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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시대의 사회 운영체제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1679 추천 수 0 2014.07.08 15:4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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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17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4.6.3 주일예배 http://sungamch.net 춘천성암교회 

예수 시대의 사회 운영체제
마5:17





어떤 컴퓨터던지 전원을 넣으면 제일 먼저 화면에 뜨는 것은 ‘윈도즈’라는 겁니다. 이건 컴퓨터를 사용할 수 있는 열쇠 즉 ‘컴퓨터의 운영체제’입니다. 그러니까 제 아무리 좋은 자료들이 컴퓨터 안에 들어 있다고 해도, 아무리 좋은 성능의 비싼 컴퓨터라고 해도 이게 없으면 컴퓨터는 작동되지 않습니다. 컴퓨터 안에 들어 있는 그 무엇도, 그 어떤 컴퓨터도 컴퓨터를 운영하는 체제가 없으면 쓸모없는 고철이 됩니다.

컴퓨터만 그런 게 아닙니다. 사회도 그 사회를 이끌고 가는 ‘운영체제’라는 게 있습니다. 유교시대는 유교가, 불교시대는 불교가 의미체계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 시대에는 ‘율법’이 그 시대의 의미체계이며 사회적인 문법이었습니다. 율법이 의미체계며 문법이라는 뜻은, 율법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에 부정함과 정결함, 옳음과 그름을 정하는 틀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의 일상은 율법에 의해 규범화되었던 것입니다. 1세기에 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누구도 이 율법이라는 ‘사회 운영체제’ 즉, 서기 1세기의 ‘Windows’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존재의 근원이었고, 삶에 뿌리내린 무의식의 기둥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의 소식’을 전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희망의 소식’은 개개인의 이익에 해당되는 이기적인 것이라기보다는 바로 이것, 그들의 사회를 운영하고 있는 운영체제-(윈도위즈)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마5:17의 말씀도 이런 연유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서양의 반유대주의자들이 ‘예수님은 반 율법주의자’이기 때문에 율법을 무시하는 발언이라고 하는 해석은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운영체제’안에 살던 일원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말씀은 그런 인식의 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세계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운영체제의 모순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 운영체제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운영질서를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이게 그의 생각, 말, 삶, 죽음, 다시 살아남 이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 혼자만 율법이라는 운영체제로부터 탈주를 하셨을까요? 아닙니다. 율법이라는 ‘윈도즈’를 구동해야만 살 수 있는 당시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실천은 놀라운 파급과 탈주를 가능케 했습니다. 율법을 사회운영체제로 삼았던 이들이 당황하고 분노했던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이제 이런 전제 안에서 예수님이 율법을 비판한 동기를 제대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서구신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무조건 율법을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수요일에 읽고 있는 것이지만 예수님은 되레 지극히 율법적인 사고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왜 예수 자신은 존재의 근원이었던 율법에서부터 탈주를 하려고 했던 것일까요? 이걸 알기 위해 당시 사회의 운영체제였던 율법의 사회적인 기능에 대해서 알아야 할 겁니다.

규범체제라는 것은 일상생활 속에서 무수한 반족을 통해 구조화된 ‘행동 원리’이며 ‘세계관’이고 사회의 ‘조직 원리’입니다. 사람들은 매일 매일의 삶에서 무엇을 해야 마땅한지를 판단하기 위해 그것들 하나하나를 가르쳐 주는 선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터득한 운영체제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배우는 말에도, 우주의 순리를 터득하는 일도, 가족이나 친족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그리고 자신이 어떻게 해야 마땅한 도리가 되는지도 바로 이 사회운영 규범에서 배우게 됩니다. 그러므로 운영체제 혹 사회규범은 그 사회가 쌓아온 ‘지혜’와 같은 것입니다. 이런 유대사회 규범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들을 현자, 랍비라고 했습니다. 규범은 그 사회의 전통의 근거이고 미래적 전망의 원리고 현재를 살아가는 힘입니다.

