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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구입]<예동-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326쪽 14600원 https://c11.kr/yw55 
 
<책 소개>


우리 삶의 가장 좋은 본보기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견적인 분이시라면, 예수님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직접 사시는 것을 보여 주신 가견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예수님과 똑같이 따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예수님처럼’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사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동행’입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섬기고,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예수님처럼 고난받고, 예수님처럼 포기하고, 예수님처럼 밥 먹고, 예수님처럼 싸고, 예수님처럼 자고.... 그리고 예수님처럼 죽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재벌 2세’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가난하게 된 나를 구원하여 부요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가난한 예수님처럼 살 수 없지만, 가난한 나는 가난한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형상과 성정을 가지고 살다가 죽임당하신 다음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기록입니다. 구름 속에 계시던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난 1년 동안 신약성경을 읽으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묵상하고 실천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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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이야기가 세상을 구원한다


이야기는 세상을 구원하는 방편으로 하나님이 주신 일반 은총 가운데 가장 훌륭한 도구이다. 종교개혁 당시에 로마가톨릭교회는 잃어버린 백성과 땅을 지키고 되찾기 위하여 이미지를 무기화하였다. 이름하여 바로크미술이다. 미술은 앞세대인 르네상스보다 더 화려하여졌고 성당은 더 웅장하게 건축하였다. 주제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기교를 부렸다. 사람들은 전보다 더 화려해진 성당과 성당에 걸린 그림들을 보면서 로마가톨릭교회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았다. 그에 비하여 종교개혁자들이 선택한 무기는 문자였다. 루터가 95개의 질문지를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붙이는 순간 그의 생각은 유럽 전역에 활자화되어 퍼졌다. 루터가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 법외 인간이 된 후 바르트부르크에 피신하여 있는 동안 독일말로 성경을 번역하고 이것은 현대 독일어의 모태가 되었다. 루터뿐만 아니라 칼뱅도 탁월한 문장가였다. 그의 <기독교강요>는 종교개혁 지도자의 필독서였으며 종교개혁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다. 이 과정에 인쇄기술이 일조하였다.

작가 최용우는 이야기꾼이다. 그는 문서운동가이다. 그 한길을 오롯이 걷고 있다. 이야기를 생산하는 그의 능력은 신기하고 부럽다. 그의 재능과 용기와 끈기가 놀랍다. 무엇보다 그의 글은 맑다. 잔재주를 부리지 않고 기교가 없다. 그의 글은 따뜻하다. 한옥의 구들처럼 온기가 스며있다. 그의 글은 쉽고 재미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로 전에 경험한 적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백신도 접종도 해야 하고 치료제도 개발해야 하지만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희망을 잇는 의지이다. 그것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예수 이야기야말로 모든 이야기의 백미이다.
구원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이야기를 하면 희망이 생긴다. 팬데믹의 이 따분한 시대에 최용우가 풀어낸 이야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희망을 마주하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믿는다.
-하늘교회  최광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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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민순서>

1장 예수와 함께
2장 예수와 제자들
3장 예수의 생애
4장 예수의 작별인사
5장 예수와 십자가
6장 예수와 사도신경


<저자소개>

최용우는 1964년 전남 장성에서 태어났고 기독신학교(현,백석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고려수도원에서 영성수련을 했습니다. 지지고 볶는 우리의 일상이 최고의 선방이요, 수도원이라 여기며, 하루하루 수도하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일상에서 길어 올린 삶의 이야기, 영혼과 진리의 깨달음, 영계에 관한 비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순수, 순혈 복음을 전하는 글을 써서 열심히 책으로 펴내고 있습니다.
○월간<들꽃편지>발행인○일간<햇볕같은이야기http://cyw.pe.kr>발행인
○2021년 현재 햇볕같은이야기 시리이즈 22권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 포함 55권의 책을 펴냄 (모든 책은 교보문고에서 구입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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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미리보기>


