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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241 추천 수 0 2018.03.25 14:41:02
.........
성경본문 : 마24:37-39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243739: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노아가 하나님의 설계대로 방주를 다 만들고 그 속에 쏙 들어갈 때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다 무엇을 하였느냐?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했습니다.

 

미남 미녀 취하여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하는 이것이 무엇이 죄냐? 늙은이들도 자기 것 놓아두고 미팅인지 숏팅인지 슛팅인지 하는데! 젊은 처녀 총각 청년들이 서로 좋아하다 뭔가 안 맞으면 헤어지고, 또 맞는가 했더니 안 맞으면 헤어지고 자기 죽을 때까지 번갈아 가면서 제 마음에 맞는 것 찾느라고 그렇게 사는 것이 뭐가 죄냐? 남녀를 만들어 놓은 것이 자기들이 알아서 짝맞추어 살으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몰라도 노아 당시 때의 그들은 자기들의 세상으로 살판으로 난 것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들도 그 때에 장가를 갔습니다. 그렇다면 다른게 무엇이냐? 뭐가 다른가? 예수 믿는 자들도 시집가고 장가가고,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시집가고 장가가고! 겉으로 볼 때는 같이 보일지 모르지만 다릅니다. 목적이 다른 것입니다. 불신자의 시집 장가가는 것은 세상 누림의 목적으로 가는 것이고, 노아의 세 아들들은 방주를 지을 목적으로 장가를 갔고, 시집오는 처녀들도 방주 지을 목적으로 시집을 왔고! 참말로 특수한 복된 처녀들입니다.

 

그런데 그 때에 홍수에 멸망당한 자들이 불신자들이냐? 아닙니다. 창세기 61절로 4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문제는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누릴 목적으로 모든 행복의 가치성을 물질에 두고 사는 소원 목적으로 이 세상에 모두 붙어버렸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니 하나님의 신이 떠나더라, 성령이 떠나더라!

 

처녀 총각들이 모두 다 세상의 부귀 공명 영광에 사로잡혀서 누릴 목적으로 제 마음대로, 제 눈에 보기 좋은 대로 다 찾아가지만 같이 방주를 짓겠다고 하는 그 며느리들이 얼마나 복스럽게 보였을까?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 같이 시집 장가를 가도 돈을 어디다 무엇을 하는 데에 더 많이 쓰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정신이 어떻다 하는 것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람도 이것을 아는데 하나님이신들 이것을 모르시겠느냐?

 

노아방주 짓는 날이 120, 그들의 날수도 120. 노아와 노아의 식구들은 노아의 감독 하에 방주를 짓기 시작합니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 날마다 방주건축이 올라갑니다. 영생으로 생명으로 노력도 시간도 젊음도 투자도 일생이 영생으로 생명으로 구원으로 먹혀 들어갑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은 노력도 시간도 투자도 젊음도 자기의 일생도 모두가 하루하루 사망에게 먹혀 들어가고 있습니다. 노아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고 깨닫고 돌아서면 영생으로 성장될 그 생명이건만 안타깝게도 하루하루 사망 쪽으로 까먹고 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39절에서는 홍수가 저희를 멸하기까지 깨닫지를 못했다고 했습니다. 홍수가 왜 일어났는지 깨닫지를 못했고, 자기가 물에 빠져 죽어가면서도 내가 왜 홍수에 휩쓸려 죽는가하는 그 원인을 깨닫지를 못했다는 것입니다. 노아가 전도를 했는데도 말입니다. 사람 참 답답할 노릇이지!

 

그런데 문제는 주님의 재림 때도 그렇게 된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그것 참 이상한 일입니다. 구약시대 노아 때나 앗수르에게 포로 되거나, 바벨론에게 포로 되거나, 소돔 고모라의 유황불이나, 주후 70년에 로마에게 멸망당함이나 말세의 교인들은 거울 같이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세는 노아 때와 같고 소돔 고모라 때와 같다고 했으니까 말세의 현상들을 잘 알고 있는데 어찌하여 노아 때처럼 그럴 것이라고 했을까?

