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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마가복음 크리스김............... 조회 수 67 추천 수 0 2019.10.10 23:3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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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0-45 
설교자 : 김기성 목사 
참고 : 말씀의 숲 교회(대한예수교 장로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마1:40-45)


영국은 동쪽으로는 잉글랜드가 있고, 서쪽은 웨일즈가 있고, 북쪽은 스코틀랜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일랜드 북쪽이 영국에 포함되어 있지요. 그러나 한 나라 안에 있어도, 나라도 다르고, 사람들도 다릅니다.


그렇게 같은 영국에 있어도, 몇 백 년을 같이 살아도, 그렇게 잘 섞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북쪽에 있는 스코틀랜드에 사는 아이가 공부 너무 잘합니다. 그러면 우리 같으면, 영국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옥스퍼드 대학이나, 캠브리지 대학을 보낼 만도 한 대, 절대 보내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들은 그저 ,스코틀랜드의 ‘에딘버러 대학’ 을 최고의 대학으로 생각하고 거기만 간다는 것입니다.


또한 서쪽의 웨일즈에서 아무리 공부를 잘해도, 절대 잉글랜드에 있는 옥스퍼드나, 캠브리지 대학을 안 간다는 것이죠. 그들에게 최고의 대학은 서쪽 웨일즈에 있는 ‘카디프 대학’이라고 만 생각한다는 것 입니다.


그러니까 같이 살아도, 절대 섞이지 않습니다. 섞여도 되는데 절대 섞이지 않으려고 한다는 것이지요. 고집인가요? 제가 서쪽 웨일즈에서 살 때, 그곳의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80이 넘으신 할아버지가, 평생 한 번도 런던(서울)에 가 본적이 없다는 거예요. 갈 생각도 안 해봤고, 갈 마음도 없었다는 것이지요.

  
여러분, 그러니까 자기가 가지고 있는 어떤 관습의 울타리, 테두리에서 벗어나 어딘가를 도전해 보고 경험해 본다는 것은, 쉬운 것 같아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벗어나고 싶어도 벗어나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가능성은 있지만 그렇게 뭔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테두리를 벗어나는 것은 큰 도전이고, 어쩌면 그것을 박차고, 뛰쳐나간다면 더 많은 가능성들이 있을 텐데, 그런 일들을 하기란 그렇게 쉽지는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짖는 죄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무거운 이야기인데도 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짖는 죄와, 어쩔 수 없이 저지르는 죄를 끊어 버리고, 그리고 그것을 박차고 나오기는 쉽지 않습니다. 마약이 중독성이 있어 벗어나기 힘들 듯이, 죄도 중독성이 있어서 그 죄를 끊어 버리고, 나올 수 있는 것은 쉬울 것 같지만, 결코 쉽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을 보면, 아주 훌륭한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자신을 둘러쌓고 있는 악과 관습을 깨트렸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깨고 주님께 나옵니다. 살려 달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손을 내밀어 예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그 굴레를 깨트리고, 그리고 그는 주님께 나옵니다.


그 사람은 나병환자입니다. 우리가 잘 알 고 있는 ‘문둥병환자’이지요. 지금이야 의학이 잘 발달되어 치유도 잘 되고, 나병에 걸리는 사람들이 거의 없지요.

  
이 나병환자에게 복된 소식이 들렸습니다. 예수님 소식이었지요. 예수님이 회당에서 귀신을 쫓아내었다는 소식과, 베드로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 일들이, 소문에 소문이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그 소문이 이 나병환자에게까지 들려 졌지요.


그 소식은 그에게는 복된 소식이지요. 그 나병환자도 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옵니다. 여러분, 쉬울 것 같지요. 그런데 쉽지 않아요. 나병환자가 살고 싶어서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고 대단한 걸까? 라고 질문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살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라고 말할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 당시 나병에 결려,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의 현장을 좀 더 들여다본다면, 우리는 한발 더 가까이 나아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당시 나병환자는, 일단 그 병 일 것 같으면, 제사장에게 가야합니다. 제사장이 그 병을 살펴보고, 나병인지 아닌지 판단합니다. 제사장이 ‘나병이다’ 라고 말하는 순간, 그는 가족을 떠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는 혼자 동네 밖으로 멀리 나가야 하지요. 그 동네에서 같이 살 수 없어요. 가정에서 나와야 하고, 하던 모든 일에서 나와야 하지요. 그리고 동네 밖으로 나가면, 이미 나병환자로 낙인 되어 살 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야죠. 그리고 그곳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웁니다.

  
그 당시 나병환자는, 고침을 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 입니다. 그래서 하루 한 끼를 연명하기 위해 먹을 것을 구하며 살지요. 낫기 위한 어떤 약이냐, 치료방법은 딱히 없었지요. 죽을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강원도 원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70년대 이니까? 시골이죠. 그 당시만 해도 어르신들이 초등학교를 다니는 저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혼자 산에 가지 말라고 하셨어요. 혼자 산에 가면 ‘문둥병자들이 잡아서 너희 간 빼 먹는 다고, 어린아이 간이 나병에 좋다고 해서 아이를 죽여서 간을 빼먹는다’ 고 아주 끔찍한 말을 어린 저희들에게 해 주었습니다.


