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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 행25:13-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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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 | 김기성 목사 |
참고 : | 말씀의 숲 교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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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에 있는 하나님의 섭리
(행25:13-27)
옛날 충청도 지방의 한 농촌 면소재지에 교회가 설립되자 면장 부인을 비롯하여 많은 부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중 한 농부의 아내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는데, 그 남편의 핍박이 심했다. 그는 아내가 주일에 교회에 가지 못하도록 갖은 방해를 놓았지만, 그럴수록 아내는 더욱 열심을 냈다.
그러던 중 잔뜩 난 남편이 살기가 등등해서 금요철야 교회로 달려갔는데, 마침 목사가 설교를 마치고 다 같이 불을 끄고 기도하는 중이었다. 그가 창문으로 들여다봤더니 자기 아내는 앞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분한 마음에 뛰어 들어가 다른 사람들이 기도하느라 눈을 감고 있는 틈을 타서 아내의 머리채를 잡아끌어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실컷 두들겨 패고 나서 자세히 보니 끌려나온 여자는 자기 아내가 아닌 면장 부인이었다. 겁에 질려 벌벌 떨었죠. 면장 부인은 호령하기를 "당신이 지금부터 예수를 믿고 부인을 때리지 않겠다고 하면 용서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고소하겠다" 라고 하였다.
일이 이렇게 되자 즉시 그 남자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자기도 예수를 믿겠노라고 하였다. 면장 부인은 그 길로 곧장 교회 안으로 이 남자를 데리고 들어가서 함께 기도했다. 이렇게 해서 그 남자는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그의 가정은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되었다. 면장 부인은 뜻하지 않은 고난을 당했으나 이로 인해 한 영혼을 구원하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보이는 상황은 어렵지만, 어쩌면 그 일로 인하여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준비한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그 이면에 하나님이 준비한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계속해서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재판을 받는 사도바울은 억울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먼저 정리해 보아야 합니다. 벨릭스라는 사람이 있고, 베스도라는 사람이 있고, 오늘 나오는 아그립바왕이 나오죠.
그 당시 이스라엘 땅은 로마의 식민지 였습니다. 그래서 로마에서는 담당자를 파견해서 이스라엘 땅을 다스리게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총독이었죠. (마치 일본이 조선을 침탈하고 세운 것이 조선 총독부인 것처럼...) 로마에서도 이스라엘에 총독을 임명하여 보낸 것이지요.
그 사람이름이 바로 벨릭스 총독이고, 그가 2년 이스라엘 유대땅을 통치하고 다시 발령받아 로마로 돌아가고, 그 다음은 이스라엘 총독으로 로마에서 파견한 사람이 바로 베스도 총독이 임명을 받아 유대를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자체적으로 유대 이스라엘 왕으로 아그립바왕이 유대인들이 자체적으로 세운 왕이 있는 것이죠. (마치 조선의 마지막 왕 고종을 세우듯이. 일본은 이 고종을 잘 밀고 땡기고, 명성왕후 사건)
이 아그립바 왕이 얼마나 타락했냐 하면, 1절에 보시면 아그립바 유대왕과 버니게가 로마에서 파견한 총독 베스도에게 문안하려 가죠. 여기에 나오는 버니게가 그의 부인인데, 사실 여동생이지요. 그렇게 성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한 모습은 단편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자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사람의 감추어진 본 모습을 발견 해 보아야 합니다. 전임 총독 ‘벨릭스’는 그의 제임 기간 동안 유대인들을 너무 가혹하게 다루었지요. 그래서 심각한 반발을 불러일으켰었습니다. 그 결과로 벨릭스는 공직에서 제거되고, 베스도 총독으로 교체되었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부임받은 베스도 총독은 그나마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중에 하나의 문제는 감옥에 있는 사도바울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라는 첨예한 문제가 생긴 것이죠.
베스도 총독은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동안 사도바울을 살펴보았는데 죄는 없는 것 같고, 그렇다고 풀어주자니 유대인들의 폭동이 을 이겨낼 수 없고, 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바울을 죽이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또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도바울이 자신을 로마에 가서 재판을 받게 해 달라고 하니, 뭔가 확실한 죄목이 있어야 로마에 공문을 써서 보내야 로마 정부로부터 재판을 허용할 수 있을 텐데, 그 명분에 맞는 정확한 죄도 없는 것 같고.... 이래 저래 힘든 상황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새롭게 부임하는 유대 땅에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는데 어떻게 할까 궁리 끝에, 지금으로 말하면 조선왕 고종을 끌어 들이듯이, 그 당시 유대인들이 세운 왕 아그립바왕에게 이 문제를 조언하듯 하면서, 그의 판단으로 책임을 떠넘기려는 의도가 보이지요.
