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겟세마네의 시간

마가복음 이익환 목사............... 조회 수 238 추천 수 0 2018.10.26 23: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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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4:32-36 
설교자 : 이익환 목사 
참고 : 텔아비브욥바교회 http://telavivchurch.org (이스라엘) 

텔아비브 욥바교회 2017년 4월 8일 설교 이익환 목사


사복음서 강해 19 겟세마네의 시간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막 14:3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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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그의 죽음을 하루 앞 둔 밤, 겟세마네로 가셨다. 예수님은 왜 이곳에서 시간을 보내셔야 했을까? 함께 살펴보며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서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왕이 되면 그의 좌편과 우편에 앉게 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마셔야할 잔을 바로 앞두고 있었다. 그 잔은 다름 아닌 불의와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의 잔을 ‘비틀걸음 치게 하는 잔 곧 나의 분노의 큰 잔’(사 51:22)이라고 묘사했다. 그 잔이 어떤 잔인지 상상이 가는가?


예수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담담히 예언하셨던 분이었다. 그런데 겟세마네라는 곳에 이르자 그 잔의 무게가 느껴지기 시작하신 것 같다.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가시면서 심히 놀라고 슬퍼하셨다. 아마도 제자들은 그런 예수님의 모습을 처음 보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고 부탁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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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예수님은 홀로 나아가 기도하셨다. 36절,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유대인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아도나이’라고 부른다. 아빠는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부를 때 사용하던 아람어 단어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를 때 쓰는 친근한 단어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이기에 아빠라고 부른 것이다. 모든 것이 가능한 분이기에 마지막 부탁을 아빠에게 한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 아빠는 모든 것이 가능한 사람이다. 지난 주 나는 우리 둘째 유창이에게 그런 아빠가 되고 싶었다. 유창이는 지금 학교에서 2박 3일 캠핑을 갔다. 오늘 돌아온다. 그런데 가기 전 날 유창이가 나에게 부탁을 했다. 자기 휴대폰에 돈을 충전해달라는 것이었다. 캠핑 가서 친구들끼리 전화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유창이 폰은 정식으로 개통한 것이 아니라 전화를 받을 수는 있지만 전화를 걸 수 없었다. 유창이는 친구들 중에 자기만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그 날 골란텔레콤에서 한달에 9.9세겔하는 요금제가 있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당장 유창이와 함께 전화를 개통하러 동네 쇼핑몰에 갔다. 그런데 거기에 가보니 골란텔레콤 영업매장이 없었다. 곤란했다. 페타티크바에 있는 큰 몰에 가면 매장이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차를 몰고 거기로 갔다. 다 잘 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매장 직원이 마지막 크레딧카드 정보를 입력하면서 내 여권번호와 일치하지 않는다고 했다. 결국 개통을 못하고 다시 집에 와야 했다. 이미 저녁이 되었다. 다음 날 아침 캠프를 가야하는데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정말 곤란했다. 저녁을 먹는데도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가능한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다. 저녁을 먹고 골란텔레콤 홈페이지를 들어가보았다. 거기에 외국 크레딧 카드로 개통이 가능하다는 정보가 있었다. 밤 9:30분이었다. 서둘러 다시 페타 티크바 몰에 갔다. ‘샬롬, 나 또 왔어~’ 그런데 직원 표정이 좋지 않다. 컴퓨터 시스템이 닫혀서 지금 바로 개통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내일 다시 오라고 했다. 나는 오늘 꼭 해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됐을까? 직원이 컴퓨터를 켜고 정보를 입력했다. 그리고 나는 심카드를 사서 받아 왔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전화가 개통되었다. 결국 나는 아들의 부탁을 들어줄 수 있었다. 아빠로서 얼마나 뿌듯하던지.. 아마 여기 있는 모든 아빠의 마음이 같을 것이다. 자식의 부탁을 들어주고, 자식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아들로서 예수님은 아빠 하나님에게 이렇게 부탁하셨다. 36절,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아빠로서 하나님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들의 요청을 다 들어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하셔야만 했다. 그것은 누군가 반드시 마셔야 할 심판의 잔을 그의 아들이 마시는 것이었다. 그의 아들이 인류의 죄에 대한 처벌을 감당하는 것이었다. 어째서 하나님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진노의 잔을 허락하셨을까? 정말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


이사야서는 그 이유를 이렇게 기록한다. 사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 하나뿐인 아들에게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시키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또 다른 자녀인 우리가 나음을 받게하려 함이다. 아무도 우리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당신의 아들을 화목제물로 삼으신 것이다. 죄를 처벌하지 않으신다면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 되실 수 없다. 죄에 대한 징계로 반드시 죽음이 따른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그 죽음의 잔을 아들이 담당하도록 하신 것이다.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준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할까? 아들은 살이 찢겼지만 아버지는 가슴이 찢기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십자가는 하나님이 지신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최선이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아들에게서 옮기지 않은 것, 그러나 그것 때문에 누구보다도 더 고통스런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최선이었다.


