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6장 9~10절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라고 했다.
1) 탄원의 장소는 제단 아래였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했다. 이것의 구약적 의미는 가장 거룩한 장소인 분향하는 제단을 의미한다. 이것은 천상 교회의 경우에는 그리스도의 발등상 아래를 의미한다.
(1) 기도를 받으시는 곳으로 표현했다. 그 제단은 요한계시록 8장 3절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라고 했다. 성도의 기도가 열납되는 곳이다.
(2) 불을 담아 쏟는 장소로 표현됐다. 요한계시록 8장 5절에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고 했다. 그렇다면 심판의 센터(center)이기도 하다.
(3) 영음의 출처로 나타났다. 요한계시록 9장 13~14절에 「여섯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내가 들으니 하나님 앞 금단 네 뿔에서 한 음성이 나서 나팔 가진 여섯째 천사에게 말하기를 큰 강 유브라데에 결박한 네 천사를 놓아 주라 하매」라고 했다. 계시의 음성이 나오는 장소이다.
(4) 경배자들의 세계이다. 요한계시록 11장 1절에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라고 했다. 거룩한 경배자의 구역이다.
(5) 심판의 천사를 보내는 곳이다. 요한계시록 14장 18절에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이한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라고 했다. 이 천사는 심판의 천사로 보냄을 받았다.
(6) 공의의 센터이다. 요한계시록 16장 7절에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고 했다.
(7) 순교자들의 안식처이다. 요한계시록 6장 9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곳은 성소이다.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접근하고 있다. 우리 주님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영광의 장소이다. 이 세상에서 예수의 말씀과 증거 때문에 발붙일 곳도 찾지 못하던 저들은 이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영광의 영접을 받고 있다.
2) 탄원의 대상은 하나님 자신이다.
요한계시록 6장 10절에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라고 했다. ‘대주재’란 참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성호이다. 그분은 ‘참되고 거룩하시다’ 했다. 이것은 그의 속성이다. 그분은 하늘에 살아 계신 아버지로서 택자들의 밤낮으로 부르짖는 간구에 응답하시는 분이시다(마 7:11). 그분은 참으로 자기 택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는 분이시다(눅 18:7). 그는 우리의 천부로서 구하는 이에게 성령을 주시는 분이시다(눅 11:13). 그분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가지신 빛들의 아버지이시다(약 1:17). 즉 인격적인 하나님, 살아 계신 하나님, 구원의 하나님, 축복의 하나님, 심판의 하나님이시다. 영광의 하나님이시다.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3) 탄원의 태도는 겸손이다.
요한계시록 6장 10절에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라고 했다.
(1) 큰 소리로 탄원했다. 이것은 종이 주인 앞에 토하는 뜨거운 애소요, 애원이다. 이는 피 끓는 절규이다.
(2)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라고 불렀다. 이 말은 노예가 상전을 부를 때 쓰는 최대의 경어이다. 저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하는 희생을 지불하고도 하나님 앞에서 저처럼 겸손했다.
4) 탄원의 내용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원했다.
(1)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해 달라고 했다. 요한계시록 6장 10절에 「…땅에 거하는 자들」이란 요한계시록 11장 8절에 표현된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 하는 곳에 사는 자들이다. 이곳의 사람들은 우리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이다. 우리 주님께서 이곳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다. 요한계시록 18장의 경우 바벨론을 뜻한다.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은 ① 주님을 알지 못한 자들이다(요 3:10). ② 소속 근거가 이 세상이다(요 8:23). ③ 저들 속엔 빛이 없다(요 11:10). ④ 저들은 그리스도와 그의 종들을 찔렀다(계 1:7). ⑤ 저들은 예수의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 주고, 회당에서 채찍질한, 이 땅의 총독들과 임금들과 이방인들이다(마 10:18). ⑥ 저들은 여황을 숭배하는 연락주의자들이요(향락), 유물론자들이요(배금주의 상고들), 권세자(왕권 지상주의자인 땅의 임금들)들이요, 과학지상주의자(각종 세공업자)들로서 서로 연합 동맹하여 성도들의 영혼을 매매하던 자들(계 18:13)이었다. 요한계시록 18장 24절에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고 한 사실로 보아,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는가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부지기수의 수다한 예수의 증인들이 이 땅(성)에서 죽임을 당했다. 요한계시록 17장 6절에는 바벨론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하였다고 했다. 그렇다면 여기 순교자들이 땅에 거하는 자를 심판하여 달라고 하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원수요, 진리의 원수요, 교회의 원수이기 때문임에 틀림없다. 천국의 공적들이다. 이렇게 순교자들은 하나님의 원수들을 보복해 달라고 탄원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원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결코 이 땅의 악도들이 영원히 왕이 되거나, 영원한 교회의 박해자가 되도록 남겨두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2) 하늘 성도들의 피를 신원해 주기를 탄원했다. 요한계시록 6장 10절 하반절에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라고 했다. 이 말은 마치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는 말처럼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제단 아래서 부르짖는다는 인격적 표현이다. 이런 경우는 구약에서도 볼 수 있다. 시편 79편 10절에 「주의 종들의 피 흘림당한 보수를 우리 목전에 열방 중에 알리소서」라고 한 사실이다. 시편 119편 84절에 「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를 주께서 언제나 국문하시리이까」라고 했다. 시편 94편 2~3절에 「세계를 판단하시는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에게 상당한 형벌을 주소서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인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라고 했다. 여기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흘린 피는 어떤 피인가? ① 바른 믿음, 바른 예배 때문에 흘린 피이다(히 11:4, 창 4:8, 요일 3:12). 말하자면 아벨의 피 같은 것이다. ② 바른 예언, 바른 말을 하다가 흘린 피이다(대하 24:15~22). 말하자면 스가랴의 피 같은 것이다. ③ 예수의 계명을 지키다가 흘린 피이다(계 13:15, 14:9~12). ④ 바른 증언의 피이다(행 7:54~60, 12:1~4). 예컨대 스데반의 흘린 피, 야고보가 흘린 피 같은 것이다. ⑤ 죄를 책망한 정의의 피이다(마 14:10). 예컨대 세례 요한이 흘린 피 같은 것이다. ⑥ 충성의 피이다(계 2:10). 서머나 교회의 지도자가 흘린 피 같은 것이다. ⑦ 죽기까지 죄를 미워하다가 흘린 피이다(히 12:9). ⑧ 죽기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다가 흘린 피이다(계 16:5~6). 이 피는 없어지지 않고, 타지 않고, 살아 있다. 이 피는 신원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는 한 이 피는 헛될 수가 없다. 이유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공의의 하나님이요, 보상과 위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썩을 수 없고, 없어질 수 없는 피가 순교자의 흘린 피이다. 그러므로 잿더미가 되어버린 바벨론의 폐허 속에서도 순교자들이 흘린 피가 불타지 않고 그 성중에서 그대로 붉게 빛나고 있지 않았던가(계 18:24)? 실로 살아 있는 순교자들의 탄원이다. 땅에 있는 악도들에 대한 심판! 성도들이 흘린 피에 대한 보상!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공의만이 대답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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