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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

마가복음 궁극이............... 조회 수 479 추천 수 0 2016.05.15 15: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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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막11:17-19 
설교자 : 김경형 목사 
참고 : 궁극교회 주일예배 

11장 17절-19절: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 밖으로 나가더라.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이사야56:7, 렘7:11에 기록되었다. 만민은 몇 사람이 만민이냐? 숫자적 만 사람이 아닌 천하사람 다를 말한다.


만민이 기도할 수 있는 집은 어디냐? 하나님의 성전 즉,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을 말한다. 이 예루살렘 성전은 모세와 솔로몬 왕 때로 거슬러 올라가서 건물과 건물의 모든 기구들은 하나님의 설계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하나님의 설계대로 놓여진 것이다.


성전 안에 성전의 기구들이 놓여진 장소도 다 우리의 만들어지는 구원을 위한 순서의 뜻이 들어있다. ‘구약은 지나갔다. 이제는 필요 없다’ 그게 아니고 현재의 믿는 우리도 자기가 이룰구원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설계대로, 하나님의 법칙대로, 신조의 그 기준 척도대로 사람이 만들어지는 그 이치가 들어있다. 어떤 사람이던 만들어져야 한다.


번제단도 하나님의 설계대로 되었다. 제물은 이 번제단에서 하나님의 기준 척도로 잡혀지고 죽어야 한다. 그러니까 번제단에서 짐승이 잡아지고 죽고 하듯이 이걸 신앙정신으로 가지고 와서 보면 자기의 타락된 주관성 즉, 믿는 사람 같으면 안다고 해도 이질적으로 된 것은 하나님의 절대적인 말씀에서 죽어야 한다. 이질적인 것은 살 건 하나도 없다. 이를테면 이방인들이 교회에 들어왔다고 해도 즉, 석가가 들어왔다고 해도, 공자가 들어왔다 해도 이들도 하나님의 신적인 도덕성의 기준에 의해서 고쳐져야 한다.


인간의 것은 임시성이고 방편이고 시간 되면 변질되는 요소로 들어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것은 영원히 변질이 없다. 하나님 당신 자신이 어제나 오늘이나 미래적으로 영원하듯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들어있으면 구약시대 사람이고 신약시대 사람이고 간에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똑같다.


그게 다르다면 현재 이 땅에서 미국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다르고, 한국사람이 만들어지는 게 다를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세계 어느 곳에나 있는 것이니 하나님의 온전의 사람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모든 세계 사람들이 어느 시대 사람이던, 가난한 나라이건 부한 나라이던, 천한 백성이건 어떤 사람이건 다 같은 것이다.


번제단에서 하나님의 척도로 잡혀져야 하는 것인데, 이 번제단에는 네 귀퉁이에 제물을 잡아매라고 네 뿔이 있다. 이 뿔에 짐승의 사지를 잡아매지 않으면 제물이 튀어서 도망가 버린다.


그 다음에 떡상이 있는데, 인간 나의 주관성이 가루로 빻아지고 쪄져서 보기 좋고 먹기 좋게 떡상에 놓여진다.


그 다음에 촛대가 있는데, 촛대에 불이 당겨지듯이 자기 속에 성령의 기름으로 말씀이 불이 당겨져서 밝아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언행심사로 그 빛이 비춰져야 한다.


그 다음에 법궤 앞에 향단이 있는데, 법궤 앞에서 기도로 분향이 되는데 이 기도는 하나님의 의사단일에 맞추는 것이다. 자기의 세상 임시성적인 것을 갖고 오면 즉사한다. 세상적이고 이질적인 것은 하나님 앞에 용납이 안 된다. 어느 교회든 어느 교단 교파이든 간에 목사가 성경구절을 들어 세상 것을 갖도록 말한다면 그건 하나님 앞에 멸망당할 자이다. 이단이고 삼단이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세상 것을 섞으면 하나님 앞에 형벌이고 멸망이고 심판이다.


자기가 다른 사람을 향해서 ‘거짓이고 이단이다’ 하고 말한다면 반드시 그가 무엇이 이단이고 거짓인지를 질적인 면에서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드러낼 수 있다면 그렇게 해도 된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건 성령님의 감화로 말한 거니 틀림이 없는 말이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 인도자들의 세계가 그런가? 거짓 종들이 참 많고, 목사가 세계적으로 한국적으로 이름이 났다고 하면 교인들은 그걸 유명하게 봐준다. 하지만 인간 잔꾀로 얼마든지 유명하게 보이게 할 수도 있는 거다. 이런 자들이 남을 향해 ‘이단이니 삼단이니’ 할 때 조심해서 들어야 한다.