 

말세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셨으니 믿음 잃지 않고 깨어 있어 기도하기 위해서 철야기도 산기도 금식기도 전도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그리고 한 집 건너 복덕방이 있듯이 간판을 붙인 교회들이 밤에 붉은 십자가가 경쟁이나 하듯이 불을 밝히고 있어서 지상천국처럼 보이는데, 그리고 외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는가?

 

혹시 예수님께서 2000년 후에는 한국교회가 천국에까지 부흥 발전될 것을 모르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설령 알았다 하시더라도 한국은 예수 믿는 천국이니까 심판하실 것은 없고, 예수를 믿지 않는 나라가 너무나 악이 충만해졌기 때문에 한국을 제외해 놓고 하신 말씀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보더라도 심판 받을 자들이 이방 불신자들이라기보다도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이방 불신자들은 거론할 가치도 없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영은 선악과 따먹은 그 즉시로 죽었고, 이성과 육은 죽어가고 있고 필경은 죽을 것이고. 그리스도의 구속을 입기 전에는 그 영이 살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택자 영적 이스라엘을 위해 알아서 치리 하십니다. 문제는 택자인 영적 이스라엘인데 보통들 보면 심판은 전혀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처럼 말하고, 믿는 사람은 일을 크게 충성스럽게 열심히 하면 큰상을 받는다고 몰아붙이고, 예수 믿다가 게으름을 피거나 죄를 지으면 지옥 간다고 말하니 지옥을 안 가려면 죄를 짓지 말아야 하니 일반 도덕성적인 죄를 지었거나 하나님 앞에 충성봉사 못 했으면 날마다 회개입니다.

 

우리가 볼 때 노아홍수가 왜 났느냐? 하나님의 아들들이(하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미녀를 취하는 운동을 하니 하나님의 신은 떠났고 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바벨론 나라에 포로로 잡혀서 70년 동안이나 포로생활을 했느냐?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로마군에게 정복당한 것도, 앞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도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참 이상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방 불신자들과 같은 그런 죄는 안 지을 터인데 도대체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말세 때에 심판을 받는다는 말인가? 그래서 우리는 심판을 왜 받는지 그냥 모른 채 넘어갈 수가 없습니다. 꼭 알고 살아야 합니다. 밥을 굶는 한이 있더라도 밤을 새워서라도 그 이유를 밝히고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심판의 대상자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단순히 눈에 보이는 현상만 보지 말고 활동 속에 눈에 안 보이는 현상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자기는 불 속에서 콩 타듯이 튈 것이고, 불 위의 오징어처럼 오그라질 날이 올 것입니다.

 

짐승이 뛰어간다, 사람이 뛰어간다할 때 도망가는 것인지, 잡으러 가는 것인지? ‘사람이 물로 뛰어들었다할 때 자살하는 사람이냐, 건지러 들어가는 사람이냐? 활동에, 행동에 이유가 있습니다. 마음 움직임, 정신 움직임, 생각해서 손발을 움직인 이유가 있습니다. 무슨 소원 목적으로 움직였는지 이유가 있습니다. 괜히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유 있는 이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유 있는 이것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 생각 마음도 그 방향성이 올라가는 것도 있고, 내려가는 것도 있습니다. 위로 올라가는 것은 신령성이고, 내려가는 것은 물질성입니다. 예를 들면 첫째로 내가 세상에서 부귀 영광을 얻어 한 평생 잘 먹고 잘 살아야지하는 그 소원 목적성은 땅으로 향한 것, 세상을 향한 것, 육신의 생각이라, 세상 생각이라, 옛사람의 생각이라! 세상 것은 모두 불에 타지는 것이니 자기도 불에 타지는 것입니다.

 

이 소원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다면 이는 세상적인 종교인이라! 이 세상생각으로 너도나도 온 교회가 모여서 활동을 하게 되면 기독교 외식주의운동이라 하게 됩니다.