정말 그런 나병환자분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저희들에게 산에 가서, 길 잃지 못하게 하시려는 어른들의 말씀인지 모르지만, 저희들이 동네에서 놀고 있으면, 어린 저희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그러니까 정말~~ 나병환자분들이 그렇다면, 살기 위해 몸부림은 치지만, 그렇게 딱히 약이 없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일할 수도 없었겠지요. 경제생활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손이 다 짓물러서, 조막손이 되었는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그들은 먹을 것이 없어서 구걸을 하며 삽니다.


그 당시 율법에 따르면, 나병환자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에게 다가오면, 돌을 던져 그들을 쫓아내야 하고, 죽여도 좋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이 걸린 나병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저주 받은 삶!, 그리고 모여서 함께 사는 비참한 삶!, 하루하루 먹기 위해 구걸해야 만 살 수 있는 삶!, 도저히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냥 그곳에서 체념하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그런 굴레에 익숙해지면서, 그저 사는 것이지요.


이것은 참으로 벗어날 수 없는 무서운 굴레입니다. 그래서 그가 그 모든 것을 박차고,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은, 위대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 앞에서 살겠다고 손을 내민 것이 위대한 결단이고, 고백이 된다는 것이죠.


그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께 고백을 합니다. 40절 말씀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예수님 앞에 와서 꿇어 엎드려 간구하지요. 예수님은 그가 여기까지 와서 고백하는 그 순간까지, 그가 넘어야 할 장벽들이 정말 많이 있었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 고 계셨을 것입니다.


나병환자들은 혼자 다니지 않습니다. 항상 무리를 지어서 다녔습니다. 왜냐하면 혹시 혼자 다니다가, 정상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죠. 아마 그날도 혼자 다니지 않았겠지요. 무리를 지어서 다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그 무리를 박차고 나와서, 예수님께 나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가고 싶었지요. 예수님에게 가서 자신의 몸을 보이고 싶었지요. 그래서 그 무리들에게 ‘내가 잠깐 어디 좀 다녀오겠다’ 하고 정말 용기를 내어, 예수님에게 올 수도 있었습니다. 그는 그 나병환자들과 함께 있는, 그 무리를 과감하게 이탈하고, 끊고, 깨어 버리고, 예수님에게 나왔습니다.


또한 정상인들이 그를 바라보는 눈은 얼마나 심했을까요? 정상인들이 나병환자를 보면 항상 돌을 들었겠지요. 어쩌면, 그 나병환자가 정상인들을 보면, 손에 돌이 있나 없나를 먼저 살펴보았겠지요. 정상인들에게 들키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


나병환자들에게는 언제 돌이 날아올지,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늘 불안한 마음이 있었겠지요. 그러니 어찌 정상인들에게 다가 가겠어요.


그러나, 그런 위험과 어려움을 뚫고, 예수님 앞에 나왔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온, 그의 마음을 한번 생각해 보시지요. ‘내가 다시는 나병환자 들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겠습니다! ‘여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예수님을 만나고 그리고 여기서 죽겠습니다! 라는 그런 마음이 아니었을까요?


그러니까 가만히 보면, 그는 살고 싶은 의지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병을 체념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고, 모두 다 죽는 날짜를 기다리고 있는 나병환자들이었는데, 그에게는 살 고 싶은 강한 의지가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 의지가 예수님 앞에 나오게 합니다.

 
이것이 그 나병환자의 위대한 점입니다. 많은 나병환자들이 있었고,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체념하고 하루하루 죽기위해 살아가지만, 그 나병환자는 그 굴레를 박차고 나온 것이지요.


여러분, 우리의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병에 걸린 것을 가만히 보면 죄와 비슷해요. 그것은 가만히 보면, 나병이나 죄나, 시간이 한참 지나야 들어나지요. 처음 나병이 걸리면 잘 모르지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알게 되지요. 가족들이 알게 되고, 주위의 사람들이 알게 되지요. 그리고 나병에 걸렸다고 확증을 받게 됩니다.


죄도 마찬가지지요. 처음에는 죄인지 모르고 짖다가, 나중에는 혼자 죄의 은밀한 것을 즐기며 짖지요. 아무도 모릅니다. 하나님만 눈감아 주시면,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은밀한 죄를 즐기지요. 모

든 사람들이 알 때까지, 죄는 서서히 들어나서 결국은 들키게 만들지요.


또 나병에 걸리면 무감각해 지지요. 빌립 얀시가 쓴 ‘고통이라는 선물’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아프고, 고통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죠.


