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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맨토들의 글을 모았습니다. 천천히 읽으면 더 좋은 글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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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진의 시골편지]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
이른 여름, 이른 더위. 못자리 물을 흠씬 받은 논에는 개구리들이 장엄미사 대합창. 당신은 들에서 검게 익어 ‘켄터키 옛집에 햇빛 비치어 여름날 검둥이 시절’. 밭은 있는데 논이 없는 나는 농부랄 것이 없지.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푹푹 빠지는 무논에 마음만 같이 부려놓고…. 어릴 적 아버지는 농사꾼 교인들 집집마다 다니며 일손을 돕고 그러셨다. 농번기 방학이 있었는데, 나도 아버지 따라 동네 다니며 모도 심고 들밥도 얻어먹고 그랬지. “목사님이 도와주싱게로 올해 농사는 해보나마나 대풍이겄재라. 마니마니 자시쇼잉. 여보! 겨란 후라이라도 조깐 부채오재 그랬능가. 우리 의진이 먹을 것이 없네잉.” 동네 아재는 들밥 위에다가 침을 잔뜩 튀기며 일장 연설로 부산을 떠시고…. 식초 맛이 싸아~하던 오징어무침, 꼬신 냄새가 진동하던 누룽지 밥. 들에서 손을 모아 기도하고 먹었던 그 들밥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시간이 멀리 흘러 내가 이제 아버지의 그 나이로구나. 혼자 된 분들 논밭은 뭐가 하나씩 부족하고 야물지가 못해 거들어주고만 싶은데, 내가 무슨 아는 게 있어야 면장을 하지. 그저 길가다 말 신청이나 살갑게 걸고, 정다운 사람들 고추 몇 개 쥐여주면 얻어오는 재미. 달라이 라마 스님의 가르침대로 살고픈 여기 한 사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는 누구의 탓도 하지 않고, 누구에 대해서도 나쁜 생각을 갖지 않는다. 또한 나 자신보다 이웃을 더 많이 생각하고, 남이 나보다 훨씬 중요한 존재들이라고 여긴다. 나는 늘 타인에게 행복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달라이 라마, ‘용서’)
김광석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가 담장 너머로 흘러나오자 따라서 불러보는 오후.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하르르 꽃잎이 지는 날, 사람이 그리워 문밖으로 나간다. 나비도 나를 따라 들길을 따라오고…. 황혼에 기운 사람들 곁에 다가가 “손을 꼭 잡았소”. 달차근하고 정겨운, 당신께로 향한 길.
<임의진 목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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