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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도 비유로

예화모음

 

한희철목사님글모음

김용호............... 조회 수 263 추천 수 0 2020.01.24 22:4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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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희철목사님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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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뿔과 뿌리

우리말 ‘뿔’과 ‘뿌리’는 같은 어원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둘은 글자도 발음도 비슷하지만 많은 부분이 다릅니다.
무엇보다 지향하는 바가 다릅니다.
뿔은 위쪽을 지향하지만 뿌리는 아래쪽을 향합니다.
자신을 드러내는 뿔에 비해 뿌리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데 본질이 있습니다.

뿔과 뿌리가 한 어원에서 왔다는 사실은 우리의 삶과 믿음을 돌아보는 데
유익한 근거가 됩니다.
우리는 일방적이라 할 만큼 뿔을 좇는 삶을 살아갑니다.
누가 더 높은지, 빠른지, 화려한지 등이 가치판단의 기준이 됐습니다.
뿔과 뿌리가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는 것은 둘이 별개가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말합니다.
뿔이 아무리 높고 화려해도 뿌리가 말라버리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요.

성탄을 기다리며 곳곳에서 멋진 장식이 반짝이기 시작합니다.
성탄은 뿔보다 뿌리를 헤아리는 날입니다.
진정한 성탄절은 예배당 벽을 화려하게 꾸미는 것이 아니라, 구석지고
그늘진 곳에 빛과 사랑으로 오신 주님을 모시는 계절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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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마중과 반 보기

오는 사람을 앉아서 기다리지 않고 나가서 맞이하는 것을
‘마중’이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오면 들뜬 마음으로 마중을 나갑니다.
어릴 적엔 퇴근하는 아버지를 위해 기차역으로 달려나가고는 했지요.
지금까지 가장 멀리 나간 마중은 언제였는지요.
외국에 다녀오는 가족을 위해 공항으로 나가거나 군에 간 아들이
첫 휴가를 받았을 때 집에서 기다리지 못하고 부대 정문까지
달려간 마중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반보기’라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시집 간 딸과 친정의 모친이나 가족이 양가 마을의 중간쯤에서 만나
그리움과 정담을 나누는 풍습이었습니다.
친정으로 가지 않아 시댁 가사에 큰 지장을 주지 않고 친정에 드릴 정받이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며 당일로 다녀올 수 있기 때문에
편리한 풍속으로 이용됐지요.
요즘 세태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말입니다.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의 계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마중 아닐까요.
마중을 나가되 반 보기를 할 만큼 가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먼 마중을 나가야 할 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까마득한 길을 사랑으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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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달과 별이 함께 있는 이유

큰딸 소리(笑里)가 아주 어렸을 적, 둘이서 서울을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고속버스를 타고 원주로 내려오는 시간, 막 땅거미가 깔리며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창가에 앉아 밤하늘을 바라보던 딸이 물었습니다.
“아빠, 해는 환한 데 있으니까 혼자 있어도 괜찮지만, 달은 캄캄한 데
혼자 있으면 무서울까 봐 별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먹물처럼 어둠이 번진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하늘에 돋아나는
달과 별을 보면서 어린 딸은 그런 생각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딸의 말을 듣고 창밖을 내다보니 쪽배를 닮은 초승달과 그 옆에
환한 별 하나가 떠 있었습니다.

달과 별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한 어린 딸의 마음이 예뻐 한껏 인정을 했습니다.
“그래, 그렇겠구나. 네 말이 꼭 맞겠구나.” 소리는 졸음에 겨워
아빠 무릎을 베고 이내 잠이 들었습니다.
잠든 딸의 등을 토닥이며 마음으로 말했지요.
‘그래, 우리도 마찬가지겠다.
서로 외롭지 말라고 함께 사는 것이구나!’

우리가 함께 사는 이유는 그런 것이 아닐까요.
서로 외롭지 않도록 곁에 있어주는 것, 오늘 이 땅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그런 것이면 좋겠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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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멀리 가고 오래 남는 향기

‘막현호은 막현호미(莫見乎隱 莫顯乎微)’란 말이 있습니다.
‘중용’에 나오는데 ‘감추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내는 수 없고
숨는 것보다 더 잘 드러나는 수 없다’는 뜻입니다. 낯설게 들립니다.
자신을 알리기 위해 이런저런 공을 들이는 세상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기자불립 과자불행(企者不立 跨者不行)’이란 말도 있습니다.
‘노자’에 나오는데 ‘까치발로는 오래 서지 못하고 가랑이를
한껏 벌려 성큼성큼 걷는 걸음으로는 멀리 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 하는 일이 한때는 통할지 몰라도 오래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 한때를 위해 발에 쥐가 나는 줄도 모르고 발뒤꿈치를 들고,
병이 나는 줄도 모르고 무리한 걸음을 옮기며 사는 것이 우리입니다.

한센병 환자를 고치신 예수님은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말라 단단히
이르신 뒤 그를 집으로 보내십니다.
그를 데리고 다니며 간증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잠잠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사방에서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왔지요.
선한 일을 하되 드러내지 않는 것, 멀리 가고 오래 남는 향기란 그런 것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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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조는 팽이처럼

어린 시절 해마다 겨울이 돌아오면 동네 저수지는 운동장이 되곤 했습니다.
얼음이 두껍게 얼기를 기다려 아이며 어른들이 겨울을 즐겼습니다.
스케이트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고 대개는 스스로 만든 썰매를 탔습니다.
끝 부분에 못을 거꾸로 박은 장대를 가랑이 사이에 넣고 신나게
달리던 외발 썰매는 지금도 마음속을 달리고 있고요.

얼음판에서 즐겼던 놀이 중 팽이 돌리기도 있습니다.
지금이야 팽이를 문구점에서 팔지만, 당시엔 스스로 만들었습니다.
나무를 고르고 밑동을 깎아 만든 팽이를 지치는 줄도 모르고 돌리다 보면
하루해가 짧곤 했습니다.

‘팽이가 존다’는 말이 있습니다.
무게중심을 잘 잡은 팽이가 흔들림 없이 안정감 있게 돌아가면
문득 고요해져서 마치 그 자리에 가만 멈춰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바로
그 순간을 ‘존다’고 했습니다.

새해를 맞았습니다.
많은 일이 다가오겠지만 우리의 마음은 조는 팽이였으면 좋겠습니다.
팽이처럼 우리 존재 한 복판에 중심축을 제대로 갖추고 말이지요.
중심축이 바르고 든든하다면 어떤 일이 다가와도
우리는 고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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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진정한 자유

오래전 원주에 있는 자유시장 앞을 지날 때였습니다.
어디선가 연신 빵빵거리는 소리가 나서 둘러보니 한 청년이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동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시장길을 빠져나가느라 애를 쓰고 있었지요.
경적을 계속 울렸던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유를 배달하는 작은 리어카가 자전거 뒤에 매달려 있었으니까요.

청년은 내게 자유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줬습니다.
자전거만이라면 더 쉽게 틈새를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뒤에 매단 리어카를 잊으면 안 됩니다.
빠져나갈 수 있는 틈의 기준은 자전거가 아니라 뒤에 매단 리어카였던 것입니다.
내가 자전거를 탔다고 내 뒤의 리어카를 무시하면 금방 사고가 나고 맙니다.

자유란 그런 것이었습니다. 혼자만의 출구가 아니라 모두의
출구를 찾는 것입니다.
혼자라면 얼마든지 홀가분할 수 있지만, 함께 사는 이들의 입장을 잊거나
외면하지 않는 것, 그것이 자유였던 것입니다.

자유의 진정한 모습을 주님은 보여주셨습니다.
얽매일 게 없는 분이었지만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거침없되 어긋남이 없는 것, 그것이 진정한 자유였던 것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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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세상에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합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 입 벌린 악어의 이빨, 아버지의 퇴직금 등이지요.
건드리지 말아야 할 것 중에는 동창회에 다녀온 아내의 심기도 있습니다.
처음 들으면 생뚱맞다 싶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오랜만에 모여 친구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고 나면 많은
생각이 들게 마련이지요.
힘들고 어렵게 사는 친구 이야기에 감사하기보다 잘사는 친구 이야기를 들으며
스스로 초라하게 여기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기 위해서는 두 가지 마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내 삶의 고유함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나처럼 사는 건 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아름답고 소중합니다.
다른 하나는, 다른 이의 삶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말했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를 하나님의 의도하신 모습으로 본다는 뜻이다.”

다가오는 설 명절,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의도하신
모습으로 볼 수 있다면 모두가 사랑스럽지 않을까요.

출처 :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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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업다와 없다

예전에는 아기들 대부분이 엄마 등에 업혀 다녔습니다.
생김새는 물론 어감조차 촌스러우면서도 정겨운 ‘포대기’에
폭 싸여서 말이지요.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고가(高價)의 유모차는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엄마 등에 업혀 바라보던 세상이 우리가 처음으로 대한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말 ‘없다’는 ‘업다’에서 왔다고 합니다.
가만 보면 두 말이 엇비슷합니다.
없다와 업다가 관련 있다는 게 낯설게 다가오지만, 조금만 생각하면
수긍이 됩니다.
아기를 등에 업는 순간 아기에겐 엄마 얼굴이, 엄마에겐
아기 얼굴이 보이지 않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어 없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것은 업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 서로 기대고 있는 것이지요.

