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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전파

누가복음 신윤식............... 조회 수 347 추천 수 0 2016.03.08 23:5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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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3:1-6 
설교자 : 신윤식 목사 
참고 : 은석교회(대구시 국우동) http://www.onlycross.net/ 

제목 : (10강) 세례 요한의 전파
본문 : 눅3:1-6  
2012-05-13  

<본문>

 

1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 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


<설교>

 

◉ 세상과 나 ◉


 우리가 사는 사회는 매일 이야기꺼리가 끊이지 않습니다. 사회, 정치, 경제, 스포츠, 연예 등등 여러 분야에서 이야기꺼리들이 뉴스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이야기꺼리에 귀를 기울이고 관심을 두기도 합니다.

 

 요즘엔 어떤 이야기꺼리가 우리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까? 뉴스를 보니 사회면으로는 여수 엑스포 이야기를 하고 광우병 조사단이 돌아온 이야기도 합니다. 정치면은 너무 어지럽고 저는 관심도 두지 않아서 귀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경제 분야에서도 늘 하는 물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주식이 하락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주식을 보유한 사람들은 한숨을 쉬겠죠?

 

 하지만 주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얘기도 관심 밖일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저는 스포츠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스포츠 얘기가 나오면 채널을 돌려 버립니다. 연예 분야도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이야기꺼리로 등장하고 드라마나 가수 아이돌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신자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실 신자 아닌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주일이면 예배당을 찾아 예배드리고, 그 외 교회 일에 참여하는 것들이 기독교인임을 드러내주는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종교 활동 외에는 기독교인으로서 특별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것입니다.

 

 신자 아닌 사람들이 뉴스를 들으며 한숨 쉬는 일에 우리도 한숨 쉬고, 화를 내는 일에 화를 내고, 탄식하는 일에 함께 탄식합니다. 물가 오른 이야기를 들으면 더 팍팍해질 생활에 어깨가 무거워집니다. 이런 현실에서 원하는 것은 걱정 근심 없이 편히 살았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사람들의 관심거리일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종교를 통해서 마음의 편안함을 누리기를 기대하며 교회를 찾기도 하고, 절간을 향하기도 합니다. 결국 신자든 신자가 아니든 모두가 동일한 관심사를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 세례 요한과 이사야의 시대 상황 ◉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하여 요한이 요단강 부근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는 말을 합니다. 그러면 이 이야기가 오늘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내용입니까?

 

 이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면 신자로 산다고 할 수 있고, 관심이 없다면 신자 아닌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는 우리의 구원과 연결되는 문제인데 이 이야기에 관심이 없다면 그것은 곧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는 요한을 사 40:3-5절의 말씀을 인용하며 선지자 이사야에 빗대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을 이해하려면 누가가 인용한 4-6절의 내용을 이사야의 시대로 돌아가서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누가가 인용한 사 40:3-5절의 내용은 유대인들에게는 가장 어둡고 고통스러운 시대라고 할 수 있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는 다윗과 솔로몬 왕조가 무너지고 성전이 파괴되었으며 많은 백성과 지도자가 바벨론으로 끌려가서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때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 때의 유대 상황이 세례 요한이 등장할 때의 유대 상황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주목할 만한 내용입니다. 1절을 보면 누가는 세례요한이 등장하던 때를 로마의 디베료가 황제가 되어 통치한 지 열다섯 되던 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황제가 파견한 본디오 빌라도가 총독으로 유대 땅을 다스리고 있었고 헤롯은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각기 맡은 지역을 다스리고 있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2절에 보면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라고 말합니다. 본래 대제사장은 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두 사람이 대제사장으로 있었을까요? 역사학자들의 말을 따르면 유대의 종교 문제까지 통치하던 로마 정부가 안나스를 대제사장직에서 해임하고 사위인 가야바를 대제사장으로 임명을 했는데 산헤드린 공회가 그들의 율법을 따라 안나스를 여전히 대제사장으로 인정함으로써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게 된 것으로 말합니다.

 

 때문에 유대 사회에서 대제사장으로서의 권위와 힘은 가야바보다는 안나스에게 더 있다고 할 수 있었을 것이고, 이 같은 사실은 요 18장에서 예수님을 붙잡은 군대가 예수님을 먼저 안나스에게로 끌고 간 것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유대 사회에 대제사장이 둘 있었다는 것은 그들의 종교적인 상황도 매우 혼란스러웠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세례 요한이 등장할 때 유대는 이사야 시대와 동일하게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매우 어렵고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누가가 이사야 선지자의 말을 인용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음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 위로가 없는 세상 ◉

 

고통 가운데 있는 유대 사람을 향해서 외칠 선지자의 말은 ‘위로하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무슨 말로 위로할 수 있습니까? ‘힘들지만 낙심하지 말고 힘을 냅시다’라는 말이 위로가 되겠습니까?

