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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마가복음 빛의 사자............... 조회 수 1179 추천 수 0 2014.10.18 08: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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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8:27-30 
설교자 : 한태완 목사 
참고 :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 막 8: 27∼30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29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헐몬산 가까이에 있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예수님 당시나 오늘날이나 이 질문은 가장 중요한 질문이요, 본질에 대한 질문입니다. 나를 누구로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세 가지 답변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반대하며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는 외식하는 종교지도자들의 답변으로 예수는 이단자요 선동자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세례 요한, 엘리야, 선지자 중 한 사람이라는 답변입니다. 셋째로 사도 베드로의 장엄한 신앙고백인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마 16:16)라는 답변입니다.

 

W H 그리피스 토마스(Griffith Thomas)가 쓴 『기독교는 그리스도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의 주장은 사실 맞는 말입니다. 물론 기독교를 연구하는 것이 신학이고, 그 핵심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 핵심이 됩니다. 하나님은 유대교에서도 믿고 이름은 다르지만 이슬람교에서도 하나님(Allah)은 믿습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기독교의 핵심과 차이점을 동시에 알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불교를 보면 붓다(Buddha)가 불교의 가르침의 핵심이 아니고 이슬람교도 마호메트가 핵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불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이 기독교의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따라서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생명이 되고 본질이 되며 모든 세부적인 것도 그리스도와 연관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는 기독교 가르침의 저자요, 교리의 대상이요, 구원의 근원이요, 소망의 성취요, 권능의 근원이요, 교회의 설립자요, 성령을 보내어 믿게 한 분이십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는 기독교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떤 분이신가? 한 마디로 말해서 그의 정체성은 그의 사역의 핵심이 됩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마16:15)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기독교의 핵심입니다. 기독론을 가장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는 것은 요한복음입니다. 20장 31절에서는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라고 분명히 그의 목적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요한은 서론에서 예수님을 로고스(Logos,말씀이란 뜻)라고 언급한 점입니다.

그러면 이 로고스란 말은 무슨 뜻인가? 물론 예수님께서 자신을 로고스라고 지칭한 적은 없습니다. 요한의 기록에만 나옵니다(요1:1,요일 1:1, 계19:13). 요한은 로고스란 말을 통해서 예수님의 선재성과 신성, 창조의 대행자 및 계시자의 뜻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과연 예수님은 어떤 분이고, 누구십니까?

 

1.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예수님은 왕이십니다. 개인과 가정, 나라와 민족과 우주를 주장하십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릅니다. 아니 알아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대통령 연설이나 국회의 정당대표 연설, 그 어디에도 예수께서 왕이시라고 암시하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정당이 모든 것을 할 듯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왕 되심은 성경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인물이 나오겠느냐』며 조롱조로 말하던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향해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요 1:49). 빌라도로부터 『당신이 왕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긍정하는 답변을 하셨습니다(마27:11). 베드로와 사도들은 박해자들 앞에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오른손으로 높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다』고 증언했습니다(행 5:31). 예수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라는 것을 알고 고백할 때 전혀 다른 차원의 삶을 살게 됩니다.

2. 예수님은 사랑이십니다.

 

전도를 너무 잘하는 여대생이 있었습니다. 그 학생은 평소에도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감동 받고 전도를 잘하는지 항상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 라는 말을 입에 붙이고 살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없이 살 수 없어요』라는 별명까지 생겼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 여대생이 목사님에게 찾아와서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저는 오늘 굉장히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그래서 목사님은 『그 예수 없이 살 수 없다는 얘기 말인가?』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은 고개를 저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에요, 목사님. 그보다 더 위대한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것은 나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나 없이 사실 수 없다는 사실이에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그 때 이미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 분에게 지금까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분을 영접하기만 하면 그저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고, 용서하십니다. 세상이 나를 허물 많고 연약하고 쓸모 없다며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는 재산의 유무나 성공, 실패가 문제되지 않습니다. 죄를 지었어도 관계없습니다.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여러분 기억하고 계십니까. 이 믿음으로 구원하여 주십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1서 4:8)

 

