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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5:21-34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5장 21절-34절: 예수께서 배를 타시고 다시 저편으로 건너가시매 큰 무리가 그에게로 모이거늘 이에 바닷가에 계시더니 회당장 중 하나인 야이로라 하는 이가 와서 예수를 보고 발아래 엎드리어 많이 간구하여 가로되 내 어린 딸이 죽게 되었사오니 오셔서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그로 구원을 얻어 살게 하소서 하거늘 이에 그와 함께 가실쌔 큰 무리가 따라가며 에워싸 밀더라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한 여자가 있어 많은 의원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있던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섞여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 이는 내가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을 얻으리라 함일러라 이에 그의 혈루 근원이 곧 마르매 병이 나은 줄을 몸에 깨달으니라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 제자들이 여짜오되 무리가 에워싸 미는 것을 보시며 누가 내게 손을 대었느냐 물으시나이까 하되 예수께서 이 일 행한 여자를 보려고 둘러보시니 여자가 제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짜온대 예수께서 가라사대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찌어다.


21절로 보니 ‘배를 타시고 저 편으로 가자’ 해서 갔다가 ‘다시 건너가자’ 하시는 것은 또 다른 장면을 보여주시고 또 다른 영적 면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하는 것이다. 괜히 왔다 갔다 하는 그게 아니고 가서 역사를 일으켜 놓고 깨닫게 해 주시려고.


그 앞에 보면 어떤 장면이 나오느냐? 거라사인의 땅에서 돼지 떼가 죽는 장면에서 많이 느꼈느냐? 삼겹살 먹지 말라는 그 말이냐? 예수 믿는 사람이 세상성의 정신 소원 목적으로 잔뜩 들어있으면 이게 바로 돼지다. 쉽게 말하면 육에 속한 사람이다. 육에 속한 사람은 소원 목적이 세상으로 들어가 있다. 이게 육에 속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허락만 되면 그냥 귀신이 들어간다.


사람이 정결하고 성결하고 잡된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한다. 더러운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여지없이 더러운 짓이 나오게 된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창조목적으로 볼 때 사람이 하지 못할 짓을 하게 된다. 그게 귀신들린 것이다.


일반사람들은 귀신들린 사람을 잘 못 본다. 귀신이 들리면 옷이나 벗고 생활도 모르고 집도 모르고 웃고 돌아다니고 울고 돌아다니고 이런 것만 본다. 그러나 영의 눈으로 보는 것은 사람을 겉을 보면 멀쩡한데 정신과 소원 목적이 귀신들린 것을 보는 거다. 이렇게 보는 눈은 도덕성적 지혜지식적인 면으로 보는 거다. 사람을 그렇게 봐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일반적으로 가정관계성 사회관계성 인인관계성이 발라야 한다. 많은 사람이 있을 때, 일대 일로 있을 때 언행심사가 조절이 잘 돼야 한다. 그렇지를 못하면 문제가 있다.


그래서 목사님들 세계에서도 ‘예수는 믿고 똑똑하다고 하지만 저 성격 성질은 할례를 받아야겠구나’ 하는 게 있다. 다시 말하면 고쳐져야 되겠구나. 그런데 사람을 그렇게 못 보고 일반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무난하다고 하는 그 정도면 그게 된 거냐? 아니다. 생명과를 먹고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로서 돼 들어가야 한다. 이렇게 안 되어 들어가면 자기감정에 솟구치고 한다. 이건 다듬어지지를 못한 것이다. 만들어지지를 못한 거다.


사람 중에도 여러 가지 사람이 있는데, 제 잘났다고 혼자 떠드는 사람도 다듬어져야 한다. 그리고 사람이 물어도 대답을 안 하는 자도 다듬어져야 한다. 고쳐야 한다. 모든 면에서 고쳐야 한다. 성질 급한 것도 고쳐야 하고, 더러운 말이 나오는 것도 고쳐야 한다. 그냥 교회 왔다 갔다, 그저 설교 듣고 ‘아, 난 저건 안다. 넌 모르지? 그러니 나는 믿음이 좋다’ 이런 차원이 돼서는 안 된다. 사람 전체성이 예수님처럼 다듬어지고 고쳐져야 한다. 이게 하나님의 온전이다.


건너편으로 가니까 큰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서 바닷가로 왔다. 그런데 상황이 급한 사람이 나타났다. 어떤 사람이냐? 회당장 야이로의 12살짜리 딸이 지금 죽어간다는 것이다. 그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느냐? 그가 예수님 앞에 엎드리면서 그에게 손을 얹어 구원을 얻게 해 달라고 애걸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서 엎드린 것이다.


