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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362 추천 수 0 2016.07.03 16: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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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2:35-3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2장 35절-37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새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다윗이 성령에 감동하여 친히 말하되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네 발 아래 둘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뇨’ 하고 물었다.


‘성전’ 하는 것에도 계시가 들어있다. 교인들이 있을 때 신앙을 질적 상태적으로 묘사하자면 그 신앙의 냄새와 질이 예루살렘으로 향해서 가는 즉, 천국을 향해서 가는 그런 정신으로 믿는 자가 있고,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의 소원 목적적으로 내려가는 자가 있다.


세상 소원 목적적으로 믿는 그 자는 자기 일평생을 다 도둑맞는다. 이런 자는 사는 게 없고 살아나는 게 없고 전부는 사망성의 성질이다. 그 신앙의 성질이 사망성이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신앙자는 모래 위에 세운 집 같아서 그런 식으로 백날 믿어도 세상바람의 물이 들어오면 다 쓰러진다.


그 신앙의 상태가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는 교인이 있는가 하면, 그런데 또 예루살렘하고도 성전 안을 향해서 가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성전 안에서의 신앙에도 성전 안에 있는 여러 순서를 하나하나 다 지나서 법궤 앞에까지 가는 신앙도 있다. 신앙의 상태적 묘사가 이렇게 다양하게 나오는 거다.


성경으로 보면 예수 믿고 교회 다닌다고 하지만 각 사람의 신앙의 질적 면을 보면 이게 다 나타나는 거다. 그래서 주님이 사건을 잡고 눈에 안 보이게 나타나면 각 사람의 마음이 각자의 신앙상태대로 나타나는 것이다.


서기관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다. 그러면 그렇게 본 것은 어떤 지식의 눈으로 본 것이냐? 육의 눈이냐, 영의 눈이냐? 육의 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일반적 혈통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으로 보인다. 그러나 다윗이 성령에 감동이 되니까, 하나님의 신에 감동이 되니까 그리스도를 무엇이라고 부르느냐? 주라고 부른다. 완전히 뒤집어진다.


서기관들은 성경에 능통한 자들이요, 성경을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그런 그들이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만 알았으니 이들이 창세 전에 계셨던 그리스도를 알 리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아느냐? 창세 전에 선재적으로 계셨던 그 주님을 우리는 안다. 우리는 그 면을 놓고 그리스도를 주라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을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과 성령으로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즉 외국에서 공부를 많이 해서 목사가 돼서 성경을 보는 것과, 성경을 통달해서 영적으로 성경을 보는 눈과는 완전히 다르다. 하나는 육신의 눈이고, 하나는 영의 눈이다. 성경은 성령의 눈, 영의 눈을 가지고 보는 거다. 이건 세상공부와는 무관한 것이다.

창조주께서 어떤 사람을 원하시느냐? 오늘날 교회 안에서는 세상에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을 알아준다. 예수님 당시에도 학교는 있었다. 로마에도 여러 학교가 있었다. 그러면 예수님 당시의 서기관 율법사들은 어디를 나왔느냐? 로마의 그걸 다 배우고 시험을 쳐서 나온 사람들이다.


그러면 예수님은 어디를 나왔느냐? 예수님은 바리새교인들이 가르치는 학교나 율법사들이나 서기관들이 가르치는 학교는 나오지 않았고, 배웠다면 마리아 신학교를 나왔다. 모세는 누구에게 그 정신을 배웠느냐? 어머니 요게벳 신학교에서 배웠다. 오늘날로 표현해서 어디를 나왔다고 한다면 모세는 요게벳 신학을 나왔고, 예수님은 마리아 신학을 나왔다. 그러면 로마의 학교를 나온 자들과, 예수님 중에 누가 월등하냐? 하나님 앞에 누구냐?


물론 공부를 하는 것도 좋지만,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특히 목사님들도 성경을 모르면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더 할 수도 있다. 그런데 그건 전부 가견적이다. 그 껍데기에서 알맹이가 잘 여물어야 한다. 그것을 보고 하나님은 ‘신실한 내 종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로마 제국대학이나 애굽 제국대학을 졸업한 그런 걸 알아주는 게 아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희들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나 나는 속사람을 취한다’고 하셨다. 속사람을 취한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바르게 자라는 것을 본다는 것이다. 우리는 무엇을 보더라도 복음의 눈으로 봐라.


