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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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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9 엑스트라의 아름다움
이현규 성도네 심방을 하던 날이었다. 심방을 마치고 정성껏 준비한 김밥을 먹은 뒤 특별한 시간을 누리게 되었다. 이현규 성도가 출연하는 오페라를 보게된 것이다. 사실 오페라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이었다.
내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극장으로 가기 전 '나비부인'에 관한 글을 잠깐 읽어보았다. 나비부인은 본래 롱이 쓴 소설을 극작가이자 연출가였던 벨라스코가 각색한 것으로, 연극을 보고 감동을 받은 푸치니가 작곡을 하게 된다. 일본이 무대배경이었다. 일본에 주둔한 미국 해군장교 핑커톤은 일본여자인 나비부인을 소개받아 그와 결혼을 한다. 3년 뒤 핑커톤은 근무지를 미국으로 옮기게 된다. 곧 돌아온다며 떠나간 핑커톤은 돌아오지 않고, 나비부인은 떠나간 사람을 한결같은 마음으로 기다린다.
미국에서 다시 결혼을 한 핑커톤은 마침내 부인을 데리고서 일본을 찾아온다. 나비부인이 낳은 아들을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서였다. 모든 것을 알게된 나비부인은 아버지가 물려준 칼로, '명예를 지킬 수 없을 땐 명예롭게 죽어라'는 문장이 새겨진 칼로 자결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떤 개인 날'이나 '허밍 코러스' 등 음반으로만 익숙했던 노래를 직접 듣고 보는 것은 새로운 감흥이었다. 나비부인의 삶과 그가 부르는 노래가 참으로 애절하게 여겨졌다. 오페라의 무대가 일본이었기 때문이었을까, 푸치니가 우리의 심청전이나 춘향전을 알았다면 어땠을까 싶은 마음도 들었고, 지금이라도 음악을 공부하는 이들의 우리의 고전을 세계적인 작품으로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오페라를 보면서 무척이나 인상 깊었던 사람이 있었다. 주인공인 나비부인도, 핑커톤도 아니었다. 노래 한 마디 대사 한 마디 없이 몇 번 등장했다 이내 사라지곤 하던 한 하인이었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면 의자와 탁자를 내오고 들여가는, 하찮다면 아주 하찮은 역을 맡은 한 노인에게 나도 모르게 눈과 마음이 갔다.
종종 걸음으로 등장했다 잠깐 자기의 일을 하곤 종종 걸음으로 물러나는데, 한 평생을 그런 걸음으로 살아온 것처럼, 정말 평생을 하인으로 살아온 것처럼 그의 동작에는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걸음새는 일정했고, 자기 역을 하느라 쳐다보지도 않는 주인과 손님에게 언제라도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물러나곤 했다.
나중에 차를 마시며 들으니 그는 실제로 80세가 넘은 노인으로 전직이 산부인과 의사였다. 은퇴 후에 오페라가 좋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취미 삼아 엑스트라로 출연을 하는데, 어떤 역을 맡아도 그 역에 최선을 다한다고 했다.
한 엑스트라의 진지한 연기가 처음 보는 오페라에 감동을 더해주었다. 나비부인을 떠올릴 때면 언제라도 하인 역을 맡았던 노인을 같이 떠올리게 될 것이다. 내게 주어진 역할이 엑스트라와 같이 보잘 것 없어 보여도, 최선을 다할 때 문득 세상이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새롭게 배운 날이었다. (2003.5.12)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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