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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루디아

사도행전 정용섭 목사............... 조회 수 761 추천 수 0 2016.06.05 23:5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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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행16:9-15 
설교자 : 정용섭 목사 
참고 : http://dabia.net/xe/869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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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과 루디아

행16:9-15, 부활절 여섯째 주일,

2016년 5월1일

 

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10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11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 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15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역사의 분기점


바울은 베드로와 더불어서 기독교 역사를 끌어왔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끌어가는 마차의 두 바퀴와 같이 중요한 인물입니다. 실제로는 바울이 더 중요합니다. 신약성경 27권 중에서 10권 내외를 바울이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역사에 자리하고 있는 기독교의 태두가 바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없었다면 기독교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초기에 기독교는 유대 기독교와 이방 기독교로 나뉘어져 있었습니다. 갈 2:7,8절에 따르면 베드로는 할례자들의 사도로 활동했고, 바울은 무할례자들의 사도로 활동했습니다. 할례자들은 유대인들이고, 무할례자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양쪽 모두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긴 했지만 서로 입장에 차이가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유대 기독교는 유대교에 흡수된 반면에 이방 기독교는 유대교로부터 독립되어서 지금의 기독교로 성장했습니다.

 

바울을 중심으로 하는 이방 기독교가 자신만의 고유한 길을 가게 된 역사적 분기점에 관한 이야기가 행 16:9,10절에 나옵니다. 바울은 밤에 환상을 보았다고 합니다. 마게도냐 사람이 나타나서 자기들이 있는 곳으로 와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일행은 그 환상을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마게도냐로 부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당시 바울은 어려운 입장에 처해 있었습니다. 행 16:6절이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그들이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성경이 말하는 아시아는 소아시아, 즉 지금의 터키 지역을 가리킵니다. 그 지역은 동양과 서양의 가교와 같았는데, 초기 기독교 역사에서 중심 무대였습니다. 바울은 소아시아 여러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 교회 구성원들은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기독교 본산이라 할 예루살렘 교회가 볼 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내용에는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감독자들을 바울이 세운 교회에 보내서 바울의 가르침을 수정했습니다. 예수를 믿어도 유대교에 뿌리를 둔 토라와 할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들과 타협하지 않고 토라와 할례 없이 예수만 믿으면 된다는 자신의 입장을 올곧게 밀고 나갔습니다. 이런 입장이 기독교를 위해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소아시아 지역에서 설교할 기회를 바울에게서 박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는 구절이 바로 그런 배경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자기를 받아주는 교회가 없어서 밀리고 밀리다가 결국 소아시아 왼쪽 끝자락 항구인 드로아까지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이 부르는 환상을 본 겁니다. 그래서 배를 타고 그리스로 건너가서 빌립보에 이르렀습니다. 그 긴 여정을 행 16:11,12절이 짤막하게 보도했습니다.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부왕인 빌립 2세가 금광 개발을 위해서 세운 도시입니다. 마게도냐는 흥망성쇠를 반복했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 마케도냐 공화국이 그 이름을 물려받았습니다. 빌립보는 마게도냐가 망한 뒤에 로마에 귀속되었고, 지금은 그리스에 속해 있습니다. 옛날에는 번창했던 도시였지만 지금은 유적지로만 남아 있습니다. 2천 년 전 바울이 복음을 들고 빌립보에 들어감으로써 기독교는 유럽에 본격적으로 발을 딛게 되었습니다.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분파에서 벗어나서 세계 종교로 발전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역사적 순간에 보석과 같은 한 여자가 등장합니다. 루디아입니다.

 

빌립보의 루디아


바울이 빌립보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유대인들의 집회에 참석하는 것이었습니다. 13절에 따르면 바울 일행이 안식일에 기도할 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날로서, 지금의 토요일입니다. 로마는 태양신을 섬기기 때문에 일요일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주로 회당에 모입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에 모이는 거와 비슷합니다. 당시 빌립보에는 유대인들이 많지 않은 탓인지 아직 회당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바울 일행은 수소문해서 유대교 기도집회가 열린다는 강가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바울은 설교했고, 그 말씀을 들은 인물 중에 한 사람이 루디아라는 여자입니다. 그녀는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받아들였고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으며, 자기 집을 바울 일행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주었다고 합니다. 루디아의 집이 빌립보 교회당처럼 사용된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에서 볼 때 유럽 최초의 교회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사건입니다. 15절이 이 사실을 이렇게 전합니다.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이르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머물게 하니라.