당시의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그리스도를 혈통적 족보적으로 기록한 것만 알아서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만 알고 있었으니 우리가 볼 때는 이들은 창세 전에 계셨던 선재적 그리스도를 모르는구나.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그리스도를 주라고 부른 것은 선재적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다. 다윗이 태어나기 전에 그리스도가 먼저 계셨다.


그러니까 이런 서기관들은 백성들을 혈통적 역사적 족보로만 가르쳤다는 말이 된다. 성전 안에서 그렇게 가르쳤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 안에서 육의 눈, 썩어질 눈을 가지고 성경을 가르쳤구나. 그러나 주님이 성전 안에서 가르치는 것은 성령으로 가르치심이다.


그래서 유형교회도 보면 무형교회 근본교회를 의식하고 무형교회를 성장시키는 목사가 있고, 그런가 하면 그건 지식적으로도 모른 채 눈으로 보이는 사람만 의식하며 껍데기만 키워나가는 목사도 있다. 교훈의 이치에서 그건 다 나오는 거다. 이걸 못 보면 그런 데 동원돼서 속는 거다. 성경은 성령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가르치는 자가 성령님의 감화 감동을 입지 못하면 세상 육적 눈으로 보여지는 혈통적 역사로만 성경을 가르치게 된다.


그리스도는 다윗이 태어나기 전에 영원 전서부터 계셨기 때문에 신앙의 눈을 가지고 영의 눈으로 보면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이 될 수 없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재적인 그리스도가 왜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났느냐는 것이다. 왜 그리스도가 다윗의 가정을 통해 태어났느냐? 이것이 오늘날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냐? 다시 말하면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인간 되어 오시는 그 분의 소원과 목적이 무엇이냐?


우리가 남의 족보만 말할 바에야 성경에 이게 기록돼서 나에게 보여주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성경에 ‘그리스도 예수’라고 한 곳도 있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한 곳도 있는데, 그렇게 쓴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란 선재적인 그리스도가 인간 예수 즉, 인간의 구원자로 오셨다는 말이고, 그 다음에 ‘예수 그리스도’란 인간 예수 즉,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즉, 나를 구원하셔서 그리스도화 시킨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다시 말하면 성령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녀로 만들겠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성품화로 만들겠다는 그 말이다.


이렇게 하심은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서 예정 계획이 된 것인데, 세상을 만들기 전에 우리의 존재는 없었다. 그러나 당신의 의지세계 속에, 마음속에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겠다’ 하는 당신의 그 의지 속에 우리를 위한, 나를 위한 구원을 설정과 설계를 하셨고, 그 설정과 설계대로 진행 섭리를 하신 것이다. 이걸 쉬운 예로 말하자면 부모님이 결혼을 해서 딸을 낳을지 아들을 낳을지 누구를 닮았는지 몰라도 엄마 배가 부르기 시작하면 앞으로 아이를 낳게 될 것이니 그 아기를 위해서 기저귀를 준비하고 미역을 준비하고 미리 다 준비를 하는 것과 같다.


역사적으로 보면 인간이 타락 전에도 하나님의 본질에 비춰보면 인간은 이질이다. 그런가 하면 첫 사람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해서 인간은 또한 하나님과 이질이 돼버렸다. 타락 전의 이질은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는 면에서의 이질이요, 타락 후의 이질은 죄악에 감염되었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본질과는 또 다른 이질이다. 어쨌든 타락 전의 이질이던, 후의 이질이던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본질이 아닌 이질이다. ‘타락하기 전에도 이질’이라는 말은 하나님으로 지음을 받았지만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이 아니라는 면에서의 이질이다. 그 참에 선악과를 따먹었으니 이질인데다가 타락이 된 것이다.


이처럼 인간은 타락된 이질이던, 만든 것의 이질이던 하나님의 본질로 되지 않고서는 하나님의 질로 된 것만 입국할 수 있고 존재할 수 있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이므로 이런 존재를 천국에 입국할 수 있게 만들려면 인간은 어떤 방편으로 건 하나님의 본질을 입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방편으로 그리스도께서 예수로 오셔서 그 일을 책임을 지신 것이다. 왜냐? 하나님께서 생명과와 선악과를 만드셨고, 인간이 그 선악과를 따먹고 타락이 됐으니 어떤 면으로 보면 그 책임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셔서 일단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 있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이다. 창조의 목적대로 들어가려니까 그런 것이다.


