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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누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102 추천 수 0 2020.11.18 09:2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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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8:36-39 
설교자 : 김경형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836-39: 귀신들렸던 자의 어떻게 구원 받은 것을 본 자들이 저희에게 이르매 거라사인의 땅 근방 모든 백성이 크게 두려워하여 떠나가시기를 구하더라 예수께서 배에 올라 돌아가실쌔 귀신 나간 사람이 함께 있기를 구하였으나 예수께서 저를 보내시며 가라사대 집으로 돌아가 하나님이 네게 어떻게 큰 일 행하신 것을 일일이 고하라 하시니 저가 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어떻게 큰 일 하신 것을 온 성내에 전파하니라.

 

사람이 귀신이 들리는 것은 왜 들리는 거냐? 사람이 진리에 바로 서지 못하고 일반적으로 자기의 성격 성질을 고쳐지지 못하면 어느 사건 상황에서 자기를 다스리지 못하는 성격과 성질이 올라온다. 이 때 주님의 허용 하에 귀신이 들어온다. 그러니 예수 믿으면서 제발 일반적인 성격 성질도 고쳐라. 그게 성화구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려면 옳은 진리이치를 들어야 한다. 무엇을 듣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신앙인격이 그렇게 만들어지는 거다.

 

수 년 수십 년을 믿어도 믿음이 들어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일반적인 성격 성질을 고치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예수를 안 믿어도 성격이 무난한 사람도 있다. 그러면 그 사람은 예수를 안 믿어도 되느냐? 그 사람도 예수를 믿어야 한다. 사람이 구원을 받아야 한다. 구원은 사람에게 있는 거다. 직장에게 있는 게 아니고, 먹고 마시는데 있는 게 아니라 구원은 사람에게 있는 거다. 사람에게 있으니까 하나님께서 사건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내가 너를 사랑한다하는 의미가 들어가는 거다.

 

그러니까 진리이치의 인격과 성품을 자기의 속성화 인격화 시켜야 사건을 만나던 사람을 만나던 어떤 사건 환경 처소에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적중성으로 구원이 잘 이뤄지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는 거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그런 것을 모르고 그냥 먹고 마시고 풍부한 이런 것으로 만족하며 살고 있는 자들이 많다. 이들은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으로 들어가 있다.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주기도문에서도 가르쳤다. 일용할 양식을 하루 세 끼 먹는 걸로 해석하는 게 아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의 양식으로 삼았다. 예수님도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을 당신의 양식이라고 그랬다. 그런데도 우리의 양식이 예수 안 믿는 사람들처럼 세 끼 먹는 그것이냐? 그러니 세상축복운운하는 거다. 그것이 마귀의 세 가지 시험에 다 넘어간 꼴이다. 정신 사상적 영의 눈을 가지고 이치적으로 말하면 마귀에게 다 넘어가 버렸다.

 

사람이 이치를 따질 줄 모른다면 그 사람을 어디에 쓰겠느냐? 예수 믿는 사람은 모든 면에서 이치를 많이 알아야 예수 믿는 것도 편하고, 주님의 사랑을 받고, 생명과 먹고 통치하고 지배하는 이게 들어가는 거다.

 

범죄를 해서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으면 이제는 말씀순종으로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려고 해야 한다. 이건 원상회복을 말하는 게 아니라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쫓겨났다면 말하자면 말씀순종으로 하나님을 더 찾아야 한다. 예수님으로 통해 그 길을 열어놨으니까. 그런데 쫓겨났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세상을 하나님처럼 여기며 들어가니 그게 사람이 어떻게 되겠느냐?

 

이게 안 믿어지면 세상역사를 봐라. 그래도 예수 믿는 나라가 어떻더냐? 우리나라가 6. 25가 나기 전까지 이방우상이 얼마나 많았느냐? 6. 25를 통해 예수 믿는 나라의 도움을 받고 구호금을 받으면서 그들의 영향으로 점점 깨이지 않았느냐? 역사적으로 지금도 중동의 이스라엘은 그렇게 깡깡하냐? 충청남북도만한 땅덩어리인데 대단한 거다. 그들이 무엇으로 그렇게 뭉쳤느냐? 그 나름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뭉쳤다. 우리하고는 계시적으로는 신앙의 사상이 다르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지고 산다.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거다. 얼마나 깡깡한지?