성전 안은 만민이 기도할 장소인데, 기도를 할 때는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의 본질로 들어가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가 말씀을 미처 깨닫지 못해서 못 만들어진 게 많이 있으니 자신이 번제단에 놓여지는 게 먼저 돼야 한다.


장막성전에 보면 유다와 몇 지파가 동쪽으로 되어 있다. 유다 쪽으로 난 문 즉, 미래적으로 예수님이 태어난 그 말이다.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통해서 들어오게 돼 있다. 여기에는 만들어지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의 성질로 만들어진다는 그게 들어있는 거다. 들어와서는 딴 기도 딴 짓을 하면 안 된다. 모든 인간은 기도를 할 것 같으면 예수 그리스도로 만들어지기 위한 기도를 해야 한다. 딴 기도는 안 듣는다. 왜 그러냐? 다른 기도는 선악과 따먹고 불순종에서 나온 기도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기준적인 의사를 찾는 기도, 하나님의 지혜지식을 찾는 기도, 하나님의 도덕성을 찾는 기도, 하나님의 능력성을 찾는 기도를 해야 하고, 찾았으면 찾는 족족 발견한 족족 먼저 자기를 고쳐나갈 것이다. 자기를 쳐다보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깨달음이 돼야 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자기를 볼 수도 없고 고칠 수도 없다.


이방종교인들이 자기를 본다고 해도 자신이 하나님 앞에 선악과 따먹은 정신 사상을 가졌다는 것은 안 보인다. 그러니까 현재적 자기 기준에서 육신적 세상적 욕구를 자꾸 참는 거다. 그러면 참는다고 해서 그게 없어지느냐? 없어지는 게 아니다. 어느 순간에, 어느 환경에, 어느 처소에서 푹 튀어나온다. 그러니까 사람이 고쳐지는 것은 이방종교에는 없다. 오직 성경, 하나님의 말씀밖에 없다.


이방종교는 사람을 구원하는 지식 자체가 없다. 이해타산적으로 영원히 끌고 가는 이치에 딱 맞는 지식도 없다. 그래서 만일 세상 사람들 모두가 불교를 믿는다면 이 세상 인류는 멸종이 된다. 불교는 물질계악설이면서도 시집장가 가고 한다. 그러니 얼마나 웃기는 일이냐? 그 이치를 알아야 한다. ‘사람이니 다 그렇지’ 그렇게 볼 게 아니라 정신 교훈 소원 목적에서 하나님의 성품적으로 나오는 이치를 알고 보면 그건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다른 사람 위한을 기도도 그가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의 기준에 맞도록 기도해야 한다. 그 면을 위한 기도는 구원에 관한 기도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하나님의 기준에 맞도록 기도를 하려니 자기가 먼저 하나님의 기준에 맞아야 한다. 자기는 안 맞는 상태에서, 모르는 상태에서 자꾸 남이 그렇게 되길 기도하면 말이 안 되는 거다. 그리고 기도만 그렇게 하고 인인관계성에서는 일반으로 관계가 돼버리면 사람이 안 고쳐진다. 자기가 그만큼 힘쓰지 않는다는 면에서 큰 병폐다.


인간이 하나님의 지혜지식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멀어지면 하나님을 알지 못함으로 고통이 오게 된다. 그 다음에는 세상 사는 게 전부는 고통으로 들어간다. 생각도 차원이 있다. 저질적인 생각이 있고 고차원적인 생각이 있는데,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그 생각의 깊이와 높이와 범위를 알지 못한다. 생각이 굉장히 좁은 사람이 있다.


또한 하나님의 도덕성적 면에서 하나님과 멀어지면 인인관계 연관관계적인 면에서 고통이 온다. 또한 하나님의 능력성적인 면에서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무능력자라는 고통이 따라온다.


하나님의 의사적 단일의 본질에서 멀어질수록 자신이 고통을 받는 줄을 알아야 한다. 이룰구원을 잘 이뤄가는 사람은 한 시간이던 열 시간이던 그만큼은 그 사람 안에 평안이요 평화다. 그 마음이 증명을 해 준다.


변질되고 썩고 불타질 물질이나 시간 속에 있는 지나가는 것을 붙들고 있거나 소원 목적적으로 세상 것으로 되어 있으면 정신적 심적 고통이 오고 병이 온다. 세상 것은 다 지나가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붙잡고 걱정을 하고 있으면 고통이 찾아오고, 늦었다고 나이 탓 세월 탓만 하고 있으면 고통은 더 가중이 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어야 한다. 고통에서 빨리 헤어나고, 자기의 미래나 생의 삶의 길이 확장되고 신앙 면에서 질적으로 올라가는 건 다 자기 할 탓이다. 안 하면 안 할수록, 모르면 모를수록 자기 고통이다.