그러면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타락할 것을 하나님께서 몰랐겠느냐? 근본적으로 아신다. 그런데 그렇게 하심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자유성을 주었는데 ‘그 자유를 가지고 네가 어디에 썼느냐’ 그게 있는 거다.


우리를 하나님의 본질화로 만들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를 위한 구속사역을 하시는 건데, 예수님께서 하신 이 사역은 타락 이전의 상태보다 훨씬 더 나은 하나님의 본질로 만드는 것이다. 타락 전의 이질의 상태는 아직 죄는 없으나 하나님의 본질은 아니므로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당신의 구속으로 우리의 죽은 영을 살려서 하나님과 같은 본질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의 본질로 거듭난 이 영은 하나님이 죽지 않는 이상 절대로 죽지를 않고, 또한 하나님이 죄를 짓지 않는 이상 절대로 죄를 짓지 않는다. 그 대신 자라지 못하고 비실거리면 얻어맞고 하는 거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우리에게 교훈적으로 느끼게 하는 것인데 이방백성들은 자기 신들을 만들어 놓고 섬겨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이스라엘백성은 다른 신을 섬기니 유독 두들겨 패고 포로로 잡혀가게 만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시는 것은 그들이 누구의 자식이기 때문에? 하나님 자녀니 그렇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인 자기에게 사건 환경적으로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매질이 올 때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줄 알아야 한다. 그걸 못 느끼면 그 사람은 망하는 거다. 신앙의 세계에서는 그걸 느껴야 한다.


신령천국은 하나님의 본질에 맞도록 된 세계인고로 우리로 하여금 그 세계에 들어가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행복의 극치로, 쾌락 향락의 극치로 누리며 살게 하려고 그런 방편을 통해서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본질화로 만드는 것이다. 이 일을 위해 선재적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나의 구원자로 오셔서 내 대신 하나님의 지공과 지성의 법에 100% 만족을 이뤄드린 삶을 사셨다.


나를 구원시키려면 당신이 죄인으로 오시면 이 일은 불가능이다. 의인이 오셔서 의인으로 죽어야 죄인 나를 실릴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가령 부모가 감옥에 있는 자식을 위해 ‘내가 대신 감옥에 들어가렵니다’ 하면 그게 허락이 되느냐?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는 허락이 안 된다. ‘너도 네 죄로 인해 감옥에 갇힐 처지이면서 무슨 남을 위해 감옥에 갇힌다고 하느냐’ 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세상에 존재목적이 뚜렷한 것이니 우리는 하나님의 인간창조의 목적대로 살아야 한다. 이게 예수 믿는 인간 자기의 정로이다. 그러니 예수 믿는 것을 하나의 종교로 생각하지 말아라.


자기를 살펴보면 예수 믿기 전에는 무목적적으로 살았지만, 무목적적이란 세상에 대해서는 이 목적 저 목적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는 그게 인간이 가져야 할 궁극적 목적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건 하나님 앞에서는 무목적적으로 사는 거다. 그런 무목적적으로 살았지만 예수 믿은 후에는 그렇게 살면 안 된다. 예수 믿기 전과 같은 세상 소원 목적을 위해 살면 죄가 된다. 세상 목적으로 살면 여전히 선악과 먹은 정신이니 그게 죄다.


문제.


1. 자기의 구원설계가 인간이 선악과 따먹고 타락한 후부터인지, 타락 전부터인지? 타락 전부터이다.


2. 우리를 위한 구원설계가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생명과 먹으라고 한 그 후부터인지, 그 전부터인지? 그 전부터이다. 우리가 생기기 전부터 구원설계가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이 선악과를 따먹는 것은 우리의 구원설계 중의 하나의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은 선악과를 따먹은 후부터 우리의 구원을 전개한다. 우리는 그게 아니라 타락 그 훨씬 이전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의중으로 들어간 그 구원을 보는 거다. 그 의중에 들어있는 구원은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해서, 훈련 연단을 시켜서 나를 당신처럼 만들어서 천국에 데려가서 당신처럼 누리게 한다는 것이다.


선악과 따먹은 후에 우리의 구원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에 비해, 그런 거는 영원 전 당신의 의지세계에서 이미 설계된 구원의 경로 중에 하나의 과정이라는 것은 그 신앙의 깊이는, 그 생각의 깊이는, 그 신앙의 얕고 깊고 넓고 한 이거는 엄청난 차이를 갖는 거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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