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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누가복음 안창천 목사............... 조회 수 477 추천 수 0 2017.06.05 23:5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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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눅2:40-52 
설교자 : 안창천 목사 
참고 : d3왕의사역 평신도제자훈련원 http://d3.or.kr 

예배,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

 눅2:40-52절

 2015.7.5 


우리는 지난 주 ‘안나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안나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그의 나이 84세에 아기 예수를 두 눈으로 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안나가 아기예수를 보는 영광을 누리게 된 이유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로, 성전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떠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금식했습니다. 금식을 했다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기도했습니다. 기도를 했다는 것은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마음에 모셨지만 삶속에서 그분을 보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고, 자신의 욕심을 죽이지 못하고,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점점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안나처럼 영광가운데 주님의 얼굴을 뵈어야 합니다. 오늘은 본문을 중심으로 ‘예배, 그 이후가 더 중요합니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42절은 예수께서 자라며 강해지고 지혜가 충만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께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균형 있게 성장하셨다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신체와 지적 능력이 함께 성장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즉 키는 큰데 지적 능력이 자라지 않기도하고 지적능력은 정상인데 키가 전혀 자라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본인 자신도 고통스럽지만 부모님의 마음은 더욱 아픕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육신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영역에서도 일어납니다. 즉 신앙의 경력과 함께 믿음이 자라야 하는데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해도 옛 사람의 모습 그대로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본인도 고통스럽지만 이를 바라보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역시 고통스럽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균형 있게 성장해 가신 것을 보면서 과연 신앙경력에 맞게 믿음이 성장해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예수님을 갓 믿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도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알고 있습니다. 날마다 영의 양식을 먹어야 하고,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하고,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대로 제자 삼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주일예배에만 참석할 뿐, 평소 성경도 제대로 읽지 않고, 문제가 생겨도 기도하지 않고,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는 일에도 거의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은 정상이 아닙니다. 균형 잡힌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시고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하고 주님께 고통을 안겨주는 자가 된다는 것은 보통 불행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성장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말씀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야 합니다. 육신이 성장하기 위해서 밥을 먹어야 하듯이 신앙경력에 맞는 믿음이 성장하려면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양식을 어떻게 섭취하느냐에 따라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재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갓난아이처럼 먹어야 합니다. 갓난아이가 하루에 8-10번 우유를 먹듯이 자주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자주 말씀을 먹지 않으면 믿음은 크게 자라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말씀과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사모하는 대상입니까? 귀찮은 대상입니까? 말씀을 자주 먹지 않는 한 믿음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말씀을 사모하는 은혜를 받기를 축복합니다.


예수께서 키와 지혜가 균형 있게 성장해가시던 중 12세가 되시자,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께서 12세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신 것은 율법에 그렇게 하도록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매년 세 번씩 예루살렘성전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했는데 본문의 절기는 그 중의 첫 번째 절기인 유월절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월절은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할 때에 너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바로 왕에게 보내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왕이 모세의 말을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10가지 재앙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 재앙이 장자재앙인데, 애굽의 장자를 죽이실 때에 어린양의 피를 좌우설주와 문 인방에 바른 집은 죽이지 말고 넘어가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어린 양을 잡아 좌우설주와 문 인방에 바른 집은 애굽인의 집이든 이스라엘인의 집이든 다 죽임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유월절 절기를 지키도록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유월절 절기에 예수께서 처음으로 참석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유월절에 문틀에 바른 양의 피는 장차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리심으로 인류를 구원하실 것에 대한 예표입니다. 아마도 예수께서는 유월절 절기에 참여하여 짐승들이 피 흘리며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머지않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실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월절 절기를 마친 후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요셉과 마리아는 다른 친척들과 함께 고향 나사렛으로 돌아오고 있는데, 하루쯤 길을 가다가 예수님이 친척들 가운데 보이지를 않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당황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을 찾아 나섰고 결국 다시 예루살렘까지 올라갔습니다. 3일 만에 예루살렘에 도착하여 성전 안에 들어가 보니 예수께서 그곳에서 당시 최고의 랍비들과 함께 앉아서 토론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깜짝 놀라서,“얘야, 왜 이렇게 했어. 네 아버지와 이 어미가 얼마나 너를 걱정하며 찾았는지 아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했습니까?”라는 의미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자신이 있어야 할 장소가 성전이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런 의미라면 예수께서는 그곳에 계속해서 남아계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곧바로 그의 부모와 고향으로 내려가셨습니다.


