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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겐 복음은 아직도 절박하다

로마서 지광선............... 조회 수 334 추천 수 0 2018.10.21 15:30:49
.........
성경본문 : 롬10:9-15 
설교자 : 지광선 목사 
참고 :  

주일 낮 예배 설교] [2018년 10월 21일]

본문 : 롬10:9-15

제목 : 누군가에게는 복음은 아직도 절박하다.

 
서론


짐 캐리(본명:James Eugene Carrey)는 얼굴근육을 자유자재로 움직이며 보여주는 코미디 연기로 인기를 얻고 있는 캐나다 출신 배우입니다. 그는 이 시대 최고의 광대이자 천의 얼굴을 지닌 코미디안임과 동시에 <트루먼 쇼> <맨 온 더 문>으로 골든 글러브 남우주연상을 수상,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는 보석 같은 배우입니다.


지금까지 출연작 중 흥행에 실패한 작품이 거의 손에 꼽힐 만큼 매 작품마다 전 세계적인 성공을 이룩하였습니다.

그는 1962년 1월 17일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뉴 마켓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부터 연기에 재능이 있어 15살부터 토론토의 유명한 코미디 클럽(Yuk Yuk's)에서 공연을 시작하여 19살까지 캐나다 전역의 여러 클럽에서 공연을 하며 돈을 벌었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가 어렸을 때 돌아가셨고 그의 어머니는 병환으로 누워있었기 때문에 가정이 어려워 고교를 중퇴하고 19살의 나이에 꿈을 안고 LA로 떠나야 했습니다.


LA에 도착했지만 그를 반겨줄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루 한 개의 햄버거를 먹고 낡은 50달러짜리 중고차에서 자며 호텔이나 빌딩의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는 것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비참한 생활을 했습니다. 어느 날 자신은 살아있는 것 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다 자신의 미래를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1990년 어느 날, 그는 차를 몰고 도시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언덕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눈 아래로 보이는 도시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수표책을 꺼내서 자기 자신에게 1000만 달러(120억 원 정도)를 1995년의 추수감사절에 지급하겠다며 자신의 수표에 서명하고는 5년 동안 그 수표를 언제나 지니고 다녔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1995년까지 1000만 장자가 되겠다는 결심을 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지급 일자인 1995년이 되었을 때 그는 ‘덤 앤 더머’(Dumb & Dumber)라는 영화의 출연료로 7백만 달러를 받았고, 그 해 연말에는 ‘배트맨’(Batman)의 출연료로 1천만 달러를 받았습니다. 5년 전 그가 자신에게 지급했던 수표가 부도나지 않고 결제된 것입니다. 그는 어느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뭔가를 하려면 동기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절박함 없이 무언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절박함은 뭔가를 배우거나 창조하기 위한 필수재료이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의 절박함은 무엇입니까? 아니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대한 미안함 먼저 믿은 자의 사명을 감당하지 않는다는 것은 주님의 복음의 필요성과 전파에 대하여 절박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입니다.

 
본론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모든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는 의를 힘입어 예수님을 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구원에 이르는 은혜를 얻게 된 것이라는 말씀을 전하는 본문 입니다.어떤 은혜의 말씀을 전하는 지 우리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많은 은혜를 받는 귀한 시간이 될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으로 볼 때 구원에 이르는 조건이 있습니다.


1)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큐리오스 즉 주로 시인해야 합니다.

