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설교 모음

택스트 설교

  설교자'가 확실한 설교만 올릴 수 있습니다.

역설의 진리

마태복음 김부겸 목사............... 조회 수 219 추천 수 0 2017.09.20 23:53:45
.........
성경본문 : 마27:45-46 
설교자 : 김부겸 목사 
참고 : http://blog.naver.com/malsoom/179052562 

2013년 2월 17일 주일설교

성경말씀 : 마태복음 27장 45절~46절

설교제목 : 역설의 진리

 

<영성시>

 

기도

 

*정채봉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낮 열두 시부터 어둠이 온 땅을 덮어서, 오후 세 시까지 계속되었다. 세 시쯤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부르짖어 말씀하시기를 "엘리 엘리 레마 사박다니?" 하셨다. 그것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하는 뜻이다.(마태 27:45~46)】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여기 한 사람의 청년이 있습니다. 그는 순수했고, 정의로웠고, 진실했습니다. 특히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을 갖고 있는 청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 올곧음 때문에 억울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반듯한 청년이 이제 비참하게 인생을 마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순간 그의 입에서 하느님에 대한 깊은 원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어야 할까요? 옳고 정의로운 사람들이, 불쌍한 사람들이, 억울한 사람들이 그 원통함을 풀지 못하고 비참하게 죽어가는 인생의 서글픈 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할까요? 뭐라 설명해야할까요? 어떻게 받아들여야할까요? 오늘의 주제는 너무 슬프고 무겁고 어렵습니다.

 

  <이야기들을 상상하다>

  저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몇 가지 영성적 상상을 통해서 위로의 메시지를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위로의 메시지는, “죽음은 끝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로마의 권력자들은 예수만 죽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온갖 억지로 죄목을 같다 붙여서 예수를 공개처형해 버렸습니다. 그러면 시끄럽게 골치를 썩이는 무리들이 사라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산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이 오히려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수의 메시아 운동은 ‘예수의 비참한 죽음’으로 말이암아 더욱더 확산되어 버린 것입니다. 비록 예수 자신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 받았는지는 몰라도, 예수가 일구었던 ‘메시아 운동’은 더욱더 활기를 얻어서 온 세상으로 뻗어나갔던 것입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었습니다.


  둘째 위로의 메시지로 시 한편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도종환 시인의 작품 ‘흔들리면서 피는 꽃’입니다. 【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 다 젖으며 피었나니 //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사랑도 그렇고 삶도 그렇듯이, 신앙 혹은 영성도 그렇습니다.


  ‘하느님과 더불어 사는 삶’에도 왔다갔다하는 진폭(振幅)이 있습니다. 있어야 합니다. 기쁨이 있으면 슬픔도 있고, 환희가 있으면 좌절도 있는 것입니다. 봉우리가 있으면 골짜기도 있는 법입니다. 그런 진폭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 더욱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제대로 닮아가는 것입니다. 아마도 분명히 예수 역시 그 마지막 비통함의 절규를 통해서 하느님을 더욱더 가깝게 닮아갔을 것입니다. 우리는 앓으면서 알아가는 것입니다. 앓음알이입니다. 앓음이 없다면 제대로 된 알음은 불가능합니다. 예수의 마지막 절규 역시 하느님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서 크게 앓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셋째, 하느님의 나라는 한 마디로 대동(大同)의 나라입니다. 즉 모두 같아지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도 없고, 낮은 사람도 없습니다. 부자도 없고, 가난한 사람도 없는 나라입니다. 귀한 사람도 없고, 천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 모든 구분과 장벽, 분리와 차별이 없는 나라입니다. 이 하느님의 나라를 어떻게 세울 수 있을까요? 그것은 오직 하나 “높은 산들을 낮게 깎고, 낮은 골짜기를 높게 메우는 방식”으로만 가능합니다. 즉 높은 산들은 낮게 깎는 방식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때, 하느님의 사람들이 가야할 길은 어디일까요? 높은 산에서 스스로 내려와서 낮은 골짜기로 가는 것입니다. 높은 사람, 많은 사람, 귀한 사람들이 그 높고 많고 귀한 것들을 다 내려놓고 낮고 적고 천한 곳으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예수가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고, 불가피하게 반드시 그래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가 사랑하는 아들딸들에게 권면하시고 있습니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가라. 성공에서 실패로 가라. 생명에서 죽임으로 가라.” 예수의 비참한 죽음은 바로 그런 하느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설교의 결론>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 기독교만이 가질 수 있는 역설의 진리가 빛을 뿜어냅니다. 즉 흔들려야만 바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으면 바로 갈 수 없습니다. 진폭을 갖는 곡선을 그려야만 제대로 된 직선을 찾아낼 수 있는 이치입니다. 중심에서 주변으로 가야만 제대로 된 인생의 중심을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공에서 실패로 가야만 제대로 된 성공의 인생을 살아낼 수 있는 것입니다. 생명에서 죽임으로 가야만 진정한 생명의 삶이 가능해 집니다. 즉 부활의 영광입니다.