믿음의 길을 가다 보면 주님이 보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어렵고 고통스러운 순간에 주님이 보이지 않으면 낙심합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주님이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업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안 보이는 그때가 실은 가장 가까운 때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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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더해야 할 것들

신앙인들이 오해하고 실수하는 것 중 보편적이면서도
치명적이다 싶은 것이 있습니다.
신앙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나머지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내가 신앙인이라는 이유로 상식이나 인격, 언행 등을 무시하는 것이지요.

독일의 화학자 유스투스 폰 리비히는 1840년 질소 인산 칼륨 등
식물이 자라는 데 필요한 필수영양소 중 성장을 좌우하는 것은
넘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부족한 요소라는 ‘최소량의 법칙’을 발표했습니다.
나무통 법칙도 있습니다.
나무판자를 세워 잇대어 만든 나무통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가장 긴 나무판자가 아니라 가장 짧은 나무판자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인이라면 더욱 유념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이 온전해지기 위해서는 믿음에 더해야 할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벧후 1:5~7)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무시하고 있는 한계가 우리의 믿음을 제한합니다.
우리가 돌아봐야 할 것은 나무통을 이루는 가장 긴 막대가 아니라
가장 짧은 막대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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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몰래 좋은 일을 해놓고

‘하루가 즐거우려면 이발을 하고, 일주일이 즐거우려면 결혼을 하고,
1년이 즐거우려면 집을 사고, 평생 행복하려면 정직하라’는
영국 속담이 있습니다.
결혼이 주는 즐거움을 일주일에 비기고 있는 대목 앞에서 정말 그럴까
갸웃하게 되지만,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입니다.
우리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 즐거움이 얼마나
오래 가는 것인지를 돌아보게도 됩니다.

영국의 작가이며 풍자가인 찰스 램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즐거운 일은, 몰래 좋은 일을 해놓고
그것이 우연히 발견되게 만드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몰래 좋은 일을 하는 것과 우연히 발견되게 하는 것은 두 가지 모두
어려운 일이다 싶습니다.
좋은 일을 하되 알려지기를 바라고 우연히 발견되기보다는 과장하고 싶은 것이
보통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몰래 좋은 일을 해놓고 우연히 발견되도록 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겠지만,
그런 즐거움은 흔한 즐거움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벤저민 프랭클린이 남긴 말 중에
‘준 것은 빛나고 받은 것은 녹이 슨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하신 뒤 “알리지 말라”고 하시는 주님은 빛나는
기쁨을 누린 분이다 싶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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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채워야 할 것을 채우지 않으면

언젠가 한 농부가 일러준 말이 있습니다.
아이들에게 버들피리를 만들어 주고 있을 때 지나가다
걸음을 멈추고 들려준 말입니다.
나무는 가지 끝부터 물이 오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봄이 되어 나무에 물이 오를 때가 되면 나무는 밑동부터
물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가지 끝부터 채운다는 겁니다.
그 말은 들판에 쏟아지는 봄 햇살만큼이나 환하게 다가왔습니다.
구석구석 가지 끝부터 물을 채움으로 나무는 자기의
온몸에 물을 채우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물을 채움으로 온통 연둣빛 잎을 피워내는 것이었습니다.

불영과불행(不盈科不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흐르던 물이 웅덩이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웅덩이를 채웁니다.
시간이 걸려도 웅덩이를 모두 채운 뒤에야 다시 앞으로 나갑니다.
마음이 급하다고 웅덩이를 비운 채 건너뛰는 법이 없어
웅덩이를 채우지 않는 한 걸음을 멈춥니다.

주님의 나라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가지 끝부터 물을 채우는 나무처럼, 웅덩이를 다 채운 뒤에야
다시 흐르는 물처럼 이 땅 구석구석 우리가 마땅히 채워야 할 것을
채우지 않으면 주님의 나라는 여전히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겠지요.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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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속이 비면

자루라는 말에는 몇 가지 뜻이 있습니다.
연장의 손잡이를 말할 때는 낫자루, 도낏자루, 호밋자루 등으로 쓰이지요.
물건을 세는 단위이기도 해서 권총 한 자루 혹은
연필 두 자루와 같이 쓰입니다.
여러 가지 물건을 담을 수 있게 헝겊 따위로 만든 크고 길쭉한
주머니를 뜻하기도 합니다.

우리 속담 중에 ‘속 빈 자루는 곧게 설 수 없다’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에 불가능한 것 중 하나는 속 빈 자루를 곧게 세우는 일입니다.
자루는 저 스스로는 힘이 없어 무엇인가로 채우지 않으면 설 수가 없습니다.
잠깐 서는 듯해도 이내 스스로 주저앉고 말지요.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
아마도 이 속담은 먹는 것과 관련해 ‘굶주린 사람은 체면을 차리고
올바로 살기가 힘들다’는 뜻으로 쓰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우리 안에 있어야 할 것이 없으면
바로 설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마음을 비우면 천국이려니와, 마땅히 있을 게 없어 속이 비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결국은 넘어지고 말 것입니다.
에스겔을 부르시며 “네 창자를 두루마리로 채우라”(겔 3:3) 하신
주님의 뜻이 우리 속담 앞에서 분명해집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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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물구나무서기

지구상에서 최악의 조건을 가진 곳 중에 나미브 사막이 있습니다.
1년에 며칠 외에는 비가 거의 내리지 않고 한낮 기온은
70도까지 오른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럴까요, ‘나미브’라는 말은 나마족 말로
‘아무것도 없는 땅’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생각지 못한 동식물이 살아가는데 나미브 거저리도
그중 하나입니다.
거저리는 밤이 되면 사막의 모래언덕 꼭대기로 기어올라갑니다.
그러고는 바다 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기다립니다.
마침내 안개를 실은 바람이 불어오면 거저리는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물구나무서기를 합니다.
그런 자세로 서면, 안갯속에 담긴 수분이 몸에 모입니다.
이 수분이 물방울로 흘러내리면 입으로 마실 수 있는 것이지요.

최악의 조건을 가진 나미브 사막에서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작은 벌레 거저리의 모습이야말로 오늘 우리가 배워야 할 지혜 아닐까요.
목이 마를수록, 물기를 찾을 수 없을수록 우리에게는 은총을
기다리는 간절함과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밤새 모래언덕을 기어올라 바람에 실린 수분을 거꾸로 서서 기다리는
거저리처럼 지극한 겸손으로 은총을 구하는
‘믿음의 물구나무’가 오늘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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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그것밖엔 될 게 없는

딸아이가 어렸을 때입니다.
봄을 맞아 동네 앞 개울을 산책 삼아 함께 찾았습니다.
돌미나리가 파랗게 돋았고 버들강아지가 피어 있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논둑길을 걷다 보니 군데군데 신기한 게 눈에 띄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개구리 알과 올챙이 이야기를 들려줬지요.
그러곤 다시 집으로 향할 때 딸이 뒤에서 물었습니다.
“아빠, 올챙이는 커서 왜 개구리만 되는 거예요?”
아이 생각에는 올챙이가 새도 되고 다슬기도 될 것 같았던 모양입니다.
“글쎄다.” 아빠가 선뜻 대답을 못 하자 녀석이 불쑥 자기 생각을 말했습니다.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그래요?”

그것밖엔 될 게 없어서 모든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느냐는 딸의 말에
웃음이 났지만, 그 말이 의미 있게 들렸습니다.
아무리 개구리 알이 많아도 알은 모두 올챙이가 되고, 올챙이가
아무리 많아도 올챙이는 마침내 개구리가 되는 이유를
그것밖엔 될 게 없는 것에서 찾고 있는 게 아이다웠습니다.

어릴 적 딸아이의 말은 자기 십자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세상에 아무리 사람들이 많아도 우리에게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삶이 있습니다.
그것밖엔 될 게 없는 삶을 사랑으로 사는 것, 바로 그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이라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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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미안하다 참새들아

여러 해 전의 일이지만 여전히 마음에 남아 있는 순간이 있습니다.
밤새 눈이 펑펑 내려 온 세상을 덮은 날 아침이었습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들듯 길을 나서 들판을 지나다 보니
참새들이 신이 났습니다.
두툼한 솜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진 듯 온 세상이 조용한데
뭐가 그리 좋은지 참새들만 요란했습니다.
‘다들 조용한데 너희들만 신이 났구나.’ 핀잔을 주듯 마음속으로
한마디를 하고 길을 걷는데, 길을 걷다 말고 돌아서서 참새 떼에게
용서를 빌었습니다.
마음속을 스치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참새들은 눈 때문에 신이 난 게 아니었습니다.
폭설이 내려 모든 것이 파묻히자 먹을 걸 잃어버린 참새들이
먹을 것을 찾느라 야단이었던 것입니다.
먹거리를 찾는 참새들의 절박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저 보이는 대로 판단했던 나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충분히 헤아리지 못하고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무심할 때가 많고 나도 모르게 다른 누군가에게
깊은 상처를 입히곤 합니다.
‘같은 자리에 서는 것이 관계의 최고 형태’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그 날 참새들에게 그랬듯이 우리에겐 진심으로 용서를 구해야 할
이웃들이 많이 있는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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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내일이라는 선물

세 아이를 키워 보니 아기들은 발 떨어질 때와 입 떨어질 때가
가장 예쁘다 싶습니다.
기어다니던 아기가 조심스럽게 두 발로 서고 위태한 자세로
한 걸음씩 옮깁니다.
첫걸음마, 모두에게 기적에 가까운 순간입니다.
좋으면 웃고 불편하면 울던 아기가 말을 시작하면 또 한번 경이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아기들은 ‘엄마’나 ‘아빠’라는 말을 가장 먼저 합니다.
늘 가까이 있고 가장 든든하게 이어져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겠지요.

