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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 개(犬)그리고 환영 해(亥)

에배소서 허태수 목사............... 조회 수 203 추천 수 0 2020.01.22 23:3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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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엡4:21-24 
설교자 : 허태수 목사 
참고 : 2018.12.29 성암감리교회 http://sungamch.net 

잘 가 개(犬)하고 환영 해(亥)

엡4:21-24 (2018. 12. 31 오후9시 송년예배)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옛 사람은 버리고 새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이는 아마도 여기에 있는 우리 모두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새 사람이 되려면 옛 모습이 어땠는지 알아야 하겠죠. 그렇다고 개개인을 다 열거하여 어제의 나를 말하기는 어려운 일이니 우리의 역사가 지녔던 객관적 사건을 중심으로 현재의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살피는 게 좋을듯합니다.

 

개개인에게 고착되어서 바꾸기 힘든 사고방식을 ‘고정관념’혹은 ‘마인드 셋트mindset’라고 합니다. 마음이 어딘가에 붙들려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왜 마음이 한 곳에 뿌리를 내리게 되는 걸까요? ‘내가 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내가 안다’는 것은 내가 아는 게 아니라 그렇게 알도록 주변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우리 역사는 결정적으로 국민 개개인의 사고방식과 가치의 고정관념을 파괴했습니다. ‘사대자소 事大字小’라고, 중국 중심의 사대질서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세상은 중국이 전부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모든 가치와 삶의 방식은 오로지 중국의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양이(洋夷-서양 오랑캐)로만 알았던 세계와 만나게 됩니다. 그때 엄청난 충격과 함께 오랜 세월 품었던 전통적인 천하가 붕괴되었습니다. 그동안 하늘인 줄 알았던 세계가 무너진 것입니다.

 

변화는 충격적이었고, 놀라울 만큼 빠르게 다가왔지만, 이런 변화가 오리라고는 누구도 알지 못했고, 미처 알아차리기 전에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1492년에 콜럼버스는 아메리카 대륙에 도달하고,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계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합니다. 1494년 6월7일에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콜럼버스 및 그 밖의 15세기 후반 항해자들이 탐험한 지역들에 대한 소유권 분쟁을 해결할 목적으로 [토르데시야스]라는 조약을 맺습니다. 두 나라는 가상의 경계선을 동서로 긋고는 스페인은 서쪽으로,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영역을 넓혀갑니다. 그 결과 스페인은 멕시코를 차지하고, 필리핀을 식민지로 만들었고, 다시 일본으로 향합니다. 포르투갈은 동쪽으로 아프리카 해안을 따라 인도에 이르고, 말라카 해협을 건너 인도네시아, 중국 남부의 마카오에 그들의 항구를 건설합니다.

 

포르투갈이 개척한 길을 따라 네덜란드가 왔고, 뒤이어 영국과 프랑스가 옵니다. 미국은 뒤늦게 1869년 대륙횡단철도를 완성한 다음에야 본격적인 태평양 경영에 등장합니다. 1896년 쿠바의 독립운동을 계기로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을 통해 쿠바에서 스페인을 몰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하와이를 병합하고 필리핀을 차지합니다.

 

이때까지 조선은 그저 ‘조용한 아침의 나라’였습니다. 세계가 이 지경으로 돌아가고 있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조선을 역사가는 동쪽과 서쪽으로 출발한 서구문명이 가장 마지막에 도달한 ‘세상의 끝-bor-derland’이라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세계의 주체이기 보다는 하위 파트너와 같은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다가 일제식민지배, 분단과 전쟁, 이후 냉전체제는 우리를 세계사에서 직접 주체자가 아닌 주변인으로 몰아내버렸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규정하길 ‘오지(奧地)적 사고’에 고착된 나라의 사람들이라고 말하게 됩니다.

