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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557 추천 수 0 2016.07.24 15:42:33
.........
성경본문 : 막12:41-4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장 41절-44절: 예수께서 연보 궤를 대하여 앉으사 무리의 연보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실쌔 여러 부자는 많이 넣는데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희는 다 그 풍족한 중에서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셨더라.


본문을 보면 우리가 연보 궤에 헌금하는 걸 주님이 보시는구나. 헌금할 때는 집에서 미리 준비하는 게 좋다. 깨끗한 봉투에 넣는 게 좋다. ‘돈을 많이 내라’가 아니라 헌금할 때는 항상 하나님 앞에 은혜 받은 데서 드리거나, 은혜를 받고 싶은 욕심에서 드려야 한다. 예배를 드리러 올 때는 아무 마음도 없이 빈 털털이 마음으로 오지 말아라.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와라. 깨닫고 싶은 마음으로 와라. 그렇게 되니 마음이 가는대로 물질이 가게 되는 거다.


많이 내라는 게 아니라 자기 형편대로 들어가는 거다. 내가 돈이 아무리 많아도 내기 싫으면 안 내도 되는 거다. 그런데 어떤 마음을 갖는 게 자기에게 은혜롭겠느냐? 하나님의 것을 받는 면에서 어떤 마음이 은혜롭겠느냐? ‘신령과 진정으로’ 그게 들어있는 거다.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서. 한 마디로 너의 전 인격 전 인생의 전폭이 다 들어있는 거다.


아무렴 신경을 쓰는 사람이 은혜를 받는다. 주일날 예배드리러 가야 하는데 전날 밤 늦게까지 할 일 하느라고 피곤하면 예배 때 은혜 못 받고, 이 사람은 분명히 시험에 든다. 시험에 들 여지를 만들고 있는 거다. 네 온 몸을 하나님께 드려봐라. 하나님이 너를 세상의 걸레로 만들어 놓겠느냐? 시:19에 하나님께서 푸른 창공을 왜 만들어 놨느냐? 무엇을 위해서 저렇게 만들어 놨느냐? 너를 위해서다.


수영을 잘하는 사람은 푸른 바다를 보면 한 번쯤 태평양도 건너가고 싶은 마음을 가진다. 비행기를 타는 사람은 한 번 하늘 끝까지 가고 싶다고 한다. 아프리카의 사막 길 같은 데는 끝도 없다. 그런 곳에 길이 죽 나 있으면 ‘자동차를 타고 속도에 제한 없이 한 번 달려봤으면 좋겠다’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데서는 걸그작 거릴 게 없다. 그런 것처럼 네가 예수 믿으면서 믿음의 악셀을 밟아봐라. 얼마든지 막힘없이 달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세상은 너를 위해 만들었다 그 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세상 소원 목적이고, 제각기 세상에 대한 연민이 들어있으니 그런 네 인생은 볼 것 없다. 너는 그걸로 잘하면 밥 세 끼나 먹을까, 안 그러면 죽는 거다.


자기 인생이 어디서 펼쳐지는 거냐? 성경이다. 그걸 알아라. 자기 인생은 성경에서 지혜를 얻고 세상에서 이용 활용도가 높아지는 거다. 그런데 세상을 욕심내어 살게 되면 세상만사는 끝이 없다. 죽을 때까지 해도 일은 더 많아진다. 그렇게 살다가 자기의 물질, 자기의 건강에 대한 책임추궁이 들어올 때는 네 인생은 끝나는 거다.


예수님이 연보 궤 반대편에 앉아서 연보 궤에 돈 넣은 것을 자세히 보셨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연보 궤에 넣는 돈의 액수를 보는 거냐? 액수는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따라가는 거다. 그러면 왜 자세히 보셨을까? 헌금을 많이 하던 적게 하던 액수는 상관이 없을 텐데 헌금 궤에 돈 넣는 것을 보시는 당신의 그 행동으로 알리고 싶은 말씀은 우리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헌금을 하는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이유는 연보하는 사람의 마음을 정확히 보시고 갚아주실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내는 헌금을 인간 앞에 자랑처럼 낸다거나, 거지에게 동정하듯이 낸다거나, 인색한 마음으로 낸다거나, 다 쓰고 남은 찌꺼기처럼 내면 그대로 갚아주시려고 보시는 거다.


사람을 의식하면서 헌금을 하면 안 된다. 헌금을 하고도 죽은 두 부부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 부부가 돈 액수 때문에 저주 받고 죽은 거냐? 스스로에게 자기 양심을 속였고, 성령의 감화로 역사되는 사도들 앞에서 거짓말을 했고, 불같은 눈으로 보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말이 됐고, 사람들의 마음을 도둑질하고 살려다가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저주 받고 죽었다.


