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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최용우............... 조회 수 1724 추천 수 0 2008.11.01 21: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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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17:1-5 
설교자 : 이재철 목사 
참고 : 1996년9월 8일 
제목:영화롭게 하옵소서
본문:요한복음 17 : 1∼5
설교:이재철 목사(1996년9월 8일)

1945년 미국의 히로시마 원폭투하로 일본의 무조건 항복과 함께 우리 나라가 광복된 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이끌던 이승만 박사가 귀국했을 때, 그 분에 대한 국민의 환영은 열광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정파를 막론하고 당연히 그 분이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의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1948년, 그 때까지 그 자신이 자신을 위한 정당을 만들지 아니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제헌국회에서 그 분은 초대 대통령으로 무난히 당선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초대 대통령이 된다는 것은 여간 큰 영광이 아닙니다.

초대 대통령이란, 그 나라의 역사상 단 한 사람밖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수천 년이 흘러도 그 나라가 존속하는 한, 초대 대통령은 다시 나올 수 없습니다. 그처럼 귀한 자리를 차지하는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 분의 영광은 오래가지 못하였습니다.

그 분은 일제에 빼앗긴 조국 광복을 위해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던 그 조국으로부터 망명길에 오를 수밖에 없었고, 망명지인 하와이에서 말년에는 식물인간처럼 살다가, 죽은 시체가 되어서야 조국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근자에 들어 그 분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시도되고 있지만, 그러나 헌정을 유린한 최초의 독재자란 오명은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초대 국부의 영광은 불과 13년만에 수치가 되고 말았습니다.

초대 대통령의 자리만 영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대통령의 자리를 다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대통령의 T/O는 언제나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시기에 현직 대통령이 두 명이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고 있을 수 없음은, 대통령직은 언제 어디서나 단 한석 뿐인 까닭입니다. 한 시기에 단 한석뿐인 대통령직을 수행한다는 것은 또한, 그 개인에게는 엄청난 영광입니다. 그래서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은 임기가 끝난 뒤에도 그 영광이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두 분의 전직 대통령이 각각 5년의 시차를 두고 현직에서 퇴임하던 날, 청와대를 떠나 사저가 있는 동네로 도착했을 때, 동네 주민들은 `수고하셨습니다'란 프랭카드를 내어 걸고 환호성을 지르면서 방금 전직 대통령이 된 그 분들을 환영하였습니다. 전직 대통령으로서의 영광스러운 여생이 보장되는 듯하였습니다. 그 환영 속에서 두 분 역시 전직대통령으로서 자신들의 여생이 당연히 영광스럽게 마무리되리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그 분들은 내란죄의 죄명으로 사형과 22년 6개월을 선고받은 중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불과 몇 년전 그 분들의 퇴임날 수고하였으니 어서 오시라고 환영하던 동네 주민들은, 이제 그 분들과 이웃이란 사실 자체를 수치스러워하고 있습니다. 그 분들이 영광스러운 대통령직에서 각각 물러난지 겨우 8년과 3년만에, 그 분들과 함께 했던, 그토록 찬란하게 보였던 영광은 온 세계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참 영광이 아니였던 것입니다. 그분들이 1979년 12월 12일 영광 아닌 영광을 쫓아 나선 그 발걸음이야말로 오늘의 수치를 향한 제1보였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2,700년 전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부르시고 `가서 외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사야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외치리이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임을 외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아름다음`이란 말을 베드로 사도는 영광이라 해석하였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영광은 들의 꽃과 같을 뿐임을 외치라고, 그것도 소리쳐 외치라고 이사야 선지자에게 명령하셨겠습니까? 花無十日紅―.`열흘 붉은 꽃이 없다'고, 풀은 반드시 마르고 꽃은 필히 시들지 않습니까? 그처럼 인간의 육체와 영광은 반드시 시들고 이지러지기 때문입니다. 풀이 말라 비틀어지듯이 인간의 육체는 어김없이 쇄하고, 꽃이 떨어지듯 인간의 영광 또한 예외없이 시들고 마는 것입니다.

