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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신부의 휴거

무엇이든 묵상............... 조회 수 1580 추천 수 0 2011.10.13 12: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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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디도서 2:13)

 

휴거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이 경고 없이 공중에 오셔서 지상에 있는 교회를 데리고 가는 때를 말하는 것이다. 휴거가 일어난 후에는 하나님이 죄악된 세상에 그의 진노를 쏟아 놓으신다.

 

많은 목사님들이 휴거에 대한 무지함을 스스로 폭로하든지 아니면 휴거가 대환란전에 일어날 것인지를 확실하게 잘모른다고 선언한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 문제에 대해 자기들은 모른다고 자신들의 태도를 표명한다.

 

우리에게는 성경이 있고 이 문제에 대해서 철저히 상고하여 휴거에 대한 지식을 완전히 가질 수 있다. 나는 당신이 휴거를 믿는 견해가 당신의 목회를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믿는다.

 

맨처음, 우리는 예수님은 다시 오시라고 약속하신 것을 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1.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2. 내 아버지 집에 거 할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3.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하리라.”

     (요한복음 14:1-3)

 

주님은 다시 오셔서 제자들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영접할 것을 약속하시고 또 그가 계신 곳에 우리들도 가서 있게 될것을 약속하셨다.

 

바울은 고린도에 있는 성도들에게 기록하기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고전 15:51)라고 선언했다. 신약 성경에서 비밀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 자신에 관한 것과 그의 목적과 그리고 사람에 대한 계획을 점차적으로 계시함에 있어서 아직 나타내지 않은 것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바울은 골로세 성도들에게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골로세 1:27)라고 말했다.

 

구약 시대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계신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러한 깊은 뜻을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했다고 했다. (베드로전서 1:12)

 

고린도전서 15:51절의 말씀에서 이전에 계시되지 않았던 다른 진리를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이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우리가 다 홀연히 변화하리니”란 말씀은 헬라어 말에 'Metamorphosis'란 말인데 근본적으로 원형질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다. (예: 나방의 유충이 나비가 되는 것)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고전 15:53)

 

주님이 그의 교회를 데리러 오실 때에 모든 믿는 자들이 영화로운 몸으로 변화를 받을 것이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 제목에 대해서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울은 그곳에 한 2주 정도 머물면서 목회를 하였는데 그 짧은 기간 중에 그는 그들에게 많은 교리들을 가르쳤다. 그것들 중에 하나가 바로 교회가 '휴거'되는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다시올 왕국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하나님께서 각 교회의 시대마다 그들이 마지막 세대에 살고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나는 하나님께서 교회로 하여금 주님이 곧 오신다고 기대하면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교회에 대한 신령한 계획으로 믿는다. 예수님이 그의 다시 오심에 대해 말씀하시기를 “주인이 올때에 그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 24:46)

 

초대 교회는 예수님이 왕국을 즉시로 설립하실 것이라고 믿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기를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하니” (사도행전 1:6)

 

“주님의 왕국을 건설함이 몇일 남았읍니까?” 그들은 주님이 그의 왕국을 곧 설립하실 것을 기대했기 때문에 흥분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답하시기를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1:7-8)

 

초대교회 때에 예수님이 요한이 죽기 전에 다시 오실 것이라는 소문 돌고 있었다. 사도 요한이 감기가 걸리나 목아픈일이 생기면 온 교회가 흥분하곤 했다. 그래서 요한은 복음서를 쓸때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분명히 해명을 하여 기록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떻게 죽을 것을 말씀 하셨을 때 베드로는 전형적인 그의 태도로써 묻기를 "그러면 주님, 이 사람(요한)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요한복음 21:22)

 

요한은 예수님이 그렇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만일 내가 그렇게 한다 손치더라도” 라고 가상의 말씀을 하신 것이라는 요점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께서 요한이 죽기 전에 오시겠다는 잘못된 관렴을 교정했던 것이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주님이 곧 오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그들의 사랑하는 형제들이 죽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직 주님이 오시지 않았다. 그들은 사랑하는 형제들이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주님이 오셔서 영광의 왕국을 설립하실 때에 죽은 형제들이 참여하지 못할 것이라 믿었다.

 

데살로니가 4장에서 바울은 예수님 오시기 전에 죽으면 주님이 오셔서 설립한 영광의 왕국에 참여 못한다는 잘못된 관념을 교정해 주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하기를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데살로니가전서 4:13)

 

바울은 계속해서 말하기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살전 4:14-15)

 

바울도 아마 그가 살아서 주님 오실 때까지 남아있지 않을까? 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는 죽은 성도들보다 결코 앞서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말로 서로 위로하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어떤 사람들은 “나는 휴거를 믿지 않는다” 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성경에 휴거란 단어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데살로니가 4:17에 보면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끌어올려' (caughtup)란 한국어 번역인 헬라 원어는 'Harpazo'란 말인데, 그 뜻이 ‘ 강제로 취해 간다’ 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보통 군대에서 사람을 강제로 인질로 잡아가는 군대 용어인 것이다.