 

귀신들린 자가 구원된 것과 즉, 사람이 구원된 것, 귀신이 나간 것, 온전한 정신으로 된 것, 그러니까 사람이 구원된 것과 돼지 떼들이 호수에 내려 달려 죽은 것과 어느 것이 더 중요하냐? 돼지 떼들이 그렇게 된 것을 처음부터 지켜본 자들이 그 모든 것을 거라사인 동리 사람들에게 다 말해주었다. 그러면 어떻게 말을 했을까? 어느 쪽이 유리하도록 말을 했을까? 돼지를 키우는 자들이 우리한 쪽으로 말을 했을까, 예수님 쪽으로 유리하도록 말을 했을까? 예수님을 안 좋은 쪽으로 말을 했을까, 돼지 쪽을 사람보다 더 유리하도록 말을 했을까? 돼지보다 사람이 구원되는 쪽으로 말을 했을까? 이 세상에서 같은 사건을 보고도 사람마다 말의 강조점이 은근히 다른 것을 볼 수가 있다.

 

안방에 들어가서 어머니 말을 들으면 어머니 말이 옳은 것 갔고, 부엌에 들어가서 아내의 말을 들으면 아내의 말이 옳은 것 같고. 왜 그렇게 들릴까? 그렇게 들리는 것은 말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들을 때 그 말이 그렇게 들리는 거다. 그리고 또 말을 듣는 사람의 나이와 비슷한 사람이 말할 때는 그 말이 더 옳게 들리는 것 같다. 그리고 또 말을 하는 사람이 말을 듣는 자기와 비슷한 환경에 처해져 있을 때는 그 말이 더 옳게 들린다. 그러니까 시어머니는 다른 시어머니들끼리 모이면 며느리가 그래서야 되겠느냐하고, 며느리끼리 모였을 때는 그 시어머니 나쁘다하게 된다. 그렇게 들린다.

 

그리고 또 원인제공을 하게 된 앞뒤의 상황을 모르거나 어느 한 부분만을 들을 때는 전체적으로 잘못된 것임에도 그게 옳게 들리기도 한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들어주는 사람이 옳다고 여기는 쪽으로 가서 한 덩어리가 돼서 싸우기도 한다.

 

한 쪽의 말만 들으면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그래서 양쪽이 다 옳다고 할 수도 있고, 또 말을 들어보니 양쪽이 다 틀렸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보면 양쪽이 다 틀렸다. 왜 그런가? 인간구원의 목적 면에서 보면 양쪽 다 잘못이다. 그 이유는 육신의 세상의 자기감정에서 나온 이해타산 생각을 가지고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맞는 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의 구원역사에 맞추어진 자타의 이룰구원을 생각한 것이 바로 된 것이다.

 

지켜본 자들이 무슨 마음을 가지고 지켜보았고, 예수님께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을 했기에 거라사인의 모든 백성들이 예수님께서 떠나주시기를 권했을까? 이미 답은 나오는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영접할 줄을 모르고 돼지 쪽으로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사람이 많다보면 교인들이 여러 가지 업에 종사를 하는데, 특히 짐승을 키우다 보면 12시가 되면 예배드리다 말고 짐승에게 밥을 주러 가야 한다. 짐승이라고 점심을 안 먹느냐? 집이 가까이 있다면 가서 밥을 주고 다시 교회로 오면 되는데 차로 한 시간 이상씩 걸리는 곳에 집이 있다면 그 집에 갔다가 다시 교회로 오기가 어렵다. 어쨌든 돼지 쪽을 선택하는 교인도 있다.

 

우리교회는 멀리서 오는 분들이 많아서 저녁예배 대신 오후예배를 드리는데, 교인들이 다 가까이 산다면 오후예배를 드릴 필요는 없다. 집에 갔다가 좀 쉬고 저녁 먹고 다시 교회에 와서 저녁예배를 드리면 좋은데 거의가 멀리 계시기 때문에 오후예배를 드리는 거다. 하기야 멀리 있던 가까이 있던 다 차가 있으니까 코앞이다. 그런데 교통이 좋을수록 사람이 게을러지고 있다. 시간이 늦으면 조금 더 속도를 내서 가면 되지? 그게 네 마음대로 되는 거냐? 토요일 날에 다 준비를 해 놓고 주일날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출발을 하고.

 

게으름 피면서 들쑥날쑥하다가 목사가 책망을 하면 교회에 안 나간다하게 된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무시했으면 그렇게 하느냐? 그리고 덧붙여서 제발 이방사람 예수 믿지 않는 사람과 결혼 하지 말아라. 후유증이 엄청나다. 예수님을 희미하게 믿는다고 해도 예수 믿는 사람을 잡고 결혼을 하라. 예수 안 믿는 여자와 결혼한 사람을 가만 보면 여자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면 그 가정이 어떻게 되느냐? 그러니 성경을 백날 봐봐야 소용이 없다. 정신은 이방정신이다.

 

우리기 신:을 읽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다 해당이 된다. 자식을 낳지만 품에 앉지 못하고 멀리 떨어져 버린다. 이건 신앙사상적으로 의사단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이런 꼴이 어디 있느냐? 그러니 통하지를 않는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아들들이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고 한다면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되는 게 맞는 말이냐? 그렇게 돼야 한다.

