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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마태복음 궁극이............... 조회 수 351 추천 수 0 2017.06.11 15:2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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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마13:1-9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1: 그 날에 예수께서 집에서 나가사 바닷가에 앉으시매

 

그 날에

 

그 날에 집에서 바닷가로 나가신 것인데, 딴 날이 아니고 그 날에!

 

그 날에라는 의미는 도성인신하시고 성육신하신 주님은 33년 동안 이 땅에 계실 것인데 계시는 동안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기본구원과 성화구원을 위해서 꼭 필히 하고 가야 할 일들이 주님 당신의 예정 계획된 일정 속에 딱 잡혀 있습니다. 그리고 하는 일도 앞뒤가 바껴도 안 됩니다. ‘미루고 다음에 하지그것도 없습니다. 그 날의 구원사역은 그 날로 하신다 함입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들은 진리생명에 관한 일, 자타의 구원에 관한 중차대한 하나님의 일인데도 불구하고 하지 않기도 하고,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별 것이 아닌 일인데도, 그런 일은 다른 사람도 능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잡아끄니까 못 이기는 체 하며 끌려가고, 또 어떤 때는 별 것이 아닌 일인데도 자기가 주동자가 되어 가지고 나서기도 합니다.(: 모세 십계 영화 때문에 사고 날 뻔한 사건)

 

자타의 구원에 관한 일은 그 날로 해야 성령의 감화성이 떠나지 않고 사람의 정신이 살아서 부지런하게 되는 것인데 뒤로 미루는 습관을 가지게 되면 성령의 감화성은 없어지고 한없이 게을러지고 사람이 하나의 고깃덩어리가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살다가 십상은 돼지대가리가 되어 처녀 죽은 제사의 제사상에 올라가지!

 

바닷가에 앉으시매

 

예수님께서 바닷가에 계신다고 어느 새에 큰 무리가 형성이 되어 가지고 예수님께로 몰려온 것입니다.

 

큰 무리들이니 그 중에는 교인들이 있고, 성경을 가르치는 지도자 선생도 있고, 세상 여러 가지 업종의 직업을 가진 자들도 있고, 구경꾼도 있고, 남을 해코자 하는 자도 있고, 세상바람이 들어 부풀어 있는 사람도 있고 별의 별 사람들이 다 모인 무리들입니다. 사실 교회 안에 주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이 되지 못하고 제 각각, 고로 각각입니다.

 

큰 무리가 형성이 되려면 소문이 퍼져야 하고, 시간이 가야하고,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큰 무리들은 각자 생각하기를 내가 나오고 싶어서 나왔다, 저 사람은 안 나오려고 하는 것을 내가 데리고 나왔다하는 등 제 스스로 나온 것처럼 생각들을 하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주님이 그들을 불러 모은 것입니다. ? 계시를 보여주기 위해서! 그러면 그 때 그들은 주님과 상관이 없느냐? 그 때 그들도 깨달아야 합니다. 현재 우리보다 더 잘 깨달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직접으로 보고, 직접 들으니까!

 

주님의 주권적 구원역사에 영원 궁극적 건설적으로 동원되는 존재가 있고, 비 구원적 비 건설적으로 동원되는 존재가 있습니다. 앗수르나 바벨론을 부르는 것은 비 구원적인 동원입니다. 그런 것처럼 오늘날 교회 안에도, 집회장소에도 얼마든지 비 구원적으로 동원된 존재가 어디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분적으로도 구원건설적 동원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죄 칭의 새 생명으로 영이 중생 받은 자요, 주님은 불러서 진리요 생명인 천국복음 신령한 영의 말씀을 먹이시는 것입니다.

 

비구원적으로 동원된 자는 깨달음이 없습니다.