3.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미국의 대부호 코넬리우스 밴더빌트(Vanderbilt)가 임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그는 신앙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재물이 신앙이며 존재 이유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흑인 하녀가 그를 위해 찬송가를 불러주었습니다. 그 곡은 찬송가 96장(통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밴더빌트는 조용히 찬송가 가사를 음미했습니다. 찬송가에는 예수의 속성이 아주 쉽게 표현돼 있었습니다. 『우는 자의 위로, 없는 자의 풍성, 천한 자의 높음, 잡힌 자의 놓임, 죽을 자의 생명, 추한 자의 정함, 죽은 자의 부활….』 그때 밴더빌트의 입술이 조금씩 떨려왔습니다. 그리고 나지막한 음성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님, 저는 가난하고 천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신의 재물과 지식, 명예를 포기하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앞에서는 겸손한 약자가 됩니다. 그리고 쥐고 있던 것을 모두 놓는 순간 인생의 새로운 빛을 찾습니다. 신앙은 사망을 삼킵니다. 신앙은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킵니다.

 

찬송가 96장 <통> 94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를 함께 부르겠습니다.

1. 예수님은 누구신가 우는 자의 위로와 없는 자의 풍성이며 천한자의 높음과 잡힌 자의 놓임되고 우리 기쁨 되시네

2. 예수님은 누구신가 약한 자의 강함과 눈먼 자의 빛이시며 병든 자의 고침과 죽은 자의 부활되고 우리 생명 되시네

3. 예수님은 누구신가 추한자의 정함과 죽을 자의 생명이며 죄인들의 중보와 멸망자의 구원되고 우리 평화 되시네

4. 예수님은 누구신가 온 교회의 머리와 만국인의 구주시며 모든 왕의 왕이요 심판하실 주님되고 우리 영광 되시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간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임명을 받고, 그 한 가지 목적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유일한 구원자』입니다. 예수님의 이름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1:21)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은 예수님에 관한 기록입니다. 구약성경은 인간을 죄에서 구원할 자인 『메시아가 오리라』는 기록이며, 신약성경은 그 메시야가 오셨는데, 그가 곧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통해 성령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부활하심으로 인간의 죄 문제를 완전하게 해결하신 제사장이며,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신 우주적인 왕이시며, 하나님을 떠나서 길을 잃고 방황하는 인간에게 하나님을 만나는 길을 여신 선지자입니다.

성경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한 길입니다. 모든 성인들과 교주들은 하나의 구도자였고 길의 안내자였습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아침에 길을 찾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말했고, 석가는 길을 찾기 위해 가출하여 10년간을 방황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내가 곧 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길 중의 하나가 아니라, 유일한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인생의 길은 되돌아오지 못하는 길입니다. 꼭 한번 밖에 갈 수 없는 일방 통행의 길입니다. 이 삶의 길은 유일한 생명의 길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가야 하는 것입니다.

 

4.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이십니다.

 

두 사람이 해변에서부터 500마일 떨어진 대양 한 가운데서 오도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올림픽 수영선수였고 다른 한 사람은 수영을 전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둘 중에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아무리 훌륭한 수영선수라도 500마일을 헤엄치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면, 구명 헬리콥터가 그들 위에 나타나 생명줄을 내려드렸다고 가정해보자. 누가 구조될 것인가? 생명줄을 잡는 바로 그 사람이 안전하게 구조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해안에서 500마일이나 떨어진 장소에 있는 것처럼 잃어버린바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다고 할지라도 완벽하게 선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길을 잃었으며 구세주를 필요로 합니다. 이 사실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받아들인 사람만이 구원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대로 이 사람의 씨에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구주를 세우셨으니 곧 예수라(행13:23)

 

5.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십니다.

 