세상을 배우듯 말을 배우는 아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은 ‘
내일’이라는 말이지 싶습니다.
아이들은 “내일 해줄게”라는 약속을 많이 듣습니다.
그때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립니다.
아직 내일의 의미를 모르는 아이는 생각이 날 때마다 “내일이 언제야”
“지금이 내일이야” 계속 묻습니다.
잠을 자고 나면 오는 날이 ‘내일’인데 그 날을 다시 ‘오늘’이라 부르니
아이에게 ‘내일’은 자꾸만 뒷걸음질하는 것처럼 보이지요.
‘내일’이라는 말이 어려운 것은 어린아이들만은 아니지 싶습니다.
가깝지만 먼 시간, 여전히 한 걸음씩 물러나는
‘내일’은 모두에게 어려운 시간입니다.
가정의 달 5월을 맞았습니다.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귀한 선물은
‘내일’이라는 말의 구체적인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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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낮아지는 것밖엔 없습니다

한 스승이 벽에다 금하나를 긋고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금을 건드리지 말고 금을 길게 만들어보라고 말이지요.
그 말에 제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스승이 원하는 것이 무엇일지 짐작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뒤 한 제자가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습니다.
그러고는 스승이 그어놓은 금 아래에 짧은 금을 긋고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스승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빙긋이 웃었지요.
스승이 그어놓은 금을 건드리지 않았지만 스승이 그은 금 아래에
짧은 금을 그으니 스승이 그은 금은 제자가 그은 금에 비해 길어졌습니다.
금을 건드리지 않고 금을 길게 만드는 길은 짧은 금을 긋는 것이었습니다.

짧은 금 긋기는 주님 앞에서 우리의 태도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자주 하는 고백과 찬양 중에 주님의 이름을 높이자는,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자는 것이 있습니다.
하지만 곰곰 생각해 보면 이내 한계를 느끼게 됩니다.
죄인인 우리가 어찌 거룩하신 분을 높일 수 있을까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높일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낮아지는 만큼 주님은 높아지십니다.
금을 건드리지 않고도 금을 길게 만드는 길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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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호지 않은 속옷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사순절을 맞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의 길을 걷는 것은 더욱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뒤를 순례하듯 따라가는 것이니
어찌 그 걸음이 쉽겠습니까.

고난의 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로마의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갖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네 조각으로 나눠 한 조각씩 갖습니다.
이는 십자가에 관한 복음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겉옷과 달리 예수님의 속옷은 나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요한복음은 이렇게 밝힙니다.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통으로 짠 것이라.”(19:23) 성기게
꿰매는 것을 ‘호다’라고 하는데, 호지 않은 속옷을 찢는 대신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갖기로 했던 것입니다.
찢어지지 않은 속옷은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심정으로 이해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속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담은 교회는
찢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깊이 묵상하며 마음에 새겨야 할 십자가의 모습 중에는 찢어지지 않은
속옷이 있습니다.
호지 않은 옷, 주님의 마음과 심정은 어떤 경우에도 찢어져서는 안 됩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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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호지 않은 속옷

어느 때나 마찬가지이겠습니다만 사순절을 맞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의 길을 걷는 것은 더욱
마음을 숙연하게 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신 예수님의 뒤를 순례하듯 따라가는 것이니
어찌 그 걸음이 쉽겠습니까.

고난의 길을 걷다 보면 만나게 되는 것 중 하나가 로마의 병사들이
예수님의 옷을 나눠 갖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겉옷을 네 조각으로 나눠 한 조각씩 갖습니다.
이는 십자가에 관한 복음이 동서남북 사방으로 퍼져나갈 것을
예시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겉옷과 달리 예수님의 속옷은 나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요한복음은 이렇게 밝힙니다.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통으로 짠 것이라.”(19:23) 성기게
꿰매는 것을 ‘호다’라고 하는데, 호지 않은 속옷을 찢는 대신
제비를 뽑아 한 사람이 갖기로 했던 것입니다.
찢어지지 않은 속옷은 예수님의 마음, 예수님의 심정으로 이해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주님의 속마음과 예수님의 마음을 담은 교회는
찢어져서는 안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깊이 묵상하며 마음에 새겨야 할 십자가의 모습 중에는 찢어지지 않은
속옷이 있습니다.
호지 않은 옷, 주님의 마음과 심정은 어떤 경우에도 찢어져서는 안 됩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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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아버지 고맙습니다

임길택 선생은 탄광마을에서 교사로 지내며 그곳의 아픔을 나직한
목소리에 담아냈습니다.
탄광마을의 특징 때문일까요, 그의 동시집 ‘탄광마을 아이들’에는
아버지에 대한 글이 많이 나옵니다.

“아버지의 왼손 네 손가락/ 엄지손가락만 빼고는/ 모두 잘라냈다//
그 손으로도/ 아버지는/ 나를 업어주셨고/ 내 팽이를 깎아주셨고/ 하루도
빠짐없이/ 탄광일을 나가신다// 오늘은/ 축구를 하다가 넘어져/ 오른쪽
얼굴을 깠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잘려나간/ 아버지의 손가락
생각을 하며/ 쓰린 걸 꾹 참았다// 이제 나는 울지 않는다” -
‘이제 나는’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병으로
누워계실 때만 해도/ 아버지가/ 우리 집을 꽉 채우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어요// 그러나 지금/ 아버지 사진만으로는/ 우리 집이/ 채워지질
않아요// 다른 친구들은 모를/ 커다란 구멍이/ 우리 집에 있어요/ 식구들
가슴마다 있어요” -‘아버지 사진’
어디 탄광마을뿐일까요, 김현승 시인은 ‘아버지가 마시는 술잔에는
눈물이 반’이라 했습니다.
가족을 위해 버거운 짐을 짐이라 여기지 않고 묵묵히 살아오신
아버지께 고마운 마음을 전하는 일은 마땅하다 싶습니다.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구멍이 남기 전에 말이지요.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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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믿음의 그랭이질

옛 시절 집을 지을 때 주춧돌의 역할은 중요했습니다.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워야 나무로 된 기둥이 비나 습기에
상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경우 주춧돌은 생긴 그대로의 펑퍼짐한 돌을 구해 사용했습니다.
얼핏 주춧돌은 바닥이 반반해야만 쓸모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꼭 그렇지 않았습니다.
울퉁불퉁한 상태로도 기둥을 세우는 데 문제가 없었던 것은
그랭이질 때문이었습니다.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세우며 돌을 깎아내는 대신
선택한 것이 있습니다.
주춧돌의 높낮이를 따라 나무 기둥의 밑동을 깎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그것을 그랭이질이라 불렀는데, 생각해보면 절묘한 이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돌과 나무를 접착제나 못을 사용하지 않고도 하나로 이어주었으니 말이지요.
그랭이질이 제대로 된 두 개의 기둥 위에 널판을 얹으면
그 위를 목수들이 올라가 걸어 다녀도 무너지지 않았다 하니
감탄할 만한 일이었지요.

새삼 그랭이질이 생각나는 것은 우리야말로 그랭이질이
필요하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우리의 생각에 주님의 뜻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우리의
생각을 맞춰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깎아내고 다듬는 믿음의 그랭이질이
필요한 것이고요.
그런 점에서 고난주간은 믿음의 그랭이질을 하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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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합니다

오래 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집회를 마친 뒤 부헨발트를 찾았습니다.
나치의 강제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혹독한 노동과 기아, 처형 등으로
6만5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곳입니다.
수용소는 외부 세계와 완전히 단절된 듯 깊은 숲 속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밧줄에 묶인 채 끌려간 진입로는 자동차로도 한참이나 걸렸는데
이름이 ‘피의 거리’였습니다.

수용소 규모는 생각보다 훨씬 컸습니다.
무엇보다 남아있는 전시물이 숨을 막히게 했습니다.
수많은 기록과 사진, 당시 유대인들이 신었던 신발과 안경들이 전시돼 있었고
그 중엔 두세 살 아이가 신었겠다 싶은 작은 운동화 한 켤레도 있었습니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많은 학생과 어른이 찾아와 독일이 저지른
만행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토론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들은 아프고 부끄러운 역사를 숨기거나 가리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이 범한 만행을 꽁꽁 숨기는 대신 고통스러울 만큼 들춰내고
반성하는 것은, 기억하지 않으면 반복하게 된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눈물로 뿌린 말씀의 씨앗이 가슴속에 남아 거친 세상을 살면서도
늘 떠오를 수 있기를, 씨앗을 뿌리는 모든 손을 주님께서 축복해 주시기를 빕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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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두 개의 강

제 첫 목회지는 굽이굽이 흙길을 달려야 나오는,
강원도의 한 외진 마을이었습니다.
마을 앞으로 흐르는 강을 사이에 두고 강원도 충청북도 경기도가 갈리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동네였지요.
예배당도 없던 마을, 그래도 강이 있다는 게 큰 위로가 됐습니다.