1.예수님과 동행하기

저는 어디서든 한 말씀 할 기회가 있을 때, 첫 시작을 항상 똑같이 합니다. “여러분의 얼굴을 보니 예수님을 만난 것처럼 반갑습니다.” 각 지역에 따라 사투리를 써서 약간씩 다르게 합니다.
애수님을 만난 것 맹키로 반갑습니데이. 진짜가?
어메 머시냐 거시기 예순님을 만나분거같이 반가워불고만요.
아따~ 예수님을 만난 것 같이 반가워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최종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신앙하는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마치 아버지와 아들이, 엄마와 딸이 닮는 것처럼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꼭 닮아서 마치 예수님을 만난 것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동행>이라는 유명한 소설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옵니다.
눈 내리는 추운 겨울밤이었습니다. 나병환자가 교회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목사는 귀찮은 생각이 들었지만 마지못해 그의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주고 집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는 춥다며 하룻밤 자고 갈 수 있겠냐고 했습니다. “할 수 없지요. 누추하기는 하지만 그럼, 여기 침대에서 하룻밤 주무시고 가시지요.”
침대를 나병 환자에게 양보하고 맨바닥에 누웠는데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예수님이 기쁘게 웃고 계셨습니다.
“나의 종아! 나는 네가 사랑하는 예수란다. 네가 나를 이렇게 극진히 대접했으니 하늘에 상이 클 것이다.” 눈을 떠 보니 아침이었습니다. 침대의 환자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아! 예수님이셨군요. 예수님이 부족한 저를 이렇게 찾아 주셨군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올해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부지중에 예수님을 대접하고 하늘의 상을 받고 싶습니다. (6548)


2.예수님과 함께걷기

에녹은 ‘삼백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창5:22) 잠시 걸은 것이 아니라 300년을 꾸준히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다가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이 구절에서 ‘동행’은 ‘walk’입니다. 뛰거나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면서 끝까지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올라가고 내려오는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더러는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려 올라가기도 하고 합석하여 먹을 것을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친해졌어도 거기서 헤어지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일행은 끝까지 함께 정상을 밟고 하산을 하고 집에까지 함께 옵니다. 그것이 바로 ‘동행’입니다.
신앙생활이란 하나님을 위해(for) 무엇인가를 하기 전에, 하나님과 함께 동행(with)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면전에서 나는 어떠한 존재가 되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 (암3:3)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하나님과 나의 뜻이 같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번 뜻을 맞추었으면, 그때부터는 죽으나 사나 함께 가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은 ‘결혼’과 같다고 합니다.
아내가 상담 공부를 할 때, 아내와 저의 성격유형을 가지고 비교를 했는데, 교수님이 “절대로 만나면 안 되는 최악의 인간관계 유형입니다. 안 맞아도 이렇게 안 맞을 수가 없어요.”라고 했는데, ‘하나님만 바라보는 뜻’이 서로 같으니까 살아지더라구요. 지금까지 27년을 함께 ‘동행’하면서도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습니다.
동행이란 좋으면 함께 가고 싫으면 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좋아도 싫어도 딱 붙어서 죽을 때까지 함께 가는 것입니다. (6549)


3.예수님과 식사하기

구약성경은 하나님께서 세상과 사람을 창조하시고 타락한 인간이 범죄함으로 하나님과 멀어져버린 기록입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사람들을 상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년 1년 동안 구약성경을 읽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 묵상하고 글을 썼습니다.
신약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의 형상과 성정을 가지고 살다가 죽임당하신 다음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기록입니다. 구름 속에 계시던 하나님이 인간의 모습으로 직접 세상에 내려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올해 1년 동안 신약성경을 읽으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해서 묵상하고 글을 쓰려고 합니다.
우리 삶의 가장 좋은 본보기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성령님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불가견적인 분이시라면, 예수님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직접 사시는 것을 보여 주신 가견적인 분이시기 때문에, 인간은 예수님과 똑같이 따라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분야에 ‘예수님처럼’이라는 단어를 붙이면서 사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동행’입니다.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예수님처럼 사랑하고, 예수님처럼 섬기고, 예수님처럼 용서하고, 예수님처럼 고난받고, 예수님처럼 포기하고, 예수님처럼 밥 먹고, 예수님처럼 싸고, 예수님처럼 자고.... 그리고 예수님처럼 죽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재벌 2세’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가난하게 된 나를 구원하여 부요하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부자들은 가난한 예수님처럼 살 수 없지만, 가난한 나는 가난한 예수님을 따라 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아, 나의 예수님이 지금 주방에서 식사 준비를 마치고 저를 부르시네요.^^ (6550)


