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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새로운 생각

마태복음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41 추천 수 0 2018.09.19 18:2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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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5:3-12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8-01-04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행복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새로운 생각

마5:3-12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직접 행복에 대한 말씀을 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이 내용은 누가복음 6장에도 나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는 복 선언은 4가지뿐이고, 대신 복 선언에 상응하는 네 가지 화(禍) 선언이 보태져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눅6:20-26에 나오는 대목인데요, 가난한 사람, 지금 굶주리고 있는 사람, 지금 슬피 우는 사람, 사람들에게 욕먹는 사람이 복을 받을 대상들이고, 재앙을 당할 사람으로는 부유한 사람, 지금 배부른 사람, 지금 웃는 사람, 칭찬을 듣는 사람은 재앙이 임한다고 말합니다.

 

마태복음의 복 선언은 산 위에서 한 것으로 되어 있는 반면, 누가복음의 복 선언은 평지에서 하신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는‘ 산상수훈’ 다른 하나는 ‘평지 설교’라고 부릅니다. 그러면 이렇게 다른 이유가 산에서 한 번 하시고 들판에서 하셨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마태와 누가가 예수님이 가르치신 자료를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배열했기 때문입니다. 그건 그들이 처한 공동체 즉 교회의 상황 때문이었지요.

 

마태와 누가는 한 종류의 자료를 보고 성서를 기록했지만 그 처음 자료는 지금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마태와 누가복음서의 복 선언 중에 어느 것이 원형에 가까 울까요? 이 말은 어느 복 선언이 예수님의 생각에 근접하느냐 하는 것이지요. 대체로 학자들은 누가복음이 예수님이 하신 복 선언의 원판은 누가복음이라고 합니다. 이제 이런 전제하에서 금년 우리가 누리고 살아야 할복에 대해서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처음에 나오는 행복의 대상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말로는 행복은 가난에서 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은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고 하고, 누가 복음은 그냥‘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누가에서는 ’너희‘와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라고 함으로 현장감이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복음에는 가난한 ’그들‘이 복이 있다고 함으로 막연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받는 복에 있어서도, 누가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이고 마태에서는 ‘하늘나라’입니다. 마태는 마가복음서를 참고하여 복음서를 쓰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하늘나라’로 바꾸어서 쓰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마태교회는 이미 많은 유대인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유대인에게 익숙한 언어를 골라서 썼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하늘’대체했었기 때문입니다.

 

