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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자(1)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347 추천 수 0 2019.03.28 21:5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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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15:11-32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8.7.29 주일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탕자(1)

눅15:11-32

 

꽤 오래 전에 ‘노란 손수건’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유행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감옥에서 출옥하여 집에 돌아가는 어떤 아들의 이야기였습니다.


이것은 열차 안의 두 남자의 이야기이다. 둘 중 한 남자는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아, 길동무인 다른 남자는 자신에 대해 한 번 말해보라고 설득하는데 애를 먹었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열었다. 그는 죄수로 멀리 있는 감옥에 수감되어 있었다가 5년 만에 출옥했는데, 가족들은 너무 가난해 찾아오지도 못하고, 신문 기사를 거의 못 읽을 정도로 배우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감옥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갈 때 자신을 위한 신호를 만들어 놓으라고 편지를 썼다. 만약 가족들이 그를 원한다면 정원 맨 끝자락 철도 가까이에 있는 큰 사과나무에 흰 리본을 묶어 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자신이 기차에서 내리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가족들이 그를 원치 않는다면 그 나무에 아무것도 걸어두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그는 기차에서 내리지 않고 다른 곳에서 새 인생을 찾을 것이었다. 그는 마을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으며, 그래서 밖을 볼 수가 없다고 말했다. 그의 새 친구는 그 대신에 창가 쪽에 앉아 사과나무를 보고 말해주겠노라고 했다. 시간이 흘러 그는 남자의 팔을 잡았다. "바로 여기야." 그가 말했다. "세상에! 나무 전체가 흰 리본으로 덮여 있어!“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


우리는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세 가지 잃은 자 비유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오늘은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인데, ‘탕자 비유’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나 자기의 꿈을 맘껏 펼칠 수 있는 세상으로 나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나누어 달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의 상속법에 의하면 아들이 둘인 경우 둘째 아들이 받을 유산은 아버지 재산의 1/3에 해당하지만, 아버지가 살아 있는 경우에는 상속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은 자신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거기서 그는 허랑방탕한 생활로 아버지께 받은 재산을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때마침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게 되었습니다. 굶주린 이 아들은 모든 것이 풍족한 아버지 집을 생각하게 되었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는 멀리서 오고 있는 아들을 보고 뛰어나와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으며,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잔치를 열었습니다.


이 비유는 죄인들이 돌아올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나 반갑게 맞아주시고 기뻐하시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죄인들이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시며, 돌아오면 아무 조건 없이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며 영생을 주십니다.

 

유산을 요구하는 둘째 아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자기 몫의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유대의 상속법을 무시한 행위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유산을 미리 받았다 하더라고 아버지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재산을 임의로 처분할 수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째 아들은 그 유산을 현금으로 바꾸어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 둘째가 아버지에게 말하되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 하는지라 아버지가 그 살림을 각각 나누어 주었더니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12-13절)


둘째 아들은 아버지 집에서 농사나 지으며 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는 아마도 도시에 나가 사업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둘째 아들은 꿈을 품고 먼 나라로 갔지만 유혹을 받아 타락했습니다. 꿈은 펼쳐보지도 못한 채 방탕한 생활로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하고 말았습니다.


둘째 아들은 하나님을 떠나간 죄인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이 멸시하고 정죄하던 세리와 죄인들을 둘째 아들에 비유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떠난 아들의 형편


방탕한 생활을 하던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다 탕진해버렸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자, 이 아들은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다 없앤 후 그 나라에 큰 흉년이 들어 그가 비로소 궁핍한지라”(14절)

둘째 아들은 돈이 다 떨어졌고, 생전 처음으로 궁핍하여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아들은 그 나라 사람에게 가서 더부살이를 하며 돼지를 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조차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가서 그 나라 백성 중 한 사람에게 붙여 사니 그가 그를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는데 그가 돼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치우고자 하되 주는 자가 없는지라”(15-16절) 이제 굶어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간섭을 벗어나 맘껏 자유를 누리며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가진 돈을 모두 탕진해버렸고, 마침내 이방인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심지어 그는 유대인이 부정하게 여겨 먹지도 않는 돼지를 치는 신세가 되었으며, 굶주려 목숨을 부지할 수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굶어 죽어가는 그에게 아무도 동정을 베풀어주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온 둘째 아들은 가진 것을 모두 잃었고, 이제 아무 소망도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둘째 아들은 하나님을 떠난 죄인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본래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하여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아갈 때 가장 영광스럽고 복되게 살 수 있습니다.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완전하고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을 거역하고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나갔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롭고 하나님처럼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떠나자 인간은 죄악과 절망과 고통 속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가장 비참하고 소망 없는 자리로 떨어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아버지께로 돌이키는 탕자


가진 돈이 다 떨어지고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한 둘째 아들은 굶주려 죽게 된 상황에서 아버지 집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 집에는 모든 것이 풍족한데, 자기는 지금 타국에서 이렇게 굶어죽게 되었습니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한 일들을 생각했습니다. 그가 한 일들은 참으로 후회스러운 죄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그가 한 행동을 뉘우치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로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17-19절)


둘째 아들이 굶어 죽어가는 처지에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기로 한 것은 정말 잘한 결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어떻게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을까요? 그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했고, 아버지의 집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는 모든 것이 풍족한데, 자기는 지금 타국에서 굶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자존심을 버리고 죄를 뉘우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아버지 집에서 품꾼이 된다 해도 굶어죽지는 않을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무조건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만이 살 길이었습니다.