4.기독교 나무

기독교라는 나무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고 웅장합니다. 아브라함 이전을 신화시대, 이후를 역사시대로 구분하기 때문에 역사의 시작은 아브라함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아브라함과...(마1:1)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라는 기둥으로부터 유대교와 이슬람교라는 커다란 두 가지로 갈라졌습니다.
유대교에서 예수님을 믿는 나사렛파가 갈라져 나와 기독교가 됩니다. 기독교는 1054년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가톨릭)으로 갈라지고, 1517년에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자라납니다. 개신교에서는 루터교, 성공회, 장로교, 침례교, 구세군, 성결교회라는 잔가지가 자라났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나온 다른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기둥에서도 기독교 가지보다 더 많은 무수한 잔가지들이 나왔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미국인 선교사들이 1884년에 처음 기독교를 전파했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그런데 조금 안타깝고 아쉬운 것은 복음을 가지고 온 선교사들이 기독교 나무의 기둥에 해당하는 주류 교단이 아니라 나뭇가지에 불과한 근본주의 성향의 군소교단 선교사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국에서 조차 근본주의가 다 사라지고 없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더욱 번성(?)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합니다.
근본주의는 어마어마한 기독교 나무에 바람 불면 떨어져버릴 것 같은 작은 나뭇가지에 불과한 것을 마치 ‘기독교의 전부’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 기독교 신앙이 이 모양인 것일까요? 우리나라 기독교의 처음 출발이 그랬으니 어쩔 수 없죠.
다행인 것은 지금은 다양한 나라에서 다양한 경로로 다양한 신학사조를 공부하는 젊은 신학생들이 많이 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을 거는 것이죠. (6551)


5.기독교와 유대교

기독교(基督敎)의 ‘기독’은 중국에서 ‘그리스도’를 한문으로 ‘기리사독(基利斯督)’으로 쓰는데 두 자로 줄여서 ‘기독’이라고 한 것입니다. 즉, 중국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중국 사람이 아니고 한국 사람이기에 항상 ‘그리스도교’라고 씁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종교 중에 ‘예수’를 믿는 종교를 ‘그리스도교’라고 합니다.
유대교에는 사두개파, 바리새파, 에세네파, 젤롯파, 나사렛파 등이 있었는데, 그중에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고 따르던 나사렛파가 사도 바울의 전도로 세력이 커지면서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기독교(그리스도교)는 예수님을 믿는 가톨릭, 동방정교, 개신교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천주교를 제외하고 개신교를 가리켜 기독교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유대인’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역사적 인물’로 여깁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중심으로 지지자와 동조자를 구성하여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로 보이게 할 목적으로 기적과 같은 사기극을 펼치다 권세 있는 자들에 의해 눈 밖에 나서 재판에 넘겨졌지만 로마 총독 빌라도가 죄가 아니라고 인정하였음에도 십자가 처형된 사람.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신격화가 이루어져 하느님, 그리스도(메시아, 구세주)로 유일신이 된 사람’ -<유대인의 눈으로 본 예수>中
하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할 구세주로 이 세상에 보낸 예수를 유대인들이 그렇게 외면해 버림으로 그 구원의 잔이 ‘이방인’들에게 넘어 와버린 것입니다. 그 덕분에 지금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6552)