 

두 번째로 내가 세상 나그네로 살면서 그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성경말씀의 진리이치 생명이치를 바로 깨달아 주님처럼 온전자로 만들어지고 깨달아지고 닮아져야지하는 소원 목적을 가지고 믿는 마음은 참 순 진짜 신령한 사람입니다. 성령의 사람이요, 천국을 향한 사람이요, 새사람의 사람이요, 영의 생각이요, 천국복음운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성경대로 기독교 본질의 신앙을 가진 사람입니다.

 

첫 번째 예의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일 크게 많이 하자이니 물질주의 외식주의 종교적인 사역 이력 업적이 많을 수록 , 신앙 좋다, 신앙이 크다라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 예의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일을 주님처럼 하나님처럼(5:48) 진리의 지혜 지식의 온전자, 도덕성의 온전자, 능력성의 온전자로 만들어지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어느 정신으로 빠진 신앙이냐? 열심히 충성봉사하기 그 이전에 신앙사상이 어디로 빠져서 열심 충성봉사냐?

 

술의 노예, 담배의 노예, 돈의 노예, 세상의 노예가 되면 팔려가고 끌려가게 됩니다. ? 정복을 당했으니까! 옛날 구약시대 때에 하나님의 택한 선민 이스라엘이 이방나라를 의지하고 그들의 우상을 좋아서 끌어들이는 것은 이미 그 정신과 마음은 이방우상에게 정복을 당한 것이기 때문에 이 정복을 깨닫게 해 주시려고 전쟁에서 정복을 당하여 포로로 끌려가게 만들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유행바람을 타는 것은 세상에다 마음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유행바람을 타는 사람 속에는 진리지식이 없는 사람입니다. 속에는 썩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제 마음 제 뜻대로 안 되면 남 원망, 세상 원망할 사람입니다.

 

홍수라는 것은 꼭 물이 범람해서 넘치는 것만이 홍수가 아닙니다. 사람이 하고 몰려오는 것도 사람홍수입니다. 그 많은 사람의 생각과 마음과 소원과 목적이 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홍수입니다.

 

기독교 교회들이 세상을 소원 목적하여 그것을 이루어 달라는 것은 그 생각 그 정신 그 신앙사상은 세상이라고 하는 물에 빠진 것입니다. 기독교인이 이것을 부정하는 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100% 불 속에 들어갈 자로 단정을 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한다고 그랬는데 무엇을 먹고 마신다는 말이냐? 밥과 물을 먹고 마신다는 말이냐? 아닙니다. 세상을 소원 목적하여 사는 것은 세상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천국을 소원 목적하여 먹고 마시고, 노아는 방주 짓는 목적으로 먹고 마시고. 그래서 사는 목적이 다릅니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이방 불신자들은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장가가고 시집가고, 예수 믿는 사람은 천국을 소원 목적하여 장가가고 시집가고, 노아의 자녀들은 방주 지을 목적으로 시집가고 장가가고. 우리는 정신과 마음 소원 목적이 어느 한 쪽으로 쏠리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는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것만 알면 되느냐? 그게 다가 아닙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구원이치가 또 있습니다. 먹고 마시고 한다는 것은 흡수입니다. 어떤 정신 사상을 흡수하느냐? ‘매일 매일 아침저녁으로 밥을 먹듯이 어떤 정신 사상을 배우고 있느냐입니다. 세상적인 종교사상을 배웠으면 이는 분명히 외식주의운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질이 세상입니다. 진리정신 사상을 배웠으면 분명히 천국복음운동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질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외식주의 기독교 종교운동은 기독교 종교 문화 예술제와 같은 집회와 행사가 많은 것입니다. 기독교가 대거 이렇게 흐르는 것이 홍수라는 말입니다.

 

장가가고 시집가고

 

이것은 다른 이성간의 결합을 이루는 한 몸이 되는 의식입니다.

 

시집가고

 

딸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인데 이것은 통혼입니다.

