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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39 추천 수 0 2016.01.24 15:5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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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8:26-30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장 26절-30절: 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가라사대 마을에도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와 제자들이 가이사랴 빌립보 여러 마을로 나가실쌔 노중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가라사대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여짜와 가로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 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계하시고.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면서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하셨다. 그러니까 마을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무슨 마을이기에 그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인가? 그리고 집으로 보내면서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한 것이니 그 사람의 집은 마을의 반대쪽이냐, 마을 안이냐? 마을 밖이다. 여기에는 계시성이 다 있는 거다.


왜 마을로 들어가지 말라고 했을까? 들어가지 말라는 그 마을과 소경과는 무슨 연관관계가 있는 것일까? 아무 관계가 없는데 그 말씀을 하시는 건가? 소경 되었던 자에게 영원히 손해가 나기 때문에 들어가지 말라는 것인가?


첫째는 늘 그 마을에 살았기 때문에 소경된 이유가 된 것도 느낄 수 있고 즉, 그 지역에서 나는 어떤 것을 먹고 눈에 해가 와서 소경이 됐는지 그 말이다. 두 번째는 그 마음에 가서 보고 듣는 것과 생각과 마음이 전부는 어두워질 세상에 속한 것이라는 것. 세 번째는 그런 것으로 좋아하면서 살게 되면 영적 소경이 된다는 것. 우리가 어느 장소에 살 때 그 지역의 물이 나쁘면 사람의 내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또 공기가 나쁜 데서 살면 사람의 머리가 어떻게 되겠느냐?


네 번째는 그런 마을에 또 다시 들어가면 영원히 소경이 된다는 것. 다섯 번째는 영적 소경이 되어 있는 마을사람에게는 더 이상 가지 말라는 것. 여섯 번째는 그 곳에 가서 다시 소경이 되면 너는 그 마을사람들의 이용물이 된다는 것. 눈이 감기면 자기 집에 있는 거 다 도둑맞는 거다. 일곱 번째는 그렇게 되면 너의 활동으로 된 소유는 그들에게 다 도둑맞고 가난해진다는 것. 여덟 번째는 소경은 아무나 붙잡고 인도자이거니 하고 따라간다는 것.


아홉 번째는 소경은 자기가 온 길과 자기 집을 즉, 자기 안식처를 못 찾는다는 것. 열 번째는 소경은 눈을 떠야 자기 안식처를 자유롭게 찾아간다는 것. 열한 번째는 그 마을사람들의 모든 언행심사는 본받을 게 하나도 없다는 것. 말이나 행동이나 생활하는 것이 본받을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런 데서 살면 영적 면에서 깨닫는 면에서 소경이 된다는 것이다.


소경이라고 할 때 눈 감은 소경만 생각을 하지 말고 알지 못하면 소경이다. 이용당하니까. 소경은 아무리 벌어놔도 소용없다. 다 도둑맞는다. 영적 소경은 자기 일생을 다 도둑맞는다. 육적 소경을 들고 우리에게 깨닫게 하는 것은 영적 소경이 되면 네 일생은 다 도둑맞는다는 것이다. 열두 번째는 사망과 형벌의 구별 없는 곳을 떠나라는 것 등등이다.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집으로 가라.’ 둔 뜬 상태로 네 안식처를 찾아가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게 어디이겠느냐? 마을을 들어가지 말라는 건 어쨌든 들어가면 영육적으로 안 좋기 때문이다. 사람이 영의 눈을 떠야 자기 마음의 안식처 자기 영혼의 안식처를 생각하게 되고 안식처를 찾게 된다. 쉽게 말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 말이다. 소경이 되면 늘 불안하다. 염려 걱정 근심 속에 살게 된다.