한가할 때면 강이나 개울로 나가 다슬기를 잡고 된장에 넣어 끓인 뒤,
빙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며 먹곤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즐거운 순간이었습니다.
강은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았습니다.
외진 곳에 살다 보면 슬며시 찾아오는,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달래기에 좋았습니다.
그런 날이면 강가를 찾아 마음을 띄워 보내듯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기도 하고,
무거운 마음일랑 물수제비로 지우고는 했지요.

강가에 사는 사람만 볼 수 있지 싶은 풍경이 있었습니다.
이른 아침 흐르는 강물을 따라 물안개가 피어올라 또 하나의 강물처럼
흘러갈 때입니다.
그 모습을 짧은 글에 담았습니다.
“바다까지 가는 먼 길/ 외로울까 봐/ 흐르는 강물 따라/ 피어난 물안개/
또 하나의 강이 되어/ 나란히 흐릅니다/ 나란히 가는/ 두 개의
강/ 벌써 바다입니다”(두 개의 강)

우리가 함께 믿음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두 개의 강으로
흐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신뢰와 사랑으로 함께 갈 때, 우리는 이미 은총의 바다에 닿은 것과
다를 것이 없고요.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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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내 겨릿소가 되어다오

요즘이야 웬만한 농사일을 농기계가 다 하지만 예전에는
소가 큰 일꾼이었습니다.
논과 밭을 거반 소가 다 갈았지요.
소를 부리느라 골짜기마다 쩌렁쩌렁 울려대던 농부들의
호령 소리도 대단했습니다.
소는 부릴 때 한 마리가 일하는 것은 호릿소라 불렀고, 두 마리를
함께 부리는 것을 겨릿소라 불렀습니다.
겨릿소란 ‘겨리를 끄는 소’라는 뜻인데, 겨리는
‘소 두 마리가 끄는 쟁기’라는 뜻이니까요.

험한 밭을 갈 때나 밭을 깊게 갈아엎을 필요가 있을 때는 대개
겨릿소를 부렸습니다.
겨릿소를 부릴 때는 일의 경험이 많은 안소와 일을 막 배우는
마랏소를 함께 부렸습니다.
마랏소는 안소를 따라 일을 하며 일하는 요령을 배웠지요.
농부가 쟁기질할 때면 회초리를 안소 쪽에 잡았습니다.
안소만 제대로 가면 마랏소는 저절로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미덥기 때문에 안소 쪽에 회초리를 잡았던 것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부르시며 주님은
“와서 나와 함께 멍에를 메자”고 하십니다.
함께 멍에를 메자는 말은 겨릿소가 돼 달라는 요청입니다.
내가 안소가 돼 줄 테니 함께 하나님의 밭을 갈자는 부름이지요.
갈수록 세상은 척박해져 갑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주님의 마랏소가 돼야 합니다.
얼마든지 주님은 우리의 든든한 안소가 돼주실 것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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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나는 당신께로 갈 뿐입니다

삶의 경험이 전혀 다른 분들을 만나면 귀담아들을 이야기가 많습니다.
그동안 전혀 알지 못하던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어서입니다.
그런 점에서 항공기 조종사 출신인 한 장로님께 듣는
비행기와 비행에 관한 이야기는 신선하고 재미있었습니다.
ETP에 대해 이야기를 들은 것도 그 장로님을 통해서였습니다.

언젠가 독서 중 읽었던 ‘불환귀점’에 대해 질문한 일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런 말이 있는지도 궁금했습니다.
장로님도 들어보지 못했다 하셨죠.
하지만 비슷한 의미로 ETP라는 전문 용어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퀄 타임 포인트(Equal Time Point)’의 약자였는데,
‘등시점’이라 옮길 수 있는 말이었습니다.
ETP란 ‘목적지까지 가는 시간과 출발지로 회항하는 시간이 같은 지점’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이는 유사시 비행 방향을 결정할 때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비상시에는 ETP를 확인해 출발지로 돌아갈 것인지, 목적지 또는 대체비행장에
착륙할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비행기 연료의 소모량은 거리가 아니라 시간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어쩌면 ETP를 지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전 시간으로 돌아갈 수 없어요.
다만 당신께로 갈 뿐입니다.’
그렇게 고백하는 것이 신앙이라면 말이지요.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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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꿈속에서도 마르면 안 되는 것

농사꾼 치고 물 욕심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으니까요.
오죽하면 비가 ‘오신다’고 말하겠습니까.
물 도둑질은 세상이 다 아는 도둑질이라 했습니다.
착한 사람들이어서 다른 도둑질은 몰라도 물은 달랐습니다.
살갑게 살던 이웃끼리도 물을 두고는 목소리가 격해집니다.
마른 논에 물 들어가는 것과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것보다 좋은 게
없다는 말도 괜히 나온 게 아니고요.
써레질한 물은 형제간에도 안 나눈다고 했으니 농사꾼에게
물은 더없이 중요합니다.

농촌에서 목회 할 때 마을 사람들의 수고를 배울 겸 다락논 서너 마지기에
벼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어깨너머로 배우고 마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농사 흉내를 낸 것이었는데,
농사의 소중함과 어려움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농사는 결코 쉽지 않았는데, 그중 어려운 것이 물이었습니다.
논에 물을 얼마큼 가둬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마을의 젊은 농사꾼에게 물었더니 대답이 단순했습니다. “
농사꾼은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돼요.”

꿈속에서도 물이 마르면 안 되는 삶, 그것이 농사꾼이었습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라 해도 꿈속에서도 마르면 안 되는 것을
지켜갈 수만 있다면, 그윽하지 않은 삶이 세상에 따로 없겠다 싶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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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비꽃과 비설거지

비와 관련된 우리말이 제법 많습니다.
안개비보다는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인 ‘는개’, 채찍처럼 쏟아지는 ‘
채찍비’, 빗방울의 발이 보이도록 굵게 내리는 ‘발비’, 좍좍 내리다가
금세 그치는 ‘웃비’, 한쪽으로 해가 나면서 내리는 ‘여우비’,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내리는 ‘먼지잼’도 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냄새를 ‘석 달 가뭄 끝에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먼지를 적실 때 나는 냄새’라 했던 어른들은 가뭄 끝에 내리는
비가 너무 고마워 ‘단비’ ‘약비’ ‘복비’라 불렀습니다.

‘비그이’라는 말은 비가 올 때 잠깐 피해 멎기를 기다리는 일입니다.
‘비갈망’은 장마철을 앞두고 피해를 보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것을 이르며
비슷한 말로 ‘비설거지’가 있습니다.
천둥 번개가 치며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징조를 보이면 얼른
장독대를 덮든지 널어놓은 곡식을 집 안으로 들이든지 하는데
바로 그것이 비갈망과 비설거지입니다.

비가 오기 시작할 때 성글게 떨어지는 빗방울을 두고는
‘비꽃이 듣는다’ ‘비꽃이 피기 시작한다’ 했습니다.
후드득후드득 비꽃이 듣기 시작하면 서둘러 비설거지를 끝내고
조용히 말씀을 펼치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장마가 아주 싫지는 않을 듯합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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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사랑 해의 반대말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이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사랑해’랍니다.
‘썰렁해’와 ‘사랑해’의 ‘해’를 바다(海)로 이해한 것이지요.
‘썰렁해’와 ‘사랑해’ 이야기를 들은 어떤 부인이 남편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듣고 싶어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답니다.
“여보, 내가 문제를 낼 테니 한번 대답해 봐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래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뭘까요.”
남편이 머뭇거리며 답을 못하자 부인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힌트를 줬습니다.
“지금 같은 때에 당신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 있잖아요.”
그러자 남편이 심드렁하게 대답을 했다지요. “열바다!”

‘사랑해’의 반대말이 무엇일지 물으면 재미있는 대답이 이어집니다.
‘썰렁해’ ‘미워해’ ‘못 사랑해’ ‘안 사랑해’
‘관심 없어’ 등 말이지요.
‘사랑해’의 반대말은 뜻밖에도 ‘사랑했어’랍니다.
이는 큰 찔림으로 다가옵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지금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과 거리가 먼 삶을 살면서도 예전에 사랑했던 것을 떠올리며
여전히 사랑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허망한 착각일 것입니다.
사랑했다는 기억 속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을 가로막는
장애물인지 모릅니다.
사람 앞에서도 주님 앞에서도 마찬가지로 말이지요.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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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하늘 그물

책 ‘단순한 기쁨’을 읽다가 깊이 공감한 대목이 있습니다.
성전이 거룩한 이유는 성전의 외양을 장식하는 대리석의
화려함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성전이 있어 그 주변에 집 없는 자가 없다는 것이 거룩함의 근거였습니다.
성전 주변에 배고픈 자가 없고 헐벗은 자가 없고 한뎃잠을
자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거룩함의 근거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말에 ‘든거지난부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는 가난해 거지 형편이면서, 밖으로는 부자같이 보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지요.
그런가 하면 ‘든부자난거지’라는 말도 있습니다.
실제는 부자면서도 밖으로는 거지같이 보이는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많은 것을 갖고 있지만, 마음은 가난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싶습니다.

