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글모든게시글모음 인기글(7일간 조회수높은순서)
m-5.jpg
현재접속자

어여 어서 올라오세요

대청마루(자유게시판)

동네 사람들의 정담이 오고가는 대청마루입니다. 무슨 글이든 좋아요.

[정동에서]책에 대한 예우와 모독

뉴스언론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 조회 수 490 추천 수 0 2014.11.08 22:58:07
.........

정동에서]책에 대한 예우와 모독

 

[경향신문  l 입력 2014.11.05 20:48 |

 

책, 그대의 계절인 가을이 끝자락을 향해 줄달음질치고 있네. ‘독서의 달’(9월)과 ‘책의 날’(10월11일)이 지났으니 그대의 계절이 저문다는 아쉬움이 크겠구려. 지난달 파주출판도시에서 ‘2014 파주북소리 축제’가 열흘간 치러졌고, 8~9일에는 서울광장에서 ‘북 페스티벌’이 열린다지? 지방자치단체의 ‘책 축제’도 이달 말까지 줄지어 열린다더군. ‘책의 죽음’이 운위되는 때에 ‘책을 위한 향연’이 펼쳐지는 것을 마뜩잖게 여길 필요는 없겠지.

 

한데 마냥 달갑지만은 않구려. 책, 그대가 전국 16개 지자체가 돈벌이와 관광객 유치를 위해 연간 2400여개, 하루 7개꼴로 열고 있는 ‘수박’ ‘고추’ ‘포도’ ‘빙어’ 등의 이름을 단 지역축제의 또 다른 대상이 된 것 같은 ‘개운찮은 뒷맛’ 때문일세. 할인 판매가 주목적인 1회성 책 잔치를 열어놓고 ‘책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고 자위하는 것도 꼴사나운 일이지.

 

이달 21일부터 시행되는 새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잡음도 끊이지 않네. 새 도서정가제를 규정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시행령 개정안의 핵심은 신간이든 구간이든 15% 이상 싸게 팔 수 없도록 하는 것일세. 지금까지는 신간만 19% 이상 싸게 판매할 수 없도록 했지. 통상 출간된 지 18개월 미만이면 신간, 18개월이 지나면 구간으로 분류하네. 정부는 개정안이 시행되면 과도한 할인 경쟁이 사라져 동네 서점과 출판계의 고사(枯死)를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네.

 

하지만 새 도서정가제가 책 값을 올리고,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배만 불리는 결과를 낳아 ‘제2의 단통법’이 될 것이라는 우려의 시각도 있지. 또 대형서점과 온라인 서점들은 카드사·통신사와의 제휴할인이나 경품 제공, 무료배송 등과 같은 편법 또는 우회할인을 통해 ‘15% 이내 할인율’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네. 출판계는 이를 규제하는 조항을 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정부는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네. 책의 가치를 돈으로만 계량(計量)하려는 것 자체가 그대에 대한 배신 또는 모독 아닌가?

 

인류의 지적 성장은 책, 그대와 함께 이뤄졌다는 데 토를 다는 이는 없을 듯하네. 그대를 갖기 위한 인류의 노력은 눈물겨웠지. 기원전 3000년쯤 나일강 유역에서 자라던 파피루스는 고대에 만들어진 필사본의 주요 소재였네. 파피루스가 이집트를 거쳐 그리스와 로마로 건너갔을 때 필사본을 만드는 작업은 노예들의 몫이었지. 필사본은 권력자와 귀족, 엘리트 계층의 전유물이었네. ‘지식의 독점시대’였던 셈이지. 필사본은 양피지로도 만들어졌네. 성서 한 권을 쓰려면 양 660마리, 100쪽짜리 필사본을 만들려면 양 10마리가 필요했다는 기록도 있네. 6~8세기 유럽에서는 수도원마다 필사전용실인 ‘스크립토리움’을 갖추고 있었지. 그곳에서 수도사들은 양피지에 글을 새겨넣고는 말미에 ‘겸허한 신앙심으로 책을 완성했다’고 적었다고 하네.

 

15세기 중반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활판인쇄술은 책, 그대를 대량생산하면서 ‘지식의 대중화시대’를 열었지. 르네상스시대 인문주의의 부흥을 이끈 것도,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을 가능케 한 것도 그대일세. 지식의 혁명과 사상의 전파를 주도한 그대에 대한 헌사(獻辭)가 쏟아질만도 하지. 고대 로마의 정치가 키케로는 “책이 없는 방은 영혼이 없는 육체와도 같다”고 했네. 움베르토 에코는 <장미의 이름> 서문에 “세상 도처에서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나은 곳은 없다”고 적었지. 소설가 이태준은 “책을 ‘冊’으로 쓰고 싶다. 그 얼마나 책답고 아름다운가”라고 했네.

