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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요한복음 하늘나라............... 조회 수 622 추천 수 0 2017.03.21 12: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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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4:1-30 
설교자 : 이장규 목사 
참고 : 고전교회 

요4:1-30(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부제:예배를 회복하자)


탄핵으로 인한 대통령 선거가 오십여일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현재 여론 상 선두주자를 향하여, 후보자들이 맹공을 퍼부으며 자리다툼을 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 선두주자는 이렇게 시기와 질투에 휘말리게 되어있습니다.


지금 예수님도 공생애를 시작하자, 수많은 군중들이 몰려들어 환호했습니다.

그러자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이었던 바리새인들시기와 질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한 자리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런 종교지도자들이 우글대는 유대를 떠나, 다시 서민들이 살고 있는 갈릴리로 가시기 위해 자리를 피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관심사.


그럼 예수님의 관심사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예수님의 관심사는, 인기명예가 아니라, 오직 천하보다 더 귀한 한 영혼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오늘 여기에 계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영혼에 관심을 가지고 계십니다.

바로 이런 한 영혼을 위해, 예수님은 유대에서 갈릴리로 가실 때,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갔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이 유대에서 갈릴리로 갈 때, 사마리아 땅이 중간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사마리아를 빙 둘러 피해 갔습니다.

왜냐하면 원래 유대인들과 동족이었던 사마리아인들이방인들혼혈족이 되어 우상숭배로 타락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들을 사람취급도 하지 않고 상종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마리아로 통과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구원해야 할 한 영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구원해야 할 한 영혼을 위하여, 지금도 어떤 장애물도 마다하지 않고 여러분들에게 찾아오십니다.

예수님에게는 여러분들의 문제나 환경의 문제가, 여러분들을 구원하는데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땅에 들어갔을 때, 다다른 곳수가라고 하는 동네였습니다.

그 동네는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까웠을 뿐만 아니라, 그 곳에는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행로에 너무 피곤하여, 뜨거운 정오시간에 이 우물곁에 앉아 쉬게 되었습니다.


이 때 예수님은 심히 갈증도 났겠지만, 가까이에 보이는 야곱이 요셉에게 준 땅을 바라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겠습니까?

야곱이 요셉에게 예언하기를, “네 아버지의 하나님께로 말미암나니, 그가 너를 도우실 것이요, 전능자로 말미암나니, 그가 네게 복을 주실 것이라. 위로 하늘의 복과 아래로 깊은 샘의 복과 젖먹이는 복과 태의 복이리로다.”(창49:25)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땅이 우상숭배로 타락해버린 것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마음이 서글펐겠습니까?

영적인 서글픔이 오히려 지금 육신의 갈증보다 더 갈증스러웠을 것입니다.


바로 그 때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그 우물가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물을 길으러 오려면, 뜨거운 정오를 피하여 물을 길으러 오는 것이 상식인데, 이 여인은 홀로 뜨거운 정오시간에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읽은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이 여인은 행실이 방탕한 여인이었습니다.

즉 여러 남자와 같이 살아봤지만 만족을 얻지 못하고, 지금도 또 다시 여섯 번째 남자와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그 동네의 사람들이 얼마나 이 여인을 보고 손가락질을 했겠습니까?

그래서 이 여인이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사람들이 오지 않는 정오시간에 물을 길으러 이렇게 온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여러분들도 이 광경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예수님은 가까운 요셉의 땅을 바라볼 때, 축복받아야 할 땅영적으로 타락한 모습을 바라보면서 서글퍼하고 있었는데, 사마리아인 중에서도 더욱더 타락한 한 여인의 모습을 또 눈앞에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서글펐겠습니까?

비록 여인이 아직 자기 사정을 말하지는 아니했지만, 인간의 폐부를 감찰하시는 예수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다 드러나 보였던 것입니다.


여러분, 만약 우리 같으면 이런 여인을 보았을 때 어떻게 했겠습니까?

수근수군하고, 서로 눈짓하며, 상종하지도 않고, 그 자리를 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고, 죄인을 불러 회개시켜 구원하려고 왔기 때문입니다(눅5:32).

지금도 이 예수님은 우리들도 부르십니다.

세상으로부터 사람으로부터 피하고 싶은 여러분들을 부르십니다.

그리하여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시러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요7:37절에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긍휼과 자비가 무한하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은 여인을 회개시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게 하려고 이렇게 말을 겁니다.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7절)

이 말씀은 물론 지금 예수님께서 목도 마르셨겠지만, 이런 갈증보다 더 갈증을 느끼게 만든 것은, 이 여인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더 영적인 갈증 느끼셨기 때문에,

이 여인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를 주시기 위하여 이렇게 접근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혹시 여러분들께서도 어떤 갈증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럼 여러분들의 갈증을 채워주시는 위하여 오시는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2.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마시도록 인도하는 회개.