생각하여 보십시오. 인간이 유한한데, 이 세상이 유한한데, 이 세상에 속한것 중 변치 않는 것이 하나도 없는데, 어찌 인간의 영광이 영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많은 자들이 헛된 인간의 영광을 구했으며, 그 영광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인생을 의미없이 탕진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영광은 들의 꽃과 같을 뿐임을 소리쳐 외치라 명령하시겠습니까? 아니 그것은 바로 하나님 아버지 당신의 외치심인 것입니다.

2,700년 전 이사야를 통해서 뿐만 아니라, 오늘도 하나님은 외치시고 계십니다. 두 분 대통령이 중형을 선고받던 그 법정에서도 하나님께서 외치셨음을 알고 있습니까?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니라"
참된 영광은 결코 옆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사람으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물질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더 이상 헛된 영광을 구하려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인간의 영광은 반드시 소멸되기 마련이고, 봉우리가 높은 만큼 골도 깊기에, 그것은 언제나 허망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다.
처참한 십자가의 죽음을 목전에 둔 최후의 순간,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올려 하나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하나님께 마지막 기도를 드리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본문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1a)
때가 이르렀다는 것은 죽음의 시간이 코 끝에 다가왔다는 말입니다. 최후의 순간이라는 말입니다. 그 마지막 순간 주님께서 아버지께 생명을 구했습니까? 혹은 고통 없는 안락사를 원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마지막 순간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주님을 영광스럽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영원하신 분이시기에 참된 영광, 영원한 영광은 하나님으로부터만, 위로부터만 주어짐을 주님께서는 아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아침 세 가지 질문에 관해 해답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 우리는 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본문 1절을 통해 주님께서는 이렇게 간구하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한 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얻으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생각을 하여 보십시오. 언젠가 시체가 되어 썩어 문드러질 이 육체로 하나님께 어찌 영광을 돌려 드릴 수 있겠습니까? 오직 욕망의 노예가 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좌충우돌하는 우리의 삶이, 그렇게 끝나 버리는 우리의 죽음이 하나님께 무슨 영광이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얻는 자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 속에서만 바른 길을 따라 바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빛으로 채워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함께 하지 못하는 자의 삶은 마치 흑암 속의 삶과 같아서 하나님께 도무지 영광을 돌려 드릴수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거수 일투족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었음은, 죽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드러내실 수 있었던 것은, 당신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영광 속에, 그 영광의 빛 속에 거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만을 돌려 드리는, 진리의 삶의 희열을 맛보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 시간부터 먼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또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4절을 통해 주님은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까?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주님께 하라고 명령하신 일을 완수하시므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회피하시므로, 그 십자가를 통해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무산시켰다면, 주님께서 아무리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한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참된 영광이 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는 것은 입으로만, 말로만, 노래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일을 구체적으로 이루어 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지금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묻습니다.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를 모르십니까? 지금 부모님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정말 모르십니까? 아내를 위하여, 남편을 위하여, 마땅히 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회피하고 있는 일이 있음을 정말 모르십니까? 형제와 자식에 대해 응당 행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행하고 요구하고 있음을 정말 모르신 단 말입니까?