 

그대에 대한 탄압의 역사도 존재하지. 가톨릭 교회는 루소의 <에밀>을 악서(惡書)로 낙인찍었고, 파리의 고등재판소는 소각처분 판결을 내렸네. 유생들의 정치훈수를 혐오했던 중국 진시황은 ‘분서갱유’를 저지르기도 했지. 국내에서는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우상과 이성>, 조성오의 <철학에세이>, 김지하의 <황토>, 황석영이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등을 금서(禁書)로 묶어 젊은이들을 ‘청맹과니’로 만들려 하지 않았던가.

 

인류가 책, 그대에게 진 빚은 가늠하기 어렵네. 그럼에도 전자책과 스마 트폰이 목청껏 외치는 ‘종이는 가라!’는 구호에 밀려 그대는 홀대받고, 외면당하고 있지. ‘책의 죽음’이란 말이 제3자에 의한 선고가 아닌, 당사자의 유언처럼 들리는 시대이기도 하네.

 

하지만 서러워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게나. 아직도 그대와의 익애(溺愛)를 즐기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그대를 배신하거나 모독하는 이들에겐 “책, 함부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지적자양분을 준 적이 있느냐”고 따끔하게 얘기해주게나.

<박구재 기획·문화에디터>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2034 걷는독서 [걷는 독서] 과거에 불가능하던 것들이 가능해진 시대 file 박노해 2023-07-25 11
12033 걷는독서 [걷는 독서] 진정한 나를 알기 file 박노해 2023-07-25 12
12032 걷는독서 [걷는 독서] 무엇을 이뤘는가 file 박노해 2023-07-25 7
12031 묵상나눔 위선 file Navi Choi 2023-07-25 10
12030 묵상나눔 광야에 가고 싶다 file Navi Choi 2023-07-25 12
12029 가족글방 섶-정녕 망국과 배교의 길을 가려는가? file Navi Choi 2023-07-25 8
12028 묵상나눔 종말상황 file Navi Choi 2023-07-23 20
12027 걷는독서 [걷는 독서] 답을 찾지 못한다면 file 박노해 2023-07-22 17
12026 묵상나눔 절망고문 file Navi Choi 2023-07-22 21
12025 걷는독서 [걷는 독서] 나는 덕분에 살려지고 있다 file 박노해 2023-07-21 14
12024 묵상나눔 진실을 버린 시대 file [1] Navi Choi 2023-07-21 32
12023 걷는독서 [걷는 독서] 나는 덕분에 살려지고 있다 file 박노해 2023-07-20 13
12022 묵상나눔 문에 서서 file Navi Choi 2023-07-20 22
12021 걷는독서 [걷는 독서] 슬픔과 절망의 날을 묵묵히 file 박노해 2023-07-19 16
12020 묵상나눔 청개구리 신앙 file Navi Choi 2023-07-19 31
12019 걷는독서 [걷는 독서] 인간의 질병의 핵심은 ‘염증’이다 file 박노해 2023-07-18 12
12018 가족글방 김홍한 목사 2023-07-18 21
12017 묵상나눔 예언자적 완료 file Navi Choi 2023-07-18 18
12016 걷는독서 [걷는 독서] 좋은 것은 대체로 file 박노해 2023-07-17 12
12015 묵상나눔 경제주의 file Navi Choi 2023-07-17 15
12014 걷는독서 [걷는 독서] 세계는 위험 가득한 곳이지만 file 박노해 2023-07-16 11
12013 가족글방 섶- 민족 화해의 불가능성 file Navi Choi 2023-07-16 14
12012 묵상나눔 희망 file Navi Choi 2023-07-16 13
12011 걷는독서 [걷는 독서] 거대한 적에 맞서는 만큼 file 박노해 2023-07-15 14
12010 묵상나눔 한 사람 file [1] Navi Choi 2023-07-15 30
12009 가족글방 물의 문명, 불의 문명 김홍한 목사 2023-07-15 22
12008 걷는독서 [걷는 독서] 떨림을 품고 있어야 file 박노해 2023-07-14 22
12007 묵상나눔 아무리 둘러보아도... file Navi Choi 2023-07-14 26
12006 걷는독서 [걷는 독서] 치유의 첫 걸음은 병이 들었음을 인정하는 것 file 박노해 2023-07-13 18
12005 묵상나눔 내 탓입니다 file [3] Navi Choi 2023-07-13 43
12004 걷는독서 [걷는 독서] 마음에 빛이 없으면 file 박노해 2023-07-12 25
12003 묵상나눔 배신 file Navi Choi 2023-07-12 13
12002 무엇이든 현실...싱가포르>마카오>홍콩>일본>타이완>한국 file 그래프로 2023-07-12 16
12001 뉴스언론 방사능 악몽 이제 시작, 일본 가지 마” 의사의 경고 file 김익중 2023-07-12 12
12000 걷는독서 [걷는 독서] 인내는 그저 참는 것이 아니다 file 박노해 2023-07-11 8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