여기서 주는 “큐리오스” 즉 주인이라는 말이고 시인 이라는 단어는 “호몰로게오” 라는 말은 동의하다, 인정하다, 계약하다, 고백하다, 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그러니까 이 시인 한다는의미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주로 시인하십니까? 정말이십니까? 그러면 그분의 종이 맞습니까?그러면 종처럼 사시기 바랍니다.* [마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2)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도 다 시 부활하신 생명의 주인이시고 생명의 주체이십니다. 이 것을 믿으시면 큰 소리고 아멘해보시기 바랍니다.기독교가 존재해야하고 기독교가 진리의 영적인 가치라는 가장 큰 이유와 근거가 바로 이 부활의 영광에 있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부활이 없었다고 한다면 예수님의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이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기독교의 존망이 걸리는 문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러면 기독교는 다른 종교와 별 다를 바가 없는 일반적인 보통의종교로 전락하게 될 뿐만 아니라 생명도 영생도 천국도 다 거짓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왜 예수님을 믿고 교회생활을 하십니까? 잘 먹고 잘 살려고? 아닙니다. 출세하려고? 아닙니다. 영광을 받아보려고?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인생이 살아가면서 있으면 좋은 것일 수 있지만 실제 우리는 그런 것을 목표로 신앙생활을 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우리의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부활이 곧 나의 부활이라는 믿음 때문에 우리는 그 예수님을 주인으로 왕으로 모시고 순종하며 살기로 주님 앞에 맹세를 한 것입니다.


[고전15:16-22]

16.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

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18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19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21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2. 예수님을 믿는 자는 결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은 “카타이스퀴노” 라는 단어인데 그 의미가 “수치를 당하게 된다, 얼굴을 붉히게 된다, 명예를 잃는다.” 라는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런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욱 믿음에 굳게 서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믿음을 지켜가야 하는 이유입니다.

[롬9:33]기록된 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벧전2:6]경에 기록하였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롭고 요긴한 모퉁이 돌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하지만 우리가 믿음이 없어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건질 수 있는 것이 없게 됩니다. 슬피 울며 이를 갈뿐입니다.

[마25:30]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3.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어쩌면 간단하고 쉬운 일 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이름을 한번 불러보시겠습니까? “예수님” 하고 불러봅시다. 어떻습니까? 쉽습니까? 예 우리는 지금 쉽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를 생각해보시면서 다시 한 번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정말 쉬운 일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누군가 힘으로 정부가 법으로 왕이 권력으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할 때 그래서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형벌을 내리고 감옥에 가두고 불에 태워죽이고 굶주린 사자들을 풀어 산채로 몸을 뜯어 먹히게 하고 가족들까지 연쇄적으로 죽이고 하는 시대속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과연 쉽 겠습니까?

제가 대학을 다닐 때 80년대죠? 한 참 민주화 운동이 일어날 때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를 당할 무렵 항상 우리 아버지께서 하시던 말씀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 얘야 넌 어디 가서든지 말을 조심해라 괜히 함부로 말했다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는 수가 있단다.” 예 그때가 군사정권시절 남과 북의 이념전쟁이 심화되었을 때 박정희정권에 대하여 장기 집권을 타도하려는 세력을 빨갱이 세력으로 보고 잡아들여 남산의 정보부에 끌려가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그런 시대에 그런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반대로 된 듯합니다. 함부로 말하면 붙잡혀 갈수 도 있응 그런 시대가 되었습니다.


4. 그럴려면 복음이 전해져야 합니다.


1) 믿지 않는 자의 이름을 부르는 경우는 없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 대상이 자신의 삶의 전부를 대신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에 그 이름을 거리낌이 없이 부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습니다. 아니 부를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죄이긴 하지만 사실은 그들은 모르기 때문에 부르지 못하는 것 뿐입니다. 믿을 수만 있다면 당연히 부르게 될 것입니다. 누가 그들로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게 할 것입니까? 누군가 가서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100여 년전 그랬듯이 말입니다.

 
2) 듣지 못한 것을 믿을 수는 더욱 없습니다.

무엇인가를 믿는 다는 것은 그것에 대하여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정보력을 판단할 때 보는 것(시각) 듣는 것(청각) 만지는 것(촉각) 냄새 맡는 것(후각) 맛(미각)의 오감을 가지고 모든 정보를 수집 판단합니다. 그 중에 듣는 정보력을 하나님은 제일로 평가하고 있습니다.

[롬10: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골1:4-6]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듣는 것이 우리가 무엇인가는 알게 하고 판단하게 하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3) 누군가 전해주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알려 줘야하고 전파해야 합니다. 말을 해줘야합니다.