이 땅에 사는 사람 치고 마음과 육체의 쉼을 요구하지 않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쉬고 싶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갖고 싶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입니다. 열왕기상 19장에 보면 엘리야는 로뎀나무 아래 주저앉았습니다. 혼자서 싸우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이세벨의 목숨을 취하겠다는 말 한마디에 그는 하나님에게 죽여 달라고 했습니다. 죽을 시간이 이 때가 가장 적당하다고 간구합니다. 갈멜산에서 승리한 엘리야가 이런 나약한 말을 하다니 말이 됩니까? 승리 후에 그는 더 힘을 내야 했지만 이상하게도 이세벨의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립니다. 사명도 잊었습니다. 죽여달라고 합니다. 마치 아이가 다 자라서 제 뜻대로 안되니까 어머니에게 『왜 나를 낳으셨나요?』 라고 말하는 격입니다. 성경의 그 어떤 인물들이 백전백승했던가요? 어떤 인물도 처음부터 끝까지 강함과 완전함을 견지한 인물은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말도 안되고, 이해도 안 되는 투정을 하듯이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항상 어린애이며, 항상 낙담의 로뎀나무 아래 들어가기를 원하는 자들입니다. 엘리야에게 로뎀나무 아래의 한탄과 하나님의 위로하심이 있었듯이 우리 국민들에게도 로뎀나무는 너무나도 가까이 와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로뎀나무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답답한 한숨과 우리의 눈물을 보십니다. 우리의 부족을 용납하십니다. 왜 이렇게 나약하냐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로뎀나무이신 주님은 우리의 그늘이 되셔서 우리의 눈빛을 살피십니다. 우리의 눈빛이 의인을 찾아서 오늘도 이 땅을 내려다보시는 주님의 눈빛과 마주칠 때 우리는 아름다운 작품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낙심과 절망으로 주저하고 있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위로자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낙망한 엘리야를 그냥 두시지 않으시고 힘을 주러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격려와 위로하심으로 우리는 살아왔습니다. 정말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그동안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엘리야에게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평안을 주셨습니다. 로뎀나무 아래에서 영육의 피곤함으로 죽기를 원하는 엘리야에게 하나님은 떡과 물을 주시고 또한 누워 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육이 피곤한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다가오는 쉼은 일방적으로 다가오는 쉼이 아닙니다. 로뎀나무이신 예수님의 날개 아래 들어가야 합니다. 주님의 울타리 안에 들어가야 우리는 비로소 보호와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힘이 든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이 만드신 양의 울타리를 벗어나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로뎀나무 아래로 들어온 엘리야에게 위로와, 쉼을 주시고는, 힘을 내어 다시 일어나서 사역을 담당하게 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다시 와서 어루만지며 이르되 일어나서 먹으라 네가 길을 이기지 못할까 하노라 하는지라.』 로뎀나무 아래로 찾아오신 하나님은 우리들을 모른 체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광야에서 고통 중에 죽어가게 만드시지 않습니다. 내 뜻대로 살다가 인생에 힘이 든 분들이 계시다면 방향을 바꾸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다가 힘이 드신 분들이 계시다면 그분들은 주님께서 당장 가실 것입니다. 그 주님의 손에는 정황에 맞는 떡과 물이 들려 있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로뎀나무이신 예수님 아래서 우리는 믿음을 갖고 은혜의 날개를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이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시46:1)

 

6. 예수님은 우리의 변호사이십니다.

 

어떤 집사가 세상을 떠나 심판대 앞에 서게되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대는 항상 선했가?』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자기가 살아온 과정을 돌이켜보니 그렇지 않은 집사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물으셨습니다. 『그대는 항상 의로왔는가?』 역시 아니었습니다.

『아닙니다』 『그대는 항상 깨끗했는가?』 역시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간신히 대답을 하고 어떤 벌이 내려질 것인가 숨을 죽이고 있는데 갑자기 환한 빛이 전신을 감싸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서 눈을 드니 예수 그리스도가 곁에 서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집사를 껴안고 보좌를 올려다 보면서 『아버지, 이 사람은 항상 선하지고 못했고 의롭지도 못했고 깨끗하지도 못했으나 세상에서 이 사람은 항상 저의 편에 있었으니, 지금 이 곳에서는 제가 이 사람 편에 서겠습니다.』하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7. 예수님은 우리의 생수이십니다.

 

오랜 가뭄으로 거북이 등처럼 갈라진 논에 가장 절실히 요구되는 것은 한 줄기의 비입니다. 마찬가지로 물질적 풍요와 온갖 문명의 이기(利器)를 향유하면서도 여전히 영적 갈증에 허덕이는 죄인들의 목을 축여 줄 수 있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물뿐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인생의 생수라고 말씀하십니다.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요4:10- 11) 세상의 음료가 일시적으로 갈증을 해소할 뿐입니다. 그러나 참 음료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샘물을 마신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습니다. 또한 이 생명수는 누구든지 와서 먹을 수 있고 값없이 마실 수 있는 음료입니다. 주님의 생수는 주님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깨뜨리심으로 주신 귀하고 거룩한 음료입니다. 이 귀한 음료를 마신 우리는 우리의 행실을 거룩하고 경건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을 희생하며 또 다른 목마른 자에게 생수를 마시게 해야 합니다.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요7:37)

 

8. 예수님은 우리의 모퉁이 돌이십니다.