 

라틴말로 번역된 벌게이트 성경(Vulgate)에서는 'harpazo'를 ‘raptuse' 로써 번역되어 있다. 이 단어에서 영어의 'rapture' 가 파생한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셔서 그의 교회를 강제로 취해 가신다 라는 뜻이다.

 

이것이 첫번 사건이다. 둘째번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다. 그때에 주님이 그의 교회와 함께 오셔서 이 땅 위에 그의 왕국을 설립하실 것이다. 그래서 휴거와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재림은 구별된다.

 

우리에게 주신 말씀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계시록 1:7)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골로새 3:4)

 

예수님의 재림이 이 땅 위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 전에는 교회가 휴거되어 주님께로 공중에 끌어 올려가는 사건이 먼저 있겠다. 이 사건에 있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 4:17).

 

예수님이 교회를 위해서 오시는 것과 교회와 함께 오시는 것과는 분명히 다르다. 휴거 때는 교회를 위해서 오시지만 그의 재림 때는 교회와 함께 오신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유다서 1:14)

 

스가랴도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 기록하기를 “그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 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지라 너희가 그의 산골짜기로 도망하되 유다왕 웃시야 때에 지진을 피하여 도망하던 것같이 하리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하리라” (스가랴 1 4 :4-5)

 

휴거는 어떤 때에도 일어날 수 있다. 지금은 휴거가 일어나기 전에 성취되어야 할 아무 예언도 없다. 휴거가 당신이 이장을 다 읽기 전에 일어날 수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가?

 

예수님의 재림 전에 성취되어야 할 예언들이 있다. 그것은 먼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있을 것이요, 그리고 이 땅은 대환란과 심판을 통과해야 한다. 이 예언은 특히 예수님의 재림과 관련된 것이다.

 

예수님은 누가 복음에서 재림 전에 있을 표적들을 말하고 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 (누가복음 21:28)

 

지난해의 10월 마지막 할로윈(미국에서의 사탄의 날 , Trickor Treat )의 바로 전쯤 되었을 때, 나는 남가주에서 제일 큰 백화점을 지나갈 때에 산타클로스와 사슴과 그외 다른 크리스마스 장식을 진열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아직 10 월달이다. 나는 아내에게 말하기를 “저것을 보라 그들이 벌써 크리스마스의 장식을 하고 있군! 정말 그렇구만! 그러나 나는 감사절이 좋아!” 라고 나의 아내가 대답했다.

 

“저것들은 감사일 장식이 아니고 크리스마스 장식이 아닌가” 라고 말했을때 나의 아내는 말하기를 “나도 감사절이 크리스마스 전에 온다는 것을 알아요, 크리스마스의 장식같은 이치에서 우리가 예수 재림의 증표를 본다면 휴거는 그보다 더욱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그의 전에 있을 징조에 대해서 제자들이 질문했을 때에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 오리이까?” (마태복음 24:3).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성전을 거닐고 계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의 큰 돌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기를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마태복음 24:2)

 

그들이 감람산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님께 묻기를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3)

 

그래서 그들은 징조 중에 한가지만 물은 것이 아니고 성전 파괴의 징조에 대해서와 인간 정부의 마지막 징조, 그리고 하나님의 앞으로 설립될 왕국에 대해서 질문했던 것이다.

 

그들은 교회의 휴거에 대해서 물어보지도 않았고, 아마 교회의 휴거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전 파괴의 징조와 그의 다시 오심에 대한 징조를 말씀하셨다.

 

"그 때에 큰환난이 있겠음이라 창세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란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 (마태복음 24:21)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또한 경고 하시기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찐저” (마태복음 24:15)

 

너희가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예루살렘에서 나와 광야로 도망해야 할때 이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4:29-30)

 

예수님의 재림 전에 이루워져야 할 많은 예언들이 있다. 적그리스도의 출현과 대환란 동안에 큰 권세를 가진 사탄의 왕국이 먼저 설립되야 한다.

 

이러한 사건들이 예수님의 재림 전에 반드시 일어나야만 한다.

 

그러나 교회의 휴거 전에는 일어날 예언은 없.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우리는 깨어 준비하고 있으라는 경고를 받았다.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때에 인자가 오리라

주인이 올때에 그종의 이렇 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기 시작하셨. 각 비유의 요점은 언제 오실지 모르는 주님의 재림을 맞기 위해서 조심하고 준비하라는 것이다. 각 비유마다 지적한 중요한 목표는 예수님의 휴거가 곧 일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이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것이라는 점을 명시하고 있다.