하나는 어려서 깨달음이 없고. 이 자는 영은 중생이 되었지만 이제 처음 말씀을 듣는 자이고,

하나는 대립성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질이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앞에 선 큰 무리들 속에는 별의 별 생각, 별의 별 소원 목적 등 별의 별 사람이 다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종들의 입장에서는 일단 하나님께서 보내셨으니, 하나님의 허락 하에 왔으니, 하나님께서 나에게 보내셨으니 최고의 높은 하나님의 것으로 대접을 해서 보내자 하는 이 마음자세를 가져야지 인간이 보는 것처럼 저 놈이 또 왔구나, 골치 아픈 놈인데 좀 안 왔으면 좋겠는데하고 생각하면 자기가 시험에 걸리고 맙니다.

 

큰 무리들이 오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마침 있는 배를 빌려 타시니 큰 무리들은 바닷가 해변에서 주님을 마주 쳐다보고 선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의 말씀을 다 들을 수 있습니다. 큰 무리와 주님 사이에는 물로서 간격이 있기 때문에 주님 앞에서 얼쩡거려 딴 사람의 시선을 흩으려 놓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주님을 못 보았소, 나는 누구 때문에 주님의 말씀을 잘못 들었소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변명이 안 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큰 무리들에게 말씀을 전하시려면 확성기라야 가능할 텐데 그게 없습니다. 어떻게 가능할까? 그것에 대한 궁금증을 풀려고 하기 보다 그것은 창조 때부터 마지막 시대까지의 각 모양의 교인들이 모여진 계시적인 장면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시대를 초월하고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모두 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배를 타셨는데 큰 유람선을 타신 것도 아니고, 큰 군함이나 화물선을 타신 것도 아니므로 무시하는 사람들이 볼 때는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노 젓는 조그마한 배를 타신 것입니다.

 

누가 그 배를 쓰시도록 기뻐서 즐거워서 선뜻 내놓았을까? 주님이 마지막 걸음이 될 예루살렘 입성 때 나귀를 바친 무명의 성도, 그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그들의 얼굴이 보고 싶습니다. 주님이 우리교회라는 배를 천국복음에 이용하시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만약의 경우에 주님은 바닷가에 서시고 큰 무리들이 배를 타고 각자 한 마디씩 하겠다고 한다면 어떤 사건이 일어날까? 소란한 무리들이 배 주인이 되면 배가 뒤집혀 자기 죽고 남 죽이고 맙니다. 위치가 바뀌면 그렇게 되는 것인데 영의 눈으로 보면 교회가 뒤집혀 빠져 죽은 교인들이 많습니다. 물귀신교인들이 많습니다.

 

133절부터 9절까지를 보면 씨를 뿌리는 비유인데 농부의 씨를 뿌리는 비유를 왜 바다에서 하실까? 고기 잡는 그물의 비유는 바다에서 하시는 것이 자연스럽고, 씨를 뿌리는 비유는 들판에서 하시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왜 농부의 비유를 바다에서 하실까?

 

133, 4: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비유는 세상에 있는 것을 가지고 천국의 이치를 가르치심입니다. 이 세상은 물질의 세상인데 눈에 보이는 물질과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습니다. 공기, 바람, 그 속에 들어 있는 요소들이 있고, 성질은 조금 다르나 불신자들 속에 작용하는 세상을 좇아가는 이성이 있습니다.

 

안 보인다고 부정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이거나 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고, 안 보인다고 해서 없다고 박박 우기는 사람은 정신에 이상이 온 사람이라고 보아집니다. 우리 기독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물질세계를 시인할 줄 알아야 되고, 더 나아가서 주님의 종들이라면 영의 눈과 영의 귀가 기본적으로 열려 있어야 하고, 영적인 감각성 면에 민감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물질세상을 보면 공개된 자연이치와 일반이치가 있습니다. 곧 물질이치라 볼 수 있고, 인간의 세상을 보면 도덕이치 또는 도덕률이 있고, 신앙의 세계로 들어가 보면 진리이치 생명이치가 있습니다. 이 인간세상과 물질세상 속에 신비롭게도 자연계시와 일반계시가 들어 있습니다. 이 계시들은 성경 특별계시를 깨닫게 하는 하나의 보조계시인 것입니다.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눈이라야 보여지는 이 비 공개된 영적인 진리이치를 우리는 성화구원에 유익이 되도록 여러 가지 각도로 깨닫고 가야 합니다.

