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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7:6-18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7장 6절-18절: 가라사대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유전을 지키느니라 또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유전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가르치는 교훈이 아주 중요하구나. 특히 목사님이 목회하기 전에 어느 신학교에 들어갔던 신학교에 가면 이런 저런 학문을 배우니까 뭔가 쨍하는 것 같아서 목회자가 되어서 신학교에서 깨달은 그것을 교인들에게 가르친다고 하지만 사실은 이룰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것이 많다.


그러니까 유형교회 안에는 무형교회의 본질이 있는 것인데 무형교회의 본질은 이룰구원이 기본으로 들어가 있다. 쉽게 말하면 주님의 구속이 들어있는 것이다.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렸고 중생시킨 것까지가 기본구원인데, 교회에는 하나님께서 하신 이 역사가 들어있다. 이걸 상징적 계시적으로 구약시대적으로 일어난 역사를 보면 법궤가 있는데 이 법궤 안에 세 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십계명의 두 돌판, 즉 말씀과,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즉, 생명과, 그리고 만나 담은 항아리 즉, 우리 속에 말씀을 담고. 그러니까 마른 막대기 같은 우리에게 생명이 깃들게 하고, 우리 마음의 비석에 하나님의 계명을 새겨두었고. 이게 다 우리의 기본구원을 상징하는 건데 이건 인간 내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권적으로 독권적으로 된 거다.


그 다음에 그 기초, 그 터를, 그 신앙 믿음, 그 정신을 기초와 기반으로 해서 자기가 성질과 성분과 성격적으로 성장되어 올라가고, 이것이 언행심사로 나오는 게 하나님의 사람이요 신의 아들이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이 이치를 모르면 자기의 존귀성을 모른다. 이 이치를 모르면 언젠가 불타서 없어질 세상 물질적 요소적인 것을 가지고 자기를 행복하고 존귀하고 영광스럽게 만들려고 하게 된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속은 텅텅 비었다. 이런 사람은 그런 걸 배경 삼아서 자꾸 자기를 나타내려고 한다.


예수 믿는 사람이 시장에 가서 장사를 한다면 가만있으면 안 된다. 광고도 하고 치장도 하고. 세상은 그런 것이고 장사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사람은 예수 잘 믿게 하기 위해서,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믿는 사람이 장사를 하면서 성경만 들여다보고 가만히 있으면 손님이 오느냐? 장사하는 곳에서는 장사하고, 성경 보는 곳에서는 성경을 보고, 체육 하는 곳에서는 체육을 하는 것이다. 때에 따라 규모가 있는 것이다. 세상은 원래가 나타내는 곳이다. 기독자는 속의 것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복음을 전하려니까.


17절: 예수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함께 따라 들어가서 그 비유를 묻는다. 만일 무리들이 있을 때 묻는다면 묻고자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저런 별 소리가 다 나오기 마련이다. 예수님 입장에서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고, 우리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이야 어떤 말씀이나 소리가 나와도 다 구별 분별해서 바로 잡아주시지만 우리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혼란스러울 것 같다. 이 사람이 이렇게 묻고 저 사람이 저렇게 묻는다면 얼마나 혼란스러울까? 어쨌든 집으로 들어가셨으니 예수님을 독차지한 제자들 입장에서 조용하게 묻기가 좋다.


조용할 때 묻는 건 특식이다. 내가 스승 밑에서 신학 할 때 다른 교회에 나갔는데 이 교회에 어느 전도사가 와서 집회를 하는데 그 분이 이단이라는 소리가 들려서 학감에게도 묻고 학장에게도 묻고 스승목사님에게도 물었다. 어쨌든 스승목사님을 조용히 찾아가서 ‘우리교회에서 이런 분을 모시고 집회를 한다고 하는데 이 분이 이단이라고 하는데 어떻습니까’ 하고 물으니 나를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가서 1대 1로 말씀을 해 주셨다. 그게 특식이다.


그 때 기본구원을 말씀해 주셨고, 이룰구원 부활구원 영화구원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 이단자라고 하는 사람의 집회는 어디서 걸리는가 하니 우리의 이룰구원 성화구원에서 걸린다고 하셨다.


기본구원에서는 마귀나 거짓 종들이나 모든 이단들이 터치가 안 된다. 부활구원에서도 터치가 안 된다. 영화구원도 누림이니까 터치가 안 된다. 그러나 이룰구원에서는 터치가 된다는 것. 마귀의 모든 시험에는 이룰구원에서 터치가 된다는 것.