사람을 들을 때 깨닫습니다. 보고 깨닫는 것과 듣고 깨닫는 것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고 확실하게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예 듣는 것입니다

들음이라는 과정은 우리의 생각을 바꿉니다. 우리의 생각의 틀을 깨버립니다. 이해하게 됩니다. 모르던 사실을 알게 됩니다. 하지만 눈으로 보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보는 것 말고는 더 이상 알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4) 보내심을 받지 않으면 전파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누군가를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누군라를 늘 보내시기를 원하십니다.

보내심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가서 라고 시작하시는 마28장의 19절 이후의 말씀을 우리는 주님의 지상 대명령이라고 합니다. 가야합니다. 하지만 내가 못가면 누군가 가겠다는 사람을 보내야 합니다.

우리는 가는 선교사 보내는 선교사를 도와야 합니다.

* [사6:8]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 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결론

오래전에 동물의 왕국을 본 일이 있습니다. 생김새가 연약한 사슴같이 생긴 아프리카에 사는 ‘가젤’ 이라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이 가젤이라는 동물은 생김새와 같이 연약한 동물입니다. 다른 동물을 위협하거나 공격할 만한 무기체계를 갖추지 못한 동물입니다. 그래서 이 가젤이라는 동물은 어머니 태에서 바로 걷고 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지 않으면 곧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눈뜨지 마자 달려야만 하는 약한 동물의 슬픈 운명을 보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해설자의 설명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약한 가젤 뿐만 아니라 가젤을 사냥하는 사자도 열심히 달려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자도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뛰지 않으면 가젤 사냥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가젤은 생명 걸고 뛰기 때문에 사자에게 쉽게 잡히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자가 사냥에 계속 실패하면 굶어서 쓰러지게 되고 그렇게 약해진 사자는 종종 하이에나의 공격을 받아서 먹이 감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가젤에 관한 마지막 결론은 이랬습니다. 사자가 되었든 가젤이 되었든 열심히 뛰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뛰지 않는 자는 모두 죽는 다는 것입니다. 사자는 굶어 죽고, 가젤은 잡혀서 죽고 ....


최근 들어서 열심히 뛰자는 이야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뛰는 것이 범죄인양 말하는 경우도 있다고 까지 합니다. 사자가 되었든 가젤이 되었든 열심히 뛰어야 서로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나 성도를 크기로 비교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충분히 커져 있으니까, 열심 내지 말아도 충분하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안주하다가 커다란 덩치들이 무너지는 것을 많이 보지 않습니까? 사자의 죽음인 것입니다. 내적 근육을 기르고, 속도를 기르고, 날렵함을 유지 하지 못하면, 덩치만 큰 공룡의 마지막을 맞이 하게 될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자도 뛰어야 산다는 이 교훈은 우리에게 생각하게 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것은 도움이 없거나, 환경 때문에 성장의 한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당부분 근거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생존을 위해서는 핑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력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마지막 때 까지 교회로써의 영적인 가치와 위상을 지키며 살아있으려면 세상에 대한 이런 저런 핑계 때문에가 아니라 우리만이 가질 수 있고 가져야 하는 영적인 실력 믿음의 실력을 갖추고 발휘해야 합니다. 연약한 가젤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약하니까 더 열심히 뛰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자가 쫓아오는 순간에 가젤의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가젤의 절박함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 때 더 뛰지 않았으면 죽었다는 것입니다.

늑대가 사냥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 가을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먹이 감들이 가장 살이 많이 쪄서 속도가 느려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이 많은 여름을 지났습니다. 많이 먹고 살이 찐 것은 일종의 축복입니다. 그런데 그 축복이 오히려 자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장애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 축복이 독이 되지 않도록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속도가 줄어드는 것을 최악의 상황으로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적의 속도를 유지하는 길은 적당히 먹고 열심히 운동하고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우리가 주님께 받은바 축복을 사명으로 여기고 베풀고 나누고 섬기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권면합니다.


[행20: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전9: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고전9:26]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딤후4:7]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사랑하는 내일의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그리고 저와 여러분이 신앙의 달음질은 무엇이겠습니까? 예배 기도는 기본 주님의 지상명령인 이 마지막 때 영혼구원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일 일 것입니다. [행18:10]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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