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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의 미련한 것을 사용하시는 이유

고린도전 송재국 목사............... 조회 수 966 추천 수 0 2018.12.26 23:51:22
.........
성경본문 : 고전1:21 
설교자 : 송재국 목사 
참고 : 2018-01-14 열린침례교회 

전도의 미련한 것을 사용하시는 이유

(고전1:21)


전도자로서 이것이 필생의 사역이지만 전도에 대한 회의도 가끔 갖게 되는 때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전도하는 것을 멈추고 있는 이때에 추운 곳에서 떨면서 전도할 때 때로는 미련스럽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도 고린도교회에 편지하면서 전도는 미련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전도자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사도 바울은 사도로서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미지의 세계에 보내심을 받아 복음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의 생애를 복음전도를 위해 바친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하기 위해서 수없이 많은 고난을 당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 보낸 둘째 편지에서 그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고난을 당하였는가를 고백하였습니다.


고후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24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25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26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27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와 같이 사도 바울은 죽을 고비를 수없이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끝까지 선한 싸움을 싸웠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다하기까지 복음을 위해 일생을 바쳤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전도가 미련한 것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전도가 미련한 것일까요?


Ⅰ.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지혜의 차이 때문에


전도가 미련한 것은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지혜의 차이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 지혜의 차이는 얼마나 클까요? 하나님은 지혜로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그것을 보존하시며 운행하십니다. 그러나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시고 그것을 보존하시며 운행하시는 것을 알지도 못합니다.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잠언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의 지혜의 위대함을 증거하였습니다.


잠8:22 여호와께서 그 조화의 시작 곧 태초에 일하시기 전에 나를 가지셨으며 23 반세 전부터, 태초부터, 땅이 생기기 전부터 내가 세움을 받았나니 24 아직 바다가 생기지 아니하였고 큰 샘들이 있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며 25 산이 세워지기 전에, 언덕이 생기기 전에 내가 이미 났으니 26 하나님이 아직 땅도, 들도, 세상 진토의 근원도 짓지 아니하셨을 때에라 27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28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29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30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 31 사람이 거처할 땅에서 즐거워하며 인자들을 기뻐하였느니라


이와 같이 세상을 지으시고 역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의 피조물들에게 하나님의 주인 되시고 구주가 되시는 것을 소개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는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들에게 창조주를 설명하고 그 분의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은 구원을 소개한다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증거하였습니다.


롬1:19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그들에게 보이셨느니라 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라는 의미는 “하나님에 대해 알려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양심에 느껴지는 자연계의 신비를 통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의미합니다. 자연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거울입니다. 사람은 자연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신비스러움을 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하나님을 알 수 있지만 인간의 죄 때문에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서 하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는 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에게 동일하게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Ⅱ.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을 보아도 하나님의 실존과 목적을 깨달을 수 있는데,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수단으로 하나님을 소개하며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즉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로는 다만 하나님의 존재여부 정도만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하나님의 특수한 목적은 자연을 통해서는 깨달을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특수한 목적은 전도를 통해서만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을 볼 때 지혜자가 참으로 많습니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그것을 가르친 사람들이 대단히 많습니다. 16세기에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중심으로 지구가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발견하였습니다. 1801년 영국의 험프리 데이비 경은 백금 가닥에 전기를 통과시켜 최초의 전기 백열등을 만들었습니다. 1835년 찰스 배비지는 프로그램 작성이 가능한 최초의 컴퓨터를 개발하였습니다. 최초의 전화기는 1860년에 독일의 교사 요한 필립 라이스가 만들었습니다. 1926년 스코틀랜드의 베어드는 움직이는 텔레비전 영상을 공식 시연했습니다. 1964년에 최초로 심장이식수술이 성공하였습니다. 1969년에 미 국방부에서는 인터넷의 전신인 전자우편으로 최초로 문서를 전송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지혜의 왕이었습니다. 또한 B.C.4세기의 알렉산더 대왕의 스승이었던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박식하였습니다. 그의 연구와 역할은 오늘날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18,19세기의 괴테(Goethe)는 7개 국어가 가능한 해박한 지식으로 시와 소설을 썼습니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Leo Tolstoy, 1828년 9월 9일 ~ 1910년 11월 20일)는 소설가이자 시인, 개혁가, 사상가였습니다. 그 외에도 소크라테스, 석가, 공자와 같은 수많은 성인이라고 불러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인간 지혜자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과학과 의학과 문명과 문화가 발전하고 발달하였지만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향으로 발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왜곡하고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지으신 피조물들을 보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또한 인간은 최고의 지혜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지혜로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은 아무리 탐구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하나님을 거짓되고 가증한 우상숭배의 형태로 전락시켰습니다. 즉 불상이나 각종 형태의 우상처럼 하나님을 사람이 고안하여 만들 수 있는 수준 정도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일본에는 집체만큼의 개구리 우상들도 있었습니다. 태국이나 캄보디아에는 50m 혹은 100m의 용이나 뱀의 형상들이 많았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정도로 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기적으로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에 나왔지만 그들을 인도하던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빨리 하산하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32:4,8)라고 선포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이적과 기적을 경험한 이스라엘까지도 하나님을 인간이 만들 수 있으며 고안할 수 있는 존재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Ⅲ.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라고 증거하였습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전도를 미련한 것이라고 증거하였을까요? “전도의 미련한 것”은 전도 자체가 미련한 것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전도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최상의 목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지상사명입니다.
“전도의 미련한 것”은 “어리석은 전도”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의 복음을 어리석고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간주하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자연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와 나타나심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로운 구원의 길을 제시하셨는데 그것이 전도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판단으로는 어리석게 보이는 십자가의 메시지를 통하여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미련한 것”은 전도의 메시지로서 “십자가의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물론 우리는 십자가가 미련한 것이 아닌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십자가는 유일한 생명의 길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공의의 성취이며 계시입니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서 죄사함 받고 죄로부터 구원받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그러나 불신자들의 생각에 십자가는 어리석은 것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는 한 마디로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는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십자가의 말씀”은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관련된 말씀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하여 온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즉 복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멸망하는 자들 즉 구원을 얻지 못한 자들에게는 미련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기독교 안에도 열심히 노력하고 선을 행하므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십계명과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통해서 죄사함을 받으며 구원받는다고 전할 때 이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얻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롬1:16)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닌 바로 우리들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십자가의 도는 어리석은 것입니까?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입니까?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에 대해 증거하였습니다.


고전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갈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서로 나누기
1. 하나님의 지혜와 세상의 지혜에 대해 대략적으로 이야기해 보라.
2. “전도의 미련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3. 하나님은 어떤 방법을 통하여 죄인들을 구원하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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