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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하늘에서 별들이 떨어지며.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242 추천 수 0 2016.09.11 18:2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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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3:24-27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3장 24절-27절: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환난 후에 해가 어두워진다고 했다. 화산이 터지면 해가 어두워진다. 화산재가 하늘을 덮는다. 가까이 있으면 죽는 거다. 그런데 화산이 터지는 것을 전쟁으로 보면 전쟁이 일어나면 사방에서 연기가 나니 어두워진다. 일반적으로는 그렇게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환난 후에 해가 어두워진다’고 했으니 안 믿는 사람은 전쟁이고, 그런데 성도로서의 미리 보는, 그래야 준비가 된다. 성도로서 미리 보는 환난은 어떤 환난이냐? 그 환난은 자기 혼자에게도 교회에게도 가정에게도 기독교 교회라고 하는 전체에도 이치는 똑같다. 변할 수 없는 한 이치로 볼 수 있는 환난은 무엇일까?


성도가 제일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무엇이 고통스러울까? 부모가 죽어서? 아니면 내가 못 먹어서? 어느 쪽이 더 고통스러울까? 내가 못 먹고 있는 게, 배가 고픈 게 고통스러울까, 부모 죽은 게 더 고통스러울까? 내가 배가 고파서 못 먹는 게 더 고통스럽다.


그러면 성도 다윗의 주식이 뭐였느냐?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도의 주식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자기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수 없는 환경에 처했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려고 이리저리 둘러봐도 어디를 가도 먹을 수 없는 게 성도로서 환난에 접어드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말씀을 풍부히 먹고 있는데 자기는 어떤 이유로 건 하나님의 말씀을 못 먹고 있다면 자기는 환난에 처해진 거다.


생명의 말씀을 못 먹으면 그 다음에는 어떤 현상이 오느냐? 해가 어두워진다. 그러면 개인적으로 보면 이것이 무엇일까? 해가 어두워지는 게 개인적으로는 뭘까? 해가 어두워지니 캄캄해서 안 보인다. 이러면 그 사람의 미래는 닫히는 거다. 그 사람의 미래는 없다.


애굽의 장자를 다 죽였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거냐? 또 하나 낳으면 되는 거냐? 장자라고 하면 그 집의 희망 건설 모든 행복 등을 잣대로 보는 상직적인 의미가 들어 있다. 그래서 일반세상에서 보면 ‘아들을 낳아서 좋겠습니다’ 한다. 왜 그런 표현을 하느냐 하면 그 가정의 기둥이요, 부모에게 제사를 드릴 자요, 후대를 이을 자이므로 ‘아들을 낳아서 좋겠습니다’ 하는 거다. 일반세상은 그렇다.


그런데 성경은 비유요 비사이므로 그런 사고방식을 영으로 돌려서 생각을 하면 애굽의 가정은 영원히 미래적으로 희망도 없고 건설도 없고 전부는 절망이다. 이건 신앙 면으로 보는 거다. ‘첫 아들을 낳으면 내게 바치라’ 하는 건 그런 사상들이 다 들어있는 말이다. ‘첫 아들을 나에게 바치라’ 하는 것이 ‘둘째 아들은 네 거다’ 그런 의미가 아니고 그 가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의 계대가 계속 나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의사표시다. 그 가정에 미래가 있다 그 말이다.


안 믿는 가정에서 자식이 부모에게 아무리 잘 해도 하나님 앞에 그건 미래로 쳐주지를 않는다. 그건 선악과 따먹고 타락된 풍습 습관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창조의 목적에서 볼 때 그건 아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가정의 부모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정신으로 자손대대로 물려가게 해야 하는 것이다. ‘너의 가정에 하나님의 복이 천대까지 내려간다’ 하는 것은 그런 정신 사상이 들어있는 축복의 말씀이다. 대대로 내려간다는 것은 교훈이 그 안에 들어있다. 교훈과 함께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이 같이 가는 거다. 그래서 믿는 가정에서 아무 교회나 다녀서는 안 된다.


