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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누가복음 안창천 목사............... 조회 수 400 추천 수 0 2017.06.25 21:4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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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9:10-17 
설교자 : 안창천 목사 
참고 : d3왕의사역 평신도제자훈련원 http://d3.or.kr 

기적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눅9:10-17절

2016.6.5 


오늘 읽은 본문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본문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남자만 5천명이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5병2어의 기적은 다른 기적과는 달리 질량보존의 법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많은 공격을 받아왔습니다. 질량보존의 법칙은 근대과학의 기초이론으로 프랑스의 화학자 라부아지에가 1774에 발견한 것입니다. 어떤 물질이 화학 반응에 의해 다른 물질로 변화하여도 반응 이전 물질의 모든 질량과 반응 이후 물질의 모든 질량은 변하지 않고 항상 일정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병든 자가 고침을 받았거나 귀신이 쫓겨나갔어도 고침을 받기전이나 후나 질량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그러나 5병2어로 남자만 5천 명이 먹고 남은 것을 12광주리에 담았다는 것은 질량보존의 법칙에 크게 어긋납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5병2어의 기적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다양한 해석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도된 해석 중 가장 지지를 얻고 있는 해석은 실제로 오병이어로 모든 사람이 먹은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가 자신이 먹기 위해 준비해온 도시락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감동을 받아 자신들이 준비한 먹을 것들을 서로 나누어 먹으므로 모든 자들이 다 먹고도 남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당시의 상황을 너무 모르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사람들이 도시락을 갖고 다닐만한 여유가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무리들은 저녁까지 예수님을 따라 다닐 계획을 하고 도시락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좇다가 빈들에서 저녁을 맞이하게 된 것이지 전혀 그런 상황을 예상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런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혹자는 예수께서 모든 사람들에게 집단적 최면을 걸어서 오천 명이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배부르게 먹은 것처럼 느끼도록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몇 사람이면 몰라도 어떻게 5천 명이나 되는 사람을 최면에 걸리게 해서 배부르게 할 수 있습니까? 혹 5천명에게 최면을 걸어서 배를 부르게 했다고 합시다. 그러나 최면을 걸어서는 먹고 남은 음식을 12광주리나 거두게 할 수 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런 해석은 말도 안 되는 해석입니다.


그런데 이런 해석들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예수께서 5병2어의 기적을 행하신 주된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주셨듯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는다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먹고 남은 것을 12광주리나 거두는 기적은 전혀 받아들기 힘든 기적이 아닙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5병2어의 기적을 말씀 한 마디로 행하시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기적이 일어나는 과정에 여러 가지 요소들이 합쳐졌습니다. 우리도 그런 요소들을 학습한다면 예수님처럼 이 시대의 또 다른 5병2어의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첫째로, 기적은 빈들에서 일어났습니다. 본문 12절을 읽겠습니다. “날이 저물어 가매 열두 사도가 나아와 여짜오되 무리를 보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 들이니이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시간적으로는 날이 저물어 가는 때였고, 장소로는 ‘빈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5병2어의 기적을 베푸시지 않았다면 무리들은 빈들에서 굶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5병2어의 기적이 저녁때에 그리고 빈들에서 일어났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기적은 필요한 상황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만일 무리들이 굶지 않는 상황이었다며 5병2어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소개된 기적은 모두 기적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어났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은 어떤 상황에서 일어났습니까? 뒤에서는 애굽군대가 좇아오고 있고 앞에는 홍해가 놓여있어서 홍해를 가르지 않으면 이스라엘백성들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40년간 만나를 내려주셨습니까? 그들이 여행 중이라 한 곳에 정착해서 농사를 지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습니까? 애굽에서 나온 자들은 어른만이 아니었습니다. 갓난아이도 있었고 어른보다는 아이들이 더 많았었습니다. 따라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없었다면 어린아이들 가운데 죽는 자들이 부지기수였을 것입니다. 오늘날도 왜 선교현장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소경이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으면 현대의학의 도움을 받지 못해 고통 가운데서 살다가 죽는 자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기적이 필요한 상황에서 일어나는 것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절대절망의 상황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절망적인 상황을 맞이하면 두려워하거나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기적을 경험하는 기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실 것을 믿고 하나님께 간구하므로 기적을 경험해야 합니다.


