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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마태복음 이경숙............... 조회 수 2365 추천 수 0 2008.05.16 09:5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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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20-23 
설교자 : 이경숙 교수 
참고 : 새길교회 
오늘은 크리스마스를 앞둔 4주일 중에 첫 번째 주일입니다. 교회력에는 대강림절이라고 되어 있고, 대부분의 서구라파 가정에서는 전나무나 소나무로 둥근 장식을 마련하고 이번 주부터 네 귀퉁이 중 하나에 빨간 초를 키면서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유럽에서는 이때부터 크리스마스 장식을 다 동원해서 사람들을 크리스마스 분위기로 몰아갑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차분히 자신을 되돌아보는 분위기가 요즘 우리 사회 분위기와는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대선이 18일 앞으로 다가와 있는 시점에 금융대란이다, 30% 경비 절감이다 하면서 기업의 줄 이은 부도 등으로 우리들 마음에는 평화 대신 불안이 가득합니다. 요즈음 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이 취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니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어른들의 책임을 통감하게 됩니다. 그 동안 우리들이 너무 사치하고 분수를 잃고 거품 속에 살아온 것은 분명합니다. 들뜨고 정신없는 자세를 가다듬고 이제는 모두들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정리하고 그리스도를 우리 마음속에 받아들일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요즘 같은 경제 파탄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주 여자들이 정신없이 호화스럽게 외제를 쓴 결과라는 지적을 받으며 또한 반성하라는 충고를 많이 받습니다. 불황에도 없어서 못 파는 밍크 코트, 화려한 혼수용 보석, 끼어서 왔다 갔다 하는 시부모용 보석, 이태리제 가구, 하다못해 주방용 기기까지 모두 국산을 찾으려면 이리저리 헤매야 될 만큼 외제 일변도인 현실을 생각해 볼 때 이런 비난이 한편은 당연한 것도 같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성공과 출세를 위해 아이들을 일찍 해외에 유학을 보내고, 비싼 동네에다 집을 사주거나 얻어주고, 고급 차를 사주고, 세계 재벌급 자녀 수준의 용돈을 주고 등등 모두 여자들의 잘못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런 비난이 모두 옳다고 봅니다. 그러나 이 파국을 맞은 책임을 이렇게 표피적으로 또 일방적으로 어느 일부를 속죄양을 만들어서 전부 설명하려는 태도에는 저는 반대합니다. 실명제로 인해 갈 곳을 잃은 돈의 흐름이라든지 정부의 무한경쟁이나 세계화 진입 등의 구호들이 우리 모두의 모습과 자리를 국제적으로 착각하도록 만든 것 등을 올바로 분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요즘 한창 비난받고 있는 여성들의 사치를 우려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속죄양으로 만드는 것을 또한 거부하면서 오늘은 대림절과 관련해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해 잠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아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여성들 대부분의 이름입니다. 신약에는 각각 다른 마리아가 7명이 등장하는데 이들 중 누가 같은 여자인지를 알아내는 것이 신약 학자들의 논란의 대상이 됩니다. 마리아는 구약성서에 나오는 미리얌에서 온 이름으로, 미리얌이 마리암으로 그리고 마리아가 된 것이죠. 성서에는 마리아에 관한 보도가 산만하게 흩어져서 나오기 때문에 예수 어머니 마리아에 관해 알아내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선 동정녀로서 예수를 낳았다는 보도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있고, 예수와 그 어머니의 관계가 그다지 밀착되지 않은 것 같은 면을 보여주는 보도들이 마가 3:31-35, 요한 2:1-11절에 나오고, 그리고 예수가 운명하기 직전에 사랑하는 제자(요한)를 자기 어머니께 아들이라고 연결시켜주는 보도들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이들 보도들에 의지해서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와의 관계를 역사적으로 분명히 알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사 안에서는 특히 가톨릭 교회에서는 마리아 찬양과 숭배가 아주 성행하고 있으며 마리아에 관한 여러 가지 교리들도 생겨났습니다. 물론 이런 교리들이나 이론들은 성서에는 없는 내용들을 기초로 한다는 특징을 가집니다. 그중 첫째는 옛 이브 하와를 새 이브 마리아로 대조시켜서, 옛 이브를 통해 인류의 타락이 왔다면 새 이브 마리아를 통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는 새 인간상이 생겨났고, 이로써 인류의 죄를 풀어 새 삶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둘째로는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가 붙여지게 되었으며 12세기에는 성모 몸소승천이라고 해서 사후에 육체를 입은 채 하늘로 올라갔다는 교리가 생겨났고, 또 무염수태, 즉 인간이었지만 몸이 전혀 손상을 입지 않은 채로 임산·출산을 하였고, 예수 출생 이후에도 동정을 지켰으며, 죽을 때까지 순결하게 동정을 지킨 영원한 처녀였었다는 것입니다. 이 경우 다른 예수의 형제들에 관한 문제들이 대두되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이 데리고 들어온 홀아비쩍 아이들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마리아 숭배가 가톨릭의 독신주의와 관련해서 발전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또 로마제국의 고대종교에 여신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는데, 기독교가 공식 종교로 인정되면서 에베소에서 동정녀 어머니로 숭배되던 아르테미스 다이아나 숭배의 풍습이 들어와 마리아가 그 역할을 대신하게 되어 대중들에게 마리아가 여신의 위치로 부상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마리아 숭배는 성서적이라기 보다는 신앙인들의 희망과 욕구가 투사되어 일어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마리아에 대한 기대는 한편으로는 순결의 처녀이면서 또 한편으로는 다산의 어머니라는 두 가지 기대가 합쳐진 것입니다. 이 둘의 성격은 모순되지만 말입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마리아 숭배가 너무 강해서 20세기에 들어와서는 교리를 정리해 줄 정도로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기적과 병을 고치는 여신의 위치로 확고한 위치를 점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성서가 마리아에 대해 동정녀로 예수를 임신하였다는 가장 확실한 보도에 대해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예수 동정녀 탄생설은 마태, 누가복음서에만 있고 바울서신이나 마가복음서에는 없습니다. 