여하튼, 누가복음은 ‘가난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받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요기서 가난하다는 말은, ‘오그라들다’, ‘쭈그리고 앉다’는 뜻인데 ‘거지’나 ‘극빈자’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누가복음서에서 복은 매우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마음’이라는 말은 ‘영에 있어서’인데, ‘정신에 있어서 가난한 사람’, ‘하나님 앞에서 구걸하며 서 있는 사람’, ‘마음이 겸손한 사람’을 뜻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이걸 정리하면 ‘정신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데, 그에게 하늘나라가 유업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가와 마태의 복 선언은 언어의 차이뿐 아니라 내용에도 차이가 보입니다. 마태에서는 경제적 가난의 의미가 후퇴하고 대신에 정신적인 가난, 즉 겸손이라는 윤리적 태도로 의미가 변해 있습니다. 이런 내면화 의인화 경향은 마태복음에서 다른 복 선언들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네 번째 복 선언을 누가복음은 ‘너희 지금 주리는 자’라고 한 반면에 마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윤리화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로마 제국은 속주 시리아의 변방에 있는 유다에 웬만큼 자치를 허용하고 있었습니다. 유대나라의 자치기구의 중심은 종교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전, 정치적으로는 산헤드린 의회였습니다. 그렇기는 해도 실질적으로는 로마의 환심을 산 헤롯 가문이 정치와 종교권력을 모두 움켜쥐고 있었습니다. 산헤드린의 중심세력은 사두개파였는데 이들을 임명하는 것은 헤롯이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사제 귀족과 레위인들 이었습니다. 이렇게 성전을 장악한 세력과 산헤드린 의회는 대부분 대토지 소유자들이었고, 중소 수공업자의 우두머리들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들의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들을 차별했습니다. 본래 구약은 야훼 평등사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속에 수많은 세칙으로 나뉘면서 백성들을 혼내고 지배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게 아니라 지킬 수 없었습니다. 로마 당국에 인두세, 간접세를 징수 당하고, 유대 자치기관에는 성전세, 십일조를 내야 했습니다. 가난한 농민들은 병든 사람과 장애인을 접촉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그들을 또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하게 되었습니다. 이럴 즈음에 율법학자들의 그룹인 바리새파에서 무슨 이론이 등장하는가 하면, 세상의 종말이 올 때 자기들만 정결한 백성이므로 하나님 나라에 먼저 들어간다는 것이었고, 농민들이나 장애인, 병든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예수가 오늘 복을 선언하고 계신 겁니다. 이때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는 농민들, 장애인들, 병든 사람들, 나그네들, 거지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이 “너희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 것이다.”하신 것입니다. 이 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는 바리새인들의 그 하나님의 나라와 다릅니다. 바리새인들은 장차 올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렸지만, 예수님의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당장’ 시작되는 것이었으니까요. 예수님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벌써 그의 활동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가난한 사람, 굶주리고 있는 사람, 울고 있는 사람에게 약속한 구원은 예수님이 그들과 함께 하는 방상에서 이미 실현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눅7:18-23에 보면, 세례요한이 제자들을 예수님에게 보내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가 바로 오실 그분이고, 예수가 이미 하고 있는 일들 가운데 이미 하나님 나라의 복이 주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미 가난하고, 병들고, 버려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버렸던 지배층의 종교인들과 권력들에게 ‘화’를 말하고 계시는 겁니다. 마21:3에 보면 “너희보다 창녀나 세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하는 말씀도 이런 상황 속에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오늘 예수님의 ‘복 선언’은 이런 배경을 두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할 건 다른 게 아닙니다.

 

행복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새로운 생각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어깨위에 금지와 의무의 무거운 짐을 지우려던 분이 아닙니다. 오늘날 기독교가 금지와 의무만 남아 있지만, 실상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를 몸소 가르치고 보여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 슬퍼하는 사람들이 슬퍼하지 않게 되고, 박해 받는 사람들이 원수를 갚게 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나를 비참하게 하는 사람들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 주겠다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이 행복선언은 뭐냐?

보통 사람들은 지금 가난하면 기필코 그것을 극복하고 넘어서서 부자가 되어야 행복하게 될 거라고 믿습니다. 모든 불행의 극복은 그것을 역전 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지금 박해받고 슬프고 가난한 사람들의 현실이 조금도 바뀌지 않는다 해도 삶 자체를 감사와 기쁨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지혜를 가르쳐 주는 겁니다. 오늘 우리가 듣기에는 아주 뻔 한 이야기 같아도 당시대의 사회통념으로선 전혀 낯선, 새로운 관점으로서의 접근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어리거나 어른이 되어도 괴로움은 늘 곁에 있습니다. 물론 못된 관행이나 법 제도 같은 것들은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바뀌지 않아도 삶은 지속이 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지속되는 삶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인지 예수는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예수님의 복 선언들을 상식대로 이해하면, 현재상황의 전복 즉 뒤집어엎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 대신에 천국이나 하나님 나라를 대신 확보하는 부자가 되는 것으로 말입니다. 그게 아닙니다. 그들의 삶은 슬프고 도대체 말이 안 되는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정의로운 복수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래도 인생은 살만한 것이며 그저 감사로 받을 뿐이라고, 부당한 폭력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고통가운데서도 행복은 조용한 시냇물처럼 흐르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비밀을 안 사람은 질그릇 속에 보화를 간직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행복의 시냇물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웃하고 친구가 되어주는 기적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복 선언을 통해 이러한 삶의 기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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