 

열처녀의 비유에서 우리는 “다섯은 지혜롭고 다섯은 어리석은 처녀였다.”라는 것을 말씀에서 읽을 수 있다. (마태복음 25:2)

 

“저희가 사러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 그 후 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우리에게 열어주소서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날과 그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25:10-13)

 

이 말씀에서 강조점은 깨어 있어 예비하고 있으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언제 주님이 그의 종들을 위해서 오실런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24:42-44에서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나는 확실히 믿기를 교회는 대환란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믿는다. 누가복음 21장에서 대환란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36)

 

지금 예수님께서 나에게 무엇에 대해서 기도하라고 하시면 두말할 것 없이 나는 기도할 것이다. 나는 “주님, 이땅 위에 장차 다가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기를 원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대환란 때에 일어날 일들이다. 우리는 계시록 1:19에서 이 책이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음을 본다.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장에서는 요한에게 네가 본 것을 기록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는 일곱 금촛대 사이에 거닐고 계시는 그리스도를 보았고 또한 그의 오른손에 일곱별을 쥐고 계시는 것을 보고 기록하였 다.

 

요한은 영화롭게 된 상태에 계시는 예수의 영광에 대해서 기술하여 기록했다. 2장과 3장에서는 “이제 있는 일”에 대해서 기록하였는데 이것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교회에게 보내시는 예수님의 메세지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그때 당시에 실제로 있었던 일곱교회를 말한 것이라고 믿으며, 또한 교회 역사의 일곱 기간에 관해서 말한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그들이 오늘날 당신이 볼 수 있는 대표적인 교회들이라고도 믿는다. 오늘날 첫사랑을 떠난 교회들도 있다. 또한 니골라당의 교리를 붙들고 있는 교회들도 있다. 그리고 중국이나 수단 그리고 다른 여러 곳에서 서머나교회와 같이 핍박을 당하는 교회들도 있다. 또한 두아디라교회와 같이 성모마리아를 숭상하는 교리를 가진 교회들도 있다.

 

살았다 하나 죽은 신교를 묘사하는 사데교회와 같은 교회들도 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 하기를 하나님의 일곱영과 일곱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계시록 3:1)

 

빌라델비아 교회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거하는 교회도 있다고 믿는다. 이 교회는 큰 능력은 받지 못했으나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계시록 3:8)

 

우리가 비록 크지는 않고 땅을 진동할만한 능력이 없어도 예수의 이름을 배반치 않고 인내의 말씀을 지켰다는 주님의 칭찬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라오디게아교회와 같이 예수님을 문 밖에 세워두는 교회도 있다고 믿는다. 주님이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하시는 말씀이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시록 3:20)

 

나는 일곱교회에게 보낸 메세지의 내용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4:1절에서는 예수님께서 교회에 대한 메세지를 마치신 다음에 새로운 장을 헬라어로 ‘메타타오타’(metatauta)란 말로 시작하며 그뜻이 “이일 후에” 란 말이다.

 

이 말씀을 계시록 1:19절 에서도 반복하여 사용하였음을 볼 수 있다. “무슨 일 후에”란 뜻인가를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계시록 2장과 3장의 사건 이후에 라는 뜻인데, 계시록 2장과 3장의 사건은 교회의 일이다.

 

우리가 읽은 교회에 관한 일이 끝난 후에 라는 뜻이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될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계시록 4:1)

 

이 명령이 내린 후에 요한이 말하기를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 신 이가 있는데.” (계시록 4:2)

 

요한은 녹색 무지개가 보좌 위에 펼쳐져 있고 보좌 주위에 그룹 천사들이 경배하고 있는 장면을 묘사하였다. 그리고 요한은 24장로들이 작은 보좌에 앉아서 그룹 천사들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기질과 특성과 거룩하심을 선언하며 하늘에서 경배하는 것을 지켜보는 광경을 보았다.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자라 하고.” (계 시록 4:8)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선언할 때에

네 장로가 보좌에 앉으신 분앞에 엎드려 영원무궁토록 살아계시는 분에게 경배하며 그들의 금면류관을 그 보좌앞에 던지며 말씀 드리기를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 ” (계시록 4:11)

 

그때에 요한은 안팎으로 기록한 일곱인 봉으로 봉한 두루마리 책에 주의를 끌게 되었다. 또 천사가 큰 소리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계시록 5:2)

 

요한은 기록하기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 5:4)

 

나는 이 두루마리 책은 유대의 구속법에 따라 본다면 지구의 권리증서라고 믿는다. 유대인이 재산을 잃었거나 차압 되었을 때에 그 재산을 도로 찾기 위해서는 두루마리 책에 기록된 권리증서의 요구사항을 모두 이행해야 하는 기간이 설립되어 있다.

