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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위를 부르심

누가복음 이정원 목사............... 조회 수 282 추천 수 0 2018.07.24 22:4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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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5:27-39 
설교자 : 이정원 목사 
참고 : 2017.8.20 희망의교회 http://hopech.kr 

레위를 부르심                           

눅5:27-39


  사람들은 전통이나 자신의 익숙한 사고방식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이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통과 선입견에 갇히면 앞으로 나아가기 어렵습니다. 특히 신앙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의 대상은 절대자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적인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과 생각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과 명령을 취사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바르게 서지 못하며 자라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없게 됩니다. 우리는 전능하신 절대자이시며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제자로 부르실 때 주님은 우리에게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을 주님께 온전히 드리기를 주저합니다. 적당히 믿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를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주님께 너무나도 부끄럽고 어리석은 것입니다.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주님을 따르면 우리는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게 됩니다. 주님께서 부르셨을 때 제자들은 즉시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역사상 가장 복되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본문은 예수님께서 마태를 제자로 부르신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를 부르심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자, 그들은 모든 것을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세관에 앉아 있던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레위라 하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27-28절) 레위는 우리가 잘 아는 마태입니다. “예수께서 그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마9:9)


  레위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로마인들에게서 일정지역의 세금 징수권을 받아 할당된 세금을 로마에 바쳤습니다. 그런데 세리들은 할당된 것보다 훨씬 많은 세금을 거두어 차액을 착복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세리를 이방인의 앞잡이, 매국노, 도둑, 가장 악랄한 죄인으로 여겨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를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시자 마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마태 파티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마태는 자기 집에서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레위가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하니 세리와 다른 많은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지라”(29절)


  이 잔치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었으며, 자기 가족과 친구 동료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잔치이기도 했습니다. 마태는 이 잔치를 통해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단한 것을 공개적으로 나타냈습니다. 마태는 이 잔치에 자신의 친구와 동료들을 초대했고, 많은 세리와 죄인들이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습니다. 마태는 이렇게 해서 자신의 친구와 동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하기 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잔치에 함께 참석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의 친구와 동료들은 예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자신들과 같은 죄인들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물었을 것입니다. 그날 그 잔치에 참석했던 많은 죄인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게 되었을 것입니다. 마태가 예수님을 위해 큰 잔치를 베풀고, 자기 친구와 동료들을 초대해 예수님을 만나게 한 것은 정말 귀한 일이었습니다. 마태는 자기가 만난 예수님을 자기 친구들에게도 소개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마태처럼 해야 합니다. 진정 구원받은 성도라면 이 구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 믿지 않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예수님을 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모르고 구원받지 못한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마태처럼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초대하고 있습니까? 그들을 위해 힘써 기도하고, 만나서 준비한 간증을 들려주며 복음을 전하십시오. 목장에서 잘 준비하여 사람을 초대하십시오. 아직 믿지 않는 우리 가족과 친구들이 우리가 정성을 다해 준비한 자리에 와서 주님을 만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마태의 집에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며 교제하시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제자들을 비방했습니다.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이 그 제자들을 비방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30절)


  우리가 누군가와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 사람과 상당히 친밀한 교제를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멸시받는 천한 사람들, 세리 같은 죄인들과 식사하는 것을 금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죄인들과 교제하면 부정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생각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성도가 악하고 불경건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좋지 않은 영향을 받습니다. 신앙에 유익이 없고, 잘못하면 죄에 물들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들이 죄인들과 교제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 것은 한편으로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들을 전도하려면 그들과 접촉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제자들을 비방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비방에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31-32절)


  전염성이 있는 병자와 접촉하면 감염되기 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병자와 접촉하는 것을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드시 이런 병자를 만나야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의사들입니다. 의사들은 병자를 치료하기 위해 그들과 접촉해야 합니다.


  비방하는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사는 예수님을 가리키며, 병든 자들은 세리와 죄인들, 건강한 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리킵니다. 자신들이 의인이라고 여기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이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죄인임을 겸손하게 인정하며 구원 받기 원하는 자들을 불러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주셨습니다.


    금식논쟁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한다고 비방했던 바리새인들이 이번에는 금식에 대하여 예수님께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말하되 요한의 제자는 자주 금식하며 기도하고 바리새인의 제자들도 또한 그리하되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나이다”(33절)


  바리새인들은 금식을 신앙의 깊이를 평가하는 척도로 삼았습니다. 금식을 많이 하는 사람은 경건하고 믿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 금식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하지 않는 제자들을 경건하지 못한 사람들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왜 제자들이 금식하지 않느냐고 따져 물었던 것입니다.