‘천망회회 소이불실(天網恢恢 疎而不失)’이란 말이 있습니다.
‘하늘 그물은 넓고 성기어서 허술한 것 같지만, 빠뜨리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선한 사람이 고통을 당하기도, 악한 사람이 잘되기도 하니 허술해 보이지요.
사람 눈에는 허술해 보여도 무엇 하나 빠뜨리는 게 없는 게 하늘 그물입니다.
이 땅의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길은 우리가 하늘 그물이 되는 것 아닐까요.
이웃의 작은 아픔과 상처까지 사랑으로 품는 것, 바로 거기에
이 땅의 회복이 달려 있다 싶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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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한 푼도 안 들어

여러 해 전 독일에서 목회할 때의 일입니다.
신학 공부를 같이한 친구 목사가 목회를 하고 있는 이탈리아
로마를 찾아 말씀을 나눈 일이 있었습니다.
성악을 공부한 교우들이 많아 찬양이 기억에 남을 만큼
은혜로운 교회였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식사를 하기 위해 식당을 찾았을 때 나무 아래 차를 세워둔
친구가 재미난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로마에는 참새가 얼마나 많은지 나무 아래 차를 잘못 세워두면
자기 차를 못 찾을 때가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이야긴가 싶었는데, 잠깐 사이에 검정색 자동차 색깔을 흰색으로
바꿀 만큼 참새가 똥을 쌀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참새가 아무리 많아도 그렇지 과장이 지나친 것 아닐까 생각하고 있을 때
친구가 물었습니다.
로마에서 참새를 위해 세운 1년 예산이 얼마나 되는지 아느냐고 말이지요.

세상에, 참새를 위해 예산을 세웠다니 로마가 참으로 별난 도시다 싶었을 뿐,
예산 규모는 도무지 짐작이 되질 않았습니다.
대답을 못하자 친구가 답했는데, 그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한 푼도 세우지 않는다고 했으니까요.
예산 한 푼 세우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시는 참새들, 우리 또한
그 은총 안에서 사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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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신앙생활과 자전거 타기

언젠가 한 집회에서 참석한 이들에게 이렇게 물어본 일이 있습니다.
“신앙생활 하기 참 어렵지요. 신앙생활과 자전거 타기 중 어느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시나요.”
뜻밖의 질문을 받은 이들의 표정은 비슷했습니다.
대부분 생뚱맞다는 표정이었지요.
신앙생활을 자전거 타기에 비기냐고, 질문이 말이 되느냐는 투였습니다.

제가 대답을 했습니다.
“저는 자전거 타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해요.
자전거는 페달을 계속 밟지 않으면 넘어지거든요.
대번에 티가 나요.
그런데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지 않아도 별로 티가 나질 않아요.
그런 점에서 자전거 타기가 훨씬 어려운 것 아닐까요.”
그제야 공감하겠다는 듯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입니다.
신앙도 그렇죠. 도대체 깊이를 헤아리기 힘듭니다.
신앙생활도 오래 했고 직분도 귀하고, 겉모습으로 보자면
매우 훌륭한 신앙인이다 싶은데 현실의 이익 앞에서 속절없이
믿음이 뒷전으로 밀리는 걸 보면 안쓰러운 생각이 듭니다.
그런가 하면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이가 큰 고난 앞에서도
꿋꿋한 모습을 하면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여름을 맞아 곳곳에서 열리는 수련회와 신앙집회가 우리의
무너진 믿음을 바로 세우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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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기타 줄 맞추기

약속한 시각보다 먼저 도착해 일행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방 한쪽 구석에 놓여 있던 기타가 눈에 띄었습니다.
기타를 잡아본 것이 언제인가 싶어 집어 들었더니 줄이
모두 느슨하게 풀려 있었습니다.
맨 아랫줄부터 음을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세 번째 줄 차례가 되자 문제가 생기고 말았습니다.
줄을 조이고 풀고 하는 줄감개가 고장이 나 아예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요지부동, 꿈쩍을 하지 않았습니다.
줄을 맞추는 일은 불가능해졌습니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다시 기타를 집어 들었고 음을 새로 맞추기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줄감개가 움직이지 않는 세 번째 줄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음이 전체적으로 낮아지긴 했지만 얼마든지 여섯 줄의
소리를 조화롭게 맞출 수 있었습니다.
조율을 마친 기타로 노래를 부를 때 문득 마음속을 지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과 삶의 화음을 맞추는
길도 마찬가지겠다 싶었습니다.
힘있는 자를 기준으로 음을 맞추다 보면 문제에 부딪히곤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의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약한 사람을 기준으로 하면
어떤 모임에서도 멋진 화음을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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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일부러 고른 작은 무

여러 해 전 독일에서 목회한 경험이 있습니다.
가끔 한국을 방문할 때면 많이 받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독일교회는 성령이 떠났다면서요.”
종교개혁 발상지인 독일의 교회들이 왜 비어있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저는 항상 같은 대답을 하곤 했습니다.
“한국교회는 예배가 생활화돼 있지만, 독일교회는 생활이
예배화돼 있는 것 같습니다.”
독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눈여겨보며 그들의 삶 속에 신앙이
녹아 있다는 것을 느낄 때가 적지 않았습니다.
교우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어느 해인가 기상이변으로 채소가 귀할 때였습니다.
마트의 채소 코너에서 독일 할머니가 무를 사는데 한참 동안 살피더니
유난히 작은 걸 하나 고르더랍니다.
크기에 상관없이 같은 가격에 팔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큰 무를 놔두고
작은 무를 택하는 할머니가 잘못된 선택을 한 것 같아 뒤에서
바라보던 교우가 말을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일러주어 고맙습니다.
하지만 나는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큰 무가 필요하지 않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같이 나누어 먹어야지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몹시 부끄러웠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전해 듣는 저도 부끄러웠습니다. 우리는 언제 믿음과
삶 사이의 틈을 좁힐 수 있을까요. 사랑으로 말이지요.

출처 :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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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오르골 처럼

벼룩시장에서 오르골을 구입한 일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해맑은 소리가 들려 따라갔더니 한 사람이 고만고만한
오르골을 팔고 있었습니다.
아기 손바닥만 한 크기의 작은 오르골에서도 샘물이 솟듯
맑은소리가 퍼져 나왔습니다.
얼마든지 태엽을 감아 연주를 들어볼 수도 있었습니다.
부르는 값도 비싸지 않아 선뜻 하나를 샀습니다.
시계태엽을 감듯 오르골의 태엽을 감으면 작은 쇠 원통이 돌아가며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합니다.

오르골을 눈여겨보면 피아노 건반을 닮은 얇은 판 앞을 원통형의
쇠막대가 돌아가는데, 원통 곳곳에 불규칙하게 박혀 있는 뾰족한
부분이 쇠막대를 튕기면서 소리를 냅니다.
원통형에 박혀 있는 뾰족한 부분은 아무런 규칙이 없이
들쭉날쭉 박혀 있는 것 같지만 사실 바로 그 부분이 곡을
연주하는 악기가 되는 셈입니다.

오르골의 튀어나온 부분과 빈 곳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곡을 연주하듯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겠다 싶습니다.
밝음과 어둠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기에 밝음만 바랄 것도 아니고, 어둠을 탓할 것만도 아닙니다.
빛과 어둠을 받아들여 하나의 음악이 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삶의 성실인 것이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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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애벌레 앞에서

가지나방 애벌레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가지나방 애벌레는 나뭇가지 흉내를 냅니다.
새들에게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지요.
자작나무에서는 자작나무 색깔을 띠고 버드나무에서는 버드나무 색을 띱니다.

심지어 줄무늬를 그려 넣은 인공 나뭇가지에 올려놓아도 사람이
그려 놓은 줄무늬가 애벌레의 몸에 나타납니다.
사진으로 보면 가지나방 애벌레와 나뭇가지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가지나방 애벌레의 눈을 가려도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눈으로 색을 감지해 몸의 색을 바꾸는 게 아니라 피부로 빛을 감지해
자신의 피부색을 변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피부로 감지해낸 색깔에 자기 몸을 맞추는 벌레가 있다니요.

가지나방 애벌레 이야기를 들으며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것은
미물과 같은 벌레도 자신의 몸으로 주변의 색을 감지해 몸의 색을
일치시키는데, 오늘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었다고 하면서도
무엇 하나 제대로 닮은 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변하지 않는 우리의 믿음은 한 마리 애벌레 앞에서도
고개를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민망한 믿음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 《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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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신상구(愼桑龜)

신상구란 말은 입조심을 하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옛날 바닷가 마을에 효자가 살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오랜 병환 끝에
돌아가실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오래 산 거북이 끓인 물을 마시면 병이 나을 거란 말을 들었는데,
마침 1000살은 됐을 법한 거북이를 발견했습니다.
거북이가 얼마나 큰지 들 수도 없었습니다.
지게에 지고 겨우 집으로 향했습니다.