27절-30절: 예수님을 옳게 바르게 정확하게 믿은 사람은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보는 눈이 열린다. 교회는 교인을 말한다. 교인들이 운집해 있으면 그건 교회다. 조금 더 들어가면 영이 중생된 성도들의 무리가 교회다. 영의 눈으로 보면 ‘예수님의 피 공로로 죄와 허물로 죽은 영을 살리셨도다’ 한 이걸 기본구원이라고 한다. 이 기본구원을 얻은 자가 다 교회인데, 이 교회는 실력이 있던 없던 영은 다 중생이 된 것이다. 이제 죽어도 천국은 간다. 그런데 각자 믿음의 실력에 차이가 있다.


예수님을 옳게 바르게 믿는 사람은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보는 눈이, 무리를 보는 눈이, 세상을 보는 눈이, 구별하고 분별하는 지식이 정확하다는 것. 예수님을 옳게 바르게 정확하게 믿은 사람은, 예수는 구원이니 즉,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이치를 밝히 알아서 자기의 이해타산 평가성 결과성 목적성 전부는 신령천국에 놓고 계산을 한다.


그러니까 우리교회의 경우 죽음 저 너머의 궁극적인 그 세계의 결산을 현재에 갖다놓고 결산을 하는 것이다. 현재 살면서 자기의 언행심사를 그렇게 결산하고 간다 그 말이다. 이걸 다른 말로 적중성으로 믿는 것이요, 이룰구원을 잘 이루어 가는 성도다. 이게 정확한 믿음이다.


마지막 시대의 많은 교인들이 선악과 따먹은 이방세상 사람들의 기준의 눈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 활동하는 것 역시 하나의 종교적인 활동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의 온전의 수준으로 들어가야 하는 건데 그게 아니고 활동적 수준에 목적을 놓은, 그러니까 부흥 발전의 개념이 숫자적 건물적 이런 걸 기준 삼아 ‘믿음 좋다, 아니다’ 하는 이런 수준을 못 벗어난다.


이방 불신세상 사람들도 그런 수준으로 본다. 성공했다고 할 때 많이 가지고 있는 소유성을 기준으로, 또한 유명하다고 하는 걸 눈에 보이는 어떤 업적으로 논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걸 기준해서 믿음을 논하는 게 아니고 ‘당신을 얼마나 닮았느냐’ 하는 사람의 온전에 두고 있다.


제목설교를 하게 되면 제목을 강조해서 나타내야 하기 때문에 이런 것 저런 것을 막 갖고 와야 한다. 그러나 성경은 제목설교가 아니기 때문에 한 사건이 있으면 ‘그 사건에서 주격이 누구며, 어떤 정신 사상을 가지고 주위의 존재와 연관을 짓고 있느냐’ 하는 것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자기 수준도 가운데 서 있는 건지, 두 번째 라인에 서 있는 건지, 세 번째 라인에 서 있는 건지, 이방 불신사상에 서 있는 건지 알게 된다. 그걸 모르면 무조건 일하는 것을 가지고 믿음 좋다고 하게 된다. 이건 큰일 날 소리다. 이건 종교적인 기존적 수준이다.


소원이 바꾸어지지 않은 채 선악과 먹은 상태로 성경구절만 씌워서 말을 하면 이건 영생과를 못 먹고 선악과를 먹는 건데, 그렇게 하는 본인들은 자기는 영생과를 먹고 있다고 고집을 한다. 다시 말하면 성경은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 실상적인 인격의 온전에 교훈이 들어가는 건데 교회에서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일반사회 윤리 도덕적인 기준에 놓고 설교를 하니 교인들은 이게 하나님의 영생과인 줄 안다. 그게 하나님의 뜻인 줄 안다. 그러나 그건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런 것은 이방종교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구절대로 하는 것이 영생과가 아니다. 영생과는 성경구절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구절대로만 한다고 하면 바리새교인들처럼 종교적인 사람은 될지라도 사람의 성품은 안 바꿔진다. 이러면 사람이 교만한 자가 된다.


