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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마루(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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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다시오시는 날은 결코 두려운 날이 아니다

무엇이든 묵상............... 조회 수 1376 추천 수 0 2011.09.18 15:54: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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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너희는 내가 호렙에서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내 종 모세에게 명령한 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라

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4:4~6)

 

휴거가 가까웠다고 말하는 것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이것이 진실한 성도들에게까지 두려움이 됩니까?

진실로 거듭난 성도가 휴거가 가까웠다는 말을 듣고 두려워 해야 합니까?

그런데 현실은 어떠합니까?

우리는 두려워 하고 있지 않나요?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살후 2:1-2)

 

그럼에도 우리는 동심합니다.

두려워 합니다.

왜 거듭난 성도들까지 휴거로 인해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 하는 것 입니까?

이는 성경 외 사람들의 증거를 좇는 까닭입니다.

 

그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성경을 해석하는 견해가 또 다 다른 까닭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결코 혼란스러우신 분이 아니십니다.

이때는 이렇게 저때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안에 거하라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한일서 2:27-28)라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어떻습니까?

이 말씀이 잘못된 것인가요?

무엇이 진리인지 몰라 갈팡질팡하는 사람이 잘못된 것인가요?

물어볼 필요도 없이 후자입니다.

 

만일, 달리 더 증거가 필요하다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미 주신 66권외 달리 성경을 더 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경 66권이 확정된 후 하나님은

우리에게 달리 더 성경을 추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것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여함을 제하여 버리시니라" (요한계시록 22:18-19)

 

누가복음 16장 후반부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입니다.

비유에서 부자가 간청합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이에 우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라하리라”

 

그렇습니다.

이집트에서 유월절을 경험하고,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증거가 부족해서 믿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에서 10가지 재앙을 고스란히 목도했습니다.

직접 홍해를 맨 땅처럼 건넜습니다.

매일 천사의 음식인 만나를 40년간 먹었습니다.

밤에는 불기둥, 낮에는 구름기둥이 이스라엘 회중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시내산에서는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스라엘 진 사면에 메추라기가 비처럼 떨어져

이빨 사이에 끼여 먹기가 싫은 정도로 고기맛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약속보다 눈에 보이는 현실을 더 믿고 하나님을 불신했습니다.

이로 인해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유다서 1:5)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었다 살아난 사람의 증언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미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른 무엇보다 이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은 이때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 때는 저렇게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직 기록된 말씀대로 성취하시고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주님은 이 말세의 때에 피할 길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그분의 거룩한 말씀 속에 이미 다 계시해 두셨습니다.

더 추가할 것이 없습니다.

이를 믿으십니까?

 

그런데 문제가 무엇인지요?

진실해 보이는 하나님의 종들 가운데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고 어떤 분은 저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마치 아합왕이 여호사밧 왕과 더불어 아람왕과 싸우러 가기 전에

북 이스라엘 선지자들에게 그 결과를 물을 때 상황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시드기야를 위시한 400인의 선지자는

길한 결과를 예측하며 참전할 것을 종용했습니다.

반면에 미가야 선지자는 홀로 아합왕의 죽을 것을 경고 했습니다.

그러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귀쌈을 후려 갈기며

“언제 여호와의 신이 내게서 나와 네게로 가더냐?”며 호통을 칩니다.

 

하지만 미가야는 위축되지 않고 말합니다.

“네가 골방에 숨는 날에 알게 될 것이다”

 

정말 난처합니다.

그냥 사이비로 보이는 사람들이 한 말이면 무시하겠는데

결코 그럴 수가 없습니다.

 

한국교회 안에는 분명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전하는 훌륭한 목사님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하시는 말씀들이 조금씩 다른 경우가 많습니다.

분명 한 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다를 수 있나?

정말 의문스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누가 하나님의 진실한 종인지,

그 열매로 판단해야만 할 것입니다.

 

첫째로, 그가 전하는 말씀에 대한 반응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거듭난 성도라도 말씀 가운데 그 죄가 드러난다면

거룩한 두려움을 느낄 것입니다.

 

찰스 스펄전이나 찰스 피니가 심판의 말씀을 전하면,

성인들이 기둥을 붙잡고 마치 금방이라도 열린 지옥 구덩이에

떨어질 것 같은 두려움으로 떨면서 회개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아님에도 어떤 종의 말이

거듭난 성도로 동심이 되거나 두려움을 갖게 한다면

그건 결코 옳은 것이 아닙니다.

 

신약의 모든 서신서에서 거듭난 성도들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을 전합니다.