뽕나무 아래에서 잠시 쉴 때였습니다.
거북이가 느긋하고 거만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영험한 거북이라 솥에 100년을 끓여도 죽지 않는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뽕나무가 말을 하는 게 아닙니까.
“어떤 거북이도 뽕나무 장작으로 불을 피워 끓이면 당장 죽고 말 것이다.”

효자는 이들의 대화를 주의 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무리 장작을 많이 넣어도 펄펄 끓는 가마솥
거북이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제야 뽕나무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도끼를 들고 달려가 그 뽕나무를 잘라왔습니다.
뽕나무에 불을 붙여 끓이자 거북이는 이내 죽고 말았습니다.
거북이를 끓인 물을 마신 아버지는 씻은 듯 병이 나았습니다.
거북이가 자기 자랑을 하지 않았다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뽕나무도 괜한 말을 하지 않았다면 장작이 되지 않았겠죠.
안 해도 좋은 말은 삼가는 것이 좋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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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가짜 휘발유

책 속의 유머 코너에 적힌 짤막한 글을 보았습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이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뜸 떠올랐던 건물과 솔벤트였지만 답은 아니었습니다.
정답은 진짜 휘발유였습니다.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는 기분이었습니다.
가짜 휘발유를 만들 때 가장 많이 넣는 재료가 진짜 휘발유라니
기가 막힌 역설로 여겨졌습니다.
하긴 진짜 휘발유를 가장 많이 넣어야 가짜를 감출 수 있을 테니
지당한 말이었습니다.

가짜 휘발유 이야기를 통해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는 누군가를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가짜라고 여겨지는 것들 속에도 진짜가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우리가 무시하기 쉬운 것이 우리를 가짜로 만든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진짜가 많다 할지라도 그 안에 적은 양의 가짜가 들어가면
전체가 가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를 가짜로 만드는 것은 우리가 자신하고 있는 많은 양의
진짜가 아니라 지극히 적은 양의 가짜였던 것입니다.

나는 타인에 대해 지나치게 냉정한 것은 아닐까?
그러면서도 나에 대해서는 터무니없이 관대한 것은 아닐까?
가짜 휘발유 이야기 앞에서 나를 돌아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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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때 거울

때 거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울 중에 때거울이 있다는 것이지요.
어릴 적 초등학교 교실 마룻바닥이 그랬습니다.
물로 청소하기 어려운 겨울이 되면 집에서 가져온 기름을
마른걸레에 묻혀 교실 바닥을 닦고 또 닦고는 했습니다.
그런 손길이 쌓이고 쌓이면 교실 바닥에서는 반질반질 윤이 났지요.

고향교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넓은 송판으로 만들어진 예배당 바닥에서는 뭔가 헤아리기 어려운
깊은 빛이 우러났습니다.
검붉은 송판에서 우러나는 빛은 마치 그것이 믿음의 빛인 양
웅숭 깊은 느낌으로 전해지곤 했습니다.
예배하러 나온 교우들의 발길이 닿고 닿아서, 기도하러 온 교우들의
무릎에 닳고 닳아 만들어진 빛이지요.
그렇게 어릴 적 예배당 바닥에선 신비한 빛이 반짝였습니다.
반짝이는 윤기에 사람의 얼굴까지 비춰볼 수 있는 바닥을
때 거울이라 불렀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때 거울이야말로 우리 내면을 비춰볼 수 있는 가장 좋은
거울이 아닐까 싶습니다.
유리로 된 거울이야 우리의 겉모습을 비출 뿐이니 말이지요.

오늘 우리의 신앙이 가볍거나 형식적으로 된 것은 때 거울을
잃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아프도록 무릎을 꿇는 그 시간을 잃은 것이지요.
우리 믿음과 영혼이 맑아질 수 있는 길은 때 거울을
되찾는 데 있을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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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추위를 이기는 마늘처럼

배추도 뽑고 가을 당근도 뽑고 나면 밭농사가 끝납니다.
그때 마늘을 놓습니다.
이내 서리가 내리고 추위가 오지만 마늘은 한 해 농사를 마치며 놓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골을 만들고 깊지 않게 땅을 파낸 뒤
마늘 한 쪽씩 놓습니다.
싹이 나는 부분을 위로 가도록 놓고는 제 키의 세 배 정도 흙으로 덮습니다.
너무 얕게 덮으면 겨우내 땅이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마늘이 위로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고, 반대로 너무 깊으면 봄에 싹이 더디 나거나
수확할 때 뽑기가 힘들어집니다.

그렇게 심은 마늘은 찬바람 속에서 겨울을 납니다.
땅이 두껍게 얼어붙고 에일 듯 칼날 바람이 불고 수북하게 눈이 쌓여도
마늘은 언 땅에서 겨울을 납니다.
한 켜 겨를 덮거나 맨살 가리듯 겨우 한 겹 짚을 두른 채 긴긴 겨울을 납니다.
들깨를 털고 난 뒤 생기는 들깻잎 부스러기를 덮으면 호강이고요.

마늘이 매운맛을 내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한겨울 매서운 추위를 언 땅에 묻혀 맨몸으로 견디며, 그렇게
견딘 추위를 매운맛으로 익혀내는 것입니다.
작은 한 쪽 마늘이 온통 추위 속에서도 제 몸에 주어진
생명을 잃지 않고 키워온 것, 그것이 매운맛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단단해지는 것도 묵묵히 고난을 이겨내는 데 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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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자전거 길과 지뢰

벌써 3년이 지났습니다.
한 마리 벌레처럼 비무장지대(DMZ)를 걸었던 적이 있습니다.
강원도 고성, 우리나라 최북단에 있는 명파초등학교에서 출발해
경기도 파주 임진각까지 370㎞를 열하루 동안 홀로 걸었습니다.
기도실에서 기도하는 것과 분단의 땅을 직접 밟으며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비로소 내 발이 내 땅에 닿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억나는 일이 많은데, 그중 하나가 자전거 길과 지뢰 경고문이었습니다.

DMZ 인접 마을을 걷다 보니 흔하게 보이는 게 철조망이었습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겹겹의 철조망은 여전히 남아있는 남과 북의
상처와 불신의 상징이었습니다.
철조망에는 붉은색 바탕의 역삼각형에 ‘지뢰’라고 쓰인 경고문이
일정한 간격으로 붙어 있었습니다.
지뢰가 묻힌 곳이니 출입을 금한다는 의미였습니다.

그 바로 옆 도로 곳곳에는 자전거가 그려져 있더군요.
자전거 전용 도로였습니다. 이를 알리는 안내 표시는 파란색
페인트로 칠해져 있었습니다.
파란색 안내와 붉은색 경고가 아픈 대비로 다가왔습니다.
철조망을 녹여 자전거를 만들고, 남과 북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내 나라 구석구석을 마음껏 달릴 수 있는 날이 어서 오기를,
2020년에도 변함 없이 기도합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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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떨림과 감격으로

인간의 유한함과 유약함 때문이겠지요.
인생의 덧없음에 관한 말씀은 성경 곳곳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게는 그 날이 풀과도 같고 피고 지는 들꽃 같아,
바람 한 번 지나가면 곧 시들어 그 있던 자리조차 알 수 없다.
”(시 103:15~16)
“내 일생이 달리는 경주자보다 더 빨리 지나가므로, 좋은 세월을
누릴 겨를이 없습니다.
그 지나가는 것이 갈대 배와 같이 빠르고, 먹이를 덮치려고
내려오는 독수리처럼 빠릅니다.”(욥 9:25~26)
“여인에게서 태어난 사람은 그 사는 날이 짧은데다가,
그 생애마저 괴로움으로만 가득 차 있습니다.
피었다가 곧 시드는 꽃과 같이, 그림자같이,
사라져서 멈추어 서지를 못 합니다.”(욥 14:1~2)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시인 중 박은이라는 이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와 평생 함께 살기를 원했지만, 병을 얻은 아내는
박은의 나이 스물다섯에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때의 슬픔을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
사람의 목숨이란 게 어찌 오래 가랴.
소 발자국에 고인 물처럼 쉬 마를 테지.’ 소 발자국에 고였다
사라지고 마는 물과 다를 것 없는 우리의 삶, 우리에게는
어설프거나 어정쩡할 겨를이 없습니다.
값없이, 조건 없이 주신 새해라는 주님의 선물을 떨림과
감격으로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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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더 꽁꽁 묶어주십시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제물로 바친 이야기는
믿음 안에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100세 때 얻은 독자, 아무리 믿음이 깊다지만 어찌 그 아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을까요. 그의 믿음 앞에 마음이 숙연해집니다.

말씀을 들은 다음 날, 아브라함은 아들을 데리고
이른 시간 길을 나섰습니다.
모리아 산 앞에서 종들 대신 직접 칼과 불을 들고 아들과 걸었고
칼을 멈추라 할 때 멈췄던 아브라함의 모습 등에는
우리가 눈 여겨봐야 할 순간이 적지 않습니다.