예수님에겐 하늘 아버지가 전부였다.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 삶의 전부가 되는 목적이었다. 예수님 역시 고통스러웠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에게 버림받는다는 사실이 고통스러웠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가 제자들과 마지막 나눈 만찬에서 잔을 들고 이렇게 선언하셨다. 마 26:27-28,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과 이 후에 그를 믿는 자들이 장차 구원의 잔을 들게 하기 위하여 정작 당신 자신은 죽음의 잔을 들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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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고난의 자리로 나아가기 전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셨다. 기도하며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아들이 되셨다. 예수님에겐 하늘 아버지가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신뢰가 있었다. 그러나 더 나아가 하늘 아버지가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믿음이 있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다. 결국 겟세마네는 아버지의 뜻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나의 원함이 사라지고 아버지의 뜻이 남는 자리가 되었다. 기도는 그런 것이다. 나의 소원을 조르는 자리가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확인하며 내 요청을 조정하는 자리다. 아버지의 뜻을 확인한 예수님은 결국 칼을 선택하지 않고 무력한 순종을 선택했다. 영광이 아닌 수치과 고난을 선택했다. 인류가 구원의 잔을 들 수 있게 하기 위하여 죽음의 잔을 받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이 결단과 순종의 기도는 고난을 맞이하는 예수님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42절,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은 너무도 의연히 그가 감당할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신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붙든 순간 고난이 주는 고통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이다.


히브리서는 그 사실을 이렇게 기록한다. 히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과하셨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고난을 선택하셨다. 예수님의 순종은 고난을 지나는 우리 모두에게 본이 된다. 우리 역시 애매히 당하는 고난과 십자가를 맞이할 때가 있다. 우리 역시 다가온 십자가 때문에 놀라고 슬프고 고민하여 죽을 것만 같은 순간을 맞을 때가 있다.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 언저리에 있을 때 사실 더 고통스럽다. 두려움이 더 커진다. 그러나 간절히 기도하는 중에 아버지의 뜻을 붙잡게 된다면 우리는 믿음이라는 반석 위에 서게 된다. 그리고 담대히 십자가를 선택하는 결단을 내리게 된다. 그럴 때 오히려 두려움은 사라진다. 고통도 감당할 크기로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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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삶 속에서 고난과 혼돈스러운 순간을 만날 때, 내 인생에 힘든 순간이 찾아오고 그래서 불확실한 상황속에 던져질 때, 우리는 흔히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뭐가 잘못되었나, 내 신앙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나님은 왜 이러시지?’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고 해서 항상 축복과 평안을 누려야 한다는 것은 진리가 아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라는 큰 혼돈과 좌절의 시간이 있었다. 반드시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야만 통과할 수 있는 고통의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고통스런 십자가가 다가온다면 그것은 우리 역시 하늘 아버지께 기도하기 위해 겟세마네로 가라는 주님의 초청이다. 고난의 자리를 맞이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초청인 것이다.


겟세마네는 예수님이 고난과 구원 사이에서 씨름하셨던 장소이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기도하셨기에 고난에서 나와 구원을 향해 일어서실 수 있었다. 여러분이 고난과 혼돈을 맞이할 때 확신없이 일어서지 말라. 확신이 없다면 다시 주저 앉을 수밖에 없다. 기도했다고 문제가 여러분이 원하는대로 다 해결됐을 거라고 기대하지 말라. 예수님을 향한 조롱, 제자들의 배신, 십자가로 가는 채찍질은 기도가 끝나고 겟세마네 이 후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겟세마네의 시간이 있었기에 흔들리지 않으셨다. 이미 십자가를 선택한 사람에게 십자가는 고통으로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제 고난 주간이 시작된다. 바라기는 고난을 맞이할 때 우리 모두 기도의 자리에서  흔들리않는 순종의 잔을 준비할 수 있게 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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