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누가복음 서한수............... 조회 수 150 추천 수 0 2019.04.21 01:06:14
.........
성경본문 : 눅24:5-7 
설교자 : 서한수 목사 
참고 :  

한 세기에 가장 커다란 발자취를 남겼던 실존주의 철학자 샤르트르는 죽기 전에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폐수종으로 입원했습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지 간호하는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현대인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던 죽음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글을 남겼지만 그의 마지막은 실로 비참했습니다. 그는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몹시 괴로워하다가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난 후 그의 말로가 이렇게 비참했던 이유에 대해서 어떤 독자는 신문에 이렇게 투고했습니다. “샤르트르의 말로가 그렇게도 비참했던 이유는 샤르트르에게 돌아갈 고향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 말처럼 샤르트르에게는 진정으로 돌아갈 고향이 없었습니다.


반면 독일 신학자인 디트리히 본 훼퍼는 세계 대전 중에 독일의 수용소에서 나치에게 항거하다가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한 간수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오는데 그는 직감적으로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벌떡 일어나 감방에 있던 자기의 동지들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습니다. “동지 여러분! 이제 나에게는 죽음이 왔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마지막이 아니고 시작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예비하신 아버지의 집에서 만날 때까지 여러분! 안녕히 계십시오.”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감방을 나서는 그에게서 놀라운 평안과 기쁨이 넘쳐 났습니다. 그 감옥에 있었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본회퍼의 마지막 모습을 충격과 감동으로 보았습니다. 본 훼퍼에게는 죽어도 돌아갈 고향이 있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죽어서 돌아갈 고향이 있습니까?


오늘은 기독교에 가장 큰 명절이라고 할 수 있는 부활절입니다. 부활절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계란 먹기, 부활절 연합 새벽예배, 세례식 등등 여러 가지 행사를 합니다. 부활절은 누가 부활한 날인가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나요? 부활의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 부활의 참된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고난의 잔을 기꺼이 마시셨습니다.

   
마태복음 26장 39절을 보겠습니다.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함께하시고 난 후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셔서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렇게 간절히 기도하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어떤 기도를 하셨나요?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는데 ‘이 잔’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잔’이 십자가를 지시는 죽음의 고통을 말할까요? 그런데 주님께서 이미 십자가를 지실 것을 아시고 이 땅에 오셨는데 심히 두려워하실 필요가 있을까요? 이미 고난 받으실 것을 각오하고 오셨는데 뭘 두려워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 정말 피하고 싶으신 것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러면 ‘이 잔’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이 잔’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요? 마가복음 10장 38에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으며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시편 75편 8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의 손에 잔이 있어 술거품이 일어나는도다. 속에 섞은 것이 가득한 그 잔을 하나님 쏟아내시나니 실로 그 찌꺼기까지도 땅의 모든 악인이 기울여 마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 잔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로 인하여 진노하신 잔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잔 속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요? 네, 이 잔속에는 하나님께서 진노하실만한 인간의 더럽고 추악한 죄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불의, 미움,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음란, 비방, 능욕, 교만, 무자비와 같은 가장 더럽고, 가장 냄새나고, 가장 추한 죄가 가득 담겨 있습니다. 우리들이 지은 죄라는 죄는 몽땅 들어 있어서 차고 넘치는 그 잔을 이제 주님께서 마시려고 합니다.


주님께서 이 잔을 마시는 것이 쉬웠을까요? 여러분께서 지으신 그 수많은 죄들이 마실만 합니까? 차라리 십자가를 지실망정 세상에서 가장 더럽고 추한 이 죄의 잔을 마시는 것은 아무리 주님이라도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거룩하신 주님, 죄 없으신 분이 더럽고 냄새나는 이 죄의 잔을 마셔야 하는데 어찌 기도하시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제 죄를 찾을 수 없이 깨끗하신 주님께서 더럽고 썩은 냄새가 나고 악취가 진동하는 인간들의 죄가 가득한 죄의 잔을 마시려고 합니다.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실 때 ‘지나가게 하옵소서’라는 말을 원어로 보면 ‘통과하다’라는 단어로 영어의 pass 또는 pass over가 아니라 through와 같은 의미로 자기를 통과하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자기하고 상관없이 지나가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마시게 해 달라고 하시는 기도였습니다. 더럽고 냄새가 나지만 사랑하는 백성들의 죄를 다 마셔서 없앨수만 있다면 주님 자신이 다 마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잔을 마시는 것이 그 어떤 것보다도 어렵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라면 마실 수 있게 해달라는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냄새나고 상해도 못 먹겠다고 버리는데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가 들어 있는 그 더러운 잔을 자진해서 마시려고 하십니다.