 

이러한 설명이 룻기에서 보아스가 나오미와 결혼하기 위해서 엘리멜렉의 밭을 구입하여 구속하는 사건에서 잘 설명 해주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우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인 신부를 얻기 위해서 값을 치루고 세상을 구속하는 것과 같은 것을 설명해주고 있음을 본다.

 

다시 하늘의 장면으로 돌아가서 요한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본다. 왜냐하면 만일 당신이 정한 기한 안에 그 재산을 구속하지 못하면 그것은 새로운 주인에게 영원히 빼았기고 마는 것이다.

 

당신에게 한번의 기회가 주워지고 그 기회를 놓친다면 그것은 영원히 다른 새 주인에게 속하게 되는 것이다. 요한이 울었던 이유는 이 세상이 정한 기간에 구속되지 아니하면 사탄의 권세와 지배 아래로 영원히 들어간다는 생각을 감당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한은 이 책을 펴거나 읽거나 또한 그것을 볼만한 사람이 아무도 보이지 않기에 요한이 심히 울었던 것이다. 그때에 그 장로 가운데 하나가 나에게 말하기를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계시록 5:5)

 

요한이 볼때에 유다지파의 사자가 아니라 죽임을 당한 듯한 한 어린 양이 서있었다. 이사야가 말하기를 “그는 주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 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2,5)

 

계시록 5장에서 기록한 것을 보면

“어린 양이 나아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시니라 책을 취하시매 네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어린 양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새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 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시록 5:7- 10)

 

노래의 내용을 조심스럽게 조사해 보면 교회만이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하늘에서 지구 소유권 문서를 받을 때에 우리도 하늘에서 보좌에 앉아계시는 하나님의 오른손에서 우리 주님이 두루마리책을 취하시는 광경을 보게 될 것이다.

 

"두루마리를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계시록 5:9)라고 찬양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경고하시기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36)라고 말씀하셨다.

 

이땅 위에서 대환란이 일어나고 있을때 나는 하늘에서 인자 앞에 서서 어린 양이 영광 받으시기에 합당하심을 노래하고 있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교회만이 이 구속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우리가 시간적인 순서를 따라본다면 5장에서 교회가 구속의 노래를 먼저 찬양하고 그 다음에 6장에서 두루마리의 인봉을 떼어 책을 여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이 땅 위에서 대환란이 일어나기 전에 하늘에서 교회의 찬양이 선행하는 것이다.

기록된 말씀을 읽어보면 새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하더라.” (계시록 5:9-10)

 

교회가 인자 앞에 서 있는 것을 본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대환란에 대해서 지적하여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음 21:36)

 

나는 하늘에 있는 무리들과 함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계시록 6장은 대환란을 묘사한 것으로 시작된다. 주님께서 두루마리 책의 인봉을 떼실 때마다 그에 따른 심판이 이 땅 위에 내리게 된다.

 

첫번째 인봉을 뗄때에 요한은 기록하기를 “내가 이에 보니 흰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계시록 6:2)

 

나는 이것은 다름 아닌 적그리스도의 출현이라고 믿는다. 어떤 사람은 흰말을 탄 자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믿는 자도 있다. 그러나 본문을 잘 검토해보면 그의 출현 후에 전쟁과 기근과 피흘림과 지구상의 인구 사분의 일이 죽는 일이 따른다.

 

이것은 주님의 재림에 따르는 하나님의 왕국과 주님의 영광스럽게 오시는 일 같지는 않다. 그럼으로 나는 이 사람은 적그리스도라고 믿는다.

 

나는 적그리스도의 능력과 세력이 오늘날 이땅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고 믿는다. 이 세상을 장악하는 것을 막고 있는 유일한 것은 교회의 존재인 것이다.

 

우리 교회가 받은 능력이 많지는 않고 적지만 흑암의 세력이 이 세상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하도록 하는데는 충분한 능력이 있다. 교회가 이 세상에서 완전히 옮기기 전에는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장악할 수 없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그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 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데살로니가후서 2:7-8)

 

이러한 사건이 계시록 6장에 있는 내용과 일치되는데 예수님이 두루마리 책을 취하실 때 교회는 이미 하늘나라에 있는 것이다.

 

예수님이 두루마리 책의 인봉을 하나씩 떼실 때마다 그에 따른 심판이 이땅 위에 내려지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 위에 쏟아지는 때이다.