그런 운동이 교회적으로 나가면 이거는 외식운동이라고 한다. 속사람을 바꾸는 게 아니라 ‘행동을 잘 하자. 하지 말라’ 하니 외식이 돼버린다. 이걸 빨리 빨리 생각을 해야 하는데 안 그러면 사람이 안 바뀐다. 사람은 안 바뀐 채 교회에 열심히 다닐 수도 있다. 그러나 이치는 하나도 모른다. 그러니 사람이 무디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적 본질을 기준하여 성령의 고차원적 수준의 눈을 가져야 한다. 하나의 종교적 교파나 파벌적인 지식만 가진 종교인이 돼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절대적 실상적 본질적인 그 수준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의 말인즉 ‘주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말은 맞는 말이다. 말이 맞는다고 해도 ‘들은 데서 나오는 말이냐, 중심에서 신앙의 질에서 나온 말이냐’가 있는 것이다.


사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의 예수님을 아는 수준이 사람들이 말하는 그 소리를 소문으로 들은 그런 정도의 수준으로 예수님을 안다면 안 될 일이다. 듣고 아는 수준으로는 안 된다. 이건 모르는 것보다야 낫지만 그러나 이건 성경으로 들어가서 영적인 이치를 깨닫고 나오는 수준과는 다른 것이다.


‘주는 그리스도이니이다.’ 사실 그리스도는 창세 전 영원 전서부터 선재적 그리스도로 계셨던 분이다. 지금 대화하는 이 예수님은 창세 전 영원 전 하늘나라에 계셨던 분이다. 그래서 신학적 용어로 이를 선재적 그리스도라고 한다.


‘나는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 하셨는데 아브라함의 나이는 2천 살이 넘지만 예수님의 육신의 나이는 30살도 안 됐다. 30대인 이 예수님이 바리새교인들을 보고 ‘나는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있었다’고 하니 그들이 노발대발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정신없는 소리로 들린다. 이게 육신의 개념으로 인간들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이다. 우리는 주님이 생각하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이게 신앙의 세계다.


지금 하나님이 몇 살이냐? 하나님은 나이가 있느냐, 없느냐? 없다. 그러니까 영원히 계시는 0 살이다. 시간 초월이다. 인간의 표현으로는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아담과 하와를 막 만들어 놨을 때 몇 살이냐? 지금 현재 인간의 눈으로 본다면 몇 살로 보이는 거냐? 30대로 보이겠지만 실제 나이로는 한 살이다. 그러니까 성경을 깨달으려면 인간의 사고방식으로는 못 깨닫는다. 그러나 표면은 그대로 시인하면서 그 속의 뜻을 깨닫는 면에서 인간의 용어를 빌려서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창세 전 영원 전서부터 선재적으로 계셨던 분인데, 이 분이 도성인신 해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시기 전에 6개월 먼저 세례요한을 보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이 오시기 6개월 먼저 세례요한을 부정모혈로 인간 몸을 통해서 태어나게 해서 세례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맞을 일을 준비케 했다.


구약시대의 엘리야 선지자도 그리스도께서 보내셔서 아합 왕 때에 능력으로 그리스도의 일을 나타냈다. 하나님의 뜻을 나타냈다. 그 외에도 그 후에도 여러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이적과 기사와 표적과 예언으로 선재적 그리스도의 뜻과 마음을 알게 해서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예수 그리스도로 도성인신 하여 사람으로 오실 때 반갑게 만나고 영접이 될 수 있도록 하셨다. 옛날에 왕이 가기 전에 앞서서 가는 사람이 ‘물렀거라’ 했듯이.


당신의 종들은 보냄을 받은 자들이다. 그러면 보냄을 받은 당신의 종들은 뭘 가르치고, 뭘 외치고, 무엇으로 인도하는가가 나오는 거다. 보냄을 받은 자들은 이방세상이 소원 목적하는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을 전하지 않았다.


세상 것으로 세상을 자랑하는 것은 마귀가 보낸 것이다. 예수님의 시험에도 이게 나왔다. 사상적으로 보면 에덴동산에서도 이게 나왔고, 오늘날 거짓 목회자 거짓 종들이 그 짓을 하는 거다. 교인들이 그런 거짓 종들 밑에서 충성봉사를 하려니 얼마나 등이 휘고 골이 빠지겠느냐?


