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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과 심판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8 추천 수 0 2020.01.16 21: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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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9:41-48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8.12.9 주일 설교 https://hopech.kr 희망의교회 

구원과 심판                              

눅19:41-48


  성자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메시아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히브리어 메시아(????????)는 헬라어 그리스도(Χριστ??)와 같은 말인데,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취하여 쓰시고자 하실 때 기름을 부었는데, 이것은 자격을 부여하시고 성령을 부어주시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구약에서 기름 부음을 받은 직분은 왕, 제사장, 선지자였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보내심을 받은 하나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직분을 가지고 계십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셨고,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이 기사는 예수님의 삼중직을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왕이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깨끗하게 하신 것은 예수님께서 제사장이심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신 것은 예수님께서 선지자이심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세상에 오셨으며, 선지자로서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셨고, 제사장으로서 자신을 십자가에서 죄인들을 위한 속죄의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심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을 보고 우심


  평소에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이심을 숨기시던 예수님께서는 이제 공개적으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오래 전부터 구약에 예언되었고, 사람들이 오랫동안 고대해오던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나타내신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그 성을 보시고 우셨습니다.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41절) ‘우셨다’는 단어는 눈물을 흘리시며 소리 내어 통곡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예루살렘을 보시고 비통해 하시며 우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제 얼마 지나지 않아 예루살렘이 참혹하게 멸망당할 것을 아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이 이렇게 멸망을 당하게 될 이유는 하나님의 메시아 예수님을 거부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메시아이신 자신을 영접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완악하게 예수님을 배척했으며, 하나님의 구원을 거절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므나 비유에 나오는 귀인은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자신이 왕 되는 것을 반대한 자들을 처형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구속의 은총을 거부한 예루살렘은 이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내다보시며 비통해 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42절) ‘평화에 관한 일’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메시아로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의 메시아이심을 모든 사람들이 분명히 알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만과 탐욕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숨겨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메시아로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을 영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부하고 배척했기 때문에 이제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이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로마군에게 처참하게 멸망당할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또 너와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43-44절)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지 약 36년 후인 70년에 예루살렘은 로마군에 의해 처참하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로마 총독 플로루스가 체납된 속주세 대신 성전의 금화 17달란트를 몰수하자 폭동이 일어났습니다. 총독은 무력으로 폭동을 진압했는데, 이에 분노한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 주둔하고 있던 로마군을 모조리 죽였습니다. 그러자 로마는 수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12군단을 급파했는데, 그마저 성난 유대인들에게 참패를 당하고 말았습니다. 로마는 최정예 3개 군단을 보내 예루살렘을 공격했습니다.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자 극심한 기근과 전염병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 전쟁으로 죽은 유대인들은 110만 명이나 되었으며, 포로는 97,000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유월절 기간이라 전 세계와 팔레스틴 전역에서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거절한 결과 예루살렘은 이렇게 처참하게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보살핌 받는 날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이렇게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을 내다보시며 통곡하셨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이 그토록 처참하게 멸망을 당하게 되는 것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개역개정 성경에 ‘보살핌 받는 날’로 번역된 이 어구는 새번역과 NIV에서는 ‘하나님께서 너를 찾아오시는 때’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날은 이스라엘이 그토록 고대하던 메시아께서 오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스라엘을 찾아오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메시아를 대망해왔습니다. 그러나 막상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그들은 그 메시아를 거부함으로써 구원을 받지 못하고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메시아, 평화의 왕이심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시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은 그들에게 구원의 기회였을 뿐만 아니라 심판의 경고이기도 했습니다. 평화의 왕, 죄인을 구원하시는 메시아가 오셨으니 그분을 영접하고 회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구원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메시아를 영접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심판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엄청난 구원의 기회일 뿐만 아니라 무서운 심판의 경고이기도 합니다. 복음이 선포될 때 믿는 사람은 누구나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나 거절하는 자들은 심판을 받습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요3:17-18)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 말씀이 선포되고 있는 것 역시 큰 기회이며 동시에 심판의 경고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는 얼마든지 은혜와 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자아를 고집하며 탐욕에 눈이 어두워 말씀을 거부하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겸손하게 듣고 힘써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70년에 예루살렘이 그토록 처참하게 심판을 받은 것은 예표에 불과했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인들을 구속하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시고 승천하셨으며, 이제 곧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유대인이나 이방인을 막론하고 그분을 믿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영원한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 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져지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져지리라(계20:11-15)


  이 마지막 심판은 70년의 예루살렘 멸망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두렵고 엄청난 최후의 심판이 될 것입니다. 그날 심판받는 자들에게는 더 이상 어떤 기회나 소망도 없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닥쳐오기 전에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충성 다해 주님을 섬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전을 정화하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사복음서를 종합해보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 성에서 나가셨다가 다음 날 다시 예루살렘에 오셔서 성전에 들어가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가축과 비둘기 파는 장사치들과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상들이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하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이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는 보시고 진노하셨습니다.