그런 상태에서 철야기도 금식기도 새벽기도는 왜 하느냐? 왜 시간을 정해놓고 기도를 하느냐? 무슨 목적으로 기도를 하느냐? 말하자면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는 기도를 왜 하느냐? 잠도 안 자고 배도 고프면서 왜 그런 짓을 하느냐?


이방종교인들처럼 잠 안 자고 공들이는 기도를 한다면 누구만 고통이냐?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안 찾는 기도는 왜 하느냐? 그런 기도는 기도의 효력도 없는 건데 왜 하느냐?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밟고 올라가고자 하는 사다리부터 바로 놓아야지 옆으로 비스듬히 놓고 올라가지느냐? 그냥 넘어진다.


세상 말세가 될수록 성도의 인격이 하나님의 성품에 실상적으로 만들어지는 소원성의 기도는 듣기가 힘들다. 주님이 이 말씀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성품의 사람으로 만들어지기 위한 기도를 안 하는 것은 세상정신에 팔려서이거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게 어떤 것인지를 몰라서 안 하는 것도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는 삶을 살려고 하면 자기의 세상욕심을 버려야 하게 때문에 이게 싫어서 안 하는 것도 있다. 그러니까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성품보다도 더 좋은 게 있다 그 말이다.


보면 예수를 믿는 것도 자기 집에 돈이 풍부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예수 믿으세요’ 하면 잘 안 믿는다. 예수 믿는 것보다 더 재미있는 게 있으니까 그렇다. 교회에 오면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마음대로 하는 것인데, 내가 하나님 마음대로 하면 하나님처럼 속성이 그렇게 들어가는 건데 그게 그렇게 싫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는 그 재미로 사는데, 제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부자든 가난한 자던 자기 몸이 되게 아파 들어갈 때 하나님을 찾는 경향이 있다. 그때서야 ‘하나님, 나 좀 살려 주십시오’ 한다. 이런 사람은 그러다가도 누가 ‘어느 의원이 당신이 걸린 병을 잘 고치더라’ 하면 그리로 갈 가능성이 많다.


사람 되는 소리부터 먼저 들어야 하는 건데, 마음 다스리는 것부터 먼저 들어야 하는 건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자기 몸이 되게 아프다고 할 때 마음속에서 스스로 ‘아이고 아프다’ 해 봐라. 그 아픔이 육체적으로 느끼면서 심적으로도 아픔이 가중이 된다. 그런데 신체적으로는 아프지만 그 마음이 하나님 쪽으로 직결로 가고 있다면 육체적 고통을 그만큼 덜 느낀다. 그러면 웬만한 고통을 이길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일상생활에서 자기의 고통을 막 가중을 시킨다. 날씨가 조금만 더우면 ‘아이고 더워라’ 자꾸 그런다. 옷을 벗고도 ‘아이고 더워라. 미치겠네’ 자꾸 그러면 그 사람은 미쳐버린다. 겨울을 생각해서 가만히 있으면 슬쩍 사라진다. 웬만한 건 자기 마음 쓸 탓에 있다.


‘너희가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강도의 굴혈이란 강도의 소굴이라는 뜻이다. 어떤 곳이 강도의 소굴이냐? 사람을 해치고 금품을 빼앗고, 소굴로 돌아와서는 그것을 나누고, 강도를 키우고 훈련시키고 하는 곳이 소굴이다. 소굴은 사람의 눈에 쉽게 띄지 않는 곳에 있다. 말하자면 산이나 아무도 못 보는 숲이 우거지고 사람이 올라가기 힘든 그런 자리에 있다.


강도의 소굴이 된 그 성전 안을 보면 짐승을 사고 팔고, 돈을 바꾸고 하느라고 짐승들의 울음소리도 들리고 제사장은 바쁘게 왔다 갔다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전의 기구를 들고 왔다 갔다 한다. 그러니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면 부지런하고 겸손하고 열심이 있고 순종을 잘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런 장면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400년 이상 내려온 것이다.


절기를 지키러 외국에서 들어오는 교인들의 편리를 위해서 성전 안에서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는 것인데,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을 교인들도 좋아하는 일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그 성전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분노하면서 둘러엎으셨을까?