그 때 들은 것을 아직까지 잊어버리지 않고 성경을 연구할수록 그게 자꾸 확장이 되어 깨닫게 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산으로, 바닷가로, 누구의 다락방으로, 누구의 집으로 데리고 다닌 게 뭐냐? 우리의 이룰구원의 이치를 가르쳐 주려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신학공부 나오는 목사님들께 어찌하든지 특식을 먹여주려고 ‘같이 밥을 먹읍시다’ 라든지, ‘한 번 밖으로 바람 쐬러 나갑시다’ 하는데 이건 그냥 ‘놀러간다. 꽃구경 간다’ 그 중심이 아니다. 의례히 어디를 가면 관광버스 타고 노는 것 같은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럴 때 ‘아, 내가 그동안 복음사역에 동참하고 싶었는데 이럴 때 내가 해야 되겠다’ 하는 게 이룰구원의 동참성인데 보면 목사님들에게 그게 없다. 두 번이나 갔는데 내가 학을 뗐다. 갈 때는 사모님들도 데리고 오라는 것은 사모님들도 데리고 와서 벽을 허물고 교우들 관계나 이런 저런 성경얘기를 하며 깨달음이 들어가길 바라서 그러는 건데 그게 없다. 공부할 때는 안 나오다가 그런 때만 싹 얼굴을 보였다가 그게 지나면 그림자도 안 보이는 목사도 있고. 이건 안 된다.


스승목사님들이, 또는 선배목사님들이, 또는 윗사람들이 먼저 손수 본을 보여주면 믿는 사람이니까 진리이치의 깨달음에서 나오는 도의 사람이고 또한 웬만하면 사람이 양심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게 싹싹 빨라야 하겠는데 의례히 ‘그건 스승목사님이 하는 거다’ 이런다. 그러면 그 사람은 신앙이 자라지 못한다.


예수 믿는 사람은 직장에서나 사회에서 굳은 일을 잘한다. 그러면 안 믿는 사람들은 그걸 보고 그 일을 같이 하는 게 아니라 한 술 더 뜬다. ‘아, 그거 당신이 그동안 했으니까 이왕 하던 거 계속 하라’ 한다.


내가 좋은 일을 할 때 이렇게 되면 안 된다. 절도가 있어야 한다. ‘내가 하는 걸 보고 어느 정도는 깨닫겠지’ 하고 솔선해서 할 수는 있지만 그런데 그게 안 되면 그런 짓은 말아라. 그렇게 할 사이가 없다. 오히려 ‘세상 굳은 일은 예수 믿는 사람이 잘하니 그 사람들에게 시켜라’ 이런 식이 돼버린다. 세상 사람들은 원래 그런 것이다.


그러나 믿는 나에게 인신공격을 할 때는 그대로 들어라. 말을 가지고 남의 인격을 죽이는 사람은 내버려둬라. 그 사람이 그렇게 한참 신나게 떠들 때는 ‘네가 넘어질 시기가 왔구나’ 하고 그냥 둬라.


그리고 내가 솔선해서 굳을 일을 할 때 다른 사람들이 그런 나를 칭찬을 하면 그걸 절대로 칭찬으로 듣지 말아라. 자기의 고약한 마음을 남을 칭찬함으로써 가리려는 경우도 있는 거다. 그게 참 교활한 거다. 남을 칭찬하면서 자기의 교활성을 고양이 발톱처럼 숨긴다는 것은 참 교활한 거다.


예수님께서 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셨기 때문에 이제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독차지 했으니 예수님께 조용히 묻기가 참 좋다. 또한 예수님께서 집으로 들어가셨다는 것은 영의 눈으로 보면 계시적 의미로 한 가족의 의미를 갖는다.


믿음의 가족이라 할 때 진리본질로 된 가족을 말하는데, 이런 가족이야말로 세상의 금은보석이나 재산이나 그 어떤 보화보다도 더욱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것이요, 이런 가족이 보화라면 가장 귀한 보화이다. 온 가정이 화목을 하려면 모든 가족이 그런 정신을 갖는 것이 옳은 정신이다. 그러나 가족이라도 물질적 이해타산을 가지고 있으면 ‘왜 안 찾아오느냐? 왜 안 보이느냐’ 하게 된다.


자녀가 생활에 바쁘면 부모가 찾아올 수도 있는 거고, 형이 찾아올 수도 있는 거고, 동생이 찾아가 볼 수도 있는 거다. 왜 그런 데다 격식을 찾아서 다투느냐? 왜 믿음보다도 사람의 유전을 가지고 격식을 찾느라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느냐?


위아래를 생각하는 것은 존경과 사랑에서 되는 일이지 ‘나는 어른인데, 나는 아이인데’ 하며 격식을 차리는 데서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이런 격식으로는 사람이 만들어지지를 않는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사랑을 가지고 통해야 한다. 사랑을 가지고 통하는 데는 허물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사랑이라는 여기에 위아래가 다 허물어지고 예의가 벗어나는 건 아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이 근원이 돼서 인간사랑은 써먹는 거다. 격식을 따지면 안 된다.


너의 보화가 재산이냐? 돈이냐? 물질이냐? ‘너희들은 나의 면류관이다.’ 이게 존귀영광성이다. 그럼에도 이해타산 가치판단 평가를 그렇게 못 내리느냐? 회사가 사람을 존귀하게 여길 줄을 모르면 그 회사는 망한다. 장사꾼이 사람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면 그 점포는 망한다. 나라도 가정도 회사도 다 한 식구다. 사람을 귀하게 여길 줄 모르면 그 자는 사람 가운데 못 산다. 그런 너부터 왕따가 된다.