  본래 성전은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며 제사를 드리고 죄 사함을 받는 곳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고 봉헌기도를 드리면서, 누구나 이 성전에 와서 회개하며 기도할 때 응답해주시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심지어는 이방인들까지도 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면 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전은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이고 기도하는 곳이었습니다. 성전은 하나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성전은 이러한 성전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유다 왕국이 바벨론에게 멸망당하기 직전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떠나간 것처럼, 예수님 당시의 성전도 상인들과 환전상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어지럽혀져 있었습니다.


  본래 성전에서 제물로 드릴 가축을 팔고 돈을 바꾸어주는 일은 좋은 의도로 시작되었습니다. 유월절 같은 절기가 되면 팔레스틴에 살고 있던 유대인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왔습니다. 그들은 먼 곳에서 왔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짐승을 데려올 수 없었습니다. 출발할 때 흠 없는 짐승을 데리고 온 경우에도 먼 길을 오는 동안 짐승에게 흠이 생길 가능성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전에다 흠 없는 짐승을 가져다 놓고 팔거나 바꾸어주었습니다.


  또 유대인들은 세계 어느 곳에 나가 살고 있더라도 일 년에 한 번씩 성전세를 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전세는 반드시 성전 세겔이라는 화폐로 내야 했습니다. 세계 여러 지역으로부터 절기를 지키러 온 유대인들은 당시 그들이 살고 있던 지역에서 사용하던 화폐를 가지고 와서 성전세를 내기 위해 성전 세겔로 환전을 해야 했습니다.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성전에는 돈을 환전해주는 곳이 생겼습니다.


  문제는 이렇게 짐승 파는 자들과 환전해주는 자들이 성전을 관할하는 제사장들과 짜고 폭리를 취했다는 것입니다. 성전에서 파는 짐승이 아니면 아무리 흠 없는 짐승을 가지고 와도 제물로 드릴 수 없었고, 성전에서 파는 짐승은 매우 비쌌습니다. 환전상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수수료를 받고 돈을 바꾸어 주었습니다. 상인과 환전상들은 제사장들과 결탁하여 엄청난 폭리를 취했습니다.


  하나님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추악한 탐욕으로 성전을 더럽히고 있는 것을 보시고 분노하시며 그들을 쫓아내셨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45-46절) 유대 지도자들은 만민이 기도하는 하나님의 집을 도둑과 강도들이 들끓는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이들은 결국 자기들의 이권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성전은?
  성전은 하나님의 집이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집이었으며,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경건한 제사장 사가랴는 성전에서 직무를 수행하던 중 천사를 만났습니다. 천사는 늙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던 사가랴 부부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며, 그 아들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는 사자가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년 시절에 부모와 함께 성전에 가셨는데, 하나님 아버지의 집에 있기를 원하시고 사모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집이요,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하며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던 성전이 더럽혀지고 그 기능을 상실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만나는 성전은 어디일까요? 당신은 어디서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모여 예배할 때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고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할 때 우리를 만나주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묵상할 때 우리를 만나주시고 말씀해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어디서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우리 몸을 성전 삼으시고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어디서 어떻게 하나님을 만나고 있습니까? 혹시 전혀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은 매일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습니까? 세상 염려와 쾌락과 욕심에 빠져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럽혀져 하나님 만나는 기능을 완전히 상실해버린 성전을 보시고 분노하시며, 환전상들과 장사치들을 쫓아내시던 주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시면 뭐라고 하시겠습니까?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러한 것들을 모두 내버리고,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보좌 앞으로 힘써 나아가도록 하십시오. 다시금 뜨겁게 하나님 만나는 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만나 친밀하게 교제하며, 매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전에서 가르치심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신 후 매일 성전에 나가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47-48절)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날마다 성전에서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가르치심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의 직분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미워하고 싫어하여 죽이려고 했습니다. 누가는 다음 장에서 그들이 예수님과 논쟁하는 모습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무슨 권위로 성전을 청결하게 하며 말씀을 가르치느냐고 따졌습니다. 그들은 이 모든 권위는 오직 자신들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런 일을 행하심으로 자신들의 치부가 드러나고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되자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수많은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을 귀를 기울여 듣고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 때는 유월절이었기 때문에 전 세계와  팔레스틴 전역에서 엄청난 유대인의 무리가 예루살렘에 와 있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새롭고 권세 있는 예수님 말씀에 완전히 빠져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예수님을 잡으려 한다면 군중들이 들고 일어나 그들을 죽이려 할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미워하고 죽이려 했으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메시아로서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구주를 영접하지 않고 거절하여 처참하게 멸망을 당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는 예수님께서는 최후의 심판을 위해 이제 곧 재림하실 것입니다. 그날까지 더욱 힘써 복음을 전하며, 맡겨주신 본분과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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