버려서, 정말 예수님처럼 건강한 분노를 표출 할 수 없다는 것이죠. 우리에게는 있는 분노는요. 우리 안에 있는 죄 성과 만나면서부터, 옳지 않는 형태의 분노가 나타나기 시작한다는 것이죠.

 

아무리 거룩한 분노처럼 보여도, 내 안에 아무도 모르는 이기심, 시기, 질투, 욕심, 누군가를 공격하고 싶고, 내가 가지고 있는 그 상처를, 그 분노에 얹어서 표출한다는 거지요. 기회만 있으면, 죄 성이 끊임없이 올라오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된다는 것이죠.

 

분노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 상대가 나를 부추였고, 나를 화나게 했고, 열 받게 했고! 그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가 선한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것이죠. 이유 없는 분노는 없지만, 그 이유가 선한 경우는 아주 드물다는 것이죠. 내 안에 끊임없이 나만 아는 내 모습이 있다는 것이죠.

 

가만히 보면, 다 자기의 자존심이 건드려 졌거나, 나에게는 없는데, 상대는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한 속상함, 불공평, 내 감정이 건드려지는 것에 복수하는, 그런 형태가 우리 안에는 분노로 다 들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죠. (뭔가 분노가 있구나~~)

 

그래서 죄와 만난 이 분노가 가장 편하고, 가장 쉬운 가정에서 표출되기 쉽고, 결국 가정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더 나아가 교회라고 하는 가족 공동체 안에서도 치명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내 안에 죄와 만난 분노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셔야 하고요, 내 안에서 떠나보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가 분노할 때, 진짜 이유를 찾아내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누구에게나 분노가 있다면, 그 분노의 유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그리고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내 안에 그 분노가 있지만 어느 쪽으로 가야, 더 죄 짖지 아니하고, 더 건강한 분노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첫째로 폭발 형 분노가 있대요. 폭발해 버리는 거죠. 이 분노는 알아보기 쉽대요. 왜냐하면 본인도 알고, 남도 잘 알고 있는 형이죠. 벌컥 화를 내는데 통제를 잘 못해요. 예를 들, 이 폭발 형은 아버지가 갑자기 화를 내고, 갑자기 밥상을 없어 버리는 것이죠. (예전에 아는 전도사님은, 그렇게 아버지가 밥상을 엎어 버렸대요. 늘 불안하게 밥을 먹는 거죠.)

 

그런데 이 폭발 형이 무서운 것은, 내가 화를 내면 누군가를 내가 조정할 수 있다는 거예요. 내가 소리를 지르면, 가정에서 배우자와 아이들이 쩔쩔 매는 것을 보면서, 그것을 즐긴다는 것이지요. 아이나 배우자를 그런 식으로 조정을 하고, 그런 상황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죠.

 

내가 화를 내면 저 인간이 들어 주는 구나!’ 분노를 조정하는 것에 맛을 들여서 이용하는 것이죠. 지금까지 이것으로 남편도 조정했고, 아내도 조정했고, 자녀도 조정을 했고, 주변 사람들까지도 조정해 왔다는 것이죠. 한마디로 내 분노가 먹힌다는 것이죠.

 

그런데 반대로 이 폭발 형은, 상대방 마음에 또 다른 분노를 일으킨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남편이 늦게 들어오면, 너 때문에 열 받게 만든다고, 제발 일찍 좀 들어오라고 아내가 분노를 하면, 그 당시에는 남편이 수긍하는 것처럼 보여도, 아내의 분노가 너무 지나치다보면, 어느 순간 마음속에는 그래? 나 더 늦게 들어와!” 라는 생각이, 그 상대방 안에 분노로 들어 앉아 있게 되고, 언젠가 그것을 몸으로 실현 한다는 것이죠. (엄마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그래서, 대부분 이 폭발 형을 만나면 피한대요. 주변에 사람들이 점점 없어지는 것이죠. 관계적으로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간대요. 그래서 이 폭발 형은 자학을 많이 한 대요. 한번 폭발을 하고 나면, 후회스러운 것이죠. 내가 왜 그랬을까? 조금만 참지 라고 후회하면서 자학한대요.

 

두 번째 분노는, 찔끔 찔끔 형이 있대요. 내 안에 분노를 찔끔 찔끔 흘리는 것이죠. 이 흘리는 형은 그 분노가 자세히, 그리고 얼릉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죠. 정당한 것처럼, 은근히 비판하고, 은근히 빈정대며, 아주 교묘한 방법으로 그 분노를 흘리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렇게 분노를 계속 흘리면, 그 주의 사람은 어떠할까요? 그 분노를 다 흘려보내기까지 그 주위 사람들은 불안하지요. 만약 가정에서 엄마가 이렇게 찔끔찔끔 흘리는 형이면, 그 남편하고 자녀는 그 분노가 다 해결되기 까지는 정말 불안한 거죠. 계속 눈치를 보고, 계속 엄마의 분이 풀릴 때까지 숨죽이면서, 기다리는 것이죠. 그런데 그 불안도 습관이 되면, 그것이 나도 모르게 몸에 베이게 되는 것이죠.

 

) 제 기억으로는, 저의 어머니는 흘리는 쪽에 참 강성을 가지신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집안에 어머니가 자꾸 분노를 흘리면, 저의 형제들은 숨도 못 쉬었지요. 책상에 앉아 억지로 공부하는 척 하고, 밖에 놀러나가지도 않고, 안하던 방 청소도 깨끗하게 했던 기억이 나요. 이 찔끔 찔금 형은, 주위 사람을 정말 불안하게 만들고, 피곤하게 하고, 장시간 동안 분이 풀릴 때까지 이어간다는 것이죠.