요즘은 그런 게 없으나 그전에 시골교회에서 평소 때도 그렇지만 집회 때 보면 강대상에 헌금을 올려놓으면 부흥강사가 광고도 한다.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어쨌든 자기도 그렇고 다른 사람도 시험에 들게 헌금을 하면 안 된다. 이름을 불러주고 액수를 불러주고 하는 그 자체가 시험이다. 어떤 교회에서는 주보에 헌금을 한 사람의 이름과 액수를 적는 것도 있는데 액수를 적는다는 자체가 시험이다. ‘누구는 많이 냈는데 집사님인데 장로님인데 이것밖에 안 냈네’ 하게 된다. 이게 시험이다.


금액이 많고 적고 간에 이름을 써서 헌금함에 넣어라. 이름을 쓰는 것은 많고 적음을 보는 게 아니라 그 가정의 생활정도를 보기 위함이다. 다른 데는 잔뜩 쓰고 헌금은 조금 내는 건지, 헌금으로 다 내놓고 굶고 사는 건지? 목사는 교인들의 먹고 사는 상황을 알아야 한다.


십일조는 적을 둔 교회에 내라. 소득의 십일조를 내라고 했으니 소득의 십일조를 내면 된다. 십분의 일이 아니라 자기의 모든 소득을 다 낸다고 해서 믿음 좋다 그건 아니다. 그리고 그 전에 다녔던 교회나, 형제들이 다니는 교회가 가난하다거나 개척교회라고 해서 자기가 십일조를 그런 곳으로 보내는 게 아니다. 예를 들면 그 집에서 밥을 먹었으면 그 집에 밥값을 내라. 그 나라에 살면 그 나라에 세금을 내라. 이치를 말하는 거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인데 자기가 은혜 받는 곳에 내지 않고 제 마음대로 다른 데 내는 것은 잘못됐다. 그러나 감사헌금은 마음에 나는 대로 할 수 있다. 은혜 받은 것에 감사해서 할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이룰구원이 아닌 적그리스도나 이단자나 인본주의적 설교나 이질적 교회에는, 그게 거짓교회인데 그런 곳에는 헌금을 할 수 없다. 알고는 할 수가 없는 거다. 그러나 이 진리를 받으면서 바로 살겠다고 하는 걸 봐서 때에 따라 헌금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 때마다 사람의 마음을 갖는 것이 다르다. 항상 같은 게 아니다. 어떤 때는 발이 없는 사람이 시장에서 구루마 끌며 찬송가 틀고 실도 팔고 하는 게 있는데, 그러면 ‘저 사람이 뭘로 살아야 하나? 천상 옆에서 돕지 않으면 안 되지’ 그 생각이 들기는 하는데, 이상한 노래를 틀고 다니면 ‘저 사람은 교회를 안 나가니까 저 노래를 틀지’ 하는 생각이 돼서 물건을 사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러면서도 ‘저 사람은 천상 살아있는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어떻게 사나’ 하게 된다. 사람이 마음의 감화성이 그 때 그 때마다 다를 수도 있다.


은혜 받고 깨달아지는 것에 감사하고, 깨달음의 은혜를 받고 또 그렇게 살 것에 감사하고.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복된 자로 사는 것에 감사하고. 이러한 구원에 관한 감사로 드리는 게 아니면 하나님께서 받으시겠느냐? 감사하는 마음에서 성도의 모든 생활이 들어있는 것이다. 모든 언행심사가 하나님 앞으로 모아지는 것.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감사하는 마음에서 물질도 오고 가고 가까워지기도 한다. 사람이 서로 가까워지면 말하자면 서로 음식 값을 내려고도 하고, 없을 때 사주기도 하고 받아먹기도 한다. 이건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런데 비싼 물건은 다 사면서도 친한 친구 간에는 어떻게 점심 한 끼도 안 사고 남이 사주는 것만 먹느냐? 이건 문제가 있는 거다. 안 믿는 사람도 마음이 인간적으로 양심적으로 바른 사람은 훈훈한 건데 예수 믿으면서도 그런 게 없다면 되겠느냐?