 

  <설교를 마치면서>

  이제 설교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늘 설교의 제목을 ‘역설의 진리’라고 잡아보았습니다. 오늘 이 설교말씀의 제목을 깊이 묵상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축도>

  하늘의 하느님이여. 땅의 예수여. 바람의 성령이여!

  이제는 우리 생명의 근원 되시는 하느님의 신비로운 사랑과

  이 땅에서 진리의 세계로 진입한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를 아름다운 곳으로 인도해 주시는 성령님의 은총이

우리 수도교회 교우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   아멘.

[출처] 역설의 진리|작성자 말숨


댓글 '2'

사랑니

2018.02.11 01:50:25

"하느님에 대한 깊은 신뢰와 믿음"?=왜 목사님은 하나님이란 표현을 안 쓰나요?
"깊은 신뢰와 믿음"? - 과연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런 표현을 쓸 수 있나요?
자신이 하나님인데 누가 누구한테 믿음을 준다는 것인가요? 성자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께? - 이런 거라면 그래도 넘어갈 수 있겠는데 ...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만큼 반듯한 청년이"? - 불릴만큼? - 누가요? 예수님이요?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만큼? - 하나님께 대한 모욕이 아닌가요?
"로마의 권력자들은 예수만 죽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 ? - 그렇게 생각한 사람들이 로마의 권력자인가요? 제가 알기로는 유대의 지도자들이며, 권력자들인데요
"아마도 분명히 예수 역시 그 마지막 비통함의 절규를 통해서 하느님을 더욱더 가깝게 닮아갔을 것입니다." ? 예수가 하나님을 닮아갔다? ㅎㅎㅎ 하나님이 하나님을 닮아간다 - 참 개가 웃을 일이네요
셋째 문단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은 결국 우리 인간들이 모두 같아 지려면 자기 것 다 버려야 한다는 말 같습니다. 맞나요?
제가 알기로 우리가 같아 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가운데서 그 분이 보내신 성령과 함께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 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론 부분을 보면 인간이 똑바로 가려면 실패도 있어야 하고 고난도 있어야 한다는 말 같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안 보이네요
우리가 똑 바로 가는 길은 예수 안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나는 그분 안에서 언제나 주님 나라 향해 가는 것입니다.
너무 인본적인 설교네요