우리교회는 이룰구원의 교훈이기 때문에 이 이룰구원에서는 성장적인 면에서 아는 면에서 부모들이 힘쓰는 것만큼, 청년들이 힘쓰는 것만큼 들어가는 거다. 거짓이 없다. 하나님은 공의의 분이시다. 공의의 말씀대로 힘쓴 것만큼 실현해 주신다. 그런데 자기가 안 하려고 하면 어쩔 수가 없는 거다. 성경의 모든 선지 사도들과 왕들의 그런 정신들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실생활에서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부모가 제사장이지만 그 제사장의 두 아들이 막 돼 먹으니 저주가 들어가는 거다. 사무엘의 자식에게도 그랬다.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으로 된, 아가페의 기준으로 된 스톨게 에로스 필레오가 들어가는 거다. 아가페가 끊어진 채 다른 사랑은 일반과 똑같다. 우리 모든 가정의 교육이 아가페가 중심돼서 에로스 속에 아가페, 필레오 속에 아가페, 스톨게 속에 아가페가 내려가야 하는 거다. ‘필레오 아가페 스톨게’ 하는 것은 관계성이 들어가는 거다. 그 정신이 들어가면 그 정신이 자기의 모든 생의 삶을 지배하고 하나님 앞에 복된 자가 된다. 이게 창조의 목적에 걸맞는 적중된 삶이다.


우리교회는 타 교회와 다르다. 기도해서 복 받고 그런 게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 만들어지며 서는 거다. 그 다음에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붙잡고 역사하게 만드는 거다.


‘그 때에 그 환난 후.’ 진리를 찾기가 어려우면 환난에 들어가는 거다. 교회에 사람은 꽉꽉 찼으나 진리의 말씀을 먹을 수도 없고 찾을 수도 없으면 그건 세상에 속한 교회라. 계:에서 이걸 보여준다. 큰 성 바벨론 이게 음녀라. 세상화 된 교회를 말하는 거다.


‘해가 어두워지며.’ 해가 어두워지면 자기의 눈도 어둡고 캄캄하고, 역시 진리생명의 말씀도 발견할 수도 없다.


‘달이 빛을 내기 아니하며.’ 이렇게 되면 교회로서의 빛은 없다.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교회의 종들이 땅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개체적으로 보면 자기에게 모든 소망 희망이라고 하는 건 다 떨어져 버린다. 없다.


그 다음에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이건 교회의 권위성이 다 떨어진 거고, 개체적으로 보면 네 생명은 끝났다는 것이다. 교회로서의 성도로서의 품위가 없다. ‘네가 예수 믿느냐? 네까짓 게 하나님을 믿느냐? 네가 하나님 아들이냐?’ 한다. 이건 땅에 떨어진 거다.


땅에 떨어지는 이유가 속성적으로 가치적으로 하나님의 신적인 도덕성으로 된 것이 아니라 저질이라. 가치가 없다. 예수 믿는 교인이 세상에 속한 것을 구하고 있다면 그건 가치가 없다. 이방인도 이방종교인도 다 땅의 것을 구한다.


땅의 것을 구해서 먹고 사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자타의 구원을 위해서 일을 하고 먹고 사는 사람이 있다. 수준이 가치가 다른 것이다.


시장에서 파는 꽃게가 속이 비면 사람으로 치면 존재 가치가 없는 거다. 자기의 기도가 천국백성으로서 하늘에 속한 천국 것을 구하지 않고, 천국 것을 구하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자기 것으로 삼는다는 것인데 어느 종교에도 이건 없다. 기독교밖에 없다. 나를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만들었다는 점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것을 받게 설계가 된 것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살지 않는 안 믿는 사람들은 돈 많고 부자로 살아도 인격적 성품 면에 가치가 없다.


예수 믿는 사람은 자신에게 하나님의 얼굴과 명예가 있는 건데 세상과 땅에 속한 것을 구하고 있다면 그 교인은 빛을 잃고 땅에 떨어진 거다. 땅에 떨어지면 가치가 없다. 밟힌다. 맛을 잃은 소금이다. 신앙인격 면이 여물지 못한 껍데기일 뿐이다. 예수 믿어도 껍데기뿐인 사람이 참 많다.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의 인격과 성품에서 나는 것인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고, 그런 사람이나 그런 교회는 성령님의 역사는 이미 떠났다. 성령님의 역사가 떠난 교회는 세상 판이다. 구하는 게 세상, 소원 목적하는 게 세상이다.