 

바울은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 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로마서 5:9)

 

바울은 같은 말씀을 데살로니가전서 5 :9절에서 반복하고 있 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현재 세상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환란을 당할 것이라는 것은 진실한 것이다. 세상은 우리를 미워함으로 세상이 우리를 핍박한다고 해서 우리가 놀랄 것은 하나도 없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5:18)

 

그리고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16:33)

 

그래서 세상에서는 당신이 환난을 당할 것이다. 교회에 대해서 환난의 근원이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이 아니다. 사탄이 환란의 근원인 것이다. 사탄이 환란의 근원일 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환란의 근원이 될때는 이때는 이야기가 다르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이미 심판하셨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모두 감당하셨다. 소돔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길을 가고 있었던 천사들을 기억하는가?

 

그들은 가는 도중에 아브라함을 방문하였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려고 하는 일을 아브라함에게 말을 할까?” 그들은 말하기를 “왜 아니되나? ”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에게 말을 하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말하기를 소돔성의 죄가 하늘에 사묻쳐서 그 실상을 조사해보고 그 도성을 멸망시키려고 가는 도중이라고 했다. 아브라함은 그말을 듣고 "조금만 기다리시오 내 조카가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또 그들에게 묻기를 “당신이 의인과 악인을 함께 멸망시킬 수 있읍니까? 라고 질문했다.

 

만일 그 도성에 의인 오십명이 있다면 그 의인 오십명으로 인하여 그 성을 멸망시키지 않고 남겨 두겠습니까? 그럴때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소돔성 안에 의인이 오십명이 있다면 내가 그 의인 오십명 을 인하여 그 성을 멸망 시키지 않고 남겨 두리라’라고 하셨다.

 

아브라함은 다시 질문하기를 ‘ 만일 그 성 안에 의인 오십에서 다섯 사람이 적다면 멸망 시키겠습니까?’ 주님의 대답이 ‘내가 만일 사십 오인을 발견한다면 내가 멸망 시키지 않으리라.’

 

... 무슨 일이 났는가? 천사가 소돔성에 왔을때 그들은 그 성문 옆에 앉아 있는 의인 한 사람 곧 롯을 발견했다. 롯은 소돔 사람들이 어떠했음을 잘 알고 있었다.

 

베드로후서에 보면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 베드로후서 2:7)란 말씀이 있다. 롯은 이분들이 천사인줄 알지 못하 고 그들을 집안으로 초청하였다.

 

그날 밤 소돔성의 남자들이 롯의 집에 와서 대문을 두드리면서 하는 말이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세기 19:5)

 

그들은 문자 그대로 그들을 강간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롯은 대답하기를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말라.” (Genesis 19:7)라고 간청했다.

 

많은 무리들이 와서 대문을 계속 두드릴 때에 천사들이 롯을 잡아 댕겨 뒤로 돌리고 천사들이 그 무리들을 쳐서 장님이 되게 하였다. 그들은 밤새도록 그문을 찾으려고 계속 애를 썼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그 이튿날 아침에는 천사들이 실제로 롯을 소돔성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왜냐하면 천사들이 롯이 밖으로 나갈때까지는 그 성을 멸망시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롯은 구원받을 교회의 모형이다. 베드로는 우리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베드로후서2:7-9)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의인은 구하시고 불의한 자들은 심판날까지 지키신다. 기본적인 원리는 이땅의 주님은 의로우시다. 그분은 공정하시고 악인들이 의인을 파괴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에 의인을 심판에서 먼저 구하신다. 이전에 하나님이 이 세상이 악함으로 홍수로 심판하셨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창세기 6:5)

 

그러나 세상의 모든 불의한 자들 가운데 의로운 한사람 노아가 있었다. 하나님은 심판을 내리실 때에 노아를 보호하시고 그를 숨겨두었다.

 

마치 계시록 7장에서 144,000명의 성도들을 인치시고 대환란의 심판에서 해를 입지 않고 보호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노아를 인치시고 홍수의 심판에 안전하게 보전하여 구원하신 것과 같다.

 

노아는 인치심을 받고 대환란 때에 해를 입지 않고 구원함을 얻은 십사만사천의 모형이다. 같은 시대에 다른 한 의인인 에녹이 있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 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창세기 5:24) 에녹은 다른 곳으로 옮겨졌던지 아니면 휴거된 것이다.

 

나는 교회가 대환란에 들어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들은 어떤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말하면서 교회가 대환란에 들어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하나의 논쟁이 마지막 나팔이라는 말을 가지고 주장한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휴거에 대해서 말하기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고린도전서 15:51-52)

 

어떤 사람들은 계시록의 일곱나팔을 여기에다 결부시켜서 일곱째의 나팔이 마지막 나팔이라고 말한다. 휴거가 마지막 나팔을 불때까지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이 나팔을 대환란의 마지막 심판인 일곱나팔의 마지막 나팔로써 증명하려고 하는 견해이다.