과연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했습니까?”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준비하면서“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의 의미를 보다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여러 번역본을 보다가 KJV에서는 ‘my father’s house’를‘my father’s business’로 번역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유절절 예배를 통해서 장차 자신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새롭게 인식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자는 하나님과 친밀해져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주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므로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예배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하게 하는 수단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예배를 위한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배 후 하나님과의 관계에 어떤 변화가 있습니까? 예배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해지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하는 마음이 뜨거워집니까?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예배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라고 말씀하셨지만 요셉과 마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그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50절을 다시 읽겠습니다.“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왜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깨닫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제대로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모르면 그분이 하시는 말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말씀에비판의 칼을 휘둘렀던 것은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알고 그분께서 말씀하신 의미를 깨달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나 마리아는 주의 사자를 통하여 마라이아의 뱃속에 있는 아이가 어떤 분이시며 장차 어떤 일을 하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께서 보통 아이처럼 자신들을 “아빠, 엄마”라고 불렀어도, 그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어야만 했습니다.


우리도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온전히 알아야 합니다. 단지 머리로만 아니라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알고 있습니까? 혹 위대한 사람 중의 한 분이나 4대 성인 중의 한 분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 선지자나 하나님의 아들 정도로만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분은 우리와 똑같이 육신의 입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단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육신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서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구원자이십니다. 그리고 때가 차면 마지막 날 재림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아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전혀 달라집니다. 예수님을 4대 성인이나 위대한 사람이나 선지자로 생각하는 자와 예수님을 구원자로 생각하는 자는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의 관계를 통하여 이런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제자들과 3년을 동고동락하셨습니다. 에수께서는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각가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예수께서 메시아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보낸 자들에 의해 체포되어 곧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게 되자,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저주하며 모두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언제 다시 제자들이 주님께 돌아왔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후였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예수께서 정확히 누구신지를 알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거짓 메시아가 아니라 그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 즉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목숨 바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저에게 한 동안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왜 초대교회 성도들과 오늘날의 성도들의 삶이 전혀 다르냐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쳐주며 복음을 전하고 순교까지 했는데, 왜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능력 있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주님을 위해 순교하는 자를 찾아보기 힘드냐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하여 그 답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5장 42절입니다. 초대교회는 사도행전 5장 42절의 삶이 있고,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초대교회가 날마다 장소에 상관없이 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날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구원자라고 가르치고 전한 것입니다. 그러자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심을 깨닫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사도행전을 주의 깊게 살펴보면 바울이 가는 곳마다 전한 메시지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제가 왜 3분 복음스피치를 매주 암송하게 합니까? 그것을 반복할 때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정확히 깨닫고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복음을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을 바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51절을 보십시오.“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예수께서 성전에서 랍비들과 토론 후 부모와 같이 나사렛으로 내려가셔서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런데 왜 성경 기자가 이런 사실을 기록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고 그분의 일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께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은 누구보다도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요셉과 마리아가 성전에 있는 자신을 찾기 위해서 고향으로 가던 중 다시 돌아와서 자신에게 “어찌하여 네가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고 물었을 때에 그들에게 면박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물음에 잘 대답하고 또 부모님과 함께 고향으로 와서 그들을 잘 받들어 섬겼습니다. 그리고 공생애 동안 목수인 아버지 요셉의 일을 도와가며 부모님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셨습니다. 혹 부모님의 말과 행동으로 마음의 큰 상처를 받을 수 있습니다. 또 부모님이 자신에게 잘 해 주지 않아 서운한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그리스도인은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님께 대한 태도가 곧 영적인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태도임을 알고 부모님께 효도하고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균형 있게 성장하셨듯이 우리도 신앙경력에 비례해서 믿음이 성장해야합니다. 신앙경력은 자꾸 쌓여만 가는데 믿음으로 살지 않고 삶의 변화가 없다면 이는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예배로만 끝나는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께서 부모님께 순종하셨듯이 우리도 육신의 부모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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