나병에 걸린 사람은 고통이 없습니다. 그래서 밤에 잠을 자는데, 옆에 쥐가 와서 그의 손을 갉아 먹어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그 쥐를 쫓아내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아침에 일어나 보면 손가락 하나가 없어지고, 발가락 하나가 없어지는 것이죠. 그래서 나에게 고통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 이라는 내용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지요. 처음에 죄를 지을 때는 떨립니다. 손발이 떨리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차츰 죄를 지으면, 양심이 무뎌집니다. 두려움이 점점 없어집니다. 하나도 무섭지 않습니다. 오히려 담대해 집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무감각해 졌기 때문이지요.


죄가 이렇게 무서운 것입니다. 죄에 한번 갇히면, 스스로 그것을 깨트리고 나올 수 없게 만듭니다. 그것을 알고 나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죄는 한번 빠지면, 그 둘레를 깨트리고, 벗고 나오기가 참 힘듭니다.


나병환자는 그 당시 집단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수많은 나병환자들이 살았는데, 예수님 앞에 나온 사람은 단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나병환자는 살겠다고 예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살려 달라고 손을 내 밀었을 때, 그는 예수님의 은혜를 입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주일날 주님 앞에 나오는 것도 대단한 용기 아닐까요? 한 주를 뒤돌아보시면, 얼마나 죄들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까? 죄의 마음 가운데 있고, 죄라는 그 흙탕물 속에 어떻게 보면 뒹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죄가 나를 꽉 붙잡고 있지요.


그리고 죄가 말하지요.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다 그런 거라고, 너무 양심에 가책을 느끼지 말라고, 사람은 다 거기서 거기라고, 어떻게 성경에 말하는 것 다 지키며 살겠느냐고, 다 못 지키는데, 다~~ 지키는 것처럼 자신들을 속이고 있다고...’

  
교회 가서 말씀 들어봐야 이론과 실제 삶과는 다르다고,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삶과는 전혀 다르다고, 열심히 이곳에서 벌어야만 자식들 벌어 먹일 수 있고, 공부시킬 수 있을 꺼라고...


여러분, 그래서 그 둘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겁니다. 이번 한 주 교회 안 간다고 달라질 것 없다고, 그 죄에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우리는 그 모든 굴레를 깨어 버리고, 그래도 예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사단의 그런 속삭임을 깨트려 버리고, 주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 앞에 과감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일주일 동안 살아 보니, 죄 가운데 살았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또 죄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살기 위해 다시 예수님 앞에 나왔으니, 예수님 살려 주세요”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 아니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이 마음으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입니다.


“나병환자처럼, 내 몸이 떨어져 나가도 모르는 그 무감각을, 과감히 깨트려 버리고, 주님 앞에 나왔으니, 주님 살려 주십시오” 라고 외치는 장소가 바로 이 예배의 장소라는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부어 질 줄 믿습니다.


여러분, 최소한 일주일에 한번 이라도, 주일을 지키는 것은, 마치 내가 짖는 죄의 굴레를 알고, 깨닫고, 그리고 뛰쳐나와, 살려달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 고백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를 건너뛴다면, 어찌 보면 우리의 죄는, 그 무게를 점점 더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말해요. 가장 미련한 사람이 누구인지를요. “개가 그 토한 것을, 도로 먹는 것같이,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하느니라” (잠 26:11) 미련한 자는 그 미련한 것을 거듭 행한대요. 여러분, 그것을 과감히 끊어 버려야 합니다.


자, 그런 마음으로 찾아온 나병환자에게 예수님이 이제 말씀하시지요. 40절에 보시면, 나병환자가 예수님에게 말하지요. 뭐라고 말합니까? “원하시면, 저를? 어떻게요?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라고 말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을 한번 보시지요. 41절입니다.(시작)


여러분, 예수님은 그 나병환자의 말을 그대로 받아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나병환자가 ‘원하시면’ 이라고 말했더니, 예수님이 뭐라 하세요? ‘내가? 원하노니’, 그리고 나병환자가 ‘저를 깨끗하게 하 실 수 있나이다’ 라고 했더니 예수님이 뭐라하세요? ‘깨끗함을 받으라!’ 말씀하세요.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여러분 우리 예수님은 우리가 죄인이지만, 주님 앞에 나와 고백하면, 우리의 그 고백 하나 하나를 지나가는 말로 듣지 아니하시고, 그 마음을 아시고, 살피셔서, 그대로 이루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위대하신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죄악의 둘레를 깨트리고, 예수님 앞에 나온 우리들에게도, 예수님은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은혜요. 사랑인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벗어나지 못할 굴레는 없습니다. 용기 있게 과감히 그 자리를 박차고 나오는 자에게, 주님이 주시는 은혜가 분명히 있습니다.


죄의 크고 작음이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오늘, 지금, 이 시간 그 굴레를 박차고, 예수님께 고백 할 수 있는 가를 오늘 말씀하시는 겁니다. 늘 주님 앞에 그 은혜를 체험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십니까? 나병환자의 믿음을 본받으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고백하시길 바랍니다. ’원하시면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 은혜로 사실 줄 믿습니다.


죄의 굴레를 벗어나, 날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장소에 머물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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