성전 안에서 하는 일을 밖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마음속에 들어있는 생각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른다. 세상 이방인들도 전혀 모른다. 세상 육적으로 생각하는 교인들은 신앙하는 목적이 세상 것으로 들어있기 때문에 사람들의 속을 영적으로 보시는 예수님의 눈을 전혀 모른다. 그런 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어떻게 쳐다보는지를 전혀 모른다. 자기 신앙의 마음이 육적으로 들어가 있으면 예수님이 어떤 마음으로 교회를 보시는지, 자기를 어떻게 보는지를 모른다. 예수님의 생각도 자기 생각처럼 취급을 해 버린다.


외부적 표면적 종교사역적 목적으로 나가는 자들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하기 때문에 일반교인들은 그런 교훈에 자신들이 영적으로 죽는 걸 전혀 모른다. 종교사업을 크게 하는 이 자랑이 외식인 줄을 전혀 모른다. 그것이 믿음이 성장될 수 있는 영적 생명이 죽는 것인 줄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런 곳에서는 겉으로는 여호와의 이름으로 율법을 준수한다는 것으로 위장이 돼 있다. 이런 곳에서는 개인적으로 신앙양심을 속이는 것도 많지만 세상을 구하는 교회는 그 교회 전체가 표면적인 하나님의 말씀과 종교적 제도로 위장이 돼 있다. 보는 것이 그 이상을 못 보는 것이다. 천국의 신령한 하나님의 본질 즉,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한 인격의 성품을 닮는 것이 우리의 구원목적인데 이것을 모르고 있다면 이는 분명히 다른 것으로 위장이 돼 있다고 보는 거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인본주의 세상주의 외식으로 위장돼 있는 것을 분노하셔서 그것을 사정없이 둘러엎으신다. 위장돼 있는 게 외식이다.


17절-19절: 참고적으로 15절-17절을 읽어봐라.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왜 예수님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들었을까? 예수님은 최고의 기준인 하나님의 지공법에 맞는 옳은 일을 하신 것인데 그들은 인간생각으로 자꾸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무리가 무서워서 예수님을 죽일 묘안을 찾는다. 왜 무리들이 무서운가 하니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세상에 저런 말씀도 있는가’ 하고 놀랐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가르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옳은 진리이치를 둘러엎으면 그것은 예수님을 죽이는 것과 똑같다. 옳은 이치는 죽일 것이 아니라 자꾸 드러내야 한다. 특히 가르치는 목회자들 속에서 옳은 진리이치 앞에서 사단 마귀 같은 마음을 품고 있으면 안 된다. 옳은 진리이치는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깊이 들어가야 하는데 자기 마음중심이 시기성으로 들어있거나 주관적으로 들어있거나 인간성으로 잔뜩 돼 있으면 절대로 눈은 안 열린다. 하나님 앞에 그 자세는 못 쓴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가르침은 율법적 행위만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하고, 율법을 암송하기, 종교의식을 잘 지키고, 장로들의 유전을 잘 지키라고 하는데 예수님의 말씀은 심령골수를 찌른다. 생각 마음 양심도 찔린다. 말하자면 성경을 달달 외우는 종교지도자들인 자신들보다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은혜를 더 받는다.


교권 세권 재권 지권 등이 합세가 되면 외식이 되어서 반드시 예수님을 죽이는 일을 만들게 된다. 원리가 그렇다.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공의로운 일을 하는 성도나 종을 모함하고 죽이려고 깎아내리는 것은 강도들의 소행이다.


믿는 우리는 일반적인 성격 성질도 고쳐야 한다. 안 고치면 시장 잡배가 된다. 사회적으로 쓰는 용어도 더러운 용어는 쓰지 말아라. 어릴 때부터 좋은 생각이 들어가고 좋은 말을 쓰도록 해라. 그래야 사람이 반듯해진다. (계속)


*************************

성도가 인격자이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심원인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부터 발로된 인간구원의 의사를 좇아서 신앙을 해야만이 기독교 본질에서 이탈하지 않고 가장 효율적 적중적으로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을 덧입을 수 있고, 성도 각자가 이 땅에서 이렇게 덧입은 하나님의 성품의 양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의 누림에 차등이 생기게 됨을 성경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김경형목사님께서 교역자 및 신학생을 대상으로 20여년 동안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세계에서 인간구원을 설정하게 된 원인과 동기와 목적을 깨닫고 하나님의 본질의 신앙으로 나가는 주의 종들이 누룩처럼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참석하실 분은 031-207-5159, 또는 010-8886-5159로 문의해 주세요.(평신도도 참석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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