세 번째 분노는, 억압 형 분노래요. 이것은 분노를 밖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내 안에서 그 분노를 눌러 버리는 것이죠. 그런데 이것은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있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을 자기 안에 계속 누르니까 몸이 아픈 거지요. 끊임없는 두통이나, 위장병이나, 잔병들이 끊임없이 몸에 따라온다는 것이지요. 왜냐하면 내 안에서 그 화를 자꾸 눌러 버리니까요.

 

그래서 이것은 병원에 가도 해결 받을 수 없어요. 이상하게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는데, 아픈 것 있죠. 화를 안으로 다스려서 그런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밖으로 표출하지 못하고, 안으로 계속 쌓아놓기 때문에, 계속 억압을 하다보면, 어딘가로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못하니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픈 것이고, 몸이 아프게 되는 것이죠. 약으로 해결이 안 돼요.

 

분노를 내 안에서 억압하니까, 육체가 나에게 싸인을 보내는 거예요. 겉으로는 성격 좋은 사람으로 되어 있는데, 그 내면은 썩어나가고 있다는 것이죠. 두통을 달고 사는 분들이 많대요. 그래서 억압형인 분들은 얼굴이 어두운 분들이 많아요.

 

그러면서도 이 억압 형은 가끔 폭발하기도 한대요. 더 이상 한계에 초과되면, 폭발해도 되는데, 나보다 약자인 누군가에게 폭발을 한다는 것이죠. 그 약자는 그 어마어마한 독과 엑기스를 담긴 힘의 분노의 펀치를 맡게 되니까, 굉장히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반대로 이 억압 형이 분노를 표출하지 못하면, 안으로 쌓기 시작하고, 그것을 계속 방치하면, 결국 우울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죠. 참고 또 참으면 참다못해 그것이 우울증으로 가는데, 그 우울증도 결국 분노 중에 하나라는 것이죠. (우울증에 걸리신 분들에게, 글을 쓰라고 많이 해요(일기, ). 찬양을 부르라고 하지요.)

 

여러분, 우리는 세 가지를 보았어요.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강해요? 폭발 형, 찔끔찔끔 형, 억압 형! 누구에게나 이 세 가지를 다 가지고 있고, 그중에 한 가지는 나에게 강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죠.

 

그런데 여러분, 이 세 가지의 분노의 형태가 나의 성향이나, 성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많은 책들이 질문을 해요. 너의 성향은 어느 쪽에 가깝니?’ 라고 물어 보는 것이 아니라 너는 이것을 누구에게서 배웠니?’ 라고 물어 보는 것이죠.

 

계속 폭발해요. 그러면 너의 성향이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그렇게 폭발하는 것을 너는 어디서 배웠니?’ 라고 물어 보는 것이죠. 찔금 찔끔 흘리는 것도 어디서 배웠니?’ 몸을 상하게 하고 억누르는 것도 어디서 배웠니라고 물어 보는 것이죠.

 

우리는 이것을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라는 거예요. 어디서 보고 배운 것이라고 것이죠.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부모나 환경이나 모든 상황에서 몸으로, 습관으로, 누군가에게 보고 배운 것이라는 것이죠. 알게 모르게 나의 기억 속에서, 몸으로 그것을 습득하고 기억하고, 그것을 지금 나도 표출하고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 이 세 가지 분노가 모두 우리 안에 있는 죄 성과 만날 수밖에 없고, 그 파괴력은 더 심각할 수밖에 없어요. 예수님처럼 거룩한 분노를 발할 수 없어요. 그렇다면, 믿는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야 맞을까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어느 쪽으로 가야 더 건강할 수 있을까요? 힘들더라도, 억압 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죠. 아니 몸이 아프고, 심각하면 우울증도 온다는데요?

 

왜냐하면, 폭발 형은 내가 죄를 지을 수 있고, 상대방도 죄를 지을 수 있게 하고, 찔끔찔끔 형도 겉으로 그 죄가 들어나요. 그렇다면, 그래도 힘들지만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가야하는 쪽은, 어쩔 수 없는 분노라면, 억압 형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죠.

 

여러분, 왜 그럴까요? 죄 지을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죠. 위험성은 있어요. 지나친 억압 형은 몸으로 나타나고, 몸을 상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나를 누르고, 억압하지만,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것이 무엇일까요? 기도이고요.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부르짖는 기도라는 거예요. 죄를 지을 수 있는 그 분노에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는,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성령님이 이끄신다는 것이죠. 기도하면 내 안에 성령님이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분노를 위로해 주신다는 것이죠. 내 안에 가지고 있는 그 분노를 하나님이 다스려준다는 겁니다. (아멘)

 

여러분, 우리 안에 있는 분노! 내 안에 있는 분노는 지혜롭게 표현해야 하고, 신중하게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죠. 내안에 성령이 그것을 감시하게 해 준다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나의 분노로 죄 짖지 아니하고,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지 아니하고, 성령님이 나를 끝없이 위로함으로 말미암아 내 안에 분노를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분노를 죽이는 최고의 방법은 기도이구요.

 

매일 내 안에서 분노가 일어나니까 매일 기도하는 것이고요. 부르짖는 거지요. 여러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분노를 지혜롭게 표현하게 하고, 감시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오늘 말씀 26, 27절을 같이 읽어 볼까요?(시작) 여러분,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 기도할 때, 우리 안에 성령님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려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죄짓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여러분 안에 있는 그 분노를 치유해 주실 줄 믿습니다.

분노가 없는 사람 없습니다. 하지만 내 안에 있는 분노는 지혜롭게 표현해야하고, 기도하면 내 안에 있는 그 분노를 감시할 수 있도록, 성령님이 꼭 붙잡아 주신다는 것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믿음으로 복된 가정, 행복한 가정,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귀한 가정 만드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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