 

이렇게 오지적 사고에 고착이 되면, 첫째는 세계정치의 본질을 자신의 문화 수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어서 세계 다른 지역의 인식으로 대체를 하게 되게 됩니다. 즉 세계인식의 타율성입니다. 두 번째는 세계의 정치와 문화를 균형 있게 보기보다는 편파적으로 수용하게 됩니다. 세계의 표상과 현상과 형식에 치중하게 됩니다. 세 번째는 이래서 일어나는 실패를 다른 사람에게 돌립니다. 자신의 시선으로 세상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남의 이론, 이야기, 답을 수용하여 뒤만 쫓는 수준에 그치게 됩니다. 이게 어제의 우리, 나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회, 정치, 역사적인 고착의 고리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옛 사람이며 현재의 우리가 안고 있는 DNA입니다.

 

그러면 이런 옛 사람을 벗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새로운 나를 읽는 것은 무엇입니까? 과거의 역사가 우리게 주는 교훈 즉,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시선으로 보고,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자주적으로 선택하는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의 말씀으로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씀을 삶에 실행하기에는 막연한 구석이 있으므로, 구글(Google)인적 자원 개발부에 종사하다 퇴직한 표트르 펠릭스 그라치웍즈(Piotr Feliks Grzywacz)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는 이 시대의 ‘새로운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이 시대의 새로운 사람 즉,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자기 인식 자기 표시가 가능’한 사람입니다. 주체적이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의 말이나 듣고, 남의 꽁무니나 따라서는 새로운 인간이 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는 ‘새롭게 배우는 일’에 쾌감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한 번 배운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금방 꼰데가 된다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 그는 ‘불필요한 신념을 없애는’사람입니다. 이는 고집이 아니라 유연성과 포용성의 문제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떤 속성을 가진 인간과도 관계할 수 있는’사람입니다. 이래야 사회공헌의식이 높아지고 개인이면서도 행정, 민간, 교육, 종교와 연대하며 ‘해결하는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 유유상종하거나 싫은 사람 버리고, 좋은 사람과만 소통하면 스스로의 감옥에 갇혀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지능화되는 산업사회에서의 이런 인간은 기계에 종속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이 되는 길을 펠릭스 그라치 웍즈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먼저 인간 성질에 있어서입니다. 과거적 인간은 탐욕적입니다. 그러나 새 시대의 사람, 새 사람은 이타적 존재로 살아야 합니다.

*원하는 것 즉 욕망에 있어서 옛 사람은 지위나 소유의 증대를 원했다면 새 사람은 임팩트 즉 사회에 내가 얼마나 공헌할 수 있느냐를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행동에 있어서 옛 사람은 계획주의와 성과주의였다면, 새 사람은 학습주의 즉 계속 새롭게 배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옛 사람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오지적 인간이고, 새 사람은 포용성과 유연성을 가진 우주적 인간입니다.

*인간관계로 옛 사람은 닫힌 인간관계 즉 차별하며 사람을 관계했지만 새 사람은 열린 인간관계속에 사는 사람입니다. 이를 커뮤니티적 존재라고 합니다.

*사고방식은 어떻게 변해야 새 사람이 되는 걸까요? 전에는 법칙이나 원칙에 충실한 인간이 모범적이고 바람직한 인간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인간은 새로운 원칙을 만들어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소비행동은 어때야 할까요? 열심히 노동해서 생긴 소득으로 무엇을 하며 사느냐 하는 겁니다. 과거에는 과시적 소비를 위해 돈을 썼습니다. 그러나 새 인간은, 새 사람은 미니멀리즘으로 더불어 행복하기 위해 소비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2천 년 전 예수님이 에베소 교인들에게 제시했던 ‘옛 사람을 버리고 새 사람이 되라’는 정언과 이 시대의 정언은 같지만 그 실천 내용은 달라졌습니다. 사회 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한 해를 보내고 새로운 시간을 맞아들이면서, 잘 가 개(犬)하고 환영 해(亥)하면서, 무루뭉실하게 ‘새해가 되면 새 시간이 되고 새 삶이 되겠지’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입니다.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새 시간도 없고 새 해도 없습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에게만 새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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