 

루디아는 어떤 사람일까요? 기독교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이지만 오늘 본문 외에는 신약성경 그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초기 기독교의 다른 문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루디아라는 이름이 ‘리디아 지방사람’이라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 빌 4:2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유오디아나 순두게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긴 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이야기를 루디아의 입장에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루디아는 일주일에 한번 안식일에 유대교 모임이 있는 빌립보의 어느 강가로 나갔습니다. 루디아는 유대인이 아니지만 유대교로 개종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특별한 사정이 생기지 않는 한 일주일에 한번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그 모임에 낯선 사람들이 참석했습니다. 바울과 실라와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로 추정되는 사람들입니다. 루디아는 그들이 유랑 랍비들이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그들 중의 한 남자가 앞으로 나서서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유대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 즉 그리스도라고 말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에 대해서 설교했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루디아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은혜를 받은 겁니다. 모든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루디아는 바울 일행의 처지가 어렵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당장 머물 곳도 마땅치 않았습니다. 숙식 해결에도 돈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루디아는 바울 일행을 도와야겠다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 뜻을 바울에게 전합니다.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본문은 ‘강권했다.’는 말을 덧붙입니다. 바울이 처음에는 루디아의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했겠지요. 바울은 원래 자비량 선교를 원칙으로 하는 사람입니다. 고전 9:12절에 따르면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교회에서 재정적인 후원을 받는 게 마땅한 권리이지만 자신은 복음 전파를 위해서 그런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는 가죽 세공으로 밥벌이를 하면서 선교 활동을 했습니다. 루디아는 바울을 강권해서 자신의 집을 빌립보 선교의 베이스캠프로 사용하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지난 2천 년 동안 복음이 처음 전파되는 곳에서 자주 일어났습니다. 그런 일의 모범을 처음으로 보인 인물이 바로 빌립보의 루디아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이런 전통에 따라서 바울을 훗날까지 계속해서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빌 4: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그런 고마운 마음을 전하려고 바울이 빌립보에 편지를 썼는데, 그게 빌립보서입니다.

 

루디아는 여성 기업가입니다. 본문에 따르면 자색 옷감 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당시 자색 옷감은 귀금속 못지않게 귀족들이 찾는 고급 품목입니다. 보통은 남자가 사업을 운영하고 여자는 집안 살림을 하기 마련인데, 루디아는 특별한 경우입니다. 남편이 죽어서 남편의 사업을 물려받은 것인지, 아니면 친정아버지가 넘겨준 것인지, 또는 원래 사업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서 자수성가한 것인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으니 우리가 알 수 없습니다. 어쨌든지 상당히 재력이 있는 사업가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재력이 있다고 해서 선교 사업이나 어려운 이들을 위해서 돈을 내는 건 아닙니다. 돈을 많이 벌었다는 건 모든 생각을 돈 중심으로 했다는 뜻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직접 유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인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건 사람마다 각자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해서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따르면 루디아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마음을 열어 말씀을 따랐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런 일은 억지로 되는 게 아니기에 본문은 그걸 ‘주께서’ 하셨다고 표현했습니다.

 

마음을 열어 말씀을 따랐다는 게 무슨 뜻일까요? 짧은 코멘트지만 이것은 한 인간의 영혼이 달린 문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루디아는 로마 시민권을 갖고 있는 이방인 여자로서 성공한 사업가입니다. 오늘의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보면 됩니다. 이런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생각하며 살아가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자신감이 넘칩니다.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방법을 잘 압니다. 사업을 하니까 주변에 사람들도 많고, 돈도 많고, 그러니 자식 교육도 남부럽지 않게 잘 시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루디아는 자신의 세속적인 성공에 만족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만족했다면 유대교로 개종할 필요가 없었을 겁니다. 그녀는 당시 최고 문명인 로마의 상층부에 속한 세속적인 삶으로부터 종교적인 삶으로 조금씩 방향을 바꾸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 예수에 대한 이야기를 바울에게서 들은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진리라는 사실을 깨닫고 세례를 받았고, 그 이후로 빌립보교회 초기 구성원으로 살면서 큰 역할을 했습니다.