이제 주님은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주님께서 그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이 진노의 잔을 마시는 것이었습니다. 세상에 더럽고 냄새나고 추악한 우리들이 지은 죄로 가득한 잔을 주님은 망설임 없이 벌컥벌컥 마시셨습니다. 사랑하는 자녀들을 구할 수만 있다면 아무리 더럽고 냄새가 날지라도 주님은 그 잔을 마시는데 주저함이 없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시는데 주저주저하시던가요? 나는 못가겠다. 내가 왜 죽어야 하느냐고 발버둥 치시던가요? 이처럼 주님께서 이 진노의 잔을 마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다 지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신 줄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다면 아무리 더러운 죄의 잔도 다 마시셨고, 사랑하는 자녀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기꺼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는 것도 마다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서 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뜨거운 사랑을 완성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하심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줄 믿습니다.

 
둘째로 아버지께 자기 영혼을 부탁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 재판을 받으시고 채찍과 막대기로 모진 매를 맞으신 후에 이제 골고다 언덕에 오르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죽어가는 십자가 위에서 일곱 마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일곱 마디의 말씀을 가상칠언이라고 하는데 첫 번째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두 번째로 “오늘 네가 나와 함게 낙원에 있으리라.” 세 번째로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보라 네 어머니라.” 네 번째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다섯 번째로 “내가 목 마르다.” 여섯 번째로 “다 이루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은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숨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숨이 멎기 전에 자기 영혼을 아버지에게 부탁하셨을까요? 본문에 ‘부탁하나이다’라는 뜻은 ‘맡기다, 위탁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손에 자신의 영혼을 맡긴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겨서 하나님께서 자기 영혼을 다시 살려주시기를 원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영혼을 누구에게 부탁하셨나요? 바로 아버지, 즉 하나님께 부탁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님은 자기 영혼을 부활시킬 능력이 없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자기를 다시 살려달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자신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으셔서 아버지께 부탁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신 것이 어디 한두 번입니까? 죽은지 나흘이나 지난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 자기 영혼조차도 살리실 능력이 없으셨을까요?


이 말씀은 부활의 전권이 오직 하나님에게만 있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아버지께서 부활시켜 주셔야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은 스스로 다시 살아나실 능력이 있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이 누구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습니까? 십자가를 지신 최종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최종 목표는 바로 사랑하는 자녀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우리 주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에게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자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신 분이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주셔야 잠자는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실 수 있기 때문이셨습니다.