 

TV를 통해 이산가족이 만나는 장면을 볼 때마다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있습니다. 『왜 그동안 나를 찾지 않았어?』 헤어져 있는 동안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찾아주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을 떠나 고독하게 슬피 울며 길을 잃고 헤매는 불쌍한 우리 인류를 찾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나를 찾으러 오신 주님 품에 안기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그 품에 안기지 않으면 언제까지나 춥고 배고프고 외로울 뿐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십니다. 모퉁이 돌은 집을 지을 때 아주 중요합니다. 튼튼한 집은 모퉁이 돌을 기초로 할 때 지을 수 있습니다. 또한 모퉁이 돌은 모든 건물을 연결시킵니다. 어떤 건물이든지 모퉁이 돌에서 시작하여 계속 연결되어 지어집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시작과 기초는 무엇입니까? 창조주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신, 능력과 지혜와 영광이 무한하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어야 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위에 삶을 세우면 든든합니다. 가정, 기업, 국가, 무엇이든지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 위에 올려놓으면 무너지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이 되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연결이 됩니다. 건강으로 연결이 됩니다. 행복으로 연결이 됩니다. 기쁨으로 연결이 됩니다. 이 세상의 좋은 것들이 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연결이 됩니다. 또한 예수를 모퉁이 돌로 삼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난에서 오는 부끄러움, 질병이나 실패에서 오는 부끄러움, 환난이나 시험에서 오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모퉁이 돌이 되신 주께서 막아주고 지켜주고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인류의 영광 가운데 가장 화려한 것 하나가 노벨상입니다. 노벨상 중에서도 노벨 문학상이 최고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작품과 그 작가가 쓴 모든 책들이 돈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귀한 문학상을 받고도 행복하게 살아간 작가는 없었습니다. 헤밍웨이는 알콜 중독에 걸리고 4번의 결혼 생활 끝에 결국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까뮈나 모파상이나 다 불행한 죽음을 죽었습니다. 일본에서 문학상을 받은 설국의 작가 가와바타 야스날도 자살해 죽었습니다. 모퉁이 돌이 없는 삶은 인기가 많을수록 더 허무해지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상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모퉁이 돌이 있는 상을 받아야 기쁨이 있고 행복합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노벨상을 받고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갔습니다. 잘 먹고 잘 입지 못해도 아프리카의 병들고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서 평생 살았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이유는 모퉁이 돌인 예수와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테레사 수녀도 노벨상을 받고 다시 인도로 갔습니다. 가난한 마을에 가서 불쌍한 사람들과 함께 살았지만 그분은 행복하게 장수를 하였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이 허무하고 불안하고 불행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못 배워서, 못 입어서가 아닙니다. 모퉁이 돌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모퉁이 돌이 되시면 축복을 받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계의 어떤 나라든지 예수를 모퉁이 돌로 모시면 축복을 받아 세계의 1등 국가가 되었습니다.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성도 여러분의 삶 속에 모시어 시편 23편과 같이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행4:10- 12)

 

9. 사람과 같이 되신 분입니다.

 

한 남자가 길을 가다가 큰 돌이 놓여져 있는 것을 보고 그 돌을 들어 다른 한적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그는 자신이 치운 돌 밑에 살던 개미들이 서로 안전한 장소를 찾아 이리저리 흩어져가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개미들을 해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으므로 개미들에게 몹시 미안하였습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을 개미들에게 전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그의 마음을 개미들에게 전해지게 하려면 자신이 직접 개미가 되는 수 밖에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여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도 이와 같은 것에서 연유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2:8)

 

10.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해결사 즉 불가능 해결 전문가이십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자주 반복해서 실존적인 질문을 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를 묻고 살아야 맹목적이지 않고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처음부터 철저하게 『예수, 당신은 누구십니까』에 대한 답변서입니다. 예수님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다시 살리신 이적, 열두 해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을 고치신 이적, 두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하신 이적, 귀신들려 말을 못하는 자를 고쳐주신 이적 등이 나옵니다. 이들 중에는 부자도 있고 가난한 자도 있습니다. 부유한 관리도 있고 질병 때문에 걸인이 된 여인도 있습니다. 슬픔에 젖은 아버지도 있고 인생의 소망을 잃어버린 어머니도 있습니다. 거리에서 구걸하고 있는 시각장애 거지도 있고 귀신들려 말을 못 하는 자도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이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신 것입니다.