26절: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교회들이 모두 세상 종교적 사역과 활동으로 나갈 때 주님이 오신다고 한다.


예수를 믿는 성도라면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성도, 변화 받은 성도가 가치가 있다. 그냥 교회에 다니는 것은 하나의 교인일 뿐이다. 그럼에도 세상 종교적이고 땅의 존귀영광 부귀공명을 쫓는 자로 떨어진다면 주님께서 ‘마지막 시대에 믿음 보겠느냐‘ 했듯이 이건 본질적인 신앙이 없는 거다. 그만큼 교회들이 속화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신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건 ‘봐라’ 하는 뜻이고, 다른 말로는 ‘너희들이 뭘 가지고 영광이라고 하느냐? 내 것과 견줘보자’ 하는 뜻도 들어있다.


구약성경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때는 늘 캄캄한 구름 속에서 번개가 치면서 말씀을 하신다. 왜 캄캄한 구름 속에서 말씀을 하실까? 왜 그럴까? 캄캄한 구름 속에서 말씀을 하실 때는 당신을 봐라 그 말이냐, 보지 말라 그 말이냐? 보지 말라는 뜻이다. 보려고 해도 안 보인다. 그러니까 구름에 싸여서 구름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것은 ‘나를 보면 너희는 죽는다’ 하는 것이다. 왜 죽는 거냐? 인간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죄인이기 때문이다. 죄는 하나가 있어도 죽는 거고 둘이 있어도 죽는 거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보면 예수님께서 흰 구름을 타고 오신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구름 속에 숨어서 말씀하시고 신약에서는 구름을 타고 오신다. 그래서 이 두 가지를 놓고 ‘왜 그랬을까’ 하고 비교하여 견주어 보면 신약에서 예수님이 흰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은 ‘보라’ 하는 의미가 들어있다.


구름을 탔다고 하면 상징적 표현상 최고의 대우를 말한다. 구름을 안 타고 그냥 슥 오는 것을 볼 때 느낌적으로 좋을까, 아니면 하얀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이 보는 면에서 느낌이 더 갈까? 소리 없이 오는 것보다 뭘 타고 온다는 게 어딘지 모르게 스릴을 느낄 수 있다. 바다 위로 걷는 것도 좋고, 바다 위로 뛰어간다면 더 스릴이 있다. 가만있으면 빠지는데 바다 위에서 뭘 타고 안 빠진다는 게 스릴이 있다.


큰 권능과 영광이라 함은 신령한 하늘의 최고의 높음으로 오심을 말하는데, 이게 아닌 땅에서 알아준다고 하는 그 어떤 큰 영광이라도 그 분 앞에서는 전부가 저주를 받는다. 말하자면 세상 속화된 땅의 큰 권능과 영광을 주님의 것과 비교를 해 보라는 것이다. 자기가 이걸 비교할 수 있겠느냐?


땅의 것은 임시성이요 몸 밖에 둘러 쓴 것이다. 예수님을 멀찍이 뒤따라 간 홑이불 맨이 있었는데 그가 입은 홑이불은 벗겨질 홑이불이다. 그것을 그냥 홑이불로 생각하지 말고 홑이불은 자기 겉을 보기 좋도록 감싸는 거다. 그 때 그 상황을 보면 그 홑이불 맨이 속옷도 안 입고 홑이불만 둘렀는데 무리 중의 한 사람이 그걸 휙 젖히니 알몸이 튀어나와서 이 홑이불 맨이 그냥 도망을 갔다.


오늘날 특히 기독교 안에서 외부로부터 물질성적인 것으로 입혀진 것은 다 홑이불과 같은 거다. 그게 벗겨지면 아름답고 깨끗한 속옷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없다. 그러니 추한 모습이 드러난다. 예수 수년 수십 년을 믿어도 추한 말 추한 생각이 막 튀어나온다.


