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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

로마서 김부겸 목사............... 조회 수 97 추천 수 0 2018.10.12 23:5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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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롬10:9-13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https://blog.naver.com/malsoom/188879700 

2013년 6월 9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로마서 10장 9절~13절

설교제목 :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

 

<영성시>


엄숙한 시간


* 릴케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울고 있는 사람,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울고 있는 사람은

나를 위해 울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밤의 어딘가에서 웃고 있는 사람,

까닭도 없이 밤에 웃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웃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 어딘가를 걷고 있는 사람,

까닭도 없이 이 세상을 걷고 있는 사람은

나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지금, 이 세상 어딘가에서 죽어가고 있는 사람

까닭도 없이 이 세상에서 죽어가는 사람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습니다.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고 말합니다.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꼭 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로마 10:9~13)】

 

  <기괴한 상황>


  여기 한 사람이 죽음의 문턱 앞에 서 있다고 칩시다. 만약 그이가 소위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어떻게 행동할까요? 기독교인들은 죽음 앞에 선 인간에게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라”고 권면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그 영혼이 구원을 받는다”고 열변을 토할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죽음 앞에 선 인간이 연약해진 마음 탓에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면, 크게 기뻐하고 안도하면서 ‘할렐루야’를 외칠 것입니다. 물론 그 반대로 그 사람이 기독교인들의 권유를 거부하고 숨지면, 애석해하고 비탄에 빠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기독교인들이 생각하는 바, 그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쯤 되면 이건 희극을 넘어서 비극이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기괴한 상황은 인간에 대한 예의라든가, 죽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라든가, 구원에 대한 다 차원적 탐구 등등을 통째로 무시한 폭압적 이벤트이기 때문입니다.


  이 기괴한 상황의 일반화는 어디에서 연유된 것일까요? 서양에서 온 풍토이며, 중세시대에 만연된 상황이며, 근원적으로는 바울 선생의 언설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로마 10:9~13)】아마도 추정하건대 바울 선생 자신도 자신의 언설에서 그 같은 기괴한 상황이 만들어질 줄은 몰랐을 것입니다.


  <바울의 언설에 대한 해석>


  바울의 언설을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해석해야 바른 해석이 될까요? 일차적으로 분명하게 짚고 넘어갈 초점은, 바울 선생의 언설에는 오해 혹은 오독(誤讀)의 여지가 차고 넘치도록 담겨져 있다는 점입니다. 글쎄요. 이를 어찌해야할까요! 아직 분명한 대안은 없습니다. 다만 ‘오해 혹은 오독’의 거품들을 걷어내면서 바울 선생의 언설에 대한 제대로 된 해석을 시도해볼 뿐입니다.


  오늘 바울 선생의 언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해석의 길은, ‘선(禪)의 언어’에 있습니다. 선(禪)의 어법으로 해석해야만 바울의 언설이 그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을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신앙의 언어, 영성의 언어, 종교의 언어, 사상의 언어, 문학의 언어, 철학의 언어는 근본적으로 선(禪)의 어법으로만 그 의미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의 언어란 무엇인가>


  선의 언어란 무엇일까요? 글쎄요. 일단 우리 자신이 선(禪)에 대해서 잘 모르고, 또 선의 언어라는 게 설명하기가 쉽지 않고 … 궁극적으로 선의 언어는 언어의 한계를 뛰어넘는 차원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래저래 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 언어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시도해 보겠습니다.


  첫째, 선의 언어는 사실의 언어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선의 언어는 과학의 언어가 아니고, 실제 세계를 설명하는 사건적 언어가 아닙니다. 둘째, 선의 언어는 언어를 넘어서는 언어입니다. 선의 언어로 ‘하나’(1)을 이야기했다면, 그것은 ‘하나’를 넘어서는 ‘아흔 아홉’(99)를 이야기하기 위한 하나(1)인 것입니다.


   <선의 언어로 바울의 언설을>


  【입으로 예수는 주님이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릅니다. … "주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로마 10:9~13)】


  바울 선생의 이 언설을 과학의 언어 혹은 사실의 언어로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비극의 원인입니다. 우리는 이런 풍토를 서양의 한계라고 과감하게 명명하고자 합니다. 예수를 입으로 부르는 것, 우리가 생각과 마음을 추수리면서 ‘예수’라는 이를 입으로 소리내는 것 … 그것의 의미는 심층적인 것이고 다차원적인 것입니다. 죽음 앞에 선 이에게 폭압적으로 강권해서 끝끝내 받아내야 할, 어떤 억압 기제적 신앙 이벤트가 아닌 것입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삶,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만한 인격, 온 세상의 사람들이 무지의 늪에 빠져 있을 때 홀로 진리의 하늘로 초탈한 사람, 인간의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길을 가고자 했던 아름다운 인격, 그 신비로운 인품과 자태 … 그 모든 차원을 다 떠올리면서 우리는 ‘예수’라고 부릅니다. 그것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나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에 담겨져 있는 본질적 메시지인 것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설교말씀의 제목을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자’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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