6.기독교와 가톨릭

기독교는 원래 유대교의 한 분파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베드로와 요한이 때를 따라 성전으로 기도하러 가면서 미문에 앉은 앉은뱅이를 고쳐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 베드로와 요한은 유대교 전통을 따라 성전에 갔습니다.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님이 오신 이후지만 이때는 교회가 세워지기 전의 ‘유대교 나사렛파’였습니다.
사도행전 기록을 보면 바울과 성령을 받은 교인들의 열정적인 전도로 서서히 믿는 자들이 늘어나 자연스럽게 유대교에서 떨어져 나와 하나의 독립 세력이 되어 ‘기독교’가 형성됩니다.
초기 기독교는 지중해 연안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탄압을 받아 많은 순교자가 나옵니다. 그 순교자의 피 위에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1세가 어머니 헬레나의 종교를 따라 기독교로 개종하면서 기독교를 인정하는 ‘밀라노칙령’을 발표하였고, 이후 38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 때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되면서 급속도로 발전합니다.
이후 약 500년 동안 기독교는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안티오키아, 예루살렘, 알렉산드리아의 5개 연합체 중심의 르네상스 시대가 됩니다. 그러다 1064년에 연합체가 이슬람과 전쟁으로 약해진 틈을 타 신생로마제국의 지원을 받던 로마교구가 떨어져 나와 독립하면서 서방교회(가톨릭)이 되었는데 이를 ‘교회대분열’이라고 합니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11세기 서로를 파문하고 적이 되었습니다. 현재 북유럽과 러시아 지역에 남아있는 정교회가 ‘동방교회’이고, 로마의 바티칸을 중심으로 남아있는 가톨릭이 ‘서방교회’입니다. 가톨릭은 이후 약 400년 동안 국가 형태로 발전하면서 막강한 부(富)와 권력을 축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썩어 문드러지면서 새로운 교회 분열을 초래하게 됩니다. (6553)


7.기독교와 프로테스탄트

가톨릭(서방교회)은 약 400년 동안 국가 형태로 발전하면서 막강한 부(富)와 권력을 축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로마 가톨릭은 썩어 문드러지게 됩니다. ①창부정치(娼婦政治 특정 여자들이 맘대로 교황을 죽이거나 갈아치움) ②꼭두각시 교황(메디치가문과 타 가문간의 싸움에 교황은 아무 힘이 없었다) ③교황과 성직자(신부, 수녀)들의 비리와 성적 타락 만연 ④민족, 인종 차별과 차별적 세금부과 ⑤연옥에 대한 교황권 주장(예수 안 믿고 죽은 조상도 돈만 내면 교황이 구원을 받게 해준다는) ⑥대형성당 건설을 위한 면죄부 판매
이러한 가톨릭의 타락에 대해 존 위클리프, 얀 후스, 윌리엄 틴들, 사보나롤라, 웨셀 간스포트과 같은 선구자들이 피를 토하는 ‘교회개혁’을 외쳤으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들은 성경을 원문으로 해석하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을 강조함으로써 복음의 기록, 성경의 권위를 교회의 모든 제도인 교황과 교회직제, 교회전통보다 더 높은 권위에 둔다는 주장을 펼쳤습니다.
그러다가 개혁가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1517년 10월 31일 ‘95개조 반박문’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은 이미 100년 전부터 시작된 ‘개혁운동’에 마지막 정점을 찍은 것이지 ‘시작’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날을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분열자들’이라는 뜻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ism 개신교)의 출발로 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개혁’을 외치며 떨어져 나온 ‘프로테스탄트’는 500년이 흐르면서 가톨릭이 저지른 위에 적은 여섯가지 대표적인 타락을 지금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또다시 기독교 안에서 수 많은 개혁자들이 피를 토하며 ‘교회 개혁’을 외치고 있는 소리가 안 들리십니까?
제2의 루터가 언제 등장할지는 하나님만이 아시겠지요. (6554)