 

돼지 쪽을 선택하는 것을 보면 짐승을 키우는 입장이라면 이해는 가지만 믿는 사람은 신앙이 제일 중요한 것인데, ‘네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하나님 앞에 바로 살아갔느냐하는 심판이 올 텐데.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은 직업적으로 잘 선택을 해야 되겠구나하는 느낌이 많이 든다.

 

돼지 쪽을 선택한 사상은 영이 아닌 육을 선택한 것이고, 천국이 아닌 썩고 죽고 불에 탈 것을 선택한 것이요, 구원이 아닌 멸망을 선택한 것이요, 사람이 아닌 짐승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군대귀신이 들려서 공동묘지에서 살고 있어서 사람이 못쓰게 되더라도 돼지장사가 잘 돼서 돈만 벌면 된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돼지 쪽으로 귀신이 들어가게 한 것은 예수님은 사람 쪽을 선택한 것이라는 게 분명히 나오는 거다.

 

돼지를 키우는 사람이 모르긴 해도 자기 독자 아들을 고쳤다고 하면 돼지가 다 죽어나가더라도 예수님을 모시고 감사하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남의 자식은 고쳐놨지만 자기 돼지는 몽땅 죽어버리니까 돼지 쪽을 걱정을 하지 사람 걱정은 하지 않는구나.

 

우리는 그렇게 따지면 안 된다. 우리는 누구 집 자식이건 사람 쪽으로 봐라. 사람을 건져야 한다. 오늘날 목사님들 세계에서 사람 쪽을 못 건진다. 특히 식당을 하는 권사나 장로나 집사가 주일날 장사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 성경구절을 처음에는 미약했으니 나중에는 창대케 되리라하는 걸 붙여놓는다. 이걸 생각을 해 봐라. 창녀노릇을 해서 교회에 헌금을 내면 좋다고 하는 식이다. 어느 부모가 자기 자식이 창녀 짓을 해서 돈을 벌어 오면 좋다고 하겠느냐? 하나님의 말씀이 안 믿어지는 모양이다.

 

저 대부도에 강냉이 찐빵을 파는 데가 있는데 내가 보니까 성경구절을 벽에 써 붙여놓았다. 그래서 내가 주일날도 장사합니까하니까 한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지 않느냐고 하니까 입이 딱 막혀버렸다. 이런 게 교회 안에서 만연이 돼 버렸다.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성경구절이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다. 어디에 필요한가 하면 장사를 하는데 필요하다.

 

내 경험적으로 보면 교인들 집에 예수그림 붙여놓고 성경구절 붙여놓고 하는데 그게 믿음이 좋아서 그러느냐? 아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은 가슴 속에 다 들어있다. 가슴에 말씀이 새겨져 있다. 가슴에 말씀이 없기 때문에 벽에 붙여놓고 하는 것이다. 믿음도 없으면서 가슴에 십자가를 걸고 다니고.

 

거라사 동리 사람들은 가치판단 선택을 잘못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싫다고 하는 곳에서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그곳을 떠난다. 그곳에서 떠나는 것도 싫어서 떠나는 거냐, 아니면 복음을 전해놓고 성장되기를 바라고 다른 곳에서 구원운동을 하려고 떠나는 거냐? 이게 다른 거다. 싫다고 하니까 떠나는 것이냐? 다르다.

 

38-39: 군대귀신이 나간 사람은 함께 있기를 구했으나 예수님의 말씀은 집으로 돌아가서 하나님이 너에게 큰일을 행한 것을 일일이 낱낱이 다 증거하라고 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하는 것이 믿음이요 신앙이다. 순종할 줄을 알아야 한다. 일일이 다 고하라는 것은 그게 복음이다. 그게 진짜 간증이다. 간증 속에는 진리이치가 나타나야 한다. 그냥 병 나아서 간증, 가난했는데 부자 되고만 하게 되면 그렇잖아도 사람들이 세상 물욕으로 가득 차 있는데 그걸 들으면 어떻게 될까?

 

오늘부터 먹고 마시는 건 구하지 않고 말씀 쪽으로 신경을 쓰면서 바로 살려는 쪽으로 몇 달을 살아보고, 또 먹고 마시는 쪽으로 생각하며 구하며 몇 달 동안을 살아본다면 어떻게 되겠느냐? 일용할 양식을 안 구하면 그 날부터 굶게 되는 건지? 왜 그렇게 어리석게 믿느냐?

 

기독교인들이 물질을 달라는 사상과, 거지들이 아무 것도 없이 아침저녁 때가 되면 밥 얻으러 가는 것과 어느 정신이 더 깨끗할까? 그 면만 딱 보면 어느 정신이 더 깨끗하냐? 남에게 얻으러 가는 거지는 흠이란다면 게으르고, 좋은 점은 욕심이 없다. 밥 때만 맞춰 나가면 되니까! 때 맞춰 나가면 자기 밥은 있는 거다. 때가 지나면 못 얻어먹는다. 거지라도 때 맞춰 들어가야 얻어먹는다. 거지가 때를 지나서 얻으러 가면 욕만 얻어먹는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이 하나님보고 자꾸 뭘 달라고 한다면 보통 욕심쟁이가 아니다.