 

나는 여기에서 한 두가지 문제가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일곱 나팔 심판은 일곱 천사들에게 그 나팔을 불게 하여 천사가 각각 나팔을 불때마다 동시에 심판이 이 땅 위에 임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 나팔을 누가 부는가를 조사를 해보면 그들은 모두 천사들인 것이다. 데살노니가 4:16절에 보면 바울이 휴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 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안에서 죽은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휴거의 나팔은 한 천사의 나팔이 아니고 하나님의 나팔인 것이다. 넷째 천사가 그의 나팔을 불 때에 큰소리로 말을 했다. “내가 또 보고 들으니 공중에 날아가는 독수리가 큰 소리로 이르되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화,화,화가 있으리로다 이 외에도 세천사의 불 나팔소리를 인함이로다 하더라” (계시록 8:13)

 

다섯째 천사가 나팔을 분 다음에도 소리가 있어 말하기를 “첫째 화는 지나갔으나 보라 아직도 이후에 화 둘이 이르리로다” (계시록 9:12)

 

땅 위에 있는 자들에게 화가 선언되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의 휴거는 화가 아니라 영광인 것이다. 다른 하나의 논쟁은 계시록 20장에서 요한이 하늘의 여러가지 무리를 본 것을 가지고 논쟁을 삼는다.

 

4절에서 시작하여 읽어보면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 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니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계시록 20:4-5)

 

그들이 지적하는 요점은 첫째 부활 때에 요한이 본 하늘의 장면에서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하니” 란 말씀을 가지고 교회가 대환란에 들어가며 순교를 한다고 믿는 자들이 주장하는 성경구절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다시 잘 읽어보면 4 절에서 우리는 보좌들을 볼 수 있는데 거기에 심판하는 권세를 받은 자들이 앉아있다. 이 보좌에는 이긴 자들이 앉아있는데 사데교회에게 주신 메세지에 이긴 자들에 대한 말씀을 읽어보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시록 3:21)

 

요한은 교회가 첫째 부활한 자들의 한 부분으로 본다. 그때에 요한은 대환란 기간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순교한 자들을 또한 본다. 이들은 7장에서 장로들이 말한 큰 무리이다. “장로 중에 하나가 응답하여 내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뇨 내가 가로되 내 주여 당신이 알리이다 하니 그가 나더러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7:13-14)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에 서 밤낮으로 계속하여 섬기고 있음을 주시하라.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요음 15:15)

 

이 둘째 무리들은 대환란 기간 동안에 순교를 당한 성도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도 왕국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교회는 이미 휴거했고, 대환란 기간 동안에 순교로 통해서 하늘나라에 가는 것보다 훨씬 좋다.

 

계시록에서 일곱째 천사가 소리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계시록 10:7)

 

천사가 소리내는 ‘ 날들’이 복수인 날들로 되어 있다. 휴거는 ‘눈깜짝할 사이’ 에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마지막 나팔을 계시록의 일곱째 나팔과 관련을 시킬 수 없다.

 

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은 나팔을 불때에 여러 날을 통해서 사건이 일어난다. 반대로 하나님의 나팔이 울릴 때는 우리가 순식간에 변화를 받게 될 날이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때에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란 말씀에서 “이 택하신 자들이 교회가 아닌가? ” 교회가 택하심을 받았다.

 

그러나 이스라엘도 또한 택하심을 받았다. 구약 성경의 몇군데 이스 라엘에 관하여 언급한 사실을 보면 같은 말씀을 선언하였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들을 다시 모으신다고 하셨다.

 

이사야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열방을 향하여 기호를 세우시고 이스라엘의 쫓긴 자를 모으시며 땅 사방에서 유다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시리니” (이사야11:12) 이스라엘이 다시금 모이게 될 것이다.

 

적그리스도가 성도들을 향하여 전쟁을 일으킨다는 성경 말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다니엘 7:21절에 “내가 본즉 이 뿔(적도)이 성도들로 더불어 싸워 이기었더니.

 

그리고 계시록 13:7에서도 보면또 권세를 받아(적그리스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여기서 성도들이 누구인가? 그들은 교회가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보면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적그리스도가 성도들과 전쟁을 일으켜서 이긴다고 하는 것을 보아 이것은 유대인 성도이며 교회가 아니다. 나는 교회가 이땅 위에서 권세를 받은 적그리스도를 볼 것으로 믿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적그리스도가 이 세상에서 뛰어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으로 이미 활약을 하고 있다면 그에 대해서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교회가 이땅 위에서 권세를 받아 활약하는 적그리스도를 보리라고는 믿지 않는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바울이 죄의 사람, 그리고 멸망의 자식에 대해서 선언하기를 “저로 하여금 저의 때에 나타나게 하려 하여 막는 것을 지금도 너희가 아나니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 어 그 중에서 옮길때까지 하리라, 그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 시 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데살노니가 2:6-8)

