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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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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를 진다'라는 말은 어떤 의미로 와 닿는지요? 신앙적이거나 교리적인 대답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단순한 느낌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의를 위한 자기 희생'이나 '피하고 싶지만 의미 있는 삶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것'이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에 불만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십자가를 바꾸어 달라고 하느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십자가가 가득한 방으로 데리고 가서 원하는 십자가를 고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빛이 번쩍번쩍하는 금으로 된 십자가를 골랐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허락을 하였지요. 금 십자가는 보기엔 좋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하느님께 부탁을 했고, 이번엔 그 중 가벼운 십자가를 골랐습니다. 가벼워서 좋기는 했지만, 그 십자가는 가시나무로 만든 십자가였습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가시가 등을 찔렀습니다.
다시 하느님께 허락을 받고 십자가를 고르고 골라 마침내 자신에게 꼭 맞는 십자가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이젠 정말 그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하느님이 빙긋이 웃으며 "네가 고른 십자가를 자세히 보렴."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른 십자가를 가만 내려보던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그 십자가는 이제까지 자신이 지고 오던 바로 그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하시디즘에는 '슬픔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하늘나라에 있는 커다란 슬픔의 나무 밑으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겪은 고통과 불행했던 일들을 슬픔의 나무 나뭇가지에 걸어놓게 됩니다.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을 나무에 걸어놓은 뒤 천천히 나무 주위를 돌면서 자신이 나뭇가지에 걸어둔 것보다 덜 고통스러워 보이는 인생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의 것과 바꿔도 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결국에는 다른 어떤 사람의 것보다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택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어려웠어도 결국 자신이 겪은 고통과 아픔이 다른 사람이 겪은 것보다는 가볍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한결 더 지혜로워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슬픔의 나무를 떠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아픔과 슬픔이 있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더없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슬픔의 질곡이 언제 끝나는 것인지 내 삶이 가혹하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아픔 없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 편하고 부러워 보이는 삶 이면에는 다른 이가 알지 못하는 그만의 아픔과 고통이 따로 있는 것이겠지요. 가뭄과 태풍을 견디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키워준 대지의 품에 안기는 저 무수한 낙엽들처럼, 그것이 고통이든 슬픔이든 자신에게 허락된 삶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우리 될 수 있기를 이 계절에 바래봅니다. (2003.11.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어떤 사람이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에 불만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십자가를 바꾸어 달라고 하느님께 부탁을 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를 십자가가 가득한 방으로 데리고 가서 원하는 십자가를 고르라고 하였습니다.
그는 자기의 십자가를 내려놓고 빛이 번쩍번쩍하는 금으로 된 십자가를 골랐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허락을 하였지요. 금 십자가는 보기엔 좋았지만 너무 무거워서 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다시 하느님께 부탁을 했고, 이번엔 그 중 가벼운 십자가를 골랐습니다. 가벼워서 좋기는 했지만, 그 십자가는 가시나무로 만든 십자가였습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가시가 등을 찔렀습니다.
다시 하느님께 허락을 받고 십자가를 고르고 골라 마침내 자신에게 꼭 맞는 십자가를 하나 찾아냈습니다. 이젠 정말 그 십자가를 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하느님이 빙긋이 웃으며 "네가 고른 십자가를 자세히 보렴." 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고른 십자가를 가만 내려보던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는데, 그 십자가는 이제까지 자신이 지고 오던 바로 그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하시디즘에는 '슬픔의 나무'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하늘나라에 있는 커다란 슬픔의 나무 밑으로 가게 된다고 합니다. 그는 그동안 세상을 살면서 자신이 겪은 고통과 불행했던 일들을 슬픔의 나무 나뭇가지에 걸어놓게 됩니다. 자신의 슬픔이나 고통을 나무에 걸어놓은 뒤 천천히 나무 주위를 돌면서 자신이 나뭇가지에 걸어둔 것보다 덜 고통스러워 보이는 인생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의 것과 바꿔도 됩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결국에는 다른 어떤 사람의 것보다 자신의 불행과 고통을 택하게 된다고 합니다. 자신에게는 감당하기 힘들었고 어려웠어도 결국 자신이 겪은 고통과 아픔이 다른 사람이 겪은 것보다는 가볍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한결 더 지혜로워져서 가벼운 마음으로 슬픔의 나무를 떠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저마다 감당해야 할 아픔과 슬픔이 있습니다. 때로는 다른 사람에 비해 내가 감당해야 할 삶의 무게가 더없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있고, 슬픔의 질곡이 언제 끝나는 것인지 내 삶이 가혹하게 여겨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과 아픔 없는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참 편하고 부러워 보이는 삶 이면에는 다른 이가 알지 못하는 그만의 아픔과 고통이 따로 있는 것이겠지요. 가뭄과 태풍을 견디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키워준 대지의 품에 안기는 저 무수한 낙엽들처럼, 그것이 고통이든 슬픔이든 자신에게 허락된 삶을 마음껏 사랑할 수 있는 우리 될 수 있기를 이 계절에 바래봅니다. (2003.11.3) ⓒ한희철(독일 프랑크푸르트감리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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