(유다서 1:2, 요한계시록 1:3, 요한3서 1:2, 요한2서 1:2, 베드로후서 1:2....)

 

둘째, 그 종의 삶의 열매로써 평가해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 예루살렘에는 힐렐신학교와 샴마이 신학교가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숫자만 해도 2만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중 하나님의 참종은 세례요한 뿐이었습니다.

물론 안나와 시므온, 주님이 태어난 날 밤 목자들,

마리아의 남편 의로운 요셉 등

하나님이 숨겨놓은 바알에게 무릎꿇지 않은 7천의 용사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만,

어찌 되었든 편안한 십일조와 구중궁궐같은 제사장의 대저택,

100억을 호가하는 권위의 제사장복을 내 팽계치고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낙타털옷을 입고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았던 참 종은 세례요한 뿐 이었습니다.

 

예레미야 당시 수많은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예루살렘에 있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고 이스라엘을 그로 말미암아 용서할 의인이 예루살렘에 없었습니다.

 

엘리야 시대는 산당에서 여호와께 제사가 빈번히 드려지는 종교의 중흥기였습니다.

아합과 이세벨을 따라 수많은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있었습니다.

백성들은 모두 그들이 하나님의 참 종인줄 알았습니다.

오직 엘리야만 그들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귀와 영화를 누렸지만 엘리야는 까마귀가 물어다 주는 것으로 살았습니다.

과부에게 얹혀 지내기도 했습니다.

 

셋째로, 참 하나님의 종은 말씀을 혼잡스럽게 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의 서신서에서 반복되는 구절은

“.... 이미 들은 것을 기억하게”라는 구절입니다.

이 말은 참 종은 새롭고 신기한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반복해서 말하는 종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에 세상철학이나 세상적인 것들을 붙여 어렵게 말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알아 들을 수 있도록 쉽게 진리를 가르칩니다.

물론, 하나님의 종도 사람이고 성장해 가는 과정에 있으므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또 성장하는 과정에서 견해를 수정하기도 합니다.

그 경우 진실한 하나님의 사람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그를 바르게 수정하여 말에 모순이 없습니다.

 

언제 바울이 구원받은 성도가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한번이라도 말한 적이 있었습니까?

결코 그런 적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왜 이처럼 흔들리는 것 입니까?

내게 성경이 있고, 성령님이 계심에도

왜 이토록 동심하고 두려워 하는 것 입니까?

 

혹 거듭나지 못 한 것은 아니신지요?

이에 대해서도 오늘날에 큰 두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개혁주의자와 비 개혁주의자들이 그들입니다.

 

개혁주의자들은 거듭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계시로 말미암는 은혜라고 말합니다.

 

반면에 비 개혁주의자들은

이미 하나님이 말씀을 주신 것 자체가 계시이므로

달리 더 다른 계시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이제는 계시된 성경말씀을 인간의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의지적으로 믿으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는 자들 중에 구원파도 있습니다.

솔직히 비 개혁파의 주장과 구원파의 주장이 뭐가 다른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들을 향해 이단이라고 정죄합니다.

사실 이단은 끝에 가서 구원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는 그가 죽는 날 판가름 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무 자신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누이 말씀드렸지만 이것을 가지고 논쟁하면

죽을 때까지 끝이 나질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열매를 보면 판별이 가능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은 계시로 말미암는 은혜로 거듭났다,

어떤 사람이 이미 계시된 말씀을 자신의 자유의지를 발동해

의지로 믿어 거듭났다고 주장하더라도

그에게서 진정 거듭난 새 생명의 실상과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모든 주장은 허탄한 거짓말입니다.

 

대학시절 저는 UBF 모임에서 훈련 받았습니다.

정말 양심적으로 살고자 하시는 분들이셨습니다.

어떤 분은 명절에 거래처에서 보내온 사과상자가 뇌물이라 판단하여

이를 다시 되돌려 보낼 정도였습니다.

정말 순수하고, 열정적으로 주님을 사랑하셨던 분들이었습니다.

학생신분이었지만 성전을 건축한다고 하자,

받은 장학금을 내 놓고 그도 모자라 아르바이트를 해서 헌금을 드렸습니다.

지나친 구령의 열정으로 후배를 수양회에 데려가기 위해

수면제를 먹여 재운 다음 데려가기도 했었습니다.

 

중풍병자를 예수님께 데려가고자 하는

지붕을 뜯고 침상에 누워 내리는 열정은 좋지만,

그것이 반드시 그로 예수님을 만나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칫 인위적이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만나려면 어린 아이처럼 순수하든지,

그것이 아닌 경우에는 깊은 절망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감화, 감동하심의 역사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물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깊은 죄인된 자기인식과 절망, 회개 없이 드려지는

영접기도가 비판을 받는 것입니다.