 

군대귀신이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을 했다. 예수라는 분이 어떻게 자기에게 큰일을 하신 것을 온 성내에 다 전파를 했다. 전도자가 됐다. 그가 증거를 해도 사람들이 부인을 할 수가 없다. 왜냐? 그 사람이 군대귀신이 들려서 옷을 벗고 무덤사이에 살고 있었던 것을 다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큰 소동이 난 거다.

 

이 사건을 보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의 옷도 안 입고 벗은 채로 사망권 안에서 영웅성을 가지고 살고 싶으냐? 군대귀신에게는 영웅성이 들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영웅성을 가진 신앙자가 많다. ‘나를 보내주소서. 죽기까지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하여튼 사명자가 많다. 이게 지금 어디서 살고 있는 거냐? 무덤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사망권 안에서 살고 있는 거다. 생명권 안에서 사는 자는 그렇게 나오지를 않는다. 사망권 안에서 사니까 사람이 영웅성 허풍성이 들어서 주를 위해 죽겠다고 한다. 누가 너보고 주를 위해서 죽으라고 하더냐?

 

성경에 보면 친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자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고 했다. 어느 친구냐? 주님친구다. 주님을 위해서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 주님을 위해서, 그 교훈을 위해서, 그 삶을 위해서가 들어있는 게 주님을 위해서이다. 껍데기만 잡고 늘어지면 아부 짝에도 못 쓴다. 알맹이를 알고, 그 알맹이 때문에 껍데기도 잡는 거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의의 옷, 이룰구원, 하나님의 성품의 옷을 입어야 한다.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자가 되어서 예수님의 구원의 일을 전하고 싶은가? 이게 옳은 것인데 군대귀신들은 어떻게 사는 자들에게 들어가고 싶다고 말을 했느냐? 사람 속에 군대귀신들이 있을 때 귀신들이 그 사람의 입을 통해서 그 말을 했느냐, 사람 몸 밖에 나와서 귀신들이 그 말을 했느냐? 귀신들린 사람 속에 있을 때 그 말을 한 것이다.

 

오늘날 자기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것을 확실히 증거를 할 수가 있느냐? 예수님으로부터 구원 받은 것,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부터 구원 받은 것을 확실히 증거 할 수 있느냐? 예수를 믿어서 자기의 옛날 정신, 옛날의 소원 목적, 옛날의 이해타산 평가성 지식성이 바꿔졌느냐? 안 바꿔진 채로 예수를 믿으면 시험에 들게 된다.

 

세상을 붙잡은 상태에서 예수님을 증거를 하면 예수님이 그 사람에게 붙어 다닐까, 예수님이 떠날까? 떠나버린다. 이치가 그렇게 들어가는 거다. 거라사 동리 사람들이 돼지 쪽으로 선택을 하니까 예수님이 떠나버린다. 예수 믿는 사람이 불탈 세상 쪽으로 선택을 하면 예수님은 떠나버린다. 이치가 그렇게 되는 거다.

 

두 사람이 같이 지내면서 처음에는 사랑한다고 한다. 일반사랑이라도 한참 사랑할 때는 이해타산이 안 붙는데 두 사람 사이에 금이 갈 때는 물질적 이해타산이 들어간다. 물질적 이해타산이 들어가니 금이 가고 점점 벌어지는 것이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예수님은 떠나셨더라도 성령은 따라다닐까? 아니다. 예수님이 떠나버리면 뭐가 따라붙을까? 마귀다. 예수 믿는 사람들이 영적 감각성에서 민감해야 한다.

 

마음은 세상인데 입으로는 예수님을 증거를 하면 어떤 예수가 증거 될까? 천국의 예수가 증거가 되느냐, 세상 예수가 증거가 되느냐? 세상 예수는 어떤 거냐?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부자 된다고 하는 게 세상 예수다. 세상에 속한 예수님을 증거 하면서 사람이 모여 들면 누구의 사역을 하고 있는 셈이냐? 마귀다. 예수 믿으면서 세상 소원 목적을 가졌다면 세상에 속한 예수를 믿는 거다.

 

그러면 예수 믿으면 부자 되고 병 낫고 뭐든지 잘 되고 아프지도 않고 대학에도 다 붙고 장사를 해도 만사 형통한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에 신경을 쓰는 사람이 거기에 붙겠느냐? 어떤 사람이 거기에 붙겠느냐? 그런 식으로 사람이 모여 들면 누구의 사역, 누구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냐? 마귀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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