사랑하는 딸이 지금 죽어가는 마당에 회당의 어른이라는 자존심이나 명예를 내세울 게 있느냐? 말하자면 자기 집 어린아이가 위태로운 상태에 있는데 그 아이의 어머니가 ‘아이고, 내가 머리도 헝클어져 있고 옷도 더러운데 어떻게 이대로 가겠느냐? 거울 앞에 앉아서 화장도 하고 치장도 하고 병원에 데리고 가야지’ 그럴 새가 있느냐? 급하면 맨발로 잠옷을 입은 채로 119라도 불러서 달려가야 한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씻고 다듬고 목욕하고 가면 아기는 어찌 되느냐?


어린아이가 있는 집에는 급하고 바쁘면 병원으로 뛰어야 하니까 어머니들이 항상 준비를 해야 한다. 그리고 아침에는 일찌감치 밥을 먹고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준비성이 있어야 한다. 늦게 일어나서 밥도 안 먹고 가며 ‘아이고 배고파라’ 하는 건 게으른 거다.


앞길이 창창한 딸이, 사랑이 죽어간다. 열두 살 먹은 이 딸이 얼마나 사랑스럽겠느냐? 미래의 소망과 행복이 죽어간다. 영인의 성장과 영능의 실력이 죽어간다. 속절없이 죽어가는 이것을 누가 살리겠느냐? 행복이 죽어가고 소망이 죽어가고 사랑이 죽어가고 실력이 죽어가는 이걸 누가 살리겠느냐?


그냥 사람이 죽어간다로만 보지 말고 열두 살 먹은 어린아이라는 그 속에 눈에 보이지 않는 그 귀함과 존귀성을 느끼면서 생각을 하라. 저 사람이 살면 미래에 어떤 큰일을 이루어 놓을 수도 있는 사람인데 죽어 가면 그게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도 있다. ‘아이고, 진작에 죽었더라면, 저걸 살려놨더니 이렇게 고통을 주는구나’ 그런 사람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사람을 살려놨다면 큰 일군이 될 텐데’ 그렇게 생각이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오늘날 그걸 느낄 줄 아는 자기는 어떤가? 자기가 죽어갈 때 이웃사람들이 ‘아이고, 잘 죽었다. 진작 좀 죽지’ 할까, 아니면 ‘아이고, 아깝다’ 그럴까? 자기 죽을 때 많은 사람들이 뭘 느낄까? ‘아이고, 죽어도 그놈의 성질을 못 고치고 죽는구나’ 그런 것도 있다. 우리가 죽으면 빈정을 받을 런지? 그런 요소가 없는 건지?


이런 사람도 있다. ‘아이고, 그 사람 고생고생하다 고생에서 풀리지 못하고 그대로 죽는구나. 불쌍해라’ 하는 사람도 있고, ‘아이고, 이제 허리 좀 펴고 자식들에게 뭔가 받아먹을 만하니까 그냥 가버리는구나’ 그런 사람도 있다. 사람의 이런 걸 보고 우리가 무언가 느끼게 된다.


본문의 죽어가는 열두 살 되는 이 아이를 이룰구원 면에서 보면 주님의 속성으로 자라야 할 이런 것이 보인다. 미래적으로 보면 ‘시집가서 아이를 낳고, 그 아이가 진리를 잘 받으면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진리의 생명계대를 이어받는 보배로운 그릇이 될 텐데 그게 그만 다 죽어가는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병원에서 자기 식구나 친구나 부모형제가 죽어갈 때 지금 말하는 이룰구원에 관한 이 면을 생각하라. ‘아, 그 사람이 살고 대신 내가 죽어야 할 텐데’ 하는 그런 것도 있다. 우리는 이룰구원의 기도를 할 줄 알아야 한다. 영인성장, 하나님의 속성 두고 기도를 해야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고향에서 오래 전에 나의 외삼촌이 죽었다. 왜 죽었느냐? 통영 해저도 앞에서 큰 그물공장 사장이었는데, 물론 그런 사업을 하려니 사회성을 가져야 하겠지만 그런 사람들은 어디를 가나 술을 먹는데, 그 분이 소주를 많이 먹고 얼굴이 타버렸다. 속 창자가 다 타버렸다. 그래서 그 병으로 죽었는데 그런 사람은 죽어가면서도 술을 찾는다고 한다. 죽은 후에 그 부모님이 우는데 ‘이왕 죽을 거 술이나 실컷 먹고 죽게 내버려둘 걸 왜 내가 그걸 안 사다줬던가’ 하고 대성통곡하고 울더라. 그게 좋은 눈물이냐?