 

 그들에게 정말 위로가 되려면 지금의 모든 상황이 끝나고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어떤 가능성을 제시해주어야 합니다. 포로 생활을 하는 그들에게 절대적인 희망은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런 가능성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위로하지도 위로 받지도 못한 채 살아갈 뿐입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이러한 유대인들을 향해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사 40:2)고 외치라고 하십니다. 유대인이 바벨론으로부터 해방되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근거가 그들의 모든 죄악이 사함을 받았다는데 있습니다.

 

 사 40: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외치라고 하실 때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라고 반문합니다. 이사야가 이런 반문을 하는 것은 말씀을 외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고통 가운데 있는 유대 백성들에게 외칠 말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무슨 말을 해야 그들이 위로를 받을지 할 말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이사야에게 하나님은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사 40:6-8)는 말을 외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풀과 꽃으로 비유합니다. 풀과 꽃은 마르고 시들 수밖에 없는 약한 존재입니다. 인간이 그렇게 약한 존재라면 인간에게 희망 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희망은 영원히 서리라고 하신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말씀이 곧 악한 세력에 붙들려 있는 자들에게 희망이고 힘이고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이사야에게 ‘하나님을 보라’고 외칠 것을 지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을 보게 합니다. 따라서 선지자를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보게 하는 것이 곧 선지자의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고통 아래 있는 유대인들에게 선지자가 위로를 줄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내가 무엇이라 외치리이까’고 반문한 것입니다. 하지만 위로는 선지자가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봄으로써 자연히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인간의 방법이나 수단도 위로가 되지 못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한 것은 이사야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로마의 통치를 받으며 고통 아래 있는 유대인들 에게 참된 위로자로 오신 주를 보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참된 위로 ◉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형편은 이사야 시대나 세례 요한의 시대의 유대인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도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고통을 받았던 때는 있었지만 지금은 해방되어 자유를 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는 강대국의 식민지로 고통을 받던 유대인들보다는 형편이 낫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형편이 더 나은 우리는 위로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국가적 형편이 어떻든 우리 역시 각기 주어진 위치와 형편에서 위로와 평안이 없이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나님을 보려고 하지 않고 사람을 바라보고 세상을 보면서 위로를 기대하기도 합니다. 교회는 신앙의 초점을 인간에게 맞춤으로써 인간의 종교적 욕구를 만족시켜 주는 것을 교회의 존재 목표로 삼는 실정이 되어 버렸습니다. 신자들로 하여금 주를 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게 하고 자기 교회를 바라보게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게 하려고 할 뿐입니다.

 

 성취감이 위로가 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참된 위로가 아닙니다. 풀은 마르고 꽃이 시드는 것처럼 인간의 마음에서 잠시 후면 마르고 시들어 버릴 거짓된 위로일 뿐입니다. 결국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에게 위로가 될 것을 추구하며 목말라 한 채 살아가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듣는 세상일에서 무엇이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던가요. 아무것도 없습니다. 때로 어떤 소식이 위로가 되기도 하지만 말한 대로 잠시 후면 사라집니다. 결론은 우리가 위로 받을 수 있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세상의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돈도 참된 위로가 되지 못하고, 자식이 잘되는 것도 참된 위로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러한 세태에서 유일한 해결책은 주를 보는 것입니다. 구원자로 오신 주를 알고 주를 보는 것만이 참된 위로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이 될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필요한 것이 우리의 죄 문제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 사함을 위한 어린양으로 오셨기 때문에 죄 문제를 알지 않고서는 주를 볼 수 없고 만날 수도 없습니다.

 

 문제는 죄 사함에 대해서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라는 주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에 죄에 붙들려 살아가면서도 마치 죄 문제는 자신과 상관이 없는 것처럼 여깁니다. 그리고 자기 생존을 위해 세상을 기웃거리고 세상의 것을 붙잡기 위해 모든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위기이며 우리가 겪는 불만과 불평과 낙심과 시기 등의 본질적 뿌리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실상을 눈치 채었을 때 죄 사함이라는 요한의 외침이 강한 울림으로 다가오게 되고 우리의 구원자로 오신 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가 곧 희망임을 알게 됨으로써 위로를 얻게 됩니다.

 

 생존의 문제에 모든 초점을 두고 세상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마음이 반응하지 않을 것입니다. 관심 밖의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생명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말씀의 세계를 들여 본다면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에 마음이 반응합니다.

 

 우리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십자가의 길을 가신 예수님을 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을 보게 됨으로 여러분의 심령은 기쁨과 위로로 부요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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