여러분, 그렇다면 인생의 갈증을 채워주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는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회개할 때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이 성령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성령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떠나지 않고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13-14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그런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우리의 심령의 두루 박에 받으려면, 두루 박에 있는 다른 물버려야만 담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심령의 두루 박에 있는 다른 물인 죄를 버리듯 회개해야, 우리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을 회개시키려고 “물을 좀 달라”고 하며 접근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여인이 예수님을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가만히 보니까, 사마리아 인은 아니고 유대인인데, 유대인은 사마리아인과 상종도 하지 않은데, 더군다나 나 같은 천박한 여인에게 말을 걸다니?’하고 이상히 여기면서, 이렇게  예수님에게 묻습니다.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9절)

그러자 예수님은 이 여인의 관심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로 이끕니다.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0,14절)

그러자 여인이 결국 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에 관심을 보이며, 이렇게 요구합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15절)


그 때 예수님이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16절)

여러분, 이 말씀은 이 여인에게 가장 뼈아픈 것을 건드리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가장 뼈아픈 것을 누구나 숨기려 합니다.

그래서 여인은 대답합니다.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불난 집에 부채질하듯이 여인의 더 아픈 것을 드러냅니다.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17-18절)

여러분, 지금 이 말을 하는 순간은 참으로 긴장된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이 여인의 반응두 가지로 나타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화를 내며 속으로 “별 미친 놈 다 봤네!”하며, 획 돌아설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 여인은 구원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자신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 앞에 자신의 모습을 솔직히 인정하며, 예수님을 선자자라고 불렸습니다.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19절)

이런 솔직함. 이것이 바로 회개로 나가는 길입니다.


성령이 강림한 오순절 날에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에게 복음을 증거하면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2:36)고 했습니다.

그러자 많은 무리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이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행2:37)하자, 베드로가 말하기를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행2:38)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회개하고, 3000명이나 되는 사람이 세례를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한 번은 스데반이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증거 했는데, 듣던 사람들이 마음에 찔리긴 찔렸는데, “이를 갈았다”(행7:54)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스데반을 죽이므로 구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솔직함이 바로 회개로 나아가는 길이고, 구원을 얻는 길입니다.


3. 예배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성령을 받을 수 있는 우물가.


그러니 여러분, 여러분들이 말씀을 읽을 때나, 설교를 통하여 말씀을 들을 때, 자신의 죄가 떠오르면, 이것을 숨기지 말고, 변명하지 말고, 주님께로 가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찬532장에 보면 “주께로 한 걸음씩 왜 가지 않느냐? 네 죄를 자복하고 그 앞에 나가라.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주께 나오라. 주님께 아뢰이면 너 복을 받으리라. 값없이 주는 은혜, 너 거절 말아라.”했습니다.


1) 그렇기 때문에 바로 회개가 예배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그러니 우리도 교회에 예배하려 나올 때마다, 먼저 자신을 돌이켜 보고 회개할 것을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배의 첫걸음입니다.


이 여인도 보십시오!

솔직함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곧 바로 마음이 열려 예배의 첫걸음을 디디게 되었고 예배속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20절 말씀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 그러자 예수님은 예배의 두 번째 단계로, 자상하게 이 여인에게 진리의 말씀을 풀어주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예배시간에 세밀히 귀기울여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21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여러분, 이 말씀은 이제 예배가, 예수님이 오신 후로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는 무소부재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이제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만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과 우리의 마음이 만나려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감이 바로 성령입니다.

바로 이런 성령을 받아야,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23-24절처럼 말씀합니다.

“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그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영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 성령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여인에게 이것을 알려 주려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22절)

즉 사마리아인들은 예배해야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고 말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 에게서 남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바로 유대인중 유다지파에서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3)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제 마지막 단계로,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려면,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께 예배드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14:6절에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바로 지금 이 여인도 이제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만나게 되었습니까?

이 여인이 회개하자, 예배의 우물가에 나아가게 되어, 예수님의 말씀의 지도를 받고, 메시야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새롭게 떠올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25절)


바로 그 때, 예수님께서는 “네가 말하는 내가 그라”(26절)라고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자 이 여인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했습니다.

이로 인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생수인 성령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이 여인은 성령을 받고,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4.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만족과 자유와 그 기쁨.


그러자 이 여인은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만족과 자유와 기쁨을 얻었습니다.

이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성령을 마시므로, 물동이도 아랑곳 하지 않고 뛰어나가 동네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했습니다.

숨어지내던 이 여인부끄러움도 잊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죄로부터 해방된 참 만족과 자유와 기쁨을 얻은 것입니다.

28-29절 말씀입니다.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지난주에 17명을 죽인 김대두의 회심이야기를 들으셨지요?

김대두는 예수님을 만나서 참 만족과 자유와 기쁨을 얻고, 자신의 부끄러운 죄를 고백하며 예수를 전하므로, 감옥에서 수백명을 전도했다고 했지요?

이처럼 이 여인의 간증을 듣고, 지금 수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 앞으로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영적으로 척박했던 사마리아 땅에, 그 요셉의 땅에, 영적인 새봄이 찾아왔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영과 진리로 예배할 자를 찾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도 한 영혼을 찾으십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모습인지 상관이 없습니다.

사마리아 여인과 같아도 상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문을 두드릴 때, 회개의 문을 열고, 예배의 우물가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받으십시오.

그리하여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되시는 예수님을 항상 새롭게 생생하게 만나십시오!

그리하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참 만족과 자유와 기쁨이 넘쳐흐르게 됩니다!

이로 인해 내가 살고, 가정이 살고, 내가 살고 있는 땅영적인 새봄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런 예배의 우물가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성도가 다 되어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인 성령을 충만히 마셔, 이런 축복의 근원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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