이 놀라운 이야기의 초점은 대개 아브라함에게 맞춰져 있습니다.
하지만 이삭의 믿음도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얼마든지 눈치채고 도망칠 수도 있었고, 힘으로 아버지를
밀치고 벗어날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삭은 기꺼이 제물이 되기로 합니다.
이스라엘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칼로
내리치려 할 때 이삭이 아버지에게 부탁한 것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더 꽁꽁 묶어 달라 했다는 것이지요.
아버지가 칼로 칠 때 본능적으로 피할까봐 그런 부탁을 했던 것입니다.
피하면 상처만 입고 온전한 제물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늘의 명령에 순종한다는 뜻의 순명(順命)은 그런 것입니다.
어떤 것을 요구하셔도 그 길을 따르는, 그 길을 따르기 위해 나를 더
꽁꽁 묶는 것이죠. 어쩌면 성탄은 순명의 의미를 배우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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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그래 갈게

‘당신의 생활을 바꿔놓을 수 있는 세 가지 말’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말 중 중요한 말들은 대개
세 단어 이하로 짧다고 합니다.
글쓴이가 말했던 ‘세 가지 말’도 짧았습니다.
“아마 당신이 옳을 겁니다”
“당신은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어요”
“가겠습니다”가 그것이었습니다.

“아마 당신이 옳을 겁니다”와
“당신은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어요”는 이내 공감이 됩니다.
하지만 “가겠습니다”는 뜻밖이었습니다.
잠시 생각해보니 어렵지 않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추운 겨울 새벽 눈이 수북하게 쌓인 산길을
자동차로 지나던 중 시동이 꺼지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떠오르는 사람은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자다 전화를 받은 친구가 대뜸
“그래, 갈게”라고 한다면 그 얼마나 고마운 일일까요.
충분히 짐작됐습니다.
도움을 필요로 하는 누군가에게 주저하며 변명하는 대신
“그래, 갈게”라고 말하는 건 더없이 미더운 일일 것입니다.
성탄은 가장 먼 길을 사랑으로 찾아오시는 분을 만나는 날입니다.
죄로 멀어진 우리를 주님께서 찾아오셨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주님은 아무 조건 없이 우리에게
“그래, 갈게” 하신 분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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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겨울나무 앞에서 드리는 기도

가장 아름다운 빛깔로 물들었던 이파리를 모두 떨어뜨린 나무가
이제는 빈 가지로 서 있습니다.
앙상한 모습으로 선 겨울나무는 침묵의 기도를 바치는 수도자들 같습니다.
기도란 생명의 주인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선다는 것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빈가지 사이로 드러난 새 둥지에 눈이 갑니다.
얼기설기 마른 가지들이 모여 둥지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른 가지도 서로 모이면 소중한 쓰임새가 있음을 일러줍니다.
거기 둥지가 있었다는 것은 그동안 아무도 몰랐던 일입니다.
나무는 자신의 품에 둥지를 튼 새가 장난꾸러기 아이나 사나운
새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수많은 이파리로 감싸주어 맘놓고
새끼를 키우게 했던 것이지요.

빈 가지로 선 겨울나무는 빈 둥지를 내보이며 제가 한 일은
고작 이것뿐이었다고 하늘에 고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을 살며 한 영혼을 곱게 품는 것은 지극하고도 아름다운 일입니다.
가볍거나 사소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 생명은 온 천하보다 귀하고 한 사람을 살리는 일은 인류를
살리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을 마칠 때에도 겨울나무와 같은 기도를
드릴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봅니다.
‘마음을 다해 품었던 영혼이 전혀 없지 않았다는 기도를
바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고 가난해집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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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마침내 오지 않아도 좋다

시인 김사인은 ‘다리를 외롭게 하는 사람’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가령 이런 시는/ 다시 한번 공들여 옮겨 적는 것만으로/ 새로 시 한 벌
지은 셈 쳐주실 수 없을까요.”

한 번 공들여 적는 것만으로도 좋은 시 한 벌 지은 셈 쳐달라는 말이
재미있게 다가왔습니다.
그가 공들여 적고 싶다 밝힌 시는 이성선 시인의
‘다리’와 ‘별을 보며’라는 시였습니다.
시인의 글을 대하며 그 말을 기도에도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누군가 드린 기도를 마음을 담아 함께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주님께 바치는 좋은 기도가 될 수 있겠다고 말이지요.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이 시작됐습니다.
마음을 정돈하고 향기로운 기름을 준비하며 등불을 밝히는 계절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릴 수만 있다면/ 당신을 기다리는 기다림으로
죽어갈 수만 있다면/ 당신 마침내 오지 않아도 좋다”라는
이현주 목사의 글입니다.
‘당신 마침내 오지 않아도 좋다’는 말에서 기다림의 참된
의미와 자세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떤 조건이나 약속 때문에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기다림의 결과가
어떠하다 해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기다림, 그것이 진정한
기다림이겠지요. 그만한 기다림이 우리 것이면 좋겠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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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두 팔로 안을 수 있는

중세 독일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합니다.
바바리아 제국의 울프 공작은 와인스버그에 있는 자신의 성에 갇힌
몸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와비아 제국의 콘라드왕이 군사를 이끌고 와 성을 포위했기 때문입니다.
울프 공작은 마침내 항복할 수밖에 없었고, 항복 문서를 교환하며
여러 조건이 정해졌습니다.
울프 공작과 신하들은 자신의 운명을 적에게
맡겨야만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하지만 와인스버그의 아내들은 모든 것을 포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콘라드왕에게 메시지를 보내 성에 있는 모든 여성의 안전을
보장해 줄 것과 자신들이 성을 떠날 때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두 팔로 안고 가는 걸 허락해 달라 부탁했습니다.
여인들의 제안은 받아들여졌고, 마침내 성문이 열렸습니다.
여인들이 먼저 성을 걸어 나왔습니다.
여인들이 두 팔에 안고 나온 것은 금이나 은과 같은
보석이 아니었습니다.
여인들은 온 힘을 다해 두 팔로 자신의 남편을 안고 나왔습니다.
승리한 적의 손길로부터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콘라드왕은 뜻밖의 모습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며 그 자리에서
여인들에게 그들 남편의 완벽한 자유와 안전을 보장해 줬다고 합니다.

나무마다 잎을 모두 떨구는 계절, 내가 두 팔로 안을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돌아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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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공멸은 피해야 합니다

언젠가 기이한 사진 한 장을 본 일이 있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 위로 뭔가 삐쭉 솟아오른 장면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짐작되질 않았습니다.
부채 같기도 하고 부러진 주걱 같기도 한 것이 얼음 위로
솟아올라 있었으니까요.
궁금한 마음을 갖고 설명을 읽고 난 뒤 마음이 서늘해졌습니다.
갈색 털을 지닌 북미산 큰 사슴 두 마리가 뿔이 엉켜 죽은 채
물속에 얼어붙어 있었던 것입니다.

가을은 사슴들의 왕성한 번식기입니다.
두 마리의 사슴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서로 뿔이 엉키게 됐고,
그 상태로 발버둥치다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겨울이 되자 물이 얼어 뿔만 얼음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설명을 대한 뒤 다시 한번 사진을 유심히 보니 사슴의 뿔이
유난히 아름답습니다.
빛나는 황금 관을 쓴 듯 저 뿔을 높이 들고 바위 꼭대기에 서 있었을
사슴이 얼마나 위엄있고 아름다웠을까요.
충분히 상상됐습니다.

그에 비교해 얼음 속에 잠겨 있을 사슴의 몸뚱이는 초원을 마음껏
달리던 모습이라 하기에는 초라하고 불행하게 느껴졌습니다.
풀어낼 것을 풀어내지 못하면 결국 공멸의 길을 가게 됩니다.
엉킨 것을 풀어야 우리 모두의 살길이 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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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자격 없음

오래 전 초등학교 시절엔 가정방문이 있었습니다.
선생님이 학생들의 집을 찾아갔지요.
궁벽한 시절, 설레기보다 부끄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시인 반칠환의 ‘가정방문’에는 그런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마을에서 제일 외딴집,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산지기 집에 선생님이 찾아옵니다.
차라리 안 오면 좋겠다 싶었는데 불쑥 감나무 아래 선생님이 보입니다.
뒤란과 콩밭에 숨고 산으로 도망치기에는 너무 늦었습니다.
열무밭 매던 엄마가 허겁지겁 달려오는데 그 모습이 가관입니다.
감물 든 큰형의 속옷에 넥타이를 허리띠로 동여맨 고무줄 헐건
몸뻬바지와 셋째 형이 신던 검은색 훈련화를 신고 손에는
흙 묻은 호미…. 방안에 들어와 그런 엄마 곁에 붙어 있는데
기름때 묻은 사기 등잔과 숭숭 구멍이 난 창호지, 흙 쏟아지는 벽,
쥐들이 내달리다 아무 데나 오줌을 싸 축 처진 안방 천장,
잡풀 돋는 헛간 지붕, 갑자기 그 모든 것들이 용용 죽겠지
약 올리듯 눈을 꿈쩍이며 선생님 나 여기 있다고 소리를
질러대는 것 같으니 얼굴만 화끈거릴 뿐입니다.

