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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조선일보] 비밀이 사는 아파트 - 허용호

신춘문예 허용호............... 조회 수 46 추천 수 0 2019.03.15 23: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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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작] 비밀이 사는 아파트 / 허용호


 비밀이 사는 아파트 / 허용호

 

  비밀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마음속 어딘가 꼭꼭 숨겨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비밀이 마음속에만 갇혀 있는 것은 아니다. 비밀이 모여 사는 곳이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가 그런 곳이다.

  나는 203동 1008호에 산다. 물론 나도 누군가의 비밀이다. 그가 비밀을 마음속에 숨겼을 때, 이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마음속에 갇힌 비밀들은 대부분 이 아파트로 모여든다. 비밀들이 갇힌 마음속 방에는 이 아파트와 연결되는 통로가 있다. 비밀들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 통로를 통해 주인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게 되는데, 주인이 잊어버리거나 죽었을 때는 공급받지 못한다. 깊은 잠 속에 빠져 버린다. 누군가 깨워주지 않으면 영원히 잠을 잔다. 1000년 넘게 잠들어 있는 비밀도 있다. 너무 오래된 비밀의 방은 입구조차 녹슬어 누구도 출입할 수 없게 된다. 무덤이나 다름없다. 세월이 흐른 후 어쩌다 밝혀지는 비밀이 있다. 역사학자나 고고학자들이 오래 잠자는 비밀을 밝혀낸다. 주인도 잃고, 오래 잠을 잔 탓에 힘이 없지만, 사람들은 흥미롭게 여긴다. 어떤 비밀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경우도 있다. 잠자는 비밀에게 최고의 보람이다.

  비밀들은 대부분 어두운 곳을 좋아한다. 그래서 거의 모든 방이 검은 커튼으로 가려져 있다. 그런데 나는 밝은 것이 좋다. 내 방은 커튼이 없다. 비밀치고 특이한 편이다. 1007호에는 '아줌마 비밀'이 사는데 너무 지저분하다. 쓰레기를 복도에 버려두고, 짐은 또 얼마나 많은지 비상구 계단까지 널브러져 있다. 그의 방 앞을 지날 때마다 냄새가 난다. 비밀이 다른 비밀들에게 해를 끼치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지만, 안 좋은 습관은 어쩔 수 없이 해를 주게 되는 것 같다. 아줌마 비밀의 주인은 아마 게을러터진 사람일 것이다. 위층 1108호에는 어떤 '남자 비밀'이 산다. 층간 소음이 너무 심하다. 밤이고 낮이고 쿵쿵거린다. 비밀인 주제에 혼자 춤이라도 추는 것일까? 아래층에 사는 비밀은 안중에도 없다.

  비밀들도 등급이 있다. 1급 비밀들은 대부분 지하층에 산다. 지하층은 커튼을 치지 않아도 컴컴하고, 칙칙해서 좋아하는 것 같다. 그 비밀들은 검은 모습을 하고 있는데 주인이 여러 명인 경우도 있다. 대부분 나쁜 일을 하고 숨기는 사람들의 것이다. 그 비밀들과는 가까이하지 않는 것이 좋다. 위층으로 갈수록 등급이 낮은 비밀들이 산다. 그 비밀들은 색깔이 다양하다. 하얀색도 있고 회색도 있고 노란색도 있고 분홍색도 있다. 대부분 착한 비밀들이다. 노란색 비밀은 귀엽다. 분홍색 비밀 중에도 예쁜 비밀이 있다.

  비밀들은 외롭다. 그러나 서로 어울리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아는 체하지 않는다. 먼저 인사를 건네면 무안당하기 일쑤다. 예외는 있다. 1504호에 사는 비밀은 별명이 '엉덩이 비밀'이다. 노란색이다. 주인 이름은 영호이며 초등학교 5학년이다. 자기 엉덩이에 사마귀가 있는 것을 마음속에 숨기는 바람에 이 아파트로 오게 됐다. 엉덩이 비밀의 방에 놀러 왔다. 초인종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주머니 비밀' 형."

  엉덩이 비밀이 반갑게 인사했다. 내 별명은 주머니 비밀이다.

  "잘 지내니? 엉덩이 비밀."

  엉덩이 비밀의 방은 지저분하다. 주인이 초등학생이니까 그렇겠지. 아이답게 장난감이 널려 있고, 벽도 노란색이다. 내 방처럼 커튼이 없다.

  "네 주인이랑 이야기는 잘돼 가니?"

  엉덩이 비밀은 이 아파트를 떠나고 싶어 한다. 엉덩이 비밀과 나는 떠나는 방법을 의논하는 중이다. 비밀이, 비밀이 아니게 되면 아파트를 떠나야 한다.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다. 자유다. 아래층에 사는 비밀들은 영원히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하지만, 위층일수록 떠나고 싶어 한다.