둘째로, 기적은 오병이어를 드림으로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오병이어의 기적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통하여 일어났습니다. 사실 예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말씀 한 마디로 2만 여명이 먹을 수 있는 떡과 고기를 만드실 수 있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얼마든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열두 사도들에게 무리들이 얼마나 먹을 것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라고 하시고 한 어린 아이가 가지고 있었던 보리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주님께 드리자 그것을 가지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드린 것을 사용하셔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드리지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도록 간구하는 것을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구약시대에 사르밧 과부가 어떻게 국가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생 통의 기름과 가루가 떨어지지 않는 기적을 맛보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까? 그가 마지막 남은 떡과 기름을 엘리야에게 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이 병을 고침 받는 기적을 경험했습니까? 그들이 주위 사람들의 매서운 눈초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를 극복하고 주님께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진인사대천명’과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있듯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적을 원한다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홀로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데 굳이 오병이어를 통하여 기적을 행하실까요? 그것은 드린 자로 하여금 기적의 주인공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기적이 일어나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기적을 경험한 자도 사람들에게 칭찬과 영광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5병2어의 기적을 이야기할 때마다 어린아이를 말합니다. 그것은 그 아이에게 얼마나 영광이고 복인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적의 동참자로 만드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기적으로 인하여 높임을 받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도 주님께 드림으로 기적을 경험하고 칭찬과 영광을 얻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오병이어를 드린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오병이어를 어린아이가 드렸다는 것은 사복음서 중에서 요한복음 6장에만 나옵니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빈들에 있다가 5병2어를 주님께 드렸다는 것은 그의 부모도 거기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어린아이가 내놓은 오병이어는 그 가족이 함께 먹기 위해 숨겨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두 내놓는 것이 쉬운 것일까요? 그것은 믿음이 없이는 결코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것을 내놓자 주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것입니다. 차고 넘치는 가운데서 드리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드리는 것으로는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드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드릴 때에 기적을 행하십니다. 없다고 힘들다고 주님께 드리지 않으면 기적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기적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힘들고 어려울수록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셋째로, 기적은 준비한 후에 일어났습니다. 예수께서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기적을 행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기 전, 무리들을 오십 명씩 앉히게 하셨을까요? 당시 남자만 5천 명이었기 때문에 전체 무리는 적어도 2만 명은 넘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을 50명씩 앉혀도 적어도 400개의 떼가 있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12사도가 400떼에게 음식을 나누어주는 데만 해도 30분에서 1시간이 걸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이렇게 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적을 행하셨다고 합시다. 무리들이 서로 먼저 먹겠다고 달려들어 대형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번에 필리핀에서 야외 전도집회를 인도했습니다. 아이들 초함하여 약 30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집회를 주선한 선교사님이 우리가 준비해간 쌀과 스넥을 아주 지혜롭게 나눠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어른과 아이들을 연령별로 구분해서 줄을 세우게 하고 차례로 받아가게 하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선물을 받아갈 수 있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않고 나누어주었다면 난리가 났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기적으로 말미암아 대혼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하시고 오십 명씩 떼를 지어 앉히셨던 것입니다. 만일 이렇게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적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으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께서 떡을 떼어주시기 전, 50명씩 떼를 지어 앉게 하신 것은 기적을 준비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 미리 준비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기적을 경험하려면 기적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기적이 일어나면 그것으로 대혼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빨리 우리에게 기적을 베푸시지 않는 것은 그 기적으로 혹 우리가 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은 준비한 자에게 일어납니다. 따라서 기적의 주인공이 되려면 준비해야 합니다.

넷째로, 기적은 감사한 후에 일어났습니다. 누가복음 9장 15-16절을 읽겠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하여 다 앉힌 후 예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무리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니”(눅 9:15-16). 여기서 ‘축사하셨다’는 부분을 영어 성경으로 찾아봤더니 크게 두 가지로 되어 있었습니다. NIV는 “he gave thanks”로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신 것으로 되어 있고, KJV는 “blessed them”로 예수께서 무리들을 축복하신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번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다르게 번역되어 있는 것을 알고서 순간 당황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상충점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이렇습니다.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시기 전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시고 무리들을 향해서는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어떻든 우리는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 감사기도를 하셨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것은 저녁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 저녁 한 끼의 식사를 해결주시기 위해 감사기도를 하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한 끼의 식사라도 충분히 감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오늘 날 우리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감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솔직히 다이어트를 위해 굶기를 밥 먹듯이 하거나 너무 많이 먹어서 각종 질병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한 끼의 식사는 감사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 그 한 끼의 식사를 감사기도를 하신 것을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사소한 일에 감사해야지만 기적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소한 일에 대해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밀레가 그린 ‘만종’이라는 그림을 알고 있습니다. 만종은 석양이 지는 밭에서 하루 일을 마친 부부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밀레가 이런 내용을 화폭에 담은 것은 그의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가 질 무렵에 교회 종소리가 울리면 감사 기도를 잊지 않는 것을 보면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즉 밀레가 만종을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렸기에 그런 대작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감사는 기적을 만드는 제조기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한 끼의 식사를 인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구석구석마다 기적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5병2어의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기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일어났고, 준비한 후에 일어났고, 적은 것을 드림으로 일어났고 감사를 통하여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하면 삶속에서 기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현대판 5병2어의 기적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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