예수 믿는 것은 짐을 자꾸 더는 거다. 모르는 것을 알도록 하면 더 가벼워지고, 사람이 기분이 좋아지고, 자꾸 기쁘고 행복해지고 쾌활해진다. 그런데 그런 건 안 해주고 자꾸 충성봉사로 짐을 맡겨 놓으면 무거워진다. 이건 거짓 종들이다.


그리스도는 선지자의 예언대로 인간 되어 오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창조의 목적대로 우리를 바로 세우기 위해 33년을 하나님 보시기에 흠과 티가 없이 사셨고, 고난 받고 죽었다가 3일 만이 부활하시고, 하나님과 우리 인간 사이에서 우리의 죄를 옮겨버리는 치워버리는 중보의 사역을 하셨고, 또 승천하신 영원히 죽지 않는 그리스도이시다.


사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죽지 않는 곳에서 오셨고, 인간 되어 오셨고, 우리를 살리려고 죽지 않는 일을 하셨다. 또 베드로에게 영원히 죽지 않을 곳으로 가실 분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다. 그리스도는 영원히 죽지 않는 분이다.


이 그리스도의 하시는 일은 우리 인간을 죄에서 해방시키고, 우리를 죄와 관계없이 살게 하고, 세상에서 나그네로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처럼 실상화 시켜서 신령천국에서 영능의 실력으로 그리스도처럼 영원히 기쁘고 행복으로 즐겁게 누리게 하는 것이다.


이 뜻을 모르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단순히 표면적인 것만 보고 사회정의를 외친다. 표면으로만 보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어딘지 모르게 세례요한처럼 말을 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죄를 지적을 했는데 세례요한도 와서 죄를 지적을 했으니까. 세례요한이 세례를 줄 때도 ‘독사의 자식들아’ 하고 지적을 했다. 또 세례요한이 잔치 때 누구의 죄를 지적을 했느냐?


그리고 예수님을 엘리야 같다고도 한 것은 예수님께서 구약시대의 엘리야처럼 능력을 잘 행하시니까. 또 예수님을 선지자들 중의 하나라고도 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예언을 하셨으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부분적으로 보고 그렇게 각각 생각을 했듯이 오늘날 교회 목회자들도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부분 부분적으로 보고 그 한 부분을 따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스도를 온전히 알지 못하고 부분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이런 이상한 짓이 나오는 거다. 여기서 거짓도 나오고, 귀신들린 약령 들린 자도 나오고, 이단자들도 나오는 거다.


예수님은 온전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이 사람에게는 이 면의, 이 사람에게는 이 면의 각기 다른 것을 고쳐주셨는데 거짓 종들은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그 부분 부분 중에 하나만을 똑 떼어서 그것만 하려고 한다 그 말이다. 그러면 그게 천국복음이냐? 그건 천국복음이 아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뜻과는 전혀 다르게 돼버린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만나본 제자들과 같지 아니한 즉, 그리스도를 소문으로만 듣고 아는 식의 목회자들이 많다. 이건 성경을 보기는 봤지만 소문을 듣고 목회하는 것과 같다. 이렇게 되면 그리스도의 증거가 정확하지를 않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준 어느 한 부분만 가지고 ‘이래야 능력이다. 저래야 능력이다’ 하는데, 성경에서 능력이라고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인격과 성품이 만들어진 것을 능력이라고 한다. 그 일에 수종드는 자가 능력에 수종드는 자이다.