남의 돈을 떼먹고 헌금 내지 말고, 그건 복 있는 사람이 아니다. 부자행세하며 남의 돈을 떼먹으면 저주 받을 사람이다. 그 집에서 그 집의 것을 먹고 마시고 했으면 사례를 하는 게 마땅하다. 그 집의 모든 음식을 먹고 마시고 했으면 나중에라도 그 집 사람들에게 사례하는 게 마땅하다. 그런 면에 무디지 말아라. 은혜 받은 것에 감사한 마음이 없다면 하나님과도 거리가 멀고, 믿음의 사람이 아니다. 여기 저기 돈을 빌리는 사람은 거짓말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가 교회에 시험을 주게 되면 교회에서 쫓겨나고 저주의 사람이 된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부자들은 돈이 많이 있는 중에 푹 집어서 헌금을 해도 감사한 마음은 아니다. 인색한 마음은 없다고 해도 감사한 마음은 아니다. 말하자면 넉넉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거다.


부자는 헌금을 많이 내도 가진 것이 많아서 사는 것에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어디에 돈이 들어가면 한 달 내내 허리가 휘청거린다. 그걸 안 채워 넣으면 다음 달에 밀려서 더 힘이 든다.


성경의 과부의 살림살이는 쪼들린다. 이 과부가 낸 헌금은 두 렙돈이다. 아주 작은 최소의 단위다. 한국 돈의 최소 단위가 일 원이다. 실지로 사용하는 돈은 십 원짜리가 최소다.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는 로마의 화폐단위다. 노동자 품삯은 하루에 한 데나리온인데, 여기서 십육 분의 일에 해당되는 금액이 한 렙돈이다. 그러니까 과부가 낸 헌금은 쪼개고 쪼개고 쪼개서 열여섯 번이나 쪼개진 지극히 작은 헌금이다. 참으로 이건 구차하다기보다 뭐라고 말을 해야 될 런지?


아마 그 때 한 데나리온을 받는 노동자가 한 렙돈이 집에 있었는데 그게 농 밑으로 굴러 들어가면 안 찾을 것이다. 지금 100원짜리가 굴러서 장롱 밑으로 들어가면 그거 찾으려고 하느냐? 잘 안 찾는다. 부자가 내는 헌금과 과부의 헌금을 비교해 보면 과부가 낸 헌금은 지금으로 말하자면 부잣집의 어린아이의 과자 값도 안 된다.


그러면 ‘이 가난한 과부는 연보 궤에 넣는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부자의 헌금과 과부의 헌금과의 돈 액수의 차이를 말씀하심인가, 헌금을 하는 그 마음의 중심을 보심인가? 그 마음중심을 보심이다. 예수님은 헌금하는 부자의 마음과 과부의 마음을 유심히 본 것이다.


그리고 과부의 헌금을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 노동자의 품삯에서 16등분을 냈는데 이것을 전 재산을 다 냈다고 하니 이게 어떻게 된 것이냐? 이 과부가 자기 재산 전부를 내고서 굶고 산 것인가? 과부 집에 가서 밥 한 그릇이라도 얻어먹는다면 한 렙돈보다 많을 것 같은데 이게 무슨 뜻일까?


문제. 

1. 집도 없고 총 재산은 두 렙돈인데 그것마저 다 바쳤다는 것이다?

2. 집에 살림살이는 다 있지만 돈이라고는 딱 두 렙돈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3. 원래 돈도 없지만 있는 것 중에서 다 쓰고 남은 것이 두 렙돈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4. 물건을 사고 남은 돈을 싹싹 긁어서 남은 돈이 두 렙돈뿐이라는 것이다?

5. 돼지 저금통을 다 털어서 왔다는 것이다?

6. ‘내일 다시 벌면 된다’ 하는 뜻으로 다 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답이 없다. 그러면 무슨 마음일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에서 과부의 그 신앙정신이나 마음을 생각해 보면.

첫째는 양심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오늘을 바로 사는 과부로구나.

두 번째는 자기의 가난한 살림살이를 탓하지 않는 과부로구나.

세 번째는 부자를 부러워하지 않는 과부로구나.

네 번째는 자기 살림살이를 먼저 걱정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마음이 하나님 앞에 감사가 먼저였구나.

다섯 번째는 은혜 받은 감사와 은혜 받을 감사의 마음이 먼저 들어갔구나.

여섯 번째는 아무리 가난해도 하나님 앞에 물질의 인색이 없었구나.

일곱 번째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참 과부로구나.


풍족한 가운데 헌금을 하면 마음에서 저울질이 안 되지만 쪼들리는 살림살이인데도 헌금을 하려면 마음에 저울질이 들어가고 계산을 하게 되는 건데 과부는 아무리 가난해도 그런 마음이 없다. 그런 계산이 없다. 물질 가난의 탓을 하지 않고 참 부지런한 과부로구나.


게으른 과부 같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 헌금마저도 하게 되겠느냐? 못한다. 이 과부의 마음을 알면 예수님의 말씀이 적중하게 되는 거다. 과부의 그 마음에서 그걸 내게 되는 거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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