 

나는 교회가 이땅 위에 있는 동안 적그리스도가 이땅을 다스리는 권세를 받아 통치하리라 믿지 않는다. 나는 교회 안에 계시는 성령이 현재 이 세상을 완전히 장악하려는 흑암의 세력을 막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교회가 이 땅 위에서 떠난 후에는 이 세상을 완전히 통치하는 흑암의 세력을 막거나 방해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막는 자가 떠날 때까지는 막는 일을 계속할 것이나 막는 자가 떠난 후에는 죄의 사람, 불법의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나는 적그리스도를 보리라 믿지 않는다.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 오시기를 바라보기보다 적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또 하나의 사탄이 조작한 미묘한 속임수인 것이다.

 

사람들이 예언의 말씀을 혼돈하게 되는 이유가 그들이 말씀을 영적으로 풀어 이스라엘을 교회로 보는 것이다.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메시야를 거절했기 때문에 이스라엘과 끝을 내셨다”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시고 교회를 대치시켜서 교회를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 믿는다. 그들은 나라로써 이스라엘을 언급한 예언들을 취하여 모두 교회에 적응 시킨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해석을 한다면 모든 예언의 묘사가 혼돈상태에 빠지게 된다. 만일 해가 오늘 아침에 뜬다면 하나님이 이스라엘과의 맺은 언약도 계속 유지되는 것이다.

 

“아침마다 해가 뜨는 한 이스라엘과 맺은 나의 언약은 결코 변치 않는다.” 다니엘 9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직 7년이라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과 성취하실 일이 있기 때문에 그 기간 동안에는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금 직접 다루신다.

 

구약성경에서 휴거의 모형을 발견할 수 있다.

에녹이 홍수 의 심판 전에 옮겨진 교회의 모형이다. 느부갓네살왕이 거대한 자기의 신상을 세우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거기에 절하게 하였다.

 

나는 적그리스도가 성전 안에 지은 신상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경배하도록 요구하는 신상의 모형이라 믿는다. 느부갓네살왕이 나팔을 불 때에 큰 신상에 모든 사람들이 경배할 것을 요구했다.

 

그래서 나팔을 불 때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베느고를 제외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 신상에 절을 하였다. 갈데아 사람들이 느부갓네살 왕에게 “세 히브리 소년들이 나팔을 불때에 절하지 않고 서서만 있다. ”고 보고했다.

 

그래서 왕은 세히브리 소년들을 불러 말하기를 “내가 듣자 하니 너희들이 절을 하지 않았다고? 내가 한번 더 기회를 줄터인데 만일 너희들이 절을 하지 않으면 뜨거운 풀무풀에 들어 갈줄 알아라” 라고 했다.

 

그럴 때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 (다니엘 3:16-18)

 

나는 그러한 담대함을 좋아한다. 나는 그러한 자들의 기개를 꺾지 않는다. 느부갓네살왕은 성이 크게 나서 노발대발하여 명하기를 풀무불을 전보다 칠배나 더 뜨겁게 하여라 라고 명했다.

 

그 세 소년들을 풀무에 집어 던져 넣었는데 불이 너무 뜨거워 가까이 가서 넣은 자들이 불에 타죽었다. 그런데 갈데아 사람들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베느고를 묶었던 끈만 타버렸다.

 

느부갓네살왕이 묻기를 몇사람을 불에 넣었느냐? 라고 할 때에 대답하기를 “왕이여 세사람 입니다” 라고 대답했을 때 “그런데 어찌하여 내가 네사람을 보느냐? 그들은 풀무불 가운데서 걷고 있지 않는가. 넷째는 그 용모가 하나님의 아들과 같구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야 거기서 나오라.” 라고 말했다.

 

그들이 나왔을 때에 머리카락 하나도 타지가 않았다. 탄 냄새도 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들이 다놀랐다. 그때에 “느부갓네살이 말하기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

 

이러한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에 다니엘은 어디에 있었는가? 다니엘이 그 신상에게 절을 했다고 생각하는가? 만일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다니엘과 내가 생각하고 있는 다니엘과는 다르다.

 

다니엘 1장에서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왕의 진미를 먹어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결단한 사실을 기억해보라. 나는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마음에 뜻을 정한 사람이 우상 신에게 절하리라고 믿지 않는다.

 

다니엘이 아마 나라의 일을 위하여 왕의 명령을 받아 다른 지방에 가있었는지 모른다.

다니엘은 적그리스도가 대환란 중간에 우상신을 세우고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경배하게 할 때에 그곳에서 옮겨진 교회의 모형이다.