그런데 이런 규범이 사회에 안착을 하려면, 백성들의 삶 곳곳에 뿌리를 내리려면 제도적이 장치가 있어야 합니다. 윈도즈를 구동하여 컴퓨터 안에 있는 온갖 자료들을 이용하려면 노트북이던지, 집에 세워둔 컴퓨터든지 물체로 된 기계가 필요 한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는 유대사회가 그들의 사회운영체제인 율법을 구동하기 위해 장치한 두 개의 체제에 대해서 말했드랬습니다. 그것은 ‘율법-회당-성전’으로 이루어지는 종교적인 체제였고, 다른 하나는 ‘율법-산헤드린-성전’이라는 정치적인 체제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체제에 대해서 해체를 선언하셨다고 했지요. 이 두 제도의 계열화가 예수님 시대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구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규범들은 권력이 되어 있었습니다. 간단히 말하면 ‘율법’이 ‘권력’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복음’또는 ‘설교’가 ‘권력’인 줄 아는 이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예수 시대의 율법은 권력이 되어 팔레스타인 대중을 길들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권력이 된 소수의 특권층에게 많은 것을 빼앗기며 살았습니다. 그렇게 권력에 짓눌려 사는 유대인들은 되레 그 한풀이를 ‘이방인’에게 쏟아 부으며 살았습니다. 동쪽에서 뺨 맞고 서쪽에서 분풀이 하는 식의 악순환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억눌림이 심하면 투사하는 방식도 광폭해지고 그러면 집단적인 광기가 형성됩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백성들은 억압으로 인한 광기가 폭발 직전에 있었습니다. 권력화 된 규범에 억눌려 사는 사람들이 그 분풀이를 누구에게 했는지 아십니까? 사마리아 같은 종족이나, 세리, 창녀, 목동 등과 같은 직업집단, 이단적인 소종파들에게 분노를 쏟아 부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권력의 희생양에 대한 가학적이고 배제주의적인 방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었을까요? 가장 흔한 게 정결-부정이라는 체계를 이용하여 매사에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인 가치를 현실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음식도 정결과 부정한 것으로, 물건을 옮길 때, 장소나 상황에도 부정-정결의 준칙이 세워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런 제계가 권력화 되면서 인간의 우열을 가늠하는 기준이 되어 버리게 됩니다. 그때 율법은 어떤 기능을 하느냐 하면, 부정한 인간을 규정하는 근거로 제공되는 겁니다. 결국 율법은 소수의 권력에 눌려 분노하는 대중에게 복수가 될 희생양을 찾아 헤매는 사냥꾼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이런 세상에서 예수가 30년을 자랐습니다. 그도 한 사람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에수는 그런 사회 운영체제에서 자랐지만 그 악폐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사회적 가치와 운영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 걸고 열렬하게 사시게 된 겁니다. 몇 가지를 성서 속에서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율법에서 ‘안식일’은 정결과 부정을 가늠하는 잣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안식일의 사회적인 해석을 해체합니다. 막2:27을 보세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다.” 율법이 부정하다고 심판한 세리, 창녀, 거렁뱅이를 예수는 회복시킵니다. 눅10:25-37에 보면 패대기쳐진 사마리아 사람을 회복시킵니다. 개인적으로는 회복이지만 권력이 된 율법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반란이고 해체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배제된 사람들을 회복하면서 동시에 그와 같은 권력에 대해 심판을 선언합니다. 예수의 복음은 그래서 ‘회복’이며 동시에 ‘심판’인 것입니다.

자, 이게 예수라는 존재가 의미하는 바입니다. 그러면 예수는 단지 자신을 제외한 외부의 권력에만 해체를 요구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예수의 이와 같은 반항은 예수 자신의 존재로부터 반항하는 것입니다. 그 자신도 사실 견고한 율법의 포박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헐떡이고 있습니다. 피해 다녀야 하고, 숨어야 하는 지경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구의 탈주는 더욱 격렬해졌습니다. 그리고 근원적인 곳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골고다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그 엄청난 인간세계의 질곡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게 ‘내가 세상을 다 이겼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유대사회를 운영하던 악폐의 ‘운영체제 OS’가 바뀌어 지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율법’이라는 운영 체제에서 신음하던 이들이 새로운 운영체제 즉 ‘하나님나라의 운영체제’로 인하여 새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물론 ‘율법’이라는 운영체를 통해 권력화 해서 팔레스타인 대다수의 삶을 침탈하여 화사를 누렸던 소수의 권력자들에게 이 운영체제의 변환은 ‘심판’이었습니다.

그 당신 율법은 일상적인 삶에서 정치권력과 종교권력이 만나는 집합 점 이었습니다. 율법은 권력 작동의 메카니즘 이었고 지배 장치였습니다. 이 지배 장치는 고분고분 율법의 우산 속으로 들어오라는 거고, 우산 속으로 들어와야 저주를 면한다는 것이고, 이 율법의 우산 밖에 있는 사람은 모두 저주의 사람이며 ‘밖의 가혹함’을 감수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늘 하신 “율법을 폐하려는 온 게 아니라 완성하려고 왔다”는 말씀은 서구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반 율법 선언’즉 ‘율법은 쓸모가 없으므로 폐기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여간해서 율법의 우산 속으로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 우산 속으로 들어갈 기회조차 없는 사람들, 우산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자치한 권력화 된 종교와 정치세력들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의 초점은 종교가 권력이 되도록 온갖 장치를 해서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람들을 내 쫓고, 비록 우산 속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율법 안에 사는 게 짐이 되고 수고가 되고 무거운 짐이 되는 현실의 거부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속내는 그렇습니다. 이렇게 운영되는 당시의 ‘율법 운영체제-윈도위즈’를 들어내고 ‘하나님 나라의 운영체제’를 세운 이가 예수 그리스도이며, 그것이 그들에게 구원이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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