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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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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망하면 그 자리에 핀다고 해서 망초꽃. 버려진 땅에 피는 꽃. 지옥에 피는 꽃. 북미가 원산지인 이 꽃은 중미에서도 흔한 꽃이다. 겨누는 권총도 없는데 하얗게 질려 한들거리는 망초꽃은 망자의 얼굴을 닮았기도 하였어라.
멕시코 ‘망자의 날(Day of the Dead)’은 해마다 11월 첫주에 지켜지는데, 그 요란한 해골축제가 눈앞에 펼쳐진다면 당신은 충격과 함께 환호성을 내지르게 될 것이다. 일년에 하루쯤 망자가 모조리 집으로 돌아와 함께 지내면서 기다란 생머리를 출렁거린다는 이야기. 검불처럼 고요한 이 길에서 며칠 상간 망자의 축제에 사로잡혀 지냈다. 선인장 가시가 싱싱하고 빼곡 차 있었는데 거기 기댔다가 나도 죽을 뻔 보았지. 망자가 된다 해도 돌아올 곳이 있으니 안심이지만 말이다.
하나 한국 땅이 아니라 멕시코라면 귀신이 어리둥절하겠구나. 조상 제사를 미신이라 하여 때려 엎고 세워진 서구적 세계관 십자가무덤 위엔 아뿔싸 세습 자본과 세습 권력, 제단이 아닌 ‘재단’이 숭배되고 있어라. 살아서도 불지옥인 숨막히는 경쟁과 낙오는 밑바닥 인생 또한 발바닥에 불이 나게 해. 지옥이 뭐 별게 없다. 세상사에 무관심한 사람들. ‘살았어도 이미 죽은 사람들.’ 의식 없고 생각 없는 무리들이 모여 살면 그게 지옥이다.
해골들이 살아 춤추고 망초꽃도 저리 커서 허리춤을 따라 춘다. 울동네 할매들이 구경했더라면 무서워 며칠 드러눕고 말았을 기다란 해골바가지 행렬. 분홍색으로 뺨을 붉힌 복숭아나무에 숨어 꽃상여를 오래 훔쳐보았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무릎정강이까지 올라온 꽃들은 바람을 타고 수취인불명의 주소로 날아올랐지. 홍시밭에 발그레한 보름달이 숨으면 한참을 찾아도 보이지 않듯 하얀 상여꽃이 망자의 날에 피고 지니 낯익은 풍경 같아라.
무엇이 출생이고 무엇이 죽음이런가. 세상사 관심을 가질 것, 정신을 온전히 차릴 것, 제 의지를 갖고 사는 일이 목숨의 시작이겠다. 조상님 망자들이 지금 눈 부릅뜨고 지켜보신다.
임의진 목사·시인 2016.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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