우리는, 특히 우리교회 교인들은 괜히 ‘궁극교회’라고 간판을 붙인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죽음 저 너머 미래의 내 실상이 어떻게 되겠구나’ 하는 이걸 미리 갖다놓고 그 면을 생각하면서 현재에서 그것을 위한 기도를 하라. 그게 성령님에 감화된 기도다. 머지않아 그 기도는 들어주신다. 왜? 지극히 값진 기도이기 때문에 금 그릇에 담겨 올라가는 기도다. 예수 믿어서 부자 되게 해 달라는 기도는 쓰레기 기도다. 불탈 기도 부끄러운 기도다.


현재 우리 모두는 자기 자신에게 죽어가는 게 있다. 지금 현실에서 예수님의 부활성에 먹히지 않는 것은 죽어가는 것이다. 지금 현실에서 예수님의 부활성의 그 정신 그 소원 목적 그 취미 그 가치판단성 그 도덕성 그 능력성에 먹히지 않으면 죽어가는 것이다. 예수 믿는 것은 그것에 먹히는 것이다. 말씀을 통해서 자기가 먹히는 것이다. 


고상한 남편의 사랑에 아내가 먹혀야 하느냐, 안 먹혀야 하느냐? 먹혀야 한다. 먹혀야 자유고 먹혀야 행복이다. 그런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은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에, 여기에는 선 사랑 거룩 진실 의와 주권이 다 들어있다. 이게 아가페다. 이 아가페 사랑에 먹혀야 한다. 먹혀야 하나님과 같은 사람이 되는 거다. 학교에서 선생이 공부를 가르칠 때 선생의 옳은 가르침에 학생이 먹혀야 하지 그냥 제 멋대로 굴러다니면 안 된다. 먹혀야 공부를 잘하는 거다.


오늘날 가정이나 사회나 보면 자기는 자기대로다.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 너도 나도 먹혀야 하는데 그게 없다면 불행이요 지옥이다. 밥 먹고 사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인격적으로 보면 그건 아니다.


결혼이란 인격적 애정적 결합적으로 하나다. 그게 결혼이다. 우리 믿는 사람들 가정에서 그런 걸 요하는 거고, 사람이 그렇게 되라는 것이다. 되려고 애를 써야 하고 돼 들어가야 한다. 안 되면 안 된다. ‘잘 먹고 산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부부의 도에서 그게 아니면 걸려 넘어진 것이다.


우리 모두가 자기를 쳐다봐라. 죽어가는 이것을 누가 살리겠느냐? 악인은 사망에게로 자꾸 먹혀 들어간다. 먹혀 들어가는 이걸 누가 살리겠느냐? 병원에서? 사람 몸의 병은 웬만하면 고친다. 또 자기가 알면 민간요법으로라도 고칠 수도 있는 거다. 성경에 나타난 모든 병자를 병원에서 고치는 병으로만 보지 말라. 그런 식으로 보는 목사는 병자를 데려다가 뭘 하려고 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거는 예수님이 안 하면 안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못 보는 기독자들이 많다.


누가 죽어가는 이 아이를 살리겠느냐? 세상에는 아무도 없다. 예수님 당신이라야 살릴 수가 있다. 예수님은 누구냐? 인간을 만드신 창조자이니 예수님이 더 잘 아신다.


무리들에 에워싸여 빨리 가지를 못한다. 예수님께서 ‘빨리 가자’ 하시고 달음박질해서 뛰어가면 좋겠는데 그렇게 아니하시고 천천히 걸어가시니 땅의 아버지는 후라이팬의 기름처럼 마음이 타 들어간다.


우리에게 죽어가는 게 없느냐? 어린아이하고 현재 나하고 비교해 보면 어린아이는 살아가는 거고, 나는 죽어가는 거냐? 출생하자마다 다 공동묘지로 가고 있는 거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어린아이는 속도가 5킬로고, 나는 몇 킬로로 달리고 있는 거냐? 70키로다(70세). 스무 살은 20킬로. 어쨌든 다 공동묘지를 향해 뛰고 있는 거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생각을 하라. 예수 믿는 생각을 똑바로 하라. (계속)


김경형목사님이 교역자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영원 전에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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