자신은 로마에 있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잘 모른다는 것이죠. 당신이 좀 잘 판단해서 나에게 이야기 해 주면, 유대인들의 폭동도 막을 수 있고, 로마 정부에도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의 그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베스도 총독이 원하는 것은 바른 판단이 아니지요. 어떻게 하면 자신은 이 책임을 면하면서, 어떻게 하면 높은 신임을 얻을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자신에게만 문제 없으면 된다는 식이지요.
그래서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정의가 아니고, 정직함이 아니고, 자신에게 불이익 없고, 자신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하는 것이 전부 였습니다. 아무리 포장해도 그 안에서 그것을 읽혀지게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지 않는가요? 어쩌면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어쩌면 나에게 혹 피해가 있지는 않는가를 늘 생각하는 나! 가 우리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늘 나에게 피해가 없는 쪽으로 생각하고 일을 처리하는 우리 속에 모습을 지금 이 베릭스 총독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이런 이야기 하지요. 말은 한쪽만 맞다고! 그래서 상대방 쪽 말을 들어봐야 한다고! 그런데 상대방 말을 들어 보는 나! 그것 또한 공정하게 판단하기 보다는 가만히 보면 내 쪽에 유리한 쪽으로 또 이해하고 판단한다는 것이죠. (그것이 우리의 본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런 모습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베릭스 총독처럼 아무리 좋은 것으로 포장해도 우리안에 있는 이런 내면의 어두운 부분에 대해 스스로 인정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려고 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고,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하거나, 판단하거나 할 때, 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나는 정말 하나님을 위한 것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 내안에 감춰진 나를 위하여 하고 있는 것인가?” 내 안에 숨겨진 것들을 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자, 19절을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시작) 여기에 우리가 눈여겨 볼것이 있다는 것이지요. 아무리 자신이 속에 있는 것을 감추고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져 가고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베스도 총독이 아그립바왕에게 책임과 판단을 넘기면서 했던 말에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들어나다는 것이지요. 사실 이 말을 하면서도 베스도는 몰랐을 것입니다.
19절 말씀을 잘 보세요. 사도바울을 재판에 넘기려고 하는 이들과 사도바울 사이에 논쟁은~~~, 그저 그들의 종교와 (그 다음이 중요 하지요) 예수라고 하는 죽은 사람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바울이라는 사람이 자꾸, 그 죽은 예수가 다시 살았다고 주장을 합니다.
여러분, 지금 복음의 핵심이 오히려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복음이 지금 두 명의 총독과 그리고 유대의 왕 아그립바왕 까지 다양한 모든 사회 계층에 지금 전해지고 있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지혜로워도, 하나님의 지혜에는 새발에 피 이지요. 자신의 속마음을 감추고, 책임을 전가 하는 곳에서, 하나님은 복음의 핵심을 논하게 만드시는 모습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활의 복음이, 어떻게 해서든 전파되는 장면을 지금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베스도의 숨은 의도를 사용하셔서, 복음을 전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런 자리가 아니면, 바울이 언제 로마 총독과 유대왕과 수많은 귀족들 앞에서 복음을 한번 전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하나님은 교만한 베스도 총독과 문란한 아그립바 왕의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보다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가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은 우리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문제라고 생각하고, 나쁜 일이라고 생각하는 그 모든 것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의 뜻을 이루어 가고 계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가진 악을 도모해도, 그 악을 통해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임을 저는 믿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교회를 향한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어도, 그리고 건물이 팔려 교회를 나가는 상황에 있어도, 지금!!, 여전히!!, 오늘도!! 하나님은 당신의 선한 일을 이루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 개인적인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깜깜하고 어두워요. 전혀 앞이 보이지 않아요. 그러나 우리에게 보이는 상황은 어렵지만!, 지금 내가 코너에 몰리지만!, 어쩌면 그 일로 인하여 그 이면에는 하나님이 준비한 섭리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것과 그 이면에 하나님이 준비한 것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여전히 일하시고, 하나님의 바른 일들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여전히 개입하시고, 우리를 향한 당신의 뜻을 여전히 이루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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