 

루디아의 인생에서 결정적으로 두 번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한번은 여성 사업가로서 로마 문명을 따랐던 것으로부터 유대교의 경건한 삶으로 변화한 것이고, 또 한 번은 유대교의 경건한 삶으로부터 기독교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삶으로 변화한 것입니다. 이런 변화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이런 변화는 그녀가 구도적인 태도로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보통은 표면적으로 주어지는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고 맙니다. 가족이 건강하고, 먹고 사는 데 큰 문제없고, 주변에 좋은 친구들 많고, 노후 준비도 어느 정도 하는 것으로 만족해합니다. 실제로는 만족하지 못하면서도 만족한 것처럼 착각하는 겁니다. 그냥 그런 상태로 머물러 있는 자신을 합리화하는 겁니다. 루디아는 진리를 구하는 순례자처럼 길을 가다가 바울의 설교를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영혼의 만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영혼의 만족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영혼의 만족을 얻는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일반적인 대답을 먼저 드리면, 영혼의 만족은 세상에서의 자기 성취가 아니라 하나님만으로 만족해 하는 삶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대부분의 시간을 세상의 기준으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만으로 만족한다는 것을 실질적으로 경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외롭거나 힘들 때 위로를 받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나님만으로 만족한 삶을 누리는 영혼의 만족은 세상에서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차원을 가리킵니다. 세상의 모든 조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겁니다. 그럴 때만 우리는 참된 자유와 해방을 경험합니다. 사람들이 세상에서 계속 무엇인가를 채우기 위해서 애를 쓴다는 것은 이런 영혼의 만족을 모른다는 증거입니다.

 

지난 수요일 저녁 성경공부 시간이었습니다. 거기 모인 분들은 차 한 잔씩 받았습니다. 저도 제 앞에 놓인 종이 잔을 들어 차를 마셨습니다. 느낌이 좋았습니다. 준비하신 분에게 차 이름이 뭐냐고 물었습니다. ‘뽕잎 차’라고 하더군요. 고유한 향과 맛을 지닌 차가 입안을 적시고 목구멍을 통해서 위장으로 내려가는 느낌이 황홀했습니다. 그 순간 더 이상 저에게 필요한 것이 없을 정도로 행복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저는 우선 커튼을 걷어서 창밖을 바라봅니다. 세상이 거기에 있다는 사실을 놀라워합니다. 사물을 손으로 만지고, 중력에 근거해서 중심을 잡고 움직이면서 존재한다는 사실에서 기쁨을 누립니다. 그럴 때는 나에게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습니다. 더 이상 다른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은 만족이 영혼의 만족입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이것은 창조 영성입니다. 삶을 구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다 경험하는 것들입니다.

 

기독교인은 여기서 훨씬 근원적인 차원으로 한걸음 더 들어갑니다. 그것은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해방은 자기를 성취하려는 욕망과 자기 소멸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경험한 사람은 새롭고 근원적인 차원에서 영혼의 만족을 얻습니다. 자기를 꾸밀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에 대한 염려를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염려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생명의 충만함에 이르렀기 때문에 공연한 것으로 다투지 않습니다. 루디아가 자기 집을 빌립보 선교의 전초 기지로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이런 영혼의 만족을 경험했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그걸 본문은 주께서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말씀을 따르게 했다고 표현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영혼의 만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두 극단으로 치우칠 때 그런 일이 벌어집니다. 한쪽은 열광주의이고, 다른 한쪽은 냉소주의입니다. 열광주의는 신앙형식에 과도하게 매달리는 태도입니다. 물불 가리지 않고 교회 일에 시간을 다 보냅니다. 설교의 내용을 깊이 있게 듣는 게 아니라 아멘과 할렐루야로 맞장구치기만 할 뿐입니다. 그런 태도는 영혼이 공허하다는 의미입니다. 냉소주의는 영혼의 만족을 관념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세속의 출세만을 삶의 목표로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런 이들에게 기독교 신앙은 이런 출세와 심리적 안정감을 위한 도구로 떨어집니다. 이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반복하면 영혼의 만족은 피상적인 말에 떨어질 뿐이지 그걸 누리지 못할 겁니다. 저는 스스로 늘 그런 반성을 합니다. 목사로서 영혼의 만족을 경험하고 있는지,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는 삶의 경지를 향해서 가고 있는지, 목회활동의 과정에서 영혼의 만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세상살이에 쫓겨서 그런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습니까? 그런 생각은 삶의 우선순위를 잘못 아는 겁니다. 영혼의 만족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포기하는 한이 있어도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런 일은 루디아의 경우처럼 주께서 마음을 열어주어야만 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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