  "네. 그런데 아직은 나가지 못할 것 같아요. 여자 친구가 절대로 비밀을 알게 할 수 없다는데요."

  엉덩이 비밀이 살짝 웃으며 말했다.

  "흠, 여자 친구가 생긴 모양이구나. 엉덩이에 있는 사마귀를 여자 친구가 알게 하고 싶겠니?"

  고개를 살짝 흔들며 안됐다는 표정을 지어줬다.

  "그래도 나가고 싶어요. 여긴 정말 답답해요."

  엉덩이 비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우리는 서로 머리를 맞댔다.

  "목욕탕에 가면 다 보게 될 텐데, 숨겨서 뭐 할 거냐고 할까요?"

  "흠, 그래도 여자 친구에게 숨기고 싶어 하면 넌 나갈 수 없어. 소중한 사람에게 비밀이 아니어야 하거든."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하지 않은 비밀은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여자 친구의 비밀 하나를 알아내 서로 교환하면 어떨까?"

  이 아파트 어딘가에 여자 친구의 비밀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 좋은 생각이에요."

  엉덩이 비밀이 내 말에 맞장구를 쳤다. 문제는 영호 여자 친구의 비밀을 어떻게 찾느냐다. 일일이 방을 뒤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아파트 단지를 다 뒤지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른다. 그렇다고 관리사무소에 방송해 달라고 할 수는 없다. 공개적으로 비밀을 찾는 건 비밀을 모욕하는 일이다. 비밀은 비밀을 지키지 않는 것을 제일 부끄럽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니 엉덩이 비밀과 나는 특별한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서로의 비밀을 교환했으니 말이다.

  "비밀 중에서 찾을 게 아니라 영호를 설득하면 돼요. 서로 좋아하면 비밀이 없어야 하잖아요. 그렇지 않으면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하는 거죠. 그럼 아마 비밀을 알려주고 싶어 안달할걸요."

  엉덩이 비밀은 참 똑똑한 비밀이다. 주인이 똑똑해서 그렇겠지.

  "그나저나 주머니 비밀 형은 안 나갈 거예요?"

  내 주인은 화영이다. 스물세 살 된 청년인데 교통사고로 장애인이 됐다. 척추를 다쳐서 가슴 아래로는 아무 느낌이 없다. 바늘로 찔러도 모른다.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좋은 일인지 모른다. 고통은 힘든 것이니까. 그러나 움직일 수가 없다. 땅을 딛고 설 수 없을 뿐 아니라, 어떤 느낌도 없으니 가슴 위쪽이 공중에 떠 있는 것 같다. 공중에 떠 있으면 날고 있는 느낌일까? 그러나 항상 날고 있다면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새가 땅에 내려앉지 못하면 좋을까? 땅에 내려앉을 수 있으니 나는 것도 좋은 거다.

  화영이의 비밀은 가슴 아래를 느끼지 못해 생겨났다. 느끼지 못하니 오줌 누는 것도 모른다. 그래서 소변 주머니를 항상 달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너무 불편해서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니 익숙해지긴 했지만 비밀이 돼버렸다. 다른 사람이 아는 게 싫었다. 부끄럽게 느껴졌다. 화영이는 그 비밀을 마음속에 꼭꼭 숨겼다. 그래서 내가 이 아파트로 오게 된 거다.

  "몸이 불편한 건 부끄러운 게 아니에요." 엉덩이 비밀이 힘줘 말했다.

  "그러게. 그렇지만 화영이는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

  "형은 화영이가 왜 부끄러워하는 것 같아요?"

  엉덩이 비밀이 물었다.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기 때문이 아닐까?"

  "만약 이가 하나 빠졌다면요? 그래도 이상한 건가요? 몸은 자동차처럼 고장도 나고 그러잖아요."

  소변 주머니를 차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자기와 다른 것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다. 심지어 따돌리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사람들이 알게 해야 해요. 자주 보게 되면 흔한 일이 되잖아요."

  "흔한 일이 된다는 건 화영이처럼 다치는 사람이 많아진다는 거잖아?"

  엉덩이 비밀이 머리를 살짝 긁었다. "그럼 흔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자기와 다른 것을 받아들이게 해야 해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화영이의 마음을 바꾸는 게 좋지 않을까?

  우리는 헤어졌다. 각자 자기 주인을 만나고 나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화영이를 만났다. 화영이는 내가 비밀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를 부끄러워한다. 그러나 나는 이 아파트를 떠나고 싶다.

  “화영아. 너는 장애인이 된 것이 부끄러운 거니?”

  내가 넌지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걷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아 싫어.”

  화영이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화영아. 네 몸은 자동차 같은 거야.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말이야. 자동차는 고장도 나고, 언젠가는 폐차장으로 보내야 하는 거야. 좋은 차를 타면 좋겠지만 고장 난 차를 탄다고 부끄러운 것은 아니야.”

  화영이 눈이 동그랗게 빛났다.