이처럼 육체를 가지신 주님께서 부활한다는 것은 육체를 가진 우리 인간도 부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스스로 다시 살아나면 부활은 그 주님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즉 주님 스스로 부활하시면 부활의 효과가 주님에게만 미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신 주님을 다시 살려 주시면 육체를 가진 우리들도 다시 살려주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부활을 간절하게 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부활을 허락해 주시기를 숨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간절하게 부탁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처럼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시 살려주시기를 아버지 하나님께 간절하게 부탁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살려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들도 다시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는 이처럼 마지막 숨이 떨어져 죽어 가시면서도 사랑하는 우리들을 다시 살려달라고 하나님 아버지께 간절하게 부탁하시는 그 뜨거운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셋째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5절에서 7절을 보겠습니다.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에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님의 시체를 세마포로 싸서 바위로 된 무덤에 두었습니다. 안식 후 첫날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와 요안나와 야고보의 모친 마리아가 예수님의 무덤으로 찾아갑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체를 두었던 무덤 입구를 막았던 돌이 옮겨진 것을 보고 무덤에 들어가 보니 예수님의 시체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서서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단어가 본동사로 사용될 때는 모두 수동태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능동적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은 그 부활의 전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셨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셨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부활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에게 쫓겨났습니다. 그래서 죄를 지은 인간을 다시 하나님께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와는 같이 있으실 수 없는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지은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시 부활시켜 주셨다는 것은 다시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부활시켜 주시면 어디로 가죠? 네, 하나님 나라로 가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삽니다. 이렇게 부활해서 하나님 나라에 간다는 것은 어떤 것이 없을 때 가능하죠? 네, 바로 죄가 없을 때 가능합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같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죄를 다 씻으면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숨지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누구나 지성소, 즉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다 씻었다는 증표로 ‘죄 없슴’이라는 확인 도장을 찍어 주신 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살려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확인 도장을 찍어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자기 영혼을 하나님 손에 부탁하신 것은 바로 자기가 인간들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었으니 이제 그 인간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부탁하시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모든 죄는 주님 자신이 다 그 죄 값을 치를테니 이제 사랑하는 자녀들을 용서해 달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주님 자신은 조롱을 당하고 침 뱉음을 당해도 참을 수 있고, 채찍에 맞아서 가죽이 쩍쩍 갈라져서 뼈가 다 드러나도 괜찮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다가 무릎이 다 깨져서 피가 철철나도 괜찮고, 십자가에 손과 발에 못이 박혀도 좋고, 창으로 옆구리를 찔려서 물과 피를 다 쏟아도 좋으니 제발 제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죄를 용서 받고 다시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마지막 숨이 끊어지면 까지도 간절하게 부탁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랑하는 자녀들을 이제 용서해 주셔서 다시 살려달라는 그 주님의 간절한 부탁을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다시 살려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보면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자기 아들을 다시 살려 주심으로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길을 열어주신 줄 믿습니다. 이제 누구라도 이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비록 육신은 죽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영혼은 다시 살려주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부활절 예배를 드리시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신 그 뜨거운 사랑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사랑하심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24장 5절에서 6절에 있는 말씀으로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5907 호세아 심은 대로 거두는 길 호8:1-7  이한규 목사  2019-04-24 84
15906 요한복음 죄의 벌 요3:19  강종수 목사  2019-04-24 34
15905 누가복음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눅3:1-2  김경형 목사  2019-04-22 44
15904 요한계시 에베소교회 계2:1-7  강종수 목사  2019-04-21 42
» 누가복음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눅24:5-7  서한수 목사  2019-04-21 150
15902 고린도전 신앙의 삼원색(부활절) 고전13;11-13  전원준 목사  2019-04-20 235
15901 시편 삶으로 노래 할 수 있음은 시118:1-2,13-24  강승호 목사  2019-04-19 111
15900 베드로후 영안을 열라 벧후2:15-16  강종수 목사  2019-04-19 131
15899 마태복음 부활하셨다 마28:1-10  강승호 목사  2019-04-18 449
15898 누가복음 빈 무덤이 전하는 것 눅24:1-12  강승호 목사  2019-04-17 296
15897 로마서 원죄 롬5:12  강종수 목사  2019-04-17 58
15896 요한복음 예수님의 삶과 죽음 요19:28-30  김성호 목사  2019-04-16 176
15895 누가복음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18:18-30  이정원 목사  2019-04-15 126
15894 누가복음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눅18:9-17  이정원 목사  2019-04-15 98
15893 누가복음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눅18:1-8  이정원 목사  2019-04-15 83
15892 누가복음 하나님 나라의 도래(2) 눅17:22-37  이정원 목사  2019-04-15 47
15891 누가복음 하나님 나라의 도래 눅17:20-37  이정원 목사  2019-04-15 63
15890 누가복음 열 명의 나병환자 눅17:11-19  이정원 목사  2019-04-15 67
15889 누가복음 진정한 믿음 눅17:1-10  이정원 목사  2019-04-15 133
15888 누가복음 부자와 거지 눅16:19-31  이정원 목사  2019-04-15 88
15887 누가복음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2) 눅2:47-52  김경형 목사  2019-04-15 40
15886 누가복음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1). 눅2:47-52  김경형 목사  2019-04-15 45
15885 요한계시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 계1:12-20  강종수 목사  2019-04-14 46
15884 누가복음 더디 믿는 신앙 눅24:24-25  전원준 목사  2019-04-13 146
15883 요한계시 복 있는 자 계1:1-3  이장규 목사  2019-04-12 121
15882 요한복음 복음이 어려운가? 요6:51-60  강종수 목사  2019-04-12 86
15881 창세기 소요리 문답해설 -4.하나님의 창조 창1:27-28  강종수 목사  2019-04-10 42
15880 창세기 천지창조와 하나님의 말씀 창1:1-5  조용기 목사  2019-04-09 66
15879 창세기 고난을 이긴 야곱 창47:7-10  조용기 목사  2019-04-09 104
15878 누가복음 과부와 재판장 눅18:1-8  조용기 목사  2019-04-09 52
15877 빌립보서 너 자신을 믿지 말라 빌3:10-16  조용기 목사  2019-04-09 84
15876 히브리서 믿음, 바라는 것들의 실상 히11:1-3  조용기 목사  2019-04-09 84
15875 사도행전 그 성에 큰 기쁨이 있더라 행8:5-8  조용기 목사  2019-04-09 74
15874 누가복음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file 눅15:11~20  조용기 목사  2019-04-09 46
15873 누가복음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눅10:25~37  조용기 목사  2019-04-09 4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