사람이 부분적으로는 축구도 하고 탁구도 할 수 있으나 그 어느 것을 하나 잘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완전자냐? 그건 아니다. 그런 것은 불신세상이야 먹고 마시고 살려니까 자기가 선택한 업종에 따라서 하는 거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런 걸 가지고 자랑할 건 아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사건 환경 존재 물질 등 모든 것을 들어서 나를 당신처럼 하나님의 온전자로 만들려고 하시는데, 이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인간의 표현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다 달라붙어서 만들려고 해도 나 하나를 당신처럼 만들기가 그렇게 힘이 드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 일을 억압 강압으로 할 수가 있느냐? 자기 하나를 사람 되게 만드는데 있어서 온 천지만물과 신령계가 다 달라붙어 하는데 당신의 만능의 능력으로 눈알을 빼든지, 허리를 부러뜨리든지, 손발을 꺾든지 해서 척척 하면 될 터인데 왜 그렇게는 안 되는 거냐? 인간 너에게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유자에게는 반드시 행위에 따른 심판이 있는 것이다. 자유가 없으면 심판이 없다.


그러면 자유가 있기 때문에 심판이 있으니까 자기에게 자유가 있는 게 좋겠느냐, 없는 게 좋겠느냐? 또한 심판이 없이 동물처럼 사는 게 좋겠느냐, 심판이 있더라도 자유가 있는 게 좋겠느냐? 인간은 자유가 있는 게 좋은 것이다. 인간에게 자유는 생명보다 귀한 것이다. 왜냐? 이 인간의 자유를 활용해서 자기를 영원한 참 자유자로 만들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게 이 자유의지를 주신 것은 자기를 참 자유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이 자유를 가지고 죄를 다스리고 모든 사건 환경을 다스릴 줄 아는 그 자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오신 것이고 말씀의 교육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말을 들으시고 예수 그리스도 당신의 일을 막 소문을 퍼뜨리라 했느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느냐?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왜 그랬을까? 아무에게나 말을 하면 예수님께서 어차피 언젠가 죽기는 죽을 건데 앞당겨서 죽기 때문에 그런 건가?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말라고 경계하신 것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에게 문제가 있어서냐, 말을 하면 당신이 빨리 죽을 것이기 때문이냐? 제자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즉 제자들을 위해서 아직은 말할 단계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보면 기독교 안에 구국주의 사회주의 신비주의 은둔주의 초절주의 극기 극복주의 자유주의 등 얼마나 많으냐? 이게 어디서 다 나왔느냐? 예수님을 부분부분 면에서 보고 ‘나도 그렇게 해야지’ 하며 예수님의 어느 한 부분을 따다가 자기도 그렇게 해 보려고 하는 데서 나온 것들이다. 그러니까 우리의 온전과는 관계가 없는 활동이나 사역의 한 면만 따서 간판 붙이고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면서 자기도 기독교라고 하는 것이다.


이건 쉽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정확히 만나봐야 정확히 그리스도의 마음을 표현하는 건데 그건 없이 예수님의 어느 한 활동만을 따다가 그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다. 이건 성경으로 보면 소문만 들어서 목회를 하는 거다. 그렇게 되면 이게 무슨 온전하게 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되겠느냐? 안 된다.


소문을 들었느냐? 그러면 직접 만나야 한다. 직접 만나면 사람이 변화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속성이 변화가 된다. 따라서 사람을 충성봉사에 매달리게 하면 안 된다. 말씀에서 깨달음으로 주님을 만나야 한다. 그래야 인격의 사람이 된다.


우리가 다 인격자이지만 인적 인격성이 아닌 신적 인격성으로 되는 여기에는 예수를 오래 믿어도 하나도 안 된 사람도 있고, 믿은 지 얼마 안 됐어도 빨리 빨리 형성이 되어가는 사람도 있고, 귀만 높아서 좋은 말씀을 찾아다니기는 하는데 속에 본성이 그대로 들어있어서 자꾸 마귀냄새가 나는 그런 것도 있고, 참 여러 가지 형태다. 어쨌든 성경에서 그 분을 인격적으로 만나야 한다. 소문만 듣지 말라. 소문만 듣는 형식의 믿음을 가지지 말아라.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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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53 마태복음 하느님의 대언자(代言者) 마21:33-39  김부겸 목사  2017-01-16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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