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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대하게 사는 길

요한일서 이한규 목사............... 조회 수 758 추천 수 0 2015.10.08 23:5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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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일4:14-21 
설교자 : 이한규 목사 
참고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638) 2015.6.29 

담대하게 사는 길

 (요한일서 4장 14-21절)


< 하나님을 믿고 나가십시오 >

 사람은 강한 것 같아도 약한 부분이 많습니다. 때로는 별일 아닌 일로 상처를 입고 두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만 믿는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고난과 마귀의 공격을 혼자 다 이겨낼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사실 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더 쉽게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족 중에도 IQ가 높은 사람이 가장 믿음의 수용성이 낮다고 합니다. 그래서 겸손해야 합니다. 은혜 받는 사람들은 대개 겸손합니다.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어야 구원도 얻고 평안도 얻고 축복도 얻습니다.

 흔히 강인한 사람의 표본으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산악인을 들지만 그의 정상 정복 사진을 누가 찍어줍니까? 그들의 짐을 날라주고 등반을 도와주는 셀파가 찍어줍니다.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강인한 산악인도 혼자 산을 정복한 것이 아니라 셀파의 도움을 받습니다. 그처럼 인생의 산을 정복하려면 하나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사람을 너무 신뢰하지 말고 자기도 너무 신뢰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믿었다가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사람이 한둘이 아닙니다.

 서울 강남에 한 초대형교회 목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좋은 목회철학과 제자훈련 프로그램으로 존경을 받았습니다. 다만 목회자 세계에서 돌던 한 가지 아쉬운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분에게 지역적인 호불호가 있다는 소문이었습니다. 그분은 특정지역 출신의 부목사를 주로 신임하고 많이 키워주었습니다. 결국 후임자도 자신의 목회철학을 잘 계승해주기를 바라고 가장 신임했던 그 출신으로 앉혔습니다. 그러나 믿는 도끼에 발등을 찍히고 잘못 후임을 세웠다고 한탄하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사람은 믿을 대상이 아닙니다. 다만 사랑과 공의의 한계 안에서 믿어줄 대상일 뿐입니다. 끝까지 믿을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만 믿고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은 주고 싶어 합니다. 로마서 8장 32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독생자 예수님까지 주신 하나님이 다른 무엇을 아끼고 안 주시겠습니까? 항상 더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나가십시오.

< 담대하게 사는 길 >

 살다 보면 두렵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때 담대함을 잃지 않고 용기 있게 나가야 더 복된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담대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1. 하나님 안에 거하십시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의 구주로 보내신 것을 우리가 보았고 또 증언하노니.” 이 말씀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고 세상의 구세주가 명백하다는 뜻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많은 성도들을 미혹했던 영지주의 사상은 구원을 ‘죄로부터의 자유’로 여기지 않고 ‘영적인 무지로부터의 자유’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죄 사함을 받아야 구원을 얻음을 강조합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적 지식을 소유한 자신들만 구원을 받는다고 주장했지만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또한 이 구절은 구원은 ‘하나님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것’도 포함된 개념임을 암시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인격적인 교제와 동행도 포함된 개념이기에 ‘구원 받은 자의 삶’이란 한 마디로 ‘내 안에 계신 주님 안에 거하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제하고 동행한다고 해서 고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믿음 때문에 애매히 고난당하고 까닭 없이 욕을 먹기도 합니다. 그러면 다 죽을 것 같고 다 망할 것 같지만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의 뜻 안에 있으면 결국 승리합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아십시오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어야 한다고 도전합니다. 믿을 때 성경을 덮어놓고 믿지 말고 성경을 펴놓고 바르게 알고 믿어서 이단에 미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황홀경에 빠지거나 신비한 영적 지식이 있어야 구원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렇게 영적 지식을 내세우지만 실제로 그들은 영적 지식이 탁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배움과 지식이 없기에 신비한 영적 지식을 말로만 과시할 때가 많았습니다. 결국 열등감이 영적 지식을 과시하는 태도로 표출된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요한은 구원은 영적 지식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고 믿으면서 사랑의 하나님 안에 거할 때 얻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포합니다.