 

본문에 씨가 떨어지는 곳들은 우리 인간들의 여러 가지 마음상태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134: 뿌릴 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길가에 떨어진 씨를 새들이 와서 홀딱 주워먹어 버렸습니다. 날아간 씨값을 물어내라고 할 수도 없고......

 

씨가 떨어지기 전에 이미 딱딱한 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 길로 수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밟아서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졌으니 씨가 들어갈 리가 없습니다. 세상으로 향한 길, 세상부자가 밟고 지나갔고, 박사도 밟고 지나갔고, 정치인도 밟고 지나갔고, 문학인도 밟고 지나갔고, 예술인도 밟고 지나갔고, 음악계 연극계 무용계들도 밟고 지나갔고, 가수 누구도 밟고 지나갔고, 탤런트도 밟고 지나갔고, 사업가도 밟고 지나갔고, 중소기업가도 밟고 지나갔고, 종교계에서 이름난 분들도 밟고 지나갔고, 그 사람의 머리통으로, 마음 밭으로 사상적으로 얼마나 많이 발로 밟고 지나갔는지? 하루도 아니고 1년도 아니고 여러 수십 년을 밟고 지나갔으니 마음 밭이 길바닥이 된 것입니다. 씨가 심어질 리가 없습니다. 굴러다닐 수밖에! 지금도 자기 마음 밭을 누가 밟고 지나가고 있는데도 모르고 멍청한 사람들이 쌓이고 쌓였어.

 

큰 무리들도 예수님의 비유를 듣고 생각할 테지. ‘씨가 참 아깝다!’ 흙이 좋은 밭에 씨가 떨어졌다면 백 배의 결실을 볼 터인데 날짐승이 주워 먹었으니, 소출이 없으니 농부의 수고가 헛수고가 되어 버렸습니다. 씨가 아깝습니다.

 

135, 6: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니 싹이 났으나 해가 올라오니 타서 말라버렸다는 것입니다.

이 밭 역시 씨가 떨어지기 전에 밭이 그 모양으로 되어 있었던 거지요. 밑에는 돌들이 쫙 갈려 있고, 위에는 흙이 살짝 덮여 있었으니까 씨가 떨어졌지만 뿌리를 내릴 수가 있어야지! 해가 돋으니 그만 타서 죽을 수밖에!

 

13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지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습니다.

 

이 밭도 이미 씨가 떨어지기 전에 가시밭으로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씨가 떨어지니 가시에 이리 찔리고 저리 찔리고 갈가리 찢겨져 죽었다는 것입니다.

 

13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진 것은 30, 혹은 60, 혹은 100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39: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 이제 귀 있는 사람은 듣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들이 다 나왔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라

 

귀도 그냥 듣는 귀만 있습니다. 소리만 듣는 귀. 가치 판단 평가성이 없습니다. 소 눈은 그냥 껌뻑거리기만 하고, 하마는 하품만 하고, 구더기는 그나마 귀가 없으니 소리를 암만 질러봐야 소용이 없고, 쿡쿡 찔러봐야 꿈틀거리고 몸을 비틀든지만 하지 귀가 없으니 꼭 찔러야 돼.

 

, 그렇구나, 그런 것도 있구나하고 지식적으로 이해하는 귀가 있습니다.

 

깨닫고 자기 신앙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는 귀가 있습니다. ‘아멘으로 받아들입니다. 신앙양심에 그저 양심이 부끄러워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들 수가 없고 그저 나오는 소리는 주여, 나를 고쳐주소서그 소리밖에 없습니다. 변명을 할 수가 없습니다. 한스러워 눈물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주님과 큰 무리들과의 거리가 있지만 큰 무리들 속에서 아무도 보지 못하게 흐느끼는 그 흐느낌을 못 들으실까? 깨닫는 귀는 주님과의 인격적 결합을 하게 됩니다. (계속)

 

*************************

성도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당신의 애성에서 발로된 인간창조의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따라 신앙을 해야만 됩니다. 이래야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로 통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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