 

우리 곧 교회는 다른 곳에서 곧 하늘에서 하나님이 주신 일을 하고 있을 것이다. 환란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올때는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악인과 선인을 함께 심판하심은 의로운 일도 아니요 일률성이 없는 것이다. 베드로는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베드로후서2:5) 하나님께서 의인을 구원하시고 악인들을 홍수로써 심판하셨다.

 

그것이 바로 심판이다. 경건치 않는 세상을 향해 심판하신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베드로후서 2:6)

 

하나님은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시며” (베드로서 2:7-9)

 

이 말씀들은 하나님의 분명한 목적을 선언하고 있다. 나는 구약성경의 롯, 노아, 에녹, 그리고 다니엘과 같은 모형을 통해서 교회가 대환란에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이 진리임을 볼 수 있다.

 

성경은 평범하게 선언하기를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신 것이라” (데살로니가전 5:9)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피를 인하여 의롭다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로마서 5:9)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로마서 1:18)

 

그러나 이러한 말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에 대해서 묘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의 세대마다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믿기를 원하신다고 나는 믿는다.

 

이것을 믿을 때에 세가지 유익된 효과가 나타나는데 첫째는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일에 우리에게 긴박감을 준다. 이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음으로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가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는 것”이 필요하다. (히브리 12:1)

 

우리에게 주신 부르심의 일을 속히 행하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주님이 곧 오심으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일을 수행해야 한다는 급박감과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갖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물질에 대한 올바른 관렴을 갖게 하는 것이다. 물계가 모두 불에 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의 물질에 모든 것을 투자하고 있다. 그러나 투자한 모든것이 불타 없어지게 될것이다.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 (마태복음 6:20)

 

불의한 재물로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하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누가복음 16:9)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물질 축복을 주신다면 감사할 일이다. 그러나 그 물질을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사용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는 생각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에 대해서 올바른 균형의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는 물계는 속히 지나갈 것이며 영원한 것만이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우리는 단 한번의 생명의 삶을 살고 있고 이것도 곧 지나갈 것을 깨갛을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행한 일만이 영원히 남을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셋째 이유로써는 예수님께서 각 세대마다 그때가 마지막이라는 것을 믿도록 원하심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순결을 유지하기 위함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에 대한 적절한 관념을 갖게 하는 것이다. “주인이 올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마태복음 24:46)

 

내가 인터넷을 통하여 음화나 금지된 영화를 보고 있을때

주님이 오셔서 나의 그 모습을 발견하기를 원치 않는다.

 

상상해보라.

주님이 곧 오신다고 믿을 때에 우리 생활을 순결하게 보존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오늘 오실 수도 있는 것이다. “주인이 올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요한은 말하기를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한일서 3:2-3)

 

이것은 우리에게 순결케 하는 소망을 준다. 바로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임박함을 타협치 않고 그대로 믿는 중요한 이유인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하늘로 쫓아오셔서 나를 끌어올려 주님과 함께 있게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21:6) 이것이 나의 기도요 내가 그곳에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흥분되는 사실은 이러한 일이 언제든지 곧 일어날 것이다 .

각 세대마다 교회가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살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일이라고 나는 믿는다.

 

우리의 크신 하나님 그리고 구세주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는 소망이

온 교회에 하나님께서 부흥을 가져오게 하는 점화가 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이다.

주님이 곧 오신다.

우리는 아주 마지막 때에 살고 있다.

 

바울이 말한 것과 같이

“또한 너희가 이 시기 알거니와 자다가 깰때 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때 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로마서13:11)

 

비옵기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복된 소망을 우리가 계속 유지하도록 하시고

다음과 같은 일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주워지기를 기원하는 바입니다.

 

1). 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완전하고도

      온전한 생활을 해야겠다는 긴박감을 갖게하여 주옵소서.

 

2). 우리를 쉽게 얽메이게 하고 후퇴케하는 세상 물질에 대한

      올바른 관념을 갖게 하여 무엇이 우선권인지 알게하여 주옵시고

 

3). 그들이 깨끗한생활을 살도록 해주시고 그리고

 

4). 주님이 언제든지 곧 오신다는 것을 알고 주님을 섬김에 있어서

      그들의 마음과 생활이 깨끗하게 보존 되기를 기원합니다.

 

나는 주님이 오실 때에 그를 만날 수 있도록 주의하여 만날 준비를 하기 원한다.

나는 주님을 만나는 일에 방해되거나 후퇴케 하는 어떤 일도 하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주님을 만날 준비가 다 되어 있기를 원한다.

 

주님의 휴거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성도 자신들을 조심하게 하여 이러한 소망을 갖도록 하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이것이 없이는 오늘날 이 세상에서 우리들에게 무슨 소망이 있는가?

 

우리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날이 곧 온다는 진리에 초점을 갖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주님은 그의 백성들을 위해서 곧 오신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있기 위해서 우리를 취하려 오실 것이다. 마라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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