 변함없는 사랑의 하나님을 더욱 믿으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그럴듯한 거짓말은 “당신만 영원히 사랑해!”란 말입니다. 그 말에 속지 마십시오. 교회에서도 “나는 이 교회에 뼈를 묻을 겁니다.”라고 하면서 말이 앞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치고 뼈를 묻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말은 그 교회를 개척한 목사도 하기 조심스러운 말입니다. 사람의 영원한 사랑을 믿지도 말고 요구하지도 말고 장담하지도 마십시오. 시간과 상황과 손익에 따라 사람은 변할 때가 많습니다. 너무 앞서가지 마십시오.

 지금 세대는 사랑을 잘 믿지 못하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사람들은 더욱 참 사랑을 찾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사랑 중에 영원한 절대 사랑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만이 무조건적이고 영원하고 제한이 없습니다. 물론 사람의 도움도 귀한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아무리 도와주어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결국 실패합니다. 영원히 의지하고 함께 할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어야 심판 날에도 담대하게 됩니다(17절). 그 ‘심판 날에 대한 담대함’은 ‘생활 속의 담대함’을 낳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사실도 담대함을 주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도 담대함을 줍니다. 사랑과 담대함은 비례합니다. 더 나아가 사랑과 두려움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18절). 사랑이 있으면 두려움이 사라지고 사랑이 없으면 두려움이 생깁니다. 결국 참된 믿음이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구원의 능력 상실과 삶의 고통에 대한 두려움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두려움을 극복하며 사십시오. 두려움은 사랑이 부족하다는 증거입니다. 삶을 긍정하고 사랑과 감사가 넘치면 어느새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 감사기도를 하다 보면 어느새 영혼이 환해지면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가끔 하나님의 빛이 임한 것처럼 마음의 어둠이 급히 사라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언제 그렇습니까?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다짐할 때입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사랑의 빛을 받고 이런 찬양이 터져 나옵니다.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 내 영혼이 찬양하네.” 그 영혼에 어떻게 두려움이 틈타겠습니까? 어떤 때는 기도할 때 하나님을 향한 감사고백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그 영혼에도 어떻게 두려움이 틈타겠습니까? 사랑하면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자신은 사랑한다고 하는데 마음이 여전히 불안한 것은 그 사랑이 말뿐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말뿐인 사랑은 두려움과 불안을 가중시키지만 행동하는 사랑은 인생의 먹구름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4. 사랑의 폭을 넓히십시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와 이웃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랑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19-21절).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자신들은 영안이 열렸기에 말씀에 대한 통찰력도 있고 영계의 비밀을 안다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영성과 은사를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랑의 손길은 베풀 줄 몰랐습니다. 더 나아가 자기 영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쉽게 상처를 받고 역정을 내면서 형제와 교우를 미워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은 그럴듯하게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거짓말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 내포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참된 영성이란 ‘믿음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마음으로는 형제를 미워하면 안 됩니다. 특히 어떤 사람이 외형적으로 못나고 가난하고 배움이 짧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멀리하면 안 됩니다. 심지어는 죄인도 멀리하지 말고 오직 죄악의 영향력을 미치려는 죄인만 지혜롭게 멀리해야 합니다. 나쁜 영향력을 미치려는 사람을 대할 때도 그의 나쁜 영향력을 받지 않도록 필요상 멀리는 하더라도 미워하지는 마십시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할 때는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진심으로 사랑하십시오. 또한 어떤 유익을 얻기 위해 사랑하지 말고 순수하게 사랑하고 때로는 손해도 감수하십시오. 실천과 헌신과 희생이 구비된 사랑이 진짜 사랑입니다. 때로는 져주려고 하십시오. 사랑으로 지는 것이 결국은 이기는 것입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형제를 미워하지 마십시오. 형제를 미워하면 기도응답이 막혀서 자기만 손해입니다.