  율법에는 대속죄일에 금식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레16:29)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마다 금식했으며, 매일 서너 차례씩 기도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에다 이러한 세부조항들을 덧붙여 열심히 지켰습니다. 바리새인들이 금식하며 기도하는 것은 인간이 만든 규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물론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규정해놓고, 그대로 하지 않으면 불경건하다고 정죄한 것은 잘못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런 식으로 금식하지 않는다고 비방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혼인잔치에서 신랑의 친구들이 금식하지 않는 관습을 가지고 이들의 비방에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때에 너희가 그들로 금식하게 할 수 있느냐 그 날에 이르러 그들이 신랑을 빼앗기리니 그 날에는 금식할 것이니라”(34-35절)


  유대인들의 혼인잔치는 7일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잔치의 마지막 날 신랑의 친구들은 신랑을 신부의 방에 데려다 주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규례대로 한다면, 혼인잔치 동안 이틀은 금식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일주일 동안 계속되는 혼인잔치는 즐겁고 기쁘게 치러졌기 때문에 혼인잔치 동안에는 금식하지 않았습니다. 신랑의 친구들은 혼인잔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서야 비로소 금식했습니다.


  이 비유에서 신랑은 예수님을, 신랑의 친구들은 제자들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구원의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이 얼마나 기쁜 일입니까? 누구나 이 복음을 듣고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제 사람이 만든 옛 규례와 전통을 버리고 그 복음을 듣고 믿어야 할 때였습니다.


    두 가지 비유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두 가지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새 옷과 새 포도주 비유입니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어울리지 아니하리라”(36절)


  낡은 옷이 떨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수선하기 위해 새 옷에서 헝겊조각을 오려다가 낡은 옷에 덧댄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일단 새 옷을 버리게 됩니다. 그리고 낡은 옷에 덧댄 새 헝겊이 수축되면서 낡은 옷도 더 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새 포도주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못쓰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37-38절)


  유대인들은 양이나 염소의 가죽을 통으로 벗겨 포도주를 담는 부대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새 포도주는 발효되어 팽창하기 때문에 낡은 가죽 부대에 넣어두면 부대가 찢어지게 됩니다. 그러면 포도주와 부대를 모두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새 포도주는 탄력 있고 튼튼한 새 부대에 넣어야 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라


  이 두 비유는 인간적인 전통에 얽매어 예수님의 교훈을 거부하는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태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주님의 교훈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메시아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권위 있고 새로운 교훈이었습니다. 누구나 그분의 말씀을 듣고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신 복음은 새 옷이며 새 포도주였습니다. 새 옷을 찢어 낡은 옷에 덧댄다면 둘 다 버리게 됩니다.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으면 부대도 찢어지고 포도주도 쏟아집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이 만든 전통과 규례들을 고집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생각으로 예수님을 비방했습니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규례와 교훈들은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과 조화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물이 되었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하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주장을 버리고 새로운 마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태도를 이렇게 지적하셨습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고 함이니라”(39절)


  포도주는 오래 묵을수록 좋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묵은 포도주가 좋으냐, 새 포도주가 좋으냐 하는 문제를 다룬 말씀이 아닙니다. 포도주는 묵은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묵은 포도주를 마셔본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옛 전통과 낡은 과거의 사고방식으로는 예수님의 교훈을 수용하지 못한다는 것을 지적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전통과 묵은 율법주의에 빠져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복음을 깨닫지 못했으며, 받아들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경향은 오늘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우리는 주일마다 이렇게 말씀을 듣습니다. 우리 중에는 오랜 세월 하나님 말씀을 들어온 성도들도 많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그 말씀대로 힘써 순종하여 살고 있습니까? 그 말씀으로 생각이 바뀌고, 가치관과 추구하는 것이 달라졌습니까? 삶이 변화되었습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버리지 않습니다. 자기 맘에 드는 말씀은 잘 받아들이지만, 부담스럽거나 맘에 들지 않는 말씀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말씀을 들었지만 여전히 자아가 깨지지 못하고, 자기 맘대로 고집하며 살아갑니다. 아무리 말씀을 선포해도 변화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며, 그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즉시 주님을 따른 레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구원하는 복음, 권위 있는 새 교훈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들의 오래된 전통과 낡은 사고방식을 가지고 예수님을 판단하고 비방했습니다. 그들은 생명의 말씀, 구원의 복음을 거절했으며, 더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를 대적하고 핍박하여 십자가에 못 박게 했습니다.


  그러나 세리 레위는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를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려두고 즉시 주님을 따랐습니다. 그가 쌓아왔던 경력과 수입과 안정된 삶을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가 비록 사람들에게 비난받는 세리였지만, 이 결단으로 그의 인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세리 마태는 구원을 받았으며, 영광스런 주님의 제자,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시며 생명의 주인이십니다. 그분은 나를 지으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내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해주시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세상에 오셔서 고난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이제 나의 창조주시며 구주시고 주인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부르십니다. 날마다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은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버리고 주님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여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습니까? 생명을 바쳐, 인생을 다 바쳐 주님을 따르고 있습니까? 주님께 모든 것을 드리고 주님을 온전히 따름으로써 당신의 인생이 가장 복되고 영광스럽게 변화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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