주님의 교회 교인으로써, 직분자로서 이 교회에서 감당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모르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진리를 쫓는 그리스도인으로 내 일터에서, 이 사회 속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을 과연 모른다 할 수 있습니까?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일을 회피하지 않는 것, 그 일을 행하는 것, 그것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 속에서 고통스럽게 살아갑니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너무 너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뻔히 알고 있음에도 행하고 있는 까닭입니다. 왜 그토록 어리석은 삶을 삽니까? 한 평생 양심의 가책으로 인한 고통과 갈등으로만 일관하기에는 인생은 너무나 짧고, 또 너무나 귀중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 언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하겠습니까? 5절이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주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으로써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창세전부터, 영원 전부터 누리신 분이십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어서 계속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며 그 영광 속에서 살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그 영광이 바로 지금도,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과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고 계십니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과거의 한때, 지나간 한 순간 영광스러웠던 것은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허망함만을 안겨주기에 영광스럽지 아니함만 못합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영광스러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영광 속에 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지금 이 순간들의 집합이 일생이 되고 영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전직 대통령들처럼 과거의 한때 영광스러웠던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지금 중죄수가 되어 영어의 몸이 되어 있다면, 그 분들의 인생 전체가 수치와 모멸 속으로 전락했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제껏 까지의 내 삶이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였을지라도, 지금 이 순간 하나님의 영광 속에 있다면, 그의 인생 전체가 대 역전극을 이루며 전혀 새로운 의미로 승화되는 것입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에집트로 끌려간 요셉이 그 곳에서 한 것이라고는 13년동안 종살이와 옥살이한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보다 더 밑바닥 인생, 그 보다 더 수치스러운 인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매 순간마다 하나님의 영광 속에 거할 때에 바로 그 수치스러운 종살이 옥살이 때문에, 그는 에집트 제국의 국무총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인생 전체가 영원히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개신교 역사 110년을 통틀어 주기철 목사님처럼 존경받는 분도 드물 것입니다. 그 분에게 세상에서 자랑할 만한 것이라고는 단 한가지도 없었습니다. 신사참배에 반대하다가 오히려 옥에 갇혔다는 것은 이면에서 두 전직 대통령과 동일합니다. 아니 더 못한 것은 그 분은 감옥 속에서 옥사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처참하기 작이 없는 일생 이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한국인은 물론이요, 일본인들까지 존경하는 이 땅의 대표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추앙 받고 있습니까? 살아 생전 지금의 중요성을 알고 매 지금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매 지금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그 분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원하신 영광으로 영원히 세워 주신 것입니다.

세상에 태어났던 인간 치고 예수 그리스도 보다 더 처참하게 죽은 인간이 또 있겠습니까? 오죽했으면 그 당시의 모든 구경꾼마저 주님을 황당한 실패자라 생각했겠습니까? 그런데 그토록 비참하게 죽은 분이 어찌 영원하신 부활주가 되어 만인의 구원자가 되셨습니까? 내일이 아니라, 어제만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영원하신 하나님의 영광 속에 거하셨던 것입니다.

제주도에서 은어를 잡는 장면을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은어는 그물로 잡는 것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소위 홀치기란 낚시로 잡아 올립니다. 은어는 새끼 때에는 바다에서 살다가 다음해 이른 봄이 되면, 맑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 상류에서 살아갑니다. 바다에서 강 상류까지 살 곳을 찾아 먼 거리로 이동한 은어들은 낚씨군들의 미끼에 빠져 그 생을 마감해 버리고 맙니다. 그 미끼가 생물이어서 지렁이 한 토막이라도 먹고 잡히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어이없게도 미끼는 쇠붙이입니다. 태양 빛을 받은 쇠붙이 미끼가 물 속에서 얼마나 번쩍거리겠습니까? 그 번쩍거리는 미끼에 현혹된 은어는 자기의 갈 곳도 할 일도 잊은 채, 그 쇠붙이를 물었다가 그만 파멸해 버리고 맙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은어처럼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마십시요. 오직 욕망만을 따라 번쩍거리는 헛된 세상의 영광만을 위해 여러분의 인생을 탕진하지 마십시요. 그것은 결국 자기 인생의 전체를 망치는 첩경입니다.

어제의 영광에만 만족치 마십시요. 지금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십시요. 내일부터라고 미루지도 마십시요. 지금이 없는 자에게는 내일도 없습니다. 다가오는 매 지금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 속에 거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시오. 그것만이 나 자신을 영화스럽게 함은 물론이요, 나의 삶으로 사람과 하나님을 동시에 영화스럽게 하는 유일한 길, 참 생명의 길, 영원한 희열의 길입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번쩍거리는 세상의 헛된 영광을 구하느라 벌써 인생의 귀한 시간, 귀한 부분들을 탕진하였습니다. 그러느라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하지 못한 채 날마다 양심의 가책과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버지여, 구하노니 우리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내 인생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참 신앙의 기쁨을 맛보게 하옵소서.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행하는 것이 곧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어제의 영광에 머무르지 말고, 내일로 미루지 않고 매 순간마다, 지금, 아버지의 영광을 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날이 갈수록 우리의 삶이 진리 안에서 더욱 성숙해지고 원숙해지는, 참 생명과 영원한 희열의 삶이 되게 하옵소서.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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