< 사랑이 있느냐가 문제입니다 >

 왜 두려움이 생깁니까? 너무 자신에 몰두하면 두려움이 커집니다. 그러므로 자신에 대한 몰두에서 벗어나 사랑의 폭을 넓혀야 합니다. 왜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합니까? 어머니가 되면 자녀란 구체적인 사랑의 대상이 생기고 그 자녀를 위해 어떤 희생도 할 각오를 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두려움이 많다는 말은 좀 더 사랑해야 한다는 도전의 말도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가족과 교우와 이웃으로 사랑의 폭을 확대시키면 두려움은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살다가 두려운 감정이 생기면 스스로 물으십시오. “나는 지금 사랑과 나눔을 기피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고 내 가족을 넘어서 보다 많은 사람을 사랑하려고 하십시오. 그래서 세상 끝 날까지 그리고 세계 끝까지 영혼을 품고 선교하려고 하십시오. 이기심을 뛰어넘는 선교마인드를 가지고 사랑하는 대상을 위해 마음을 쏟고 주머니를 비울 줄 안다면 삶의 두려움은 점차 안개처럼 신기하게 사라질 것입니다.

 요새 월새기(월간 새벽기도)를 매달 발행하면서 친구 목사님들이 걱정의 말을 해줄 때가 많습니다. “이 목사님! 아무리 문서선교의 뜻과 취지가 좋아도 200페이지가 넘는 1000원 받고 사역이 지속시킬 수 있겠어요?” 요새 그런 얘기를 너무나 많이 듣습니다. 그런 얘기를 들으면 현실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면서 곧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옵니다. 그러다가 그 두려움과 걱정을 넘어 평안이 찾아옵니다. ‘누군가를 위한 나눔의 사명’을 잊지 않을 때 ‘누군가를 통한 채움의 사랑’을 입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지휘의 손길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이 생기면 어떤 사람은 정신을 잃고 다급하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이 두려움을 없애주세요. 이 고난과 시련도 없애주세요.” 그러나 그때 침착하게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제가 이 상황에서 어떤 일을 하기를 원하시나요? 더욱 사랑하며 살게 하시고 더욱 많이 나누는 사명을 이행할 수 있는 힘과 능력과 지혜와 여건을 주소서.” 그렇게 기도하면 그 기도를 하는 순간부터 신기하게 두려움이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도는 사실상 아무 것도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이 삶을 단번에 변화시키지는 않기에 성도에게도 인생의 가시와 아픔과 고통이 여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사십시오. 그런 자유와 평안과 담대함과 당당함이 어디에서 비롯됩니까? 사랑하는 삶의 실천에서 비롯됩니다. 두려움이 있다면 내게 혹시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 아닌지 늘 겸손하게 먼저 묻고 새롭게 사랑과 나눔을 다짐하고 실천함으로 내일의 삶을 담대하게 개척해 나아가십시오.

 사람을 대하는 모든 행동 동기가 사랑이 되게 하십시오. 다른 계산적인 동기나 저의를 가지고 사랑하지 마십시오. 또한 사람을 질투나 미움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오직 사랑의 대상으로만 보십시오. 특히 인간관계에서 돈과 명예를 따라 움직이지 말고 사명과 사랑을 따라 움직이십시오. 사랑은 성도의 최대 정신과 최대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운동에서 돈을 목표로 한 직업적인 운동선수를 ‘프로’라고 하고 반대는 ‘아마추어’(amateur)라고 합니다. 아마추어란 ‘성숙한(mature)’이란 단어에서 anti의 약어로 사용된 a가 앞에 들어가 철자가 변형된 단어로 ‘미숙한 사람’을 뜻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마추어란 말이 라틴어 ‘아모르(amour, 사랑한다)’에서 나온 말로서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주장합니다. 실력에서는 프로가 되십시오. 그러나 마음만은 늘 깨끗하고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을 잃지 마십시오. 그래야 몸과 마음과 영혼이 건강해집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사랑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사랑을 알고, 사랑이 내 안에 있고, 사랑을 실천하며 살면 누구나 행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사람을 부유하게 만들지는 않아도 가치 있게 만들고 유명하게 만들지는 않아도 아름답게 만듭니다. 믿음은 하나님 사랑과 사람 사랑이 잘 엮일 때 더욱 굳건해집니다. 항상 하나님을 붙잡고 사랑을 실천하며 담대하게 내일의 축복을 향해 나아가는 복된 심령들이 되십시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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