싸움질 시기질투 존귀 명예 그게 뭐냐? ‘목사다. 박사다. 무슨 총회장이다’ 하는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천국에 가봐야 그런 거는 없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성품으로 자체화 된 실력밖에 없다. 그런데 세상은 둘러 쓴 그것으로 자꾸 따지고, 교회 안에서도 보면 목사님들 세계에서 둘러 쓴 것을 가지고 어깨에 힘을 주고 남을 무시하고 있다. 오늘날 기독교 안에 껍데기 임시성에 속한 것 등 아무 힘이 없는 것을 가지고 자기의 힘을 삼는 자가 많다. 그런 것으로 힘을 삼는 대제사장들 서기관 유대인의 공의회. 이게 혼합이다. 교권 세권 무력권의 혼합이다. 이거 아무 힘이 없다.


역사적으로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아먹었다. 이 가룟유다는 돈을 사랑했다. 돈을 사랑하며 예수 믿는 자는 돈 때문에, 자기의 어려움 때문에 반드시 예수를 팔게 돼 있다. 구원을 팔게 돼 있다. 어디로? 그런 세권 교권을 가진 자에게 팔게 돼 있다. 그들과 한 무리가 된다. 이치가 그렇다. 그래서 각자 속에 들어있는 신앙의 성질도 구별 분별을 해야 하는 거다


주님의 것과 비교를 해 볼 때에 장자리는 무엇으로 되었나? 사회적으로도 장자리가 있다. 그리고 교회에서도 노회장 총회장 등의 장자리가 있다. 이것이 돈으로 되었느냐, 아니면 육신의 나이로 되었느냐, 아니면 무슨 업적으로 되었느냐, 아니면 투표로 되었느냐? 무엇으로 영광을 얻었으며 무엇으로 권세를 쥐어 휘두르느냐? 주님은 무엇으로 된 영광이냐, 무엇으로 된 권이냐? 세상학문이 배경으로 된 것이냐, 진리와 성령으로 된 것이냐? 예수 믿는 자기는 오늘날 무엇으로 힘을 삼고 영광으로 삼느냐?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으로 오셨고 그 살으심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육신을 가지고 말씀으로 이뤄 놨다. 그러니까 말씀이 주격이 돼서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으로 100% 들어간 거다. 예수님은 100%이고, 우리는 된 것만큼.


우리의 존귀 영광성은 말씀화 성품화 인격화 자체화 영능화 실력화 실상화 된 것만큼 되는 거다. 이건 전부가 하늘의 것, 천국의 것, 예수님의 것, 하나님 아버지의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성격적으로나 성질적으로나 성분적으로나 하나님의 것과 같지 않다면 이건 저주로 떨어지는 거다.


원리가 신령한 것, 하나님의 것이 아니면 천국으로 못 들어가는 거다. 그래서 우리가 이뤄진 믿음이, 영능의 실력이 하늘의 것으로 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기의 지식도 하늘의 것, 지혜도 하늘의 것, 세상을 살면서 모든 이해타산이 하늘의 것으로 돼야 한다.


말세 때 교회들이 전부 세상화 될 때에 깨어있는 성도는 그 때 즉시 예수님의 것과 비교를 해보고 선택을 바로 해야 한다. 사실 이 말씀을 지금 우리에게 준 것은 지금 비교를 해서 선택을 바로 하라는 것이다.


땅에 떨어진 인도자들은 땅에 떨어진 별들이다. 이들에게는 유혹과 미혹이 많다. 많은 교회들이 예배당 입구에 ‘우리교회에는 신천지는 들어오지 마십시오. 고발조치 합니다’ 하고 써 붙여놓았는데 이게 참 우스운 일이다. 그게 다 유혹이요 미혹이다. 모르면 어느 한쪽으로는 안 속더라도 어느 한쪽으로는 또 속는다. 그건 뭐냐? 구별 분별이 안 된다는 것이다. 신앙의 구별 분별은 행위 이전에 속에서 구별 분별이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안 된다.


사람들이 남에게 속은 것은 그렇게 안타깝게 여기는데 자기가 몰라서 자기에게 속은 것은 더 미련한 건데 왜 이것에 대해서는 무덤덤하냐? 그런 면에는 눈도 깜짝 안 한다. 그러니 자기가 자기와의 내적 싸움에서 얼마나 잘 넘어지는지!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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