요한복음서는 가장 신학적인 성서로 동정녀 탄생설이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언급이 없습니다. 어쨌든 마태, 누가복음서에 보면 이미 복음서들이 쓰여질 당시에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예수가 동정녀에게서 탄생되었다는 사고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서 1:20∼23절에 보면 이사야 7:14절을 근거로 그 예언이 성취되어 동정녀 탄생을 하게 된 것으로 보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 7:14절의 히브리어 본문에는 동정녀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알마라는 말이 나오는 데 그 뜻은 젊은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사람들이 처녀 혹은 젊은 여인(결혼한 여인도 해당되는)으로 번역이 가능한 파르테노스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태복음서의 이사야 7:14절의 인용은 잘못된 것입니다. 또 만일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이사야의 예언 때문이라고 본다면 그것은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말이 됩니다. 예수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서 신성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고가 먼저 중요하게 확립되었을 것입니다. 이런 사고가 확립된 후에 동정녀로부터 태어났다는 탄생설화가 대두되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의 동정녀 탄생설은 위대한 영웅과 지도자들의 신적인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동정녀 탄생을 그렸던 그리스-로마의 문화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여기서 분명한 사실은 동정녀 탄생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또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데 전제 조건이 되거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점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를 강조하고 뒷받침하는 것이 동정녀 탄생설입니다. 마가나 바울 그리고 요한은 동정녀 탄생설화 없이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여기고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사건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처럼 동정녀 탄생에 있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동정녀 탄생이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으냐 또 과학적이냐 아니냐 하면서 싸우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믿고 부활의 사건을 믿는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도 고백할 수 있는 신앙의 내용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개신교가 옳다고 생각합니다. 예수 신앙 없이 마리아는 없고, 기독론 없이 마리아론은 없습니다.
그러면 마리아는 과연 어떤 여자였을까요? 역사적으로 또 성서적으로 알 수 있는 마리아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을까요? 아마도 마리아는 가난하고 겸손하고 순종적인 평범한 유대 여인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아들 예수와는 자주 만나지 못하며, 가족 중심주의나 가족 이기주의의 극성맞은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와는 거리가 먼 비교적 멀리서만 소식을 듣고 가슴 아파하던 어머니였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위대한 아들이 당하는 고통과 어려움을 간접적으로 전해 듣고 멀리서 기도하고 안타까워하는 힘없는 어머니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십자가에서 임종하기 직전 자신의 사랑하는 제자를 어머니에게 아들로 소개하고 맡기셨습니다. 이로써 예수는 마리아를 예수의 사업에 동참하는 제자들의 어머니로서 교회의 상징으로 부각시킵니다(요한 19:23-25). 이렇게 본다면 마리아는 우리 한국의 어머니 그리고 우리들의 어머니 혹은 우리들의 모습과 너무나 유사한 모습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없고 수동적이고 겸손하고 그러나 그 아들의 일을 완벽히 이해하고 동참했던 여인인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마리아를 남성신학자들이 묘사하듯 단순히 수동적이고 순종적이고 겸손한 여인이라고만 보는 것이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리아는 조용한 가운데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함께 하나님의 구원사업에 동참했던 여인입니다. 성령에 순응하고 성령의 역사에 동참한 여인, 그녀는 마리아 찬가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즐겨 노래합니다:

주께서는 그 팔로 권능을 행하시고, 마음이 교만한 사람들을 흩으셨으니
제왕들을 왕좌에서 끌어내시고, 비천한 사람들을 높이셨습니다.
주린 사람들은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시고
부한 사람들은 빈손으로 떠나보내셨습니다(눅 1:51-53)

Robert McAfree Brown은 《Theology in a neo key》라는 글에서 "성화 속에 있는 마리아는 초생달 위에 서서 왕관을 쓰고 반지를 끼고 금으로 수놓은 파란 옷을 입고 있군요. 그런데 누가복음 1:46-45절에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그의 신앙고백을 노래하고 있는 마리아와는 매우 다른 모습이군요."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제 여기서 한 사람씩 마리아에게서 왕관을 벗기고, 반지를 벗기고, 비단외투, 후광들을 벗겨냅니다. 그리고 보면 마리아는 먼지로 덮여있고 피곤에 지쳐있고 태양의 뜨거운 빛을 피하기 위해 두껍고 남루한 배 조각을 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대성당에 있는 마리아의 모습도 잘 차려입고 멋있는 맨션 아파트에 사는 여인의 모습도 아니고, 빈민가에 사는 예수가 활동하시던 그 현장에 있던 그런 여인의 모습입니다. 스위스 목사님 Kurt Marti는 "마리아가 제단 위에서 숭배되는 자신을 발견하고는 그것은 전혀 자신이 아니라고, 그것은 오해이고 사람이 뒤바뀐 것이며 미신이라고 경악하면서, 서서히 제단에서 내려와 예수가 활동하시던 현장으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기 위하여 그리고 또 그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길을 떠났다"는 내용을 시로 썼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말이 없고 겸손한 여인으로,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적극적으로 동참한 여인으로, 출애굽기에 나오는 미리얌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고통받는 현장에 예수와 늘 함께 있었던 마리아의 참 모습을 다시 발견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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