 

하지만 누가 알겠습니까?

그 가운데 성령께서 역사하시면 십자가에 강도처럼 회개하고

구원에 이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자주 하는 말이지만

거듭난 사람은 예수님을 사죄의 권세자로 고백합니다.

더 나아가 하늘의 하나님이 나와 같은 육신 가운데 오신

한 하나님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듭난 사람은 자신이 범죄한 자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더 나아가 정말 죄악 중에 태어난 문둥이와 같은

근본 죄인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그리고 한 몸에 두 생명으로 인해 끊임없이 고통합니다.

이 고통이 점점 더 진실해지고, 간절해져

로마서 7장의 고백을 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제씨펜 루이스, 귀용 부인, 마틴루터, 사도바울, 당신 그리고 제가 아닌지요?

그래 “곧 오소서 임마누엘

오 구하소서. 이스라엘,

주님의 시간에 주의 뜻 이뤄지길 기다려” 하는 가운데

십자가의 도를 통과하여 안식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으며,

이는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생각됩니다만,

어찌 되었건간에 진정 거듭난 자는

점점 세상에서 멀어지고, 점점 주님께 가까이 삶이 변화되어 갑니다.

 

성경을 한 번 읽을 때, 두 번 읽을 때 깊이가 달라집니다.

당신에게 이런 증거가 있으신지요?

이론을 말하지 마십시오.

이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입니다.

원함으로 인함도 아니요, 달음질해서 말미암음도 아닙니다.

 

때문에 자랑할 수 없는 것이요,

거저 받았으니 은혜인 것입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것은

사모하는 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결코 주시기 전에 도적질 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휴거보다 중요하고 재림보다 중요한 것입니다.

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십니까?

그가 당신을 구원할 수 있나요?

이 문제 만큼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셔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신비체험이나 은사를 가지고 거듭남의 증거를 삼고자 합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가룟유다보다 많은 신비를 체험하셨나요?

그는 전도여행시 귀신을 좇아내고 병자를 고쳤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에서 동역했습니다.

38년된 병자를 고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현장,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사울을 뛰어 넘는 체험을 하셨나요?

그에게 성령이 임해 예언을 했습니다.

적군을 물리쳤습니다.

 

진실로 거듭났다면 새 생명 가운데 성장해 가셔야 합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면서

내면이 전혀 변화되어 가지 않는다면

그것이 더 나은 단계로 가는 성장과정일 수도 있지만,

아직 거듭나지 못한 것일 수 있습니다.

 

진실로 다시 한번 그리스도의 터 위에, 믿음 위에,

서 있는가를 한번 돌아보셔야 합니다.

 

이것은 수백번, 수만번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하는 것이 믿음이 없는 것이라고 비난하지만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믿음이 없어서 그런 권면을 했겠습니까?

이는 영생과 영벌을 결정하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쥐 덫을 놓고 실험을 했습니다.

과연 쥐가 몇 번이나 심사숙고한 후 먹이를 물까?

70번을 시험 후 물었다고 합니다.

생명과 관계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람에게 확인받고자 하지 마십시오.

성경으로 돌아가시고, 성령님께 직접 물어보십시오.

성령이 친히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 로마서 8:16

 

지금은 분명 말세입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해있는 때입니다.

그런데, 왜 거듭난 성도들 중 많은 이들이 

휴거와 재림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때 동심하거나 두려워 합니까?

거기서 탈락될까 싶어 그런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들은 또 극단적으로

전부 휴거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거듭난 성도들을 동심하거나 두렵게 하는 것도 잘못된 것이며,

전부 휴거된다고 하는 주장도 옳지 않습니다.  

 

아직 7년대환란은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또 7년대환란이 시작되더라도 진실로 거듭나 깨어 있는 성도는

주님이 대환란을 면하게 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람들의 말에 요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면 됩니다.

무엇보다 먼저 내가 진정 거듭난 자인가?

스스로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깨어 그날이 내게 덫과 같이 임하지 않도록

기도하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환란에 남겨질 수 있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대환란기의 성도들을 생각할 때 우리가 어떤 자세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지,

구원받는 것이 얼마나 사실은 어려운 일인지,

실로 제자들이 주님께 놀라며 물을 정도라는 사실을 한편 깨달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신실하십니다.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말세에 더욱 깨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으로 말씀을 마칩니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8: 3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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