시를 읽는 내내 떠오르는 것이 있습니다.
누추하기 이를 데 없는 우리를 찾아오시는 주님입니다.
주님을 모시기에 우리는 자격이 없습니다.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할 때 언제라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자격 없음입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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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같은 나뭇잎은 없습니다

습관처럼 가을이 되면 꺼내 읽는 책이 있습니다.
오래된 버릇이어서 책도 낡았고 종이의 빛깔도 바랬으며,
곳곳에 밑줄이 그어진 손때 묻은 책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요.
책을 펴면 고향 집 햇살 따뜻한 툇마루에 걸터앉은 듯도 싶고,
조용한 수도원 고목 아래 퇴색한 나무 의자에 앉은 듯도 싶습니다.
책을 통해 만나게 되는 구절구절이 세월에 잘 익은
나직한 목소리로 다가옵니다. 라이너 마이너 릴케의
‘기도 시집’입니다.

책에는 읽을 때마다 새로워서 그때마다 그은 밑줄이 겹쳐 있는
구절들도 있습니다. “묻는 자는 당신에게 중요치 않습니다.
부드러운 눈길로 당신은 당신을 가슴에 품은 자를 바라봅니다.”
“내가 믿는 것은 말해진 적이 없는 모든 것입니다.”
그런 구절 중 하나가
“오 주여, 그들 하나하나에게 그들 자신의 죽음을 주십시오.
그가 사랑, 의미, 그리고 고난을 겪은 삶에서 가버리는 그러한 죽음을”입니다.
시인이 구하는 것은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품 같은 죽음이 아닙니다.
그가 사랑했고 의미를 느꼈으며 고난을 겪은 그 자리에서 떠나는
고유한 죽음을 달라고 구합니다.
그것은 곧 고유한 삶을 달라는 간절한 간구일 터이고요.

고운 모습으로 낙엽이 지지만 같은 나뭇잎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도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없는 고유한 삶이 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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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만남의 복

오래전 원주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에 올 때였습니다.
청량리역에 접어들 무렵 한 사람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짐을 챙기고 있는데
느긋하게 앉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가만 보니 낯이 익었습니다.
한참 생각하다 마침내 누구인지 떠올랐습니다.
고집쟁이 농사꾼의 세상 사는 이야기가 담긴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저자 전우익 선생이었습니다.
책 속에서 이목구비가 또렷한 사진을 여러 장 보았던 게
기억난 것입니다.
기차에서 내려 전 선생님이 내리길 기다렸습니다.
마침내 인사를 드렸고 점심까지 함께 먹게 됐습니다.
즐거운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그 날 들은 이야기 중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게 있습니다.
책을 읽고 언젠가는 꼭 뵙고 싶었노라 인사드렸을 때 들은 말입니다.

“만날 만한 사람은 만날 만할 때 만나기 마련이지요.”
꾸밈없는 백발의 노인, 허름하면서도 편안한 옷차림과 유독
눈길을 끌던 흰 고무신, 그리고 형형한 눈빛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세월에 잘 익은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씨앗처럼 남았습니다.
만날 만한 사람은 만날 만할 때 만나는 법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며 좋은 사람을 지나치는 일이 없도록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그만큼 소중한 일입니다.
모든 만남 속에 담긴 복을 고마움으로 누린다면
우리 삶은 신비한 기쁨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요.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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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들판 내다보며 여는 도토리처럼

‘도토리는 들판 내다보며 연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도토리가 들판을 내다보며 열다니, 도토리에 눈이 달렸나 싶습니다.
도토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과일나무는 해거리를 합니다.
한 해 많이 열리면 다음 해에는 적게 열리곤 하는 것이지요.
과욕을 부리면 오래 갈 수 없다는 것을 나무들은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도토리가 들판을 보고 열매를 맺는다는 말은
해거리를 설명하는 말이 아닙니다.
들판을 바라보다 들 농사가 흉년이 들면 식량에 보탬이 되라며
많이 열리고, 농사가 풍년이면 안심하며 적은 양의
도토리를 맺는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들판을 내다보며 열매 맺는 양을 달리한다는 도토리.
어디 그런 현상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그럴수록 이 이야기는 귀하게 여겨집니다.
그건 필시 도토리를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겠다 싶기 때문입니다.
열매를 맺는 나무조차 이웃의 형편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귀하고 소중하게 와 닿습니다.
때마다 먹을 것을 주시는 하늘의 은혜를 도토리를 통해 생각하게 되니
그 또한 귀합니다.
이것이 모자라면 저것으로 채우시는 하늘의 손길을 도토리를
통해 보게 하시니 우리 삶은 온통 하늘의 은총으로 가득합니다.
다가오는 추수감사절엔 그런 마음이 담겼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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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꼬리를 무는 사랑

오래전 농촌에서 목회할 때의 일이었습니다.
미국에 있는 몇몇 교회가 설교자로 초청해 다녀올 일이 생겼습니다.
아내도 함께 초청해 주셔서 고마웠습니다.
외진 농촌 마을에서 묵묵히 내조의 길을 걸어온 아내에게
선물과 같은 시간이 될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아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힘겹게 일하며 사는 마을의 젊은 여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줄 것 같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아내의 마음에 공감해 혼자서 다녀왔지요.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연히 그 이야기를 듣게 된 분이 60만원을 보내왔습니다.
건강상태가 기적적으로 호전된 분입니다.
이분이 담배를 끊은 뒤 모은 1년 치 담뱃값을 보내온 것입니다.
“사모님, 마을의 젊은 여성들과 시원한 바람이라도 쐬고
왔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메모도 남겼죠.

하루 날을 잡았고 몇몇 남편들의 도움으로 이른 아침 여주로 나가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탔습니다.
시어머니들도 기꺼이 시간을 허락했습니다.
영화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도 마셨습니다.
가슴속에 담아둔 이야기도 나누고, 식구들 수대로 옷도 샀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녁도 먹었습니다.
그 날 만큼은 새벽에 담뱃잎 수확하러 밭에 나가야 하는 걱정까지
내려놓은 채 모처럼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것 중 하나는 분명 사랑이었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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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앞 달구지와 뒤 달구지

‘앞 달구지 넘어진 데서 뒤 달구지 넘어지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앞서가던 달구지가 넘어지면 뒤에 따라가던 달구지는
자연스럽게 조심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선 달구지가 넘어진 곳에서 또 넘어지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이죠.
앞서간다는 것은 그런 것입니다.
넘어지는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뒤따라간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제자들을 파송하기 전 먼 길을 걸어 고향을 찾은
예수님은 고향 사람들에게 배척당합니다.
예수님이 배척당할 것을 모르셨을까요. 어쩌면 예수님은 세상으로
나아가야 할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보아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배
척을 당한다. 복음 전한다고 사람들이 손뼉을 치고 존경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라.”
예수님은 스스로 배척당하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사람들의 배척에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몸소 보여주신 것이죠.
앞서 보여주신 예수님의 모습이 소중하게 여겨집니다.

우리도 다음세대에게는 앞 달구지가 돼야 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보며 뒤 달구지는 무엇인가를 배울 것입니다.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의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앞 달구지였으면 좋겠습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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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실천

강원도의 외딴 마을인 단강에서 첫 목회를 시작할 때
마을 할아버지께 들은 말이 있습니다.
한문에 조예가 깊은 어른이었습니다.
그는 신앙인들이 자신이 믿는 것을 실천하며 살았으면 좋겠다면서
실천(實踐)이란 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열매 실’(實)은 ‘갓머리’와 ‘어미 모’(母)와
‘조개 패’(貝)가 합해진 글자입니다.
갓머리에는 하늘이라는 뜻이 있고 조개는 과거 화폐로 쓰였습니다.
한자에 ‘조개 패’가 들어가면 보통 재물과 관련이 있습니다.
‘열매 실’은 하늘이 주신 보물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쌀 한 톨도, 콩 한 알도, 우리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두 하늘이 주신 보물입니다.

‘밟을 천’(踐)은 ‘발 족’(足)에 ‘창 과’(戈) 두 개로 구성됐습니다.
창날 위를 맨발로 걸어간다는 뜻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실천은 하나님이 주신 보물을, 창날 위를 맨발로 걸어가듯
지킨다는 뜻이 됩니다.
창날 위를 맨발로 걸어가며 함부로 행동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금방 발이 베이고 말 테니까요.
실천이란 삶을 걸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가짐으로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 7:21)는 말씀을 새롭게 마음에 새깁니다.

출처 : 한희철 목사(정릉감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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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마음의 그레발

우리말인데도 낯설게 여겨지는 말 중의 하나가 ‘그레발’입니다.
그레발은 집 지을 나무를 다듬는 일과 관련 있는 단어입니다.
보와 도리, 서까래 등 집 지을 때 사용할 나무를 다듬기 위해서는
마름질을 해야 합니다.
마름질은 나무를 치수에 맞춰 베거나 자르는 것을 말합니다.
길이에 맞춰 자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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