 

노아 때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이방불신자들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배우고 주고 혼합사상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과 교회가 혼합이 된 것입니다. 교회가 하나님 앞에 거룩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교회가 세상 안 믿는 사람과 다른게 없어졌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귀신하고 우상하고 다른게 없습니다. 말하자면 기독교인들이 그런 식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종교적 바벨론이요, 귀신들의 집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심판의 대상인 줄 모르고 여전히 심판의 대상은 예수 안 믿는 사람이라고 착각들을 하는 것입니다. 이래서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세상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말씀, 진리이치대로, 하나님 말씀의 설계대로 자기가 구원 얻을 믿음의 방주를 지을 사람도 있을 것이나 희귀할 것이고, 심판을 받아 죽을 사람은 엄청나게 많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재 자기는 죽을 사람의 숫자에 안 들어갈까? 90%? 50%? 30%? 10%? 30%가 하나님의 심판에 불타서 죽는다고 하면 그 심판을 벗어날 가능성은 조금 있겠지? 10%만 하나님의 심판에 회부된다고 하면 자기는 안심할 수 있겠느냐? 이룰 구원 성화구원을 몇 %나 이룬 것 같은가? 10%? 30%? 50%? 100%?

 

만일 지금 자기의 신앙의 정도를 느껴 볼 때에 노아는 100% 다 지었는데 자기도 노아처럼 똑 같이 100% 다 지었을까? 못 몇 개 박아놓고 아이구, 나는 못 하겠다, 노래방이나 디스코홀에 가서 스트레스 좀 풀고 와야지!’ 옆 사람도 널판지 몇 개 붙여놓고 나는 허준이나 보고 와야지!’ ‘나는 누구 결혼식에 갖다 와야지!’

 

어떤 사람은 90%를 해서 조금만 더 하면 마칩니다. 누구는 80%, 누구는 60%, 40%, 20%, 10% 정도입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에 비가 오기 시작한다면 어떻게 될까?

 

나무판자 몇 개만 붙여놓고 딴 짓 한 사람은 그것 붙들고 안 죽으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고,

 

지붕을 안 덮은 사람은 우산 쓰고 앉았다가 배 안에 물이 차니 물 푸다가 죽었을 것이고,

 

제일 억울한 사람은 옆에 창문문짝 하나를 못 달아 가지고 그 동안 창문으로 들어온 물 속에서 견디다 견디다 비가 개이는 날 그 물에 빠져 죽은 사람일 것입니다. ‘문짝 다는 그 날이 누구 추도식 하는 날이래하는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그날 문짝을 하나 못 달아서 그리로 물이 새어 들어올 줄 누가 알았겠느냐? 햇빛이 하고 나자마자 죽었으니 얼마나 억울할까?

 

노아의 여덟 식구가 하나님이 이르시는 설계대로 방주를 지었듯이 오늘날도 진리의 성도들은 성경말씀대로, 진리이치의 설계대로 자기의 이룰 구원 성화구원을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을 향하여 잘 지어나갑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교인들은 참 인격의 참 사람, 주님의 온전을 향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고 세상 정치적인 재미, 과학적 발전과 오락의 재미, 종교적 문화 예술적 재미를 보느라고 세상이 살만한 모양입니다.

 

학생에게 일을 죽도록 시키면 공부가 잘 됩니까, 깨닫는 이치를 가르쳐야 공부가 잘 됩니까? 오늘날 성경이치 깨닫고 인격의 온전으로 되어 가는 것은 모릅니다. 성경공부를 하는 것도 일반 도덕적인 개념으로 하게 되니 무슨 성경이 깨달아지겠습니까? 문자적 개념은 행동강조밖에 안 나옵니다. 사람이 지식에 변화가 없고 행동이 신앙인 것처럼 되어 버리니 외식운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 잘 믿는 것처럼 굳어졌으니 세상주의 인본주의 육본주의 물질주의 외식주의에 빠져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자로 빠져 있으면서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아 홍수 때처럼 된다는 말입니다.

 

이제 나는 어디에 빠졌으며, 우리 집 식구들은 모두 어디에 빠진 것 같으냐? 정치의 홍수에 휘말렸느냐? 과학 오락의 홍수에 빠졌느냐? 종교적인 문화 예술 잔치에 빠졌느냐? 나의 정신 사상이, 나의 마음이 어디에 빠졌느냐? 사람의 정신 사상이 어디에 빠져 있는지 빨리 빨리 알고 진리를 붙잡아야 구원이 되는 것입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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