8.기독교와 근본주의

로마가톨릭과 분리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ism)는, ‘새롭게 고친 교회’라고 해서 개신교(改新敎)라고 하지만, 가톨릭에서는 ‘떨어져나간 자들, 분리자들’이라는 의미로 사용합니다.
개신교, 개혁교회는 ‘분리자들’이라는 별명답게 거의 세포분열 수준으로 분리에 분리를 거듭합니다. 16세기 루터는 ‘루터교’, 칼빈은 ‘개혁교회’, 성공회, 재세례파, 17세기 개혁교회에서 ‘장로교’가 나왔고, 침례교, 회중교회, 18세기 청교도, 경견주의, 19세기 감리교, 재림파, 20세기 성결교, 오순절교..... 휴~ =3
19-20세기에 수많은 교파로 난립한 개신교는 미국에서 일어난 초교파적 대각성부흥운동을 바탕으로 각 교파가 연합하여 세계 각국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우리나라에도 기독교가 전해집니다.
19세기에 들어 사회의 계몽주의, 경건주의,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아 성경을 인간의 이성, 감정, 경험으로 이해하고, 도덕적, 역사적, 문화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는 ‘자유주의신학운동’이 일어납니다. 또한 교파 간 대화와 일치를 하자는 ‘에큐메니컬운동’이 일어납니다.
이에 대항하여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릴 수 없다는 ‘성서무오설’을 주장하며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기독교근본주의’가 등장합니다. 미국 남부지역에서 발전한 근본주의자들은 국수주의, 반공주의 등과 결합하여 기독교 우파라는 이름으로 정치세력화됩니다.
뭔가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함이 느껴지지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에 복음을 들고 온 초기 선교사들이 하필이면 ‘근본주의 교파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근본주의신학은 우리나라에서 21세기에 찬란하게 꽃을 피워 오늘날 까지도 광화문광장에서 태극기를 휘날리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6555)


9.기독교와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기독교 인구 950만명 중 ‘장로교’교인 숫자가 약 550만명이나 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아브라함->유대교->가톨릭->개신교->장로교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할 수 있죠.
장로교는 크게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로 나눕니다. 칼빈이 스위스에서 개혁을 외치며 시작된 ‘개혁교회’는 도르트신조와 벨직신앙고백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하며, 주로 네델란드에서 발전했습니다. ‘장로교회’는 스코틀랜드의 존 낙스(John Knox)에 의해 확립되었고 선거에 의해 선출된 장로가 목사를 보필하는 ‘장로제’에서 그 이름을 따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개혁교회와 장로교를 합쳐서 통상 ‘장로교’라 합니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의 60% 정도가 장로교회입니다.
전 세계 개신교 교인 수는 약 8억명 정도인데, 오순절교회, 성공회, 침례교회, 루터교회, 감리교회, 개혁교회 순서로 교인들이 많습니다. 전 세계 개혁교회 교인 수는 약 5500만명이고 그 중에 장로교인 수는 약 1천만명입니다. 그런데 한국 장로교인이 550만명, 미국 장로교인이 180만명 그밖에 나라 250만명입니다. 그러니까 ‘장로교’는 전 세계에서 유독 한국에 많이 있다고 보면 되고 그래서 한국 기독교는 장로교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현재 장로교 교단 중에 ‘합동’이 190만명, ‘통합’이 160만명인데, 가장 큰 ‘합동’교단이 미국 근본주의신학 전통을 따르고 있어서 보수, 수구적입니다. 한국 기독교에 ‘불통’ 이미지를 선물한 교단이죠.
한국에서 가장 교인 수가 많은 교단은 ‘가나안 교단’으로 교인이 200에서 300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가나안을 뒤집어 읽으면 ‘안 나가’ 그렇습니다. 기독교인이면서 교회에 ‘안 나가’는 교인수가 그렇게 많다고 합니다. (6556)