진리이치는 하나님의 유업을 이어줄 수 있고 내려 받고 또 이어주고 할 수 있는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가장 훌륭한 재산이다. 진리이치는 자기를 살려주고, 하나님처럼 되어가게 인도하고, 자기 속에서 안 죽는 것으로 생산이 되고, 자기 속에서 죽어가는 생각도 안 죽는 것으로 살려낸다. 이게 부활성이다.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 가졌던 세상지식은 다 죽은 지식이다. 믿은 이후에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밝은 이치로 자기 속을 살려야 한다. 그래서 목사님들은 이 일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님 앞에 벌벌 떠는 자리다. 말 한 마디로 교인들이 죽고 산다. 아까 말한 대로 이건 성소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거다. 하나님 앞에서 진리의 옳은 척도에서, 말씀이치에서 깨어지고 다듬어져야 하나님께서 들으실만한 기도를 하게 된다.


자기 집의 가장 중요한 재산은 자기 가족인줄 알아라.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보배인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자타가 뭐가 재산인 줄을 모르기 때문에 자기 필요에 의해서 가족을 생각하기 쉽다. 이건 잘못 됐다. 가족이라는 그 결속력이 잘못된 것이다. 그래놓으면 가족을 물질 이해타산으로 대하기 때문에 ‘성격이 안 맞고, 성질이 안 맞고’ 하게 되는 거다.


돈 때문에 사람을 버리고, 세상의 무엇 때문에 사람을 버리고 하는 건 사람이 가질 바 생각의 차원이 저질인 것이고, 이렇게 살면 살아갈수록 무슨 사건을 만날 수 있는 그것이 미래적으로 놓여져 있는 것이다. 그런 걸 미리 보는 믿는 자들의 지혜지식이 얼마나 고상하냐? 예수님을 참 믿고 따르는 자는 그것을 알고 살아야 한다.


18절: 하나님의 계명은 위로부터 온 것이다. 인간의 유전은 선악과 따먹고 타락되고 저주받은 인간으로부터 온 것이다. 불교 유교의 도덕성은 성경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다.


성경의 부모공경은 주 안에서 부모공경이 되기 때문에 쉽게 간단히 말하면 부모를 천국으로 올린다. 그런데 세상의 부모공경은, 유교 불교의 부모공경은 하나님으로부터 선악과 따먹고 나온 저주 받고 타락된 공경이므로 부모가 좋다고 하는 대로 해 주는 게 부모공경이다. 자식입장에서 좋다 하는 대로 하면 이건 부모의 취미나 생각과는 다르기 때문에 부모공경이라고 하지를 않는다.


부모가 해 달라는 대로 하려면 제사도 해야 되고, 술도 사 드려야 되고, 담배도 사드려야 한다. 이건 사람이 몹쓸 것으로 들어가 있다. 그런 식으로 자식에게 또 내려가고 내려가고 하면 그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 이런 데서는 참 복잡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화를 내고 헤어지자고 하고 싸우고 한다.


쉬운 예를 들면 결혼 때에 ‘며느리가 예물을 해 왔네, 안 해 왔네’ 하며 자식에게 헤어지라고 하는데 그게 부모가 할 소리냐? 정말 몹쓸 부모다. 그게 다 하나님 앞에서 죄악 된 생각들이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하와에게 뭘 갖고 갔느냐? 면사포를 쓰고 갔느냐? 그런데 요즘은 결혼을 하는데 뭘 그렇게 이유도 많고 말도 많으냐? 이러면 살아갈수록 골칫거리다. 그게 병이고, 그게 문제가 되고, 그게 가정파괴가 되고 한다.


세상적인 교인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부르나 그의 마음은 세상 것에 붙어있다. 보암직 먹음직 탐스럽게 보이는 세상이라는 것에서 자기의 신앙을 찾는 자는 매우 어리석고 몰지각한 사람이다. 그런 어리석은 사람과 살지 말라. 현재 살고 있는 자는 깨닫게 하라.


사람이 왜 어리석고 지각이 없느냐? 믿는 자기가 썩고 불타지고 변질될 것으로 이해타산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면 이 말씀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자기 속에 들어와도 분별해서 들으면 된다는 말이냐? 그건 아니다.


그러니까 이 말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교인은 하나님의 거룩하고 신령한 속성으로 되는 인격과 신분인데 만일 세상성 타락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이는 세상 속화성으로 그대로 있다는 것이고, 세상 일반인과 질적으로 공통화 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럽다는 말이다. 교회가 일반 세상적인 불신자들처럼 저질적 차원으로 불타지고 썩고 변질 변동되는 것으로 소원 목적을 가진 차원으로 있으면 더럽다는 말이다.


믿는 사람이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공통적 차원으로 생각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그만큼 예수님을 속되게 저질적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자기가 더러우면 부모가 욕을 먹는 것처럼 예수 믿는 사람이 더러운 차원에 있으면 안 믿는 사람이 예수님을 욕을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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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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