둘째 아들이 자신의 처지와 아버지를 생각했다는 것이 바로 그가 살 수 있게 된 비결이었습니다. 오늘 죄인이 하나님께 돌아와 구원받으려면 바로 이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될 것인지를 진지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얼마든지 받아주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영원히 멸망당할 소망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로 돌아와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받아주시고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쉬지 말고 이 복음 전해야 합니다.

 

아들을 맞이하는 아버지


둘째 아들이 재산을 정리하여 집을 떠난 후, 아버지는 집을 나간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걱정하느라고 하루도 맘 편히 지내지 못했습니다. 아마도 아들에 대해 안 좋은 소식을 소문으로 들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잘못되지는 않았을지 한시도 마음을 놓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는 날마다 집 나간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저 멀리 초라한 행색을 하고 힘없이 오고 있는 아들을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기가 막힌 일입니까? 아버지는 즉시 달려 나가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아들이 이르되 아버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하나”(20-21절)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거지꼴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서 회개의 말을 듣기도 전에 아들을 측은히 여겼습니다. 측은히 여겼다는 말은 너무나도 가여워서 도와주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심정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대개 근동의 나이든 어른은 아무리 급해도 달려 나가지 않는 법입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그런 것을 전혀 개의치 않고 즉시 아들을 맞으러 달려 나갔습니다. 입을 맞춘 것은 아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용서를 의미합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둘째 아들을 이렇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인을 고쳐 주시니라”(마14: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을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막6:34) “주께서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눅7:13)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죄와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이렇게 불쌍히 여겨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롬9:16)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는 불쌍히 여기시고 죄를 완전히 없애주십니다.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히8:12)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7:19)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죄 없는 아들로 인정해주십니다.

 

회복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거역하고 재산을 탕진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말했습니다. ‘하늘’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완곡어법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거역하고 제멋대로 행동한 것이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둘째 아들이 진정으로 회개한 것을 보여줍니다. 아들은 타국에서 굶어죽느니 차리라 자존심을 버리고 아버지 집에 가서 품꾼 노릇하는 것이 낫겠다고, 그렇게 하면 살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돌아왔습니다. 둘째 아들은 뉘우쳤을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진정한 회개는 마음으로 뉘우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달랐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조금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뜨겁게 환영하며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모든 특권을 회복시켜주었습니다. “아버지는 종들에게 이르되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하니 그들이 즐거워하더라”(22-24절)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제일 좋은 옷을 입혔습니다. ‘제일 좋은 옷’은 신분이 놓은 사람들이나 부자들이 입는 옷으로, 발까지 길게 드리워지는 아름답고 위엄 있게 보이는 옷을 가리킵니다. 제일 좋은 옷을 입혔다는 것은 아들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었으며, 아들의 모든 권위를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권위를 지녔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가락지를 끼웠습니다. 또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아들이 노예가 아니라 아들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기 위해 그의 발에 신을 신겼습니다. 당시 노예는 맨발로 다녔습니다. 둘째 아들은 돌아올 때 맨발로 돌아왔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가장 귀한 손님이 올 때 자기가 기르는 가축 가운데 가장 살진 송아지를 잡아서 대접했습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환영했을 뿐만 아니라 온 집안사람들과 함께 잔치를 즐기며 기뻐했습니다.


죄인이 돌아올 때 기뻐하시는 하나님


‘잃어버린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는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죄인이 얼마나 비참하고 곤고하며 소망 없는 존재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아버지에게 유산을 받아 먼 나라로 떠난 아들은 당시 세리와 죄인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으며, 세리들은 조국을 배신하고 로마의 앞잡이가 되었습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세리와 죄인들을 구원받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소망 없는 자들로 여기고 경멸했습니다. 세리와 죄인들은 자신들도 스스로 그렇게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납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들, 돌아와 구원받아야 할 영혼으로 보셨습니다.


세리와 죄인들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 탕자처럼 되었습니다. 인간의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독립하려는 태도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 죄에 빠졌으며, 더 이상 하나님을 인정하려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맘대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 결과 인간은 갈수록 죄에 깊이 빠지게 되었으며, 인생의 의미와 목적마저 잃어버리고 방황하다가 영원히 멸망당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세상 수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며, 영원한 멸망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를 보내사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게 하심으로 죄를 대속해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을 끊임없이 보내사 복음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크게 기뻐하시며 받아주십니다. 모든 죄를 사하시며 단번에 자녀로 삼아주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이 크신 사랑을 받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애타게 기다리시는 영혼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에 감사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더욱 힘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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