 

예수, 당신은 누구십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예수님은 문제해결사이십니다. 나이, 성별, 소유와 지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믿음으로 주 예수께 나아가기만 하면 그토록 괴롭히던 문제로부터 평안케 해주십니다(마11:28). 예수님은 어떤 동기로 나아가든 모두 해결해주십니다. 구경꾼으로, 습관적으로 혹은 구도자의 심정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동기가 어찌됐든 겸손한 마음으로 주께 나아가기만 하면 주님은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평안케 하시는 것입니다(요14;27). 예수님은 가장 적절한 때 해결해 주십니다. 내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따라 가장 적절한 때에 해결해 주십니다(히4:16).

이처럼 주님은 어떤 어려운 문제든지, 누구의 문제든지, 어떤 동기로 왔든지 간에 상관없이 가장 적절한 때에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이는 예수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 능력의 주 하나님이시라는 증거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심은 예수님이 생명의 주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 한 분이 계시는데 그 분은 불가능 해결 전문가이시다. 그에게는 2가지가 없으시다. 너무 어렵다가 없으시다. 너무 늦었다가 없으시다.”예수, 그 분은 누구십니까? “예수는 구원의 하나님, 생명의 주 나의 왕이십니다.” 이제 때를 따라 도우시는 불가능 해결 전문가이신 하나님께 지금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에게는 너무 어렵다가 없으시다, 너무 늦었다가 없으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마9:28)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교회 안에는 세 부류의 사람 즉, 자연인, 종교인, 신앙인이 있습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전혀 하나님과 관계없이 생활하는 자연인, 교회에 열심히 다니면서 봉사도 하지만 신앙고백은 없는 종교인, 마음과 입으로 확실하게 주는 그리스도시며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인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속합니까? 사람이 어떤 고백을 하느냐에 따라 그 신앙과 인격을 가늠해볼 수 있습니다. 참된 신앙고백이 있는 자는 어떤 처지에 있든지 예수님이 나의 영혼을 구원해주신 구원자일 뿐 아니라 이 땅위의 내 삶도 일으켜 세워주시는 분이신 것을 믿고 확신하는 가운데 평안을 누리고 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태초부터 계신 분입니다(요1:1). 그분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요 1:3). 그분은 전능하셔서 시공간을 초월하실 뿐만 아니라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입니다(마 8:5∼13).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마 1:21)이십니다. 이 세상에 오셔서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하실 임마누엘의 주이십니다(마 1:23).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잉태의 과정을 통하여 출생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와 다른 점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점입니다(마 1:20). 그리고 인간들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셨다가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롬 4:25). 지금은 하나님 우편에 계시면서 우리를 위해 중보기도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얻습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첫째로 우리 죄를 속량하시기 위함이요(막 10:45) 둘째는 풍성한 삶을 주시기 위함이고(요 10:10) 셋째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함입니다(요 5:24). 그러므로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예수님)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생을 얻고 예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서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현대인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두려움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일에 대한 두려움,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급변하는 사회 적응에 대한 두려움 등입니다. 이 모든 두려움을 극복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을 믿고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두려움과 근심이 기쁨과 자신감으로 바뀝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의 소망이요 구원자이시며, 진리요 복음입니다. 이 진리와 복음을 널리 전합시다.

 

* 기도: 나의 주인 되시고, 십자가 죽음으로 나를 사랑하신 주님, 주님의 몸을 대신하여 얻은 하나님의 백성 된 신분에 합당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세상은 주님을 대적하고 무시하는 문화를 더욱 강하게 굳히고 있지만 주님은 언제나 나의 힘이십니다. 나의 평생 주님만을 사랑하며 고난을 당할 때에도 주님과 함께 있음을 감사하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에 저의 미래와 육신, 시간과 재정, 모든 것을 헌신하기를 원하오니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의 삶을 사용하여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한태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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