10.예수 그리스도

아브라함 종교 중에 기독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인지 설명할 수 있습니까? 언젠가 전도를 하는데 “2천년 전에 십자가에 달려서 죽었다고 하는 그 예수라는 사람이 지금 나랑 무슨 상관입니까? 그 사람이 죽었든 말든 지금 나랑 무슨 상관이냔 말이요? 내가 죽어달라고 한 것도 아니고........”
과연 그렇습니다. 길거리에서 뜬금없이 다가와서 “당신은 죄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당신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그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 사함을 받고 천국에 갑니다. 안 그러면 당신은 지옥에 갑니다.” 라고 전도한다고 해서,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저도 과거에 그렇게 미친 듯이 노방전도를 하고 다녔습니다. 100만장 넘는 전도지를 뿌렸지요. 어디선가는 그 전도지를 보고 예수님을 믿게 된 사람도 분명히 있을거에요. 하지만 어느 순간 전도는 굉장히 정교하고 전략적으로 해야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노방전도를 그만두고 신학공부를 시작했었습니다.
우리가 전하고자 하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논리적으로 납득시키려면 예수님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합니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확실한 증거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믿으라고만 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입니까? 어떻게 무조건 믿어요. 기독교는 무조건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전하는 이가 ‘복음’에 납득되고 설득되어져야 비로소 다른 사람도 설득할 수 있겠죠?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지금부터 성경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증명하고자 합니다. (6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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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9 알려드립니다 [신간] 겨울 묵상 -이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12-27 161
848 알려드립니다 새벽기도 동지 5명을 모집합니다. [6] 최용우 2021-12-27 203
847 발행인의쪽지 동지(冬至) -동지설날입니다 최용우 2021-12-22 219
846 알려드립니다 [신간] 들꽃편지 제2권 쑥부쟁이호 -가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11-30 246
845 발행인의쪽지 소설(小雪)-첫눈이 내리는 날 최용우 2021-11-21 313
» 알려드립니다 [신간] 예동-예수님과 동행하는 삶(햇볕22) 이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11-05 472
843 발행인의쪽지 상강(霜降)-서리가 내리기 시작하네! 최용우 2021-10-25 589
842 알려드립니다 내영혼을 위한 따뜻한 밥상6-저녁밥2 이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10-16 677
841 발행인의쪽지 추분(秋分)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 최용우 2021-09-23 848
840 알려드립니다 일출봉에 햇볕이 쨍하오 -아홉번째 시집 이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09-17 944
839 발행인의쪽지 처서(處暑) -기도하기 참 좋은 때 최용우 2021-08-23 1030
838 발행인의쪽지 대서(大暑) -큰 더위의 날입니다. 최용우 2021-07-23 1382
837 알려드립니다 일상의 행복 -이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07-08 1523
836 발행인의쪽지 하지(夏至)-낮이 가장 긴 날입니다 최용우 2021-06-25 1610
835 발행인의쪽지 소만(小滿)-보리가 익어가네! 최용우 2021-05-21 1687
834 알려드립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산행-이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05-10 1716
833 발행인의쪽지 곡우(穀雨)-곡식들이 비를 좋아합니다 최용우 2021-04-20 1929
832 알려드립니다 내영혼을 위한 따뜻한 밥상2-아침밥2 이 나왔습니다. 최용우 2021-04-14 1943
831 발행인의쪽지 춘분(春分)-봄의 시작입니다. 최용우 2021-03-20 2025
830 알려드립니다 바보일기-재미있고 행복한(최용우 일기12) 최용우 2021-02-26 2005
829 발행인의쪽지 우수(雨水) -대동강 물도 풀리네 최용우 2021-02-18 2000
828 알려드립니다 우리 커피한잔 할까요? (최용우 시집7) [1] 최용우 2021-01-21 2004
827 발행인의쪽지 소한(小寒) -정초한파가 몰려오네 file 최용우 2021-01-05 2034
826 알려드립니다 하동-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최용우칼럼21) file 최용우 2020-12-31 2043
825 발행인의쪽지 대설(大雪) -다 덮어주네 file 최용우 2020-12-07 2045
824 발행인의쪽지 입동(立冬)-겨울의 문턱을 넘으며 file 최용우 2020-11-07 2008
823 알려드립니다 여기저기 정신없는 구글광고에 저도 정신이 없습니다. [1] 최용우 2020-11-02 2014
822 발행인의쪽지 한로(寒露)-찬이슬이 맺혔다 file 최용우 2020-10-09 2008
821 발행인의쪽지 백로(白露) -풀잎에 이슬 맺히고 file 최용우 2020-09-07 2047
820 발행인의쪽지 입추(立秋) -불현 듯 다가온 file 최용우 2020-08-07 2077
819 발행인의쪽지 소서(小暑)-풀반 곡식반! file 최용우 2020-07-07 20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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