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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시50:1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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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이한규 목사 |
참고 : | 실시간 온라인 새벽기도(1586) 2015.4.1 |
시편(78) 실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길
(시편 50편 16-2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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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해야 은혜가 간직됩니다 >
말씀 들을 때 걸쭉한 사투리와 만담과 농담으로 재미있게 된 것을 은혜 받은 것으로 오해하면
진짜 은혜는 멀어집니다. 설교학에서는 사투리도 주의해서 쓰라고 가르칩니다. 설교자는 모두를 품는 공인으로서 가급적이면 언어도 치우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걸쭉한 사투리를 쓰면 재미있어 하고 더 나아가서 욕 비슷한 말을 쓰면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낍니다. 그런 말을 듣고
재미있게 된 것을 은혜 받았다고 할 때도 많습니다.
현대 사회는 쾌락과 재미를 추구합니다. 영화와 방송도 작품성보다 재미와
시청률을 더 따집니다. 그러나 교회는 재미로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재미로 따진다면 사이비 교주가 가장 재미있습니다. 매번 코미디보다 더
재미있는 쇼를 하니 재미있고 또한 자기들만 구원받을 것처럼 말하는 달콤한 말은 어떤 쾌락보다 더 쾌락적입니다. 그러나 참된 성도는 재미와 쾌락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하면 더 하나님의 뜻을 이룰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성도는 병이 낫고 문제가 풀리고 원하던 것을
얻는 것만 은혜인 줄 압니다. 그러나 평범한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사람이 진짜 은혜 받은 사람입니다. 이미 주어진 은혜를 깨달을 때 더
은혜가 주어집니다. 또한 현재의 은혜를 깨닫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현재의 은혜를 지키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병이 치유되었다고 하면서 은혜의
주인공처럼 행동하다가 얼마 후에 보면 그 은혜가 어디로 갔는지 모를 정도로 행동합니다. 은혜 체험도 중요하지만 은혜 간직은 더 중요합니다.
어떻게 해야 은혜가 간직됩니까? 범사에 감사할 때 은혜가 최고로 간직됩니다. 받은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은혜 체험을 하고
싶다!”는 것은 현재 감사하는 삶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현재 주어진 은혜를 깨닫고 감사함으로 그 은혜를 간직하려고 하면 현재의 환경이
모질고 힘들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환경이 어떠냐?”보다 “감사가 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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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길 >
본문에서 아삽은 감사를 도전하기 전에 먼저 악한 종교인에 대해 질책합니다. 악한 종교인은 어떤
행동을 할까요? 본문에는 대표적인 4가지 행동이 언급됩니다. 첫째, 위선적인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악하게 행동하면서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약속을 언급하는 악한 종교인을 질책합니다(16절). 그런 위선적인 종교인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자처럼 말하면서 속으로는 하나님의 교훈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등 뒤로 던져버립니다(17절).
둘째, 악한 종교인은 도둑과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들과 동료가
됩니다(18절). 이 말씀은 좋은 친구와 동료의 중요성을 잘 보여줍니다. 성도는 거짓말하고 사기를 치는 나쁜 사람을 멀리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위배되는 것 같지만 나쁜 사람을 멀리하는 것이 오히려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쁜 사람을
가까이 하면 자기도 나빠지고 나쁜 영향력이 사회에 퍼지면서 많은 이웃이 피해를 입기 때문입니다.
셋째, 악한 종교인은 입으로
중상모략과 거짓말을 잘합니다. 본문 19절에서 “네 혀로 거짓을 꾸민다.”는 말은 순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선한 의도로 거짓말을 하고 실수로
거짓말을 하고 수치를 가리려고 거짓말을 하고 미숙해서 거짓말을 하고 묵인함으로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이 되는 그런 거짓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의도적이고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지어내어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피해를 입히는 것을 뜻합니다.
넷째, 악한 종교인은 가족들을
함부로 대합니다(20절). 가족을 말로 큰 상처를 주는 것도 잘못입니다. 종교인은 누구보다도 가족들로부터 존경과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상
최고의 목회자는 가족의 존경을 받는 목회자입니다. 가족과 형제로부터 존경과 존중을 받지 못한다면 행복의 가장 기본 조건이 결여된
것입니다.
그런 악한 종교인을 하나님이 그냥 두고 보시지 않고 때가 되면 그들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실 것입니다(21절). 그래도
회개하지 않으면 무서운 징벌을 내릴 것이라고 말씀한 후 감사를 도전합니다(22-23절). 왜 아삽은 거짓된 종교인을 무섭게 질책하다가 갑자기
감사를 도전했을까요? 위선적인 말을 하고 나쁜 사람과 어울리고 거짓말을 꾸며내고 가족들을 함부로 대하는 잘못된 종교인의 태도를 고치려면 무엇보다
감사하는 삶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아삽은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가장 옳은 행위이며 또한 감사하는 사람이 죄와
고난으로부터 구원의 은혜를 입는다고 했습니다(23절). 그만큼 감사가 중요합니다. 최고의 영성은 범사에 감사하는 영성이고 복을 예비하는 가장
확실한 삶은 범사에 감사하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실패하면 대개 실망하지만 실패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알고 그때도 감사하면 하나님이 실망을
희망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 이한규목사 http://www.john316.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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