joon

2020.03.06 05:32:10

하느님이란 말은 다신론적의미를 지녀쓰는 로마캐톨릭언어입니다
범신사상에서 나온것인데 기독교목회자가 이런용어를 쓰는것은 처음이네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성경본문 설교자 날짜 조회 수
14902 로마서 호모 데우스 Homo Deus 롬7:14~25  허태수 목사  2018-02-10 225
14901 마가복음 미치광이(狂人)이길 포기하지 말라. 막5:1-15  허태수 목사  2018-02-10 147
14900 요한일서 하나님과 사랑 요1서4:7-12  허태수 목사  2018-02-10 176
14899 요한복음 나는 지금 ‘그’사람 때문에 살고 있다. 요21:15-17  허태수 목사  2018-02-10 233
14898 요한복음 대체 이게 무슨 뜻일까요? 요9:35-41  허태수 목사  2018-02-10 176
14897 마태복음 소원, 꿈, 그리고 놀라운 기적 마9:20-22  조용기 목사  2018-02-08 305
14896 요한복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요3:14-21  조용기 목사  2018-02-08 632
14895 사사기 하나님의 역사와 기드온의 삼백 용사 삿7:1-7  조용기 목사  2018-02-08 259
14894 마태복음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마11:28-30  조용기 목사  2018-02-08 1120
14893 에배소서 주인 엡6:10-18  조용기 목사  2018-02-08 196
14892 고린도전 정말 예수님이 부활하셨나 고전15:1-8  조용기 목사  2018-02-08 367
14891 마가복음 열두 해를 혈루증 앓은 여인 막5:25-34  조용기 목사  2018-02-08 512
14890 고린도전 사랑 없는 수고 고전13:1-8  조용기 목사  2018-02-08 375
14889 마가복음 수난 속에 숨겨진 영광 막9:2-9  강승호 목사  2018-02-07 237
14888 신명기 공의는 윈윈의 바탕입니다 신19:14  이한규 목사  2018-02-06 141
14887 누가복음 표적보다 말씀을 추구하십시오 눅11:27-32  이한규 목사  2018-02-06 274
14886 신명기 성도에게 절망이란 없습니다 신19:1-13  이한규 목사  2018-02-06 335
14885 신명기 영 분별력을 갖추십시오 신18:15-18  이한규 목사  2018-02-06 261
14884 신명기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십시오 신18:9-14  이한규 목사  2018-02-06 191
14883 신명기 레위인에 대한 4대 규례 신18:1-8  이한규 목사  2018-02-06 381
14882 신명기 왕에게 요구되는 6대 규범 신17:14-20  이한규 목사  2018-02-06 181
14881 이사야 진리의 기초가 아닌 5가지 사65:16  이한규 목사  2018-02-06 137
14880 누가복음 성전에 오신 아기 예수 눅2:21-39  이정원 목사  2018-02-05 174
14879 누가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눅2:1-20  이정원 목사  2018-02-05 317
14878 누가복음 세례 요한의 출생 눅1:57-80  이정원 목사  2018-02-05 304
14877 요한복음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 요13:12-17  이정원 목사  2018-02-05 313
14876 로마서 사랑의 문화관계 롬13:6-14  강종수 목사  2018-02-04 88
14875 마태복음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마23:29-37  김경형 목사  2018-02-04 769
14874 사도행전 회개 세례와 성령 세례 행19:1-7  정용섭 목사  2018-02-03 255
14873 갈라디아 종의 삶과 아들의 삶 갈4:4-7  정용섭 목사  2018-02-03 335
14872 시편 구원의 바위 시89:1-4, 19-26  정용섭 목사  2018-02-03 159
14871 데살로전 예수 그리스도는 다시 오신다! 살전5:16-24  정용섭 목사  2018-02-03 202
14870 이사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사40:1-11  정용섭 목사  2018-02-03 295
14869 마가복음 깨어 있으라! 막13:24-37  정용섭 목사  2018-02-03 457
14868 에배소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엡1:15-23  정용섭 목사  2018-02-03 294

설교를 올릴 때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이단 자료는 통보없이 즉시 삭제합니다.

    본 홈페이지는 조건없이 주고가신 예수님 처럼, 조건없이 퍼가기, 인용, 링크 모두 허용합니다.(단, 이단단체나, 상업적, 불법이용은 엄금)
    *운영자: 최용우 (010-7162-3514) * 9191az@hanmail.net * 30083 세종특별시 금남면 용포쑥티2길 5-7 (용포리 53-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