  “그렇긴 하지만 불편해. 그리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화영아. 네가 자동차를 타고 여행한다고 생각해 봐. 고장 난 차로는 빨리 가지 못하잖아. 그래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거야. 여행이란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나 쳐다보는 것 신경 쓰지 말고, 자세히 보고 더 많이 느끼라는 거지? 그게 여행의 목적이라는 거지?”

  화영이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여행은 그렇게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보는 거야.”

  엉덩이 비밀이 내 방으로 왔다.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고 했다. 영호와 이야기가 잘된 모양이다. 영호는 여자 친구에게 비밀을 교환하자고 했을 것이다.

  “영호 여자 친구 비밀은 뭐라니?”

  “영호 엉덩이에 사마귀가 있는 것을 아는 게 비밀이래요. 영호 엄마가 가르쳐 줬는데 비밀이라고 했거든요.”

  엉덩이 비밀이 똑똑한 이유는 주인이 세 명이나 있어서인 모양이다.

  나도 이제 이 아파트를 떠나야 한다.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신난다.


  <당선소감> 아직 어설픈…당선된 건 기적이죠


  오전 명상 중에 핸드폰이 울렸습니다. 화면에 서울 지역번호가 찍혔습니다. 광고겠지, 무시해 버렸습니다.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오전에 전화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오후에 다시 서울 전화가 울렸습니다. 조선일보사랍니다. 신춘문예 당선 소식이었습니다. 사진을 촬영해야 하니 서울로 오라는데, 순간 망설여졌습니다. 바퀴 의자(휠체어)를 타는 나로서는 장거리를 움직이는 게 부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안 갈 수 없었습니다.

  나의 글쓰기는 일상의 기록입니다.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나를 돌아봅니다. 교만하지 않은지, 나로 인해 누가 아프지는 않은지, 잘못된 길을 가는 건 아닌지 글로 옮기면 나와의 약속이 돼 버립니다. 동화는 이런 글쓰기의 연장입니다.

  어떤 일을 하다보면 점점 깊이 들어가고 싶고, 더 잘하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동화창작 수업을 듣게 됐습니다. 동화 선생님이 매주 한 편씩 숙제를 내줍니다. 수업에 맞춰 동화 한 편을 쓰는 일은 원고 마감 날짜를 맞춰야 하는 연재 작가의 심정일 겁니다. 애써 기일에 맞춰 작품을 완성하면, 힘겨운 등반 끝에 정상에 서는 기분이 듭니다.

아직 어설픕니다. 채워야 할 그릇이 반도 차지 않았습니다.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입니다. 실력이라기보다는 좋은 사람들이, 좋은 환경이, 좋은 운이 받쳐 준 결과입니다.
  ● 1967년 경남 함양 출생.

  ● 부산대 조소과 중퇴.

  ● 부산디지털대 미술치료학과 재학.


  <심사평>흥미로운 발상으로 읽는 즐거움 더했다


  최근 몇 년 새 국내 창작 동화 출간 종수가 절벽처럼 줄었다는데, 신춘문예 열기는 여전히 뜨거웠다. 때 지난 미담이나 회고담이 많은 가운데 인공지능·로봇·지진 등 시의성 있는 소재를 다룬 응모작도 눈에 띄었다. 다만 가장 기본적인 요건인 재미와 감동을 충족시키기엔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최종 5편을 두고 논의했다. 백유연씨의 ‘뻥튀기 꽃’은 풍요롭고 아름다운 작품이었지만, 다홍빛 치자씨를 튀겼다고 했다가 하얀 꽃이 튀겨져 팝콘처럼 됐다고 진술하면서 혼란을 야기한 점이 아쉬웠다. 차효현씨의 ‘내 친구 고병수’는 화자의 캐릭터가 개성적이었으나 오히려 중심인물이 너무 평이했다. 남미영씨의 ‘모르면 억울한 냄새 가게’는 잘 짜이고 매끈하게 다듬어진 작품이지만 마법의 공간을 가게로 설정한 것이 이미 흔한 기법인 데다 주인공의 내적 갈등과 성장 과정이 부족했다. 송옥선씨의 ‘솔가리 한 동’은 비루먹은 말이 위대한 전설의 주인공이 되는 과정이 실감 났고 캐릭터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큰 스케일의 역사적 제재를 짧은 단편에 담기엔 다소 부족했다.

  허용호씨의 ‘비밀이 사는 아파트’를 당선작으로 올린다. 비밀의 속성을 흥미로운 발상으로 이끌어내 읽는 즐거움을 줬다. 사소하고 심각한 비밀의 대비와 어울림이 자연스러워 교훈이 결말에 노출되는 단점이 있음에도 유쾌한 분위기와 진지한 주제를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 부디 큰 작가로 성장하기를 빈다. 아울러 아쉽게 떨어진 미래의 작가들